잠 못 드는 밤, 빚처럼 쌓이는 ‘수면 부채’

수면 부족은 감정 조절과 기억력을 무너뜨리고 치매·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입니다. 현대인을 위협하는 ‘수면 부채’의 원인과 신호, 과학 기반 숙면법을 알아봅니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나고 방금 하려던 말을 자주 잊는다면, 수면 부족의 경고 신호다. 잠이 부족하면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뇌 기능이 떨어지고, 호르몬 균형이 무너진다. 부족한 잠은 빚처럼 쌓여 치매와 심혈관질환이라는 치명적인 이자로 돌아온다.

ⓒ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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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보약’이라는 말보다 수면의 중요성을 잘 표현하는 것이 또 있을까. 수면은 낮 동안 쌓인 피로를 풀고 신체 면역력을 강화하는 필수 생명 활동 시간이다. 잠자는 동안 뇌는 낮에 습득한 정보를 장기기억으로 저장하고, 몸은 다음 날을 위해 회복에 집중한다. 수면이 부족하면 이런 신체 기능에 제동이 걸린다. 최근 한 연구에서 하루 수면이 6시간에 미치지 못하면 치매와 심혈관질환 발병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고 밝혔다.


현대인 다수가 바쁜 일상을 핑계로 수면을 등한시한다. 2024년 대한수면연구학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58분으로, OECD 회원국 평균보다 18% 짧다. 매일 숙면을 취하는 비율도 7%에 불과해 수면의 양과 질 모두 부족하다. ‘잠은 죽어서나 자는 것’이라는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고, 수면 부족이 우리 몸이 보내는 위험 신호와 바람직한 숙면법을 알아본다.

수면 부채, 몸에 누적되는 피로의 빚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 빚이 불어나듯, 잠이 부족하면 ‘수면 부채(Sleep Debt)’가 쌓인다. 수면의학계는 권장 수면 시간을 채우지 못해 생긴 수면 부족분이 빚처럼 누적되는 현상을 수면 부채라고 부른다. 수면 부채가 발생하는 생물학적 원리는 뇌의 신경전달물질 아데노신(Adenosine) 작용에서 찾는다.


뇌가 에너지를 사용하면 아데노신이라는 피로물질이 자연스럽게 생성된다. 깨어 있는 시간이 길수록 아데노신은 뇌에 계속 쌓여 강력한 수면 압력으로 작용하며 졸음을 유발한다. 충분한 수면은 축적된 아데노신을 효과적으로 분해하고 제거한다. 잠이 부족하면 아데노신이 뇌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


2017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연구팀은 수면이 부족한 사람의 뇌에서 아데노신 수용체 활동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 현상이 단순한 피로감을 넘어 인지 기능과 신체 기능 전반에 장애를 일으킨다고 경고했다.

잦은 짜증과 늘어난 식탐, ‘수면 부족’이 보내는 경고 신호

수면 부채가 해소되지 않고 지속되면 우리 몸은 여러 이상 신호로 위험을 알린다.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는 것도 그중 하나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감정을 처리하는 뇌의 편도체(Amygdala)가 과도하게 활성화된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내거나 불안감을 느끼는 등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


또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진다. 잠이 부족하면 전두엽 기능이 둔화해 논리적 사고나 문제 해결 능력이 저하되고,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고 저장하기 어려워진다. 2017년 미국 미시간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수면 부족은 장기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CA1’ 부위에 영향을 미쳐 기억 생성을 방해한다.


한편, 신체 대사 기능에도 이상이 나타난다. 수면 부족은 식욕을 억제하는 렙틴(Leptin) 호르몬 분비를 줄이고, 식욕을 촉진하는 그렐린(Ghrelin) 분비는 늘려 비만과 만성질환 위험을 키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한 연구에서 하루 6시간 이하로 잠을 자는 사람이 7시간 자는 사람보다 비만은 1.25배, 복부비만은 1.24배 많았다. 평소보다 단것이나 고탄수화물 음식이 당긴다면 수면 시간을 먼저 점검해야 한다.

만성 수면 부족, 치매와 심혈관질환 위험 높인다

수면 부채가 해소되지 않고 하루 6시간 이하 수면 패턴shutterstock이 만성화되면 치매와 심혈관질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2021년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연구팀이 50대 이상 약 8000명을 추적 분석했다. 하루 수면 시간이 6시간 이하인 사람은 7시간 수면을 유지한 사람보다 치매 발병 위험이 30% 더 높았다.


원인은 뇌의 노폐물 청소 시스템에 있다. 깊은 잠을 잘 때 활성화되는 ‘글림프 시스템(Glymphatic System)’은 뇌 속 노폐물을 제거하는 핵심 기능을 수행한다. 수면이 부족하면 이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아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뇌에 축적될 위험이 커진다. 충분한 수면으로 뇌를 청소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치매를 유발하는 독성 단백질이 뇌에 쌓인다.


심혈관질환 위험도 크다. 수면 부족은 교감신경계를 과도하게 활성화해 혈압을 상승시키고, 염증 반응을 증가시키며,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인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혈관 내벽이 손상되고 동맥경화가 촉진된다. 2011년 영국 워릭대학교 의과대학 연구팀이 8개국 약 50만 명의 수면 습관과 건강 상태를 분석했다. 하루 6시간 이하로 자는 사람은 7~8시간 자는 사람보다 관상동맥질환 발생 또는 사망 위험이 48% 높았다.



수면 부채 청산하는 ‘수면 위생’ 수칙 4가지

수면 부족이 건강에 해롭다는 점은 명확하다. 하지만 수면 시간만 늘린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침대에 누워 뒤척이거나 자주 깨 깊이 잠들지 못한다면, 아무리 오래 자도 수면의 질은 떨어진다. 적정 수면 시간을 확보하면서 숙면을 돕는 올바른 환경과 습관, 즉 수면의학계에서 권고하는 ‘수면 위생(Sleep Hygiene)’을 실천해야 한다.


➀ 규칙적인 수면 시간 유지

잠자리에 드는 시간과 기상 시간을 일정하게 지킨다. 주말에 늦잠을 자거나 평일의 부족한 잠을 몰아서 자는 습관은 생체리듬을 교란해 수면의 질을 떨어뜨린다.


➁ 적절한 운동 시간 설정

낮에 40분가량 땀이 날 정도로 운동하면 적당한 근육 피로를 유발하고 체온 조절에 도움을 줘 숙면을 돕는다. 취침 3~4시간 전 가벼운 유산소운동이나 산책은 긴장을 완화한다. 잠들기 직전에 하는 과격한 운동은 몸을 각성시켜 수면을 방해한다.


➂ 최적의 수면 환경 조성

침실은 빛과 소음을 차단해 어둡고 조용하게 유지한다. 온도는 16~20℃로 약간 서늘하게, 습도는 30~50%가 적절하다.


➃ 전자기기 사용 차단

스마트폰이나 디스플레이 화면에서 나오는 청색광(블루라이트)은 수면 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한다. 잠자리에 들기 최소 한 시간 전부터는 전자기기를 멀리한다.

김진우 하이닥 건강의학기자 tmdrns1111@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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