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사랑 듬뿍 받던 살 토실한 국내산 생태 사라져가는 추억의 맛

[푸드]by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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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시 장안구 ‘동태찌개유명한집’의 동태찌개. 석창인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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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바다에서 명태가 사라졌습니다. 제가 대학에 들어가던 1981년에는 16만 t이나 잡혔다는데, 지금은 kg 단위로도 잡히지 않고 또 잡아서도 안 됩니다. 역사적으로 청어는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고, 대구는 꾸준한 치어방류 사업으로 옛 명성을 찾아가지만, 명태는 해수온도 상승이라는 복병을 만났습니다.


함경도 ‘명천 고을의 태씨’ 성을 가진 어부 때문에 명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전설은 익히 알지만, 그 작명을 한 관찰사의 불길한 예언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조선 후기 문신 이유원은 ‘임하필기’에 민정중이라는 관찰사의 말을 옮겼는데 ‘이 생선은 우리나라 300년의 보물’이라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300년 뒤에는 이 생선이 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는군요.


어쨌거나 이 생선만큼 서민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것도 없어서 고등어가 국민생선 지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당연히 명태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아가미부터 내장에 이르기까지 버릴 것이 하나도 없을뿐더러 저렴한 가격 때문에 조선 중기 이후부터 최근까지 전 국민의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었지요. 그런 까닭에 명태를 이르는 별칭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도 많습니다. 잡는 방법, 말리는 정도, 잡힌 곳, 크기 등에 따라 명태, 동태, 생태, 금태, 낚시태, 그물태, 기계태, 노가리, 왜태, 지방태, 원양태, 북어, 황태, 코다리, 은어바지, 동지바지, 춘태, 하태…. 들어본 이름만 스무 가지가 넘고, 국립민속박물관 조사에 따르면 60가지나 된답니다.


명태는 잡힌 지 2∼3일만 지나면 상하기 시작해 신선하고 살이 포실포실한 국내산 생태는 이제 추억의 맛이 되었습니다. 명태를 산 채로 가져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지만, 그에 따른 비용은 각오해야지요. 실제 명태를 잡아 사이사이에 얼음을 넣어 냉장한 상태로 가져와 생태로 팔고 있는데, 이마저도 대부분 일본 홋카이도 인근에서 잡힌 것들입니다. 하지만 비싼 값을 치르고 생태찌개를 시켰는데 살짝 쉰 맛을 느낄 때가 꽤 있었습니다. 선도가 예측 불허인 생태를 먹느니 차라리 가성비가 뛰어나고 일정한 맛을 내는 동태가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해동 잘한 동태의 살맛은 생태 못지않을뿐더러 알과 곤이 같은 지원군 역할도 대단하니까요.


사라져가는 명태 때문에 가뜩이나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얼마 전 보궐선거에 느닷없이 생태가 소환되었습니다. 심지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까지 터져 머나먼 북태평양 명태의 운명까지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2년 후 방류라지만, 생태찌개 메뉴를 아예 포기하려는 식당도 생기고 있습니다. 지인인 원자력 전문가에게 전화까지 걸어 문의하니 큰 걱정은 말라지만, 아예 명태 수입 자체가 끊길까 두렵네요. 이런저런 명태 걱정에 오늘은 언론인이었던 홍승면 선생이 추천한 북어두주(北魚頭酒)나 만들어 마셔야겠습니다. 만드는 방법은 히레사케와 비슷하지만, 북어 대가리가 복어 꼬리나 지느러미를 대신하지요. 곰곰 생각해 보니 동해에서 사라진 명태처럼 집이나 식당 입구에 매달아두던 북어도 잘 보이질 않네요. 광목천에 묶어 다시 걸어두면 혹 명태가 돌아올까요?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s2118704@naver.com

2023.10.1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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