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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살빼려다 거식-폭식…거울속 내가 물었다, 아름다움이란 뭘까”

by동아일보

‘살이 찌면…’ 펴낸 김안젤라 씨



동아일보

“같이 조여서 말라 죽자. #프로아나 #뼈말라.”


‘뼈의 모양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말랐다’는 뜻의 단어 옆에서 ‘프로아나’라는 낯선 표현을 발견했을 때 김안젤라 씨(36·사진)는 문득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의미를 알아보니 이 단어는 찬성을 뜻하는 ‘프로(pro)’와 ‘거식증(anorexia)’의 합성어로 마른 몸매를 위해 섭식을 강도 높게 제한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여중생 혹은 여고생이 쓴 것으로 보이는 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물을 보고 김 씨는 섭식장애의 일환인 폭식형 거식증을 앓았던 17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를 계기로 ‘살이 찌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창비)를 쓴 김 씨를 4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만났다.


“제 경험이 섭식장애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길 바랐어요. 의학계에선 다이어트를 하는 것만으로도 섭식장애 1단계로 보는데, 한국 사회에선 다이어트가 너무 흔해서 이런 사실조차도 알려져 있지 않거든요.”


김 씨는 무작정 블로그 계정을 열고 처음 섭식장애를 앓기 시작했던 19세 때의 기억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섭식장애의 문턱에 있는 사람들을 구해 내겠다는 사명감에 시작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가까스로 벗어난 어두운 터널을 다시 걷는 작업은 고통스러웠다. 김 씨는 “특히 폭식할 때 끓어오르는 음식에 대한 극심한 욕망을 묘사할 때는 질병을 앓고 있던 과거로 돌아간 것 같았다. 실제로 재발할 뻔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대학에서 의상디자인을 공부하며 음식과 살찌는 것에 대한 공포심을 학습했고 이것이 섭식장애로 이어졌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지금보다 더 엄격하고 왜곡됐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우리 사회가 외적인 아름다움만큼이나 건강에도 관심을 쏟는 분위기로 변했지만, 그의 눈에는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다. 김 씨는 “실제 몸무게보다도 근육량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지며 ‘눈바디’(체중계가 아닌 거울을 통해 몸을 확인하는 것)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며 “하지만 ‘건강함을 위한 근육’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위한 근육’을 추구한다면 체중계와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김 씨가 섭식장애를 극복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줬던 건 그의 ‘일’이었다. 패션 매거진 기자, 강의 콘텐츠 MD 등 다양한 일을 해 온 김 씨는 일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스스로의 정체성과 아름다움을 표현할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고 한다.


한때 양 허벅지 사이의 공간이 얼마나 되는지 ‘눈바디’로 살피며 강박적으로 살을 뺐던 김 씨는 이제 허벅지에 ‘기능하는 근육’을 기르기 위해 노력 중이다. 보기 좋게 올라붙은 허벅지 모양을 위한 근육이 아니라, 지난해 취미 붙인 스노보드에 실제로 쓰일 근육을 기르겠다는 것이다. 김 씨는 독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모두가 각자의 스노보드를 찾았으면 좋겠어요.”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