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공포…러브버그 대량출몰, 한반도 벌레 습격 예고편?
계양산을 뒤덮은 러브버그 떼, 그리고 이어질 ‘벌레의 본편’은 무엇일까. 지구온난화가 부른 기후 재앙의 실체를 짚어봅니다.
러브버그 출몰에 천적 등 관심 증가
![]()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mngbn@)) |
그저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허공을 비행 중인 ‘한 쌍’. 그 한 쌍이 수십, 수백, 수천, 수억 마리가 돼 날아다니는 무시무시한 풍경이 2025년 한반도 상공에서 펼쳐지고 있는데요. 기껏해야 2주간의 비행이라지만 도무지 그 끝이 보이지 않죠. 산 전체를 새까맣게 뒤덮을 정도로 이들의 출몰은 올해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입니다.
검은 비가 돼 쏟아지는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는 수도권 등지를 중심으로 떠다니는 공포의 비행물체로 전락했는데요. 한때는 ‘팅커벨’이라 불리던 동양하루살이의 그림자에 가려졌지만 올해만큼은 다릅니다. 러브버그는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실시간 트렌드와 커뮤니티를 휩쓸며 단숨에 주연으로 올라섰죠.
암수가 한 쌍으로 붙어 다니며 번식하는 습성 탓에 러브버그라는 별칭이 붙었는데요.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출몰한 러브버그는 중국산입니다. 중국 산둥과 남부 등지의 러브버그와 유사한 유전자로 파악됐죠.
2015년 한국에 처음 유입된 러브버그는 2022년 서울 은평구 봉산에서 본격적인 대량 출현 됐는데요. 이후 마포, 서대문 등으로 확산돼 현재는 서울 전역과 인천, 경기 지역으로 급속히 퍼지고 있죠.
이들은 독성은 없지만 짝짓기 상태로 무리를 지어 비행하는 특성 때문에 공포감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평년보다 높은 기온과 이른 장마로 인해 출몰 시기가 6월 중순까지 앞당겨졌는데요. 일부 도심 아파트 단지에서도 ‘떼 출몰’이 관찰될 정도로 활동 반경이 넓어졌습니다.
![]() (출처=인스타그램 캡처(@kimlark34)) |
특히 최근에는 인천 계양산에 출몰한 러브버그 떼가 ‘공포감’ 최고치를 찍었는데요. 무려 395m 높이의 계양산 일대를 점령한 러브버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죠. 이 러브버그로 인한 악취도 심각한 수준인데요.
이처럼 일상을 ‘러브버그’가 뒤덮으면서 러브버그 출몰과 원인, 퇴치 방법 등 관련 자료들이 모두 주목받고 있죠. 그 가운데 여러 오해도 속출했는데요. 한국에 떠도는 러브버그는 서울 은평구 편백나무숲이 원인이라는 얘기부터 맛이 없어 천적이 없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합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정확한 사실은 아닌데요. 은평구청 측과 생태 전문가들은 러브버그와 편백나무 숲과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며 선을 그었고요. 미국 곤충학회가 운영하는 뉴스 플랫폼 ‘Entomology today’에 따르면 러브버그를 섭취하는 개체도 분명 있습니다.
물론 산성맛으로 인해 대부분 식충동물이 선호하는 음식은 아니지만 러브버그의 유충과 성충은 메추라기와 울새, 거미, 집게벌레 등의 먹이죠. 특히 아르마딜로는 러브버그를 다량 섭취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최근 몇 년 들어 폭발적으로 출몰된 ‘돌발 벌레’이다 보니 먹이사슬에 문제가 생긴 건데요. 한마디로 너무 많은 양이 너무 짧은 시간에 번지다 보니 천적으로 구분되는 식충동물들에게 이 ‘새 메뉴’에 대한 학습이 부족했던 거죠.
![]() (출처=오픈AI 챗GPT) |
그렇다면 대체 왜 러브버그는 순식간에 불어난 걸까요? 현재로써는 한 가지 원인만으로 러브버그 대량 발생을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돌발 벌레’의 가장 큰 등장 원인으로 기후변화, 즉 지구온난화를 꼽는데요. ‘알’로 월동하는 벌레들이 따뜻해진 겨울 때문에 치사하지 않고 살아남으면서 벌어지는 사태라는 겁니다.
실제로 한반도 추위는 날로 그 강세가 꺾이고 있는데요. 기상청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겨울철 평균 최저기온과 한파일수는 각각 -4.1도와 5.3일로 나타났는데요. 1973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로 계속 따뜻해지고만 있습니다. 1980년 이후 10년 동안 최저기온은 -4.9도를 유지했으나 최근 10년간 무려 0.8도가 상승했는데요. 한파일수도 과거 8일에서 최근 5일대로 감소했고 서리일수도 연평균 50~60일에서 10년마다 10일씩 감소 중입니다.
유충이 겨울을 무사히 나면서 봄과 여름에 '폭주'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인데요. 사실 이러한 양상은 이미 예고된 바 있습니다. 2014년 전남 해남 지방을 휩쓴 메뚜기떼 , 2015년 충남 미국 선녀벌레떼, 2017년 강원 밤나무산누에나방떼 등이 ‘벌레떼’가 얼마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지 보여줬는데요. 그러나 대개 일회성으로 나타난 후 사라져버리는 특성 때문에 체계적인 연구가 부족했고 확실한 원인 규명도 이뤄지지 못했죠.
![]() (사진제공=환경부) |
![]() 노래기(뉴시스) |
이 틈새를 타 ‘벌레 떼’는 그 개체를 바꿔가며 한반도 공격에 나섰는데요. 이제는 그 기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죠. 2018년 서울 은평구에 출몰했던 대벌레는 2020년 다시 재등장하며 ‘하늘에서 벌레가 비처럼 떨어진다’는 표현 그대로의 벌레 지옥을 마주하게 했는데요.
2020년 벌레 습격은 대벌레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충청도를 중심으로 퍼진 매미나방과 경기도 일원 노래기떼가 주민들을 괴롭게 했죠. 매미나방 유충은 폭발적인 부화로 참나무류를 괴멸시켰고 노래기는 스컹크를 능가하는 악취로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는데요. 이들 모두 따뜻한 겨울이 부화 조건을 만들어 준 결과물이었습니다.
문제는 지구온난화가 이어지며 이들이 ‘돌발’을 넘어 ‘주요 해충’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는 건데요. 해마다 대량 번식으로 등장하는 벌레들의 종류도 다양해지면서 이 공포감은 현실이 됐습니다. 지금의 러브버그떼가 오히려 ‘소소한 예고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죠. 거기다 날이 더 따뜻해지면 여름에 국한되지 않고 가을과 겨울에도 벌레떼의 습격이 벌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는데요. 벌레의 공격이 점점 때와 장소를 가늠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과연 이제 어떤 생명체와 마주하게 될까요? 아직 그 ‘본편’은 시작되지도 않았을지 모릅니다.
![]() (연합뉴스) |
기정아 기자 kki@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