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드로이드 디저트는 이제 그만이랍니다.

[테크]by 김국현
안드로이드는 여러 면에서 구글에게 혜택을 가져다줬지만, 그중에서도 구글이라는 기업에 당의를 코팅하여 무해한 이미지를 입히는 데 효과적이었다.


귀여운 녹색 로봇 마스코트는 촌스러울 정도로 원색이던 구글 로고와 더불어 유아적 느낌을 풍겼다. 저런 천진난만한 분위기의 회사가 나쁜 일을 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안드로이드의 철저하게 순진무구한 이미지는 전략적이었는데, 무미건조하기 쉬운 소프트웨어 버전 대신 달콤한 디저트의 이름으로 홍보되었던 것. 버전에 숫자 대신 명사를 붙이는 일은 유별난 일은 아니다. 애플도 라이온이니 모하비니 동물이나 지명을 쓰고 있고, 또 마이크로소프트도 시카고나 휘슬러 등 윈도우 코드네임을 지명으로 썼다. 하지만 역시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하는 것은 달콤한 먹을 것이었다.


Cupcake (1.5)

Donut (1.6)

Eclair (2.0)

Froyo (2.2)

Gingerbread (2.3)

Honeycomb (3)

Ice Cream Sandwich (4.0)

Jelly Bean (4.1)

KitKat (4.4)

Lollipop (5)

Marshmallow (6)

Nougat (7)

Oreo (8)


Pie(9)까지 알파벳 순으로 이어지는 디저트의 행진은 안드로이드 애호가라면 마치 철도 애호가가 노선표 외우듯 암송하게끔 만들었다. 초코파이와 연양갱과 강정을 먹고 자란 이에게는 생소한 서양 디저트였지만, 그것이 있는 일상의 느낌이란 어떤 것일지 궁금해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다음에 올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영예의 디저트는 무엇일지 전세계적인 추리가 축제처럼 벌어지곤 했다. 자기가 원하는 후식으로 해달라는 의견도 매년 적잖이 답지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경쟁을 뚫고 간택된 새로운 디저트는 안드로이드 로봇 모형과 함께 거대한 조형물로 변신해 구글 본사 앞에 우뚝 세워졌다. 이 시대의 풍물시(風物詩)가 된 이 풍경은 이렇게 업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기념사진 명소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 스티로폼으로 만들고 플라스틱 안료로 코팅한 이 연례 간이 조형물의 색이 바랠 즈음은 마치 낙엽이 지듯 새로운 버전을 기대하게 하는 계절감을 띠곤 했다.


하지만 이제 더는 안드로이드의 버전명으로 디저트 이름이 쓰이지 않을 것이라 한다. 섭섭한 일이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어쩐지 작년의 파이라는 이름은 너무 성의 없더라니.


흔한 추측은 아마도 Q로 시작하는 디저트를 못 찾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만, 구글의 해명은 조금 달랐는데, 일종의 PC(Politically Correct)적 적응이 엿보인다.


안드로이드 제품 부사장은 블로그 게시물에서 “파이가 항상 디저트인 것은 아니며 일부 지역에서는 롤리팝이 발음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마시멜로는 많은 곳에서 실제로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더 나아가 L과 R은 일부 언어(예: 한국어)로 말하면 구별할 수 없어서 일부에게 Lollipop을 말할 때 그것이 KitKat 이후 버전을 가리키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없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글로벌 운영 체제 이름은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명확하고 관련성이 있어야" 하기에 낯선 디저트 이름의 파티는 그만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다. 나름 설득력은 있다.


수십억 인구가 쓰기 시작하면서 당연히 이에 대한 배려를 안 할 수는 없다. 그 디저트의 문화적 맥락을 모른다면 소외를 느낄 수밖에 없는 이들도 생긴다. 그러지 않아도 생소한 영어 단어가 먹은 적도 본 적도 없어 뭔지도 모른다면 아무래도 와 닿지 않는다.


운영 체제 업데이트란 대중을 북돋아서 이행해야 하는 중요한 메시지다. 그러지 않아도 더디기 짝이 없는 안드로이드의 업그레이드.


“뭐? 뭐? 뭐로 업그레이드 하라고?”

가 반복되는 상황은 피하고 싶을 터이다.


그런데 L과 R의 이야기를 여기에서도 또 듣고 있으려니 이것 또한 서글프다. L과 R의 발음을 구분 못 하는 동아시아인은 미국 영화 등 대중 매체에서 너무 많이 다뤄져 일종의 클리셰가 될 지경이다. 예컨대 깜짝 생일파티의 Surprise! 가 Supplies(보급품)!이 되어 버리는 식의 유머 코드인데, 귀도 입도 L과 R이 구분되지 않은데 안드로이드까지 이를 지적하니 웃음이 나올 리 없다.


때로는 과도한 배려의 제스처가 잊고 있던 서로 다름을 두드러지게 한다. 아예 다름을 신경 쓸 필요 없도록 안드로이드 디저트 이름은 이제 내부에서 자기들끼리만 쓰기로 했다고 한다.


Q는 이미 내부적으로는 퀸 케이크였다고 한다. 퀸 케이크? 그게 뭐지? 내부 코드명은 구글 카페테리아에서 나오는 것 중에 정해지곤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K는 킷캣 이전에 키 라임 파이였다. 음, 이 또한 생소하다. N은 누가이기 이전에 뉴욕치즈케이크였다고 하니 마음껏 인스타스럽다. 이미 구글 내부 직원들은 다음 버전인 R에도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신문물을 엿보는 듯한 디저트 놀이도 이제 모두의 것에서 일부의 놀이로 그렇게 되돌아갔다.


대신 우리에게는 버전 10이 주어졌다. 합리적이고 적합한 수다. 10이라는 수는 십진법에서 십계, 십간(十干)에 이르기까지 꽉 찬 느낌, 안정적 느낌을 준다. 또 이 업계에서도 소비자 사이에서 10이란 성공적 안착을 의미하기 시작했다. 아이폰 텐도, 맥오에스 텐도, 그리고 윈도우 텐도 모두 텐이다. 대세에 묻어가기에 아주 적합한 시기, 적합한 네이밍이다.


아아, 벌써 모두 텐이구나.


버전 이야기는 세월을 돌아보게 한다. 나이 먹듯 버전 숫자 늘어나는 속도는 참 빠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죽을 때 나는 어떤 버전의 무엇을 쓰고 있을까. 그리고 바로 그다음 해에는 어떤 버전의 혁신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그걸 못 보는 일이란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런, 당이 부족한가 보다.

20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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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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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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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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