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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영국 개가 행복할까, 인도 개가 행복할까

by한겨레21

주인 있는 개와 없는 개로 분류되는 영국과 개를 애완견과 길거리개로 분류하는 인도

한겨레21

러시아 모스크바에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개들이 있다. 정기권을 지닌 승객처럼 일정 시간에 일정 구간을 탄다. 이 개들은 사람들이 소유한 애완견(반려견)이 아니다. 도시에서 독립적으로 삶을 꾸리는 길거리개다. 모스크바에 사는 길거리개 3만 마리 가운데 약 20마리가 이렇게 지하철을 타고 여행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쏟아졌다. 지하철역에서 죽치고 시간을 보내는 개, 짧은 구간을 타는 개, 종일 지하철을 타면서 사람들에게 귀염을 받는 개, 이렇게 세 종류의 개들이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2018년 한 트위터 이용자가 사진과 함께 올린 글은 이렇다. “모스크바의 일부 길거리개들은 방대하고 복잡한 지하철 시스템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고 있다. 아침에 개들은 시내로 들어가 먹을거리를 찾고 저녁에는 지하철을 타고 돌아온다.” 역마다 다른 특유의 냄새와 소리로 구분할 것이라는 동물행동학자의 의견이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등 모스크바 지하철 개는 지금까지 관심의 대상이다.

인간 소유물이 되다

나는 모스크바 지하철 개의 지능보다는 왜 우리나라에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개가 없는지에 더 관심이 생겼다. 우리는 사람 뒤꿈치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왕방울만 한 눈망울로 사람을 응시하는 ‘네발 달린 짐승’이 개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간 사회 주변에서 자신만의 삶을 꾸리는 개가 있다니! 그것도 자기 삶터에서 독립된 사회를 이루며 나름 스케줄을 갖고 사람과 교류하며 사는 개 말이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뜨거운 시멘트 바닥에 쓰러져 낮잠을 자던 개들을 상상할 것이다. 사실 길거리개들은 세계 도처에 있다. 지난해 7월 동물매체 <애니멀피플>의 이슬기 통신원이 전한 타이 치앙마이 길거리개들의 이야기는 더 흥미롭다. 이 개들은 하루 일정이 빼곡하다. 해가 뜨면 시주하는 탁발승을 따라다니고, 낮에는 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잠을 자다가, 해 질 무렵 사원으로 가서 관광객과 상인들에게서 먹을거리를 얻는다. 그들은 야생과 문명의 경계에서 자기 삶터를 개척해 견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사실 개의 역사를 보면, ‘자유로운 개’의 모습이 더 일반적이었다. 애견숍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개, 목줄을 달고 주인과 산책하는 개보다 이런 자유로운 개들의 수가 지금도 훨씬 많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딩고, 파푸아뉴기니의 고산 개 등 들개를 비롯해 인도의 파리아, 세계 전역에 사는 길거리개가 바로 그들이다. 사실 배타적 소유관계에 묶인 개들과 그들이 인간과 함께 누리는 문화는 서구와 선진국이라고 일컫는 나라의 일부에 국한된 현상이다. 그들은 개의 주류가 아니다.


현재 개는 300~400개 품종으로 분류되는데, 절반 이상이 18세기 이후 교환가치를 높이기 위해 인위적인 교배로 탄생한 상품이다. 상품화는 소유 개념을 더 강화한다. 애완견은 인간에게 소유됐고, 소유되지 않는 개, 즉 길거리개는 이방의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개라는 종의 역사에서, 가장 많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유전자를 간직하는 것이 바로 길거리개들이다.

인도, 길거리개도 임의 도살하면 안 돼

동물지리학자 크리티카 스리니바산은 재미있는 분석을 했다. 인도 출생으로 영국에서 공부한 그는 2013년 논문에서 두 나라의 개를 비교했다. 영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개 애호국이자 동물복지 선진국이다. 세계적인 동물복지 기준과 법이 영국에서 나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반면 인도는 지저분한 골목길, 소와 개가 돌아다니는 제3세계에 가깝다. 언뜻 보면 영국 개가 더 행복할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우선 두 나라의 법과 제도를 분석했다. 영국은 일찍이 1906년 개법(Dogs Act)을 제정해 경찰이 떠돌이개를 포획할 수 있도록 했다. 개는 보호소에서 일주일이 지나도 주인이 찾아가지 않으면 폐사시킬 수 있도록 했다. 1990년 환경보호법 등에서도 이 기조는 이어졌다. 영국 법에 따르면, 영국에 사는 개는 단 두 종류가 있다. 주인이 있는 개와 없는 개. 영국에서 주인이 있는 개는 동네 공원의 개 수영장에서 헤엄치고 놀 정도로 높은 복지를 누리지만, 주인을 잃어버리거나 주인에게 버려지면 한순간에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다.


인도에선 좀 다른 양상을 보인다. 1960년 동물학대방지법이 있었지만, 거리의 개들은 민원이 들어오거나 문제가 있을 때, 지방정부가 전기나 독극물로 처리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2001년 동물번식제한법(Animal Birth Control)이 시행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 법은 개를 ‘애완견’과 ‘길거리개’ 두 종류로 나누었다. 길거리개도 임의로 도살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는 길거리개에게 그들의 영역을 인정하고 삶을 꾸릴 수 있는 법적 시민권을 주는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타이 치앙마이는 한발 더 나아간다. 치앙마이시는 길거리개 정책을 ‘해수 구제’에서 ‘개체 관리’로 바꾸었다. 길거리개에게 밥을 주고 보살피라고 시민에게 권장한다. 정부가 나서서 길거리개들에게 광견병 예방접종을 하고 중성화수술(동물의 생식 기능을 없애는 수술)을 한다. 치앙마이에서는 길거리개를 ‘커뮤니티 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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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 위를 걷는 ‘선진국 개들’

모든 인도 개가 영국 개보다 삶의 질이 높다고는 할 수 없다. 인도에서 길거리개들은 쓰레기장을 뒤져야 하고, 인심 좋은 인간을 찾아다니는 비굴한 삶을 살아야 한다. 종종 광견병이 돌고 굶어 죽는다. 동물번식제한법 제정 이후에도 길거리개를 폐사시키려는 지자체가 있어 대법원까지 간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인도의 길거리개들은 영국의 애완견보다 비참한 삶을 살망정 한순간에 죽음과 고통으로 미끄러지는 담벼락 위를 걷지는 않는다. 길을 잃어버리거나 버려졌을 경우 당장 삶이 끝장나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무언가 큰 진보를 이룬 것 같지만, 얼마 전 우리 주변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는 불과 100년 만에 서구 중심적인 동물 관념에 젖어들고 말았다. 사실 인도의 개, 타이의 개는 우리 주변에서 독립적으로 살던 ‘마을개’들이다. 우리나라에서 마을개들은 사라졌다. 인간의 손길 밖에 있는 개들은 ‘유기견’으로 낙인찍히며, 동물보호소에 갇혀 대부분 안락사된다. 인도 개와 영국 개를 고찰하는 것은 우리에게 다른 상상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런던(영국)=남종영 <애니멀피플>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