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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해장술에 피비린내 나는 전설 한 스푼, 블러디 메리

by핸드메이커

칵테일 8종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

최근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의 로비 라운지 카페 갤러리에서는 여름을 맞아 오는 8월 31일까지 칵테일 8종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단순한 칵테일이 아닌 파인애플‧아보카도‧애플망고 등 갖가지 과일로 여름을 표현했다. 

블러디 메리 /unsplash

요즘은 칵테일을 커피믹스처럼 간편하게 즐기는 등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주류업계들이 일명 '주류 대전'에 참전 중이다. 더위가 일찍 찾아오면서 사람들도 와인이나 칵테일 등의 시원한 술을 한 잔씩 즐기게 됐다. 칵테일은 종류도 많고 취향대로 즐길 수 있는 술이지만 칵테일 중에서도 단연 유명하며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것이 있다. 메리 튜더, 또는 거울의 마녀가 생각나는 '블러디 메리'다.

메리 1세, 메리 튜더 /flickr

블러디 메리는 보드카에 토마토 주스, 우스터 소스, 핫소스, 마늘, 허브, 샐러리 등 여러 향신료를 첨가한 칵테일이다. 왜 칵테일에 여왕의 별명이 붙었는지 단순히 생각해 본다면, 칵테일의 색이 마치 피 색깔을 연상케 해서 그런 이유가 붙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메리 1세, 메리 튜더가 본명인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으면 '피의 메리'란 별명이 붙었는지 의아해질 것이다.


헨리 8세의 외동딸이었던 메리 1세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많은 것을 보고 자랐다. 그의 아버지가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인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면서 메리 1세는 사생아로 지위가 바뀌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의 어머니를 창녀 취급하고, 그가 믿었던 교회를 조롱하고, 그와 어머니에게 가해지는 폭행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헨리 8세는 로마 교황청이 메리 1세의 어머니였던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을 반대하자 영국의 국교였던 가톨릭을 버리고 국교를 바꾸면서까지 앤 불린과의 결혼을 고집했다. 앤 불린은 메리 1세의 왕위 계승권을 뺏고 자신의 딸 엘리자베스의 시중을 들게 하는 등 하녀 취급을 했다. 헨리 8세가 죽은 후 세 번째 부인에게서 얻은 아들 에드워드 6세마저 17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당시 국민들의 선망을 받았던 메리 1세가 여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영국 브라이튼 근처 루이스에서 열리는 횃불 축제, 17개의 십자가는 메리 1세에 의해 처형된 17명의 개신교 순교자들을 의미한다 /flickr

메리 1세는 독실한 로마 가톨릭 신자였고, 영국 역사상 최초의 여왕이 됐을 때 헨리 8세 시기 반포했던 종교 관련 법률을 무효화시키고 로마 가톨릭에서 독립했던 국교회를 가톨릭으로 복귀시키는 등 헨리 8세의 반가톨릭적 정책을 뒤집으려 했다. 메리 1세는 자신의 어머니인 캐서린 왕비가 쫓겨나고, 자신 아버지의 재혼을 위해 만들어진 영국 국교회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그러나 헨리 8세 시절 새 종교 개혁 세력들이 이미 많이 성장한 시기라 메리 1세의 정책들이 제대로 받아들여질 리가 만무했다. 그는 휴 레티머 주교, 니콜라스 리들리 주교, 토머스 크랜머 대주교 등 성공회 성직자들과 개신교 신자들을 차례로 체포해 처형했는데, 그 수만 해도 3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또 그는 가톨릭에 어긋나는 책들을 영국으로 가져오는 자들은 누구든 엄벌에 처한다고 공표했다. 특히 에스파냐 왕실과의 결혼 이후 메리 1세는 가톨릭을 신봉하며 영국 국교회인 성공회와 청교도를 철저하게 탄압했다. 매일매일 화형장의 불길이 끊이지 않았고, 메리 1세는 가톨릭의 이름으로 수많은 개신교 사람들을 죽였다. 이런 일들로 인해 메리 1세는 ‘피의 메리(Bloody Mary)’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블러디 메리 칵테일이 메리 1세의 별명에서 따왔다는 건 여전히 논란이 있다. 전문가들은 토마토 주스가 이 시기 흘린 피를 상징하며, 불타는 보드카는 메리 1세의 화형이라는 수단을 보여준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칵테일 블러디 메리가 이 별명에서 따왔다는 것도 하나의 설일뿐이고, 다른 설도 있다. 

해리의 뉴욕 바 /flickr

당시 만들었을 블러디 메리 /flickr

또 하나의 설은 1921년 금주법이 성행할 시절 '해리의 뉴욕 바'에서 근무했던 페르낭 프티오가 블러디 메리를 발명했다는 설이다. 이것 또한 설일뿐이지만 메리 1세와 더불어 가장 흔히 알려진 가능성이다. 해리의 뉴욕 바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비롯해 미국 이민자들이 자주 드나드는 단골 가게였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술을 좋아했는데, 해리의 뉴욕 바에서 판매하는 토마토 주스와 칵테일을 섞어 만든 음료를 맛보고 너무 좋았던 나머지 대량으로 이 음료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이후 1939년 뉴욕 '21클럽'에 드나들던 코미디언 조지 제셀이 보드카에 토마토 주스를 섞은 칵테일을 만들었는데, 그가 이 음료를 만든 이유는 밤새 술을 마시고 난 후에 해장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이후 페르낭 프티오는 해리의 뉴욕 바에서 만든 블러디 메리 레시피를 가지고 와 1933년 뉴욕의 '킹 콜 바'에서 현대의 블러디 메리를 발명해 손님들에게 선보였다고 한다. 킹 콜 바에서 페르낭 프티오가 만든 블러디 메리는 뉴욕 시민들에겐 처음엔 그다지 신선하진 않았다고 한다. 손님들은 음료에 약간 싱거운 맛이 나니 여러 향신료를 넣어달라고 요청한다. 프티오는 요청을 받아 검은 후추, 우스터 소스, 레몬, 타바스코 소스 등을 첨가해 변신을 시도했다. 

뉴욕 세인트 레지스 호텔의 킹 콜 바 /flickr

샐러리와 라임을 곁들인 블러디 메리 /unsplash

킹 콜 바에서는 지금도 850여 가지의 블러디 메리 레시피를 판매한다. 스톨리치나야 보드카 1온스, 토마토 주스 2온스, 레몬 주스 3ml, 소금, 검은 후추, 카옌 페퍼, 우스터 소스가 공식 레시피로 레몬과 샐러리 줄기로 장식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그는 단골손님에게 "조지 제셀이 블러디 메리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사실 내가 지금의 블러디 메리를 만들었다. 조지 제셀이 만든 것은 보드카와 토마토 주스에 불과했지만 내가 소금과 후추, 우스터스 소스를 포함해 레몬 주스와 토마토 주스를 넣고 블러디 메리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고.

샐러리가 들어간 블러디 메리 /pixabay

샐러리 스틱이 돋보인다 /unsplash

그의 블러디 메리는 1942년 잡지 '라이프'에 소개되었고 처음엔 보드카와 토마토 주스, 레몬 주스가 기본이었다가 진한 야채 베이스에 소금과 알코올 등을 넣은 새 조합이 만들어졌다. 특이한 건 샐러리 스틱이 꽂힌 블러디 메리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칵테일에 처음 샐러리 스틱을 제공한 곳은 시카고의 'Butch McGuire's'라는 레스토랑이라 한다. 바텐더가 샴페인 등의 음료에서 쓰는 거품 제거용 막대를 제공하는 것을 깜박하자 이용자가 대신 샐러리 스틱으로 음료를 휘휘 저었다고 한다. 샐러리 스틱이 고명으로 인기를 끈 것도 이 무렵이었다. 


블러디 메리는 미국에서도 대표적인 '헤어 오브 더 독'에 속한다. 'Hair of the dog that bit you'의 줄임말로 개에게 물렸을 때 그 개의 털을 물린 부위에 바르면 낫는다는 설인데, 오늘날에는 과음한 다음날 한두 잔의 술을 더 마셔 숙취를 푸는 '해장술'이란 뜻이다. 인터넷에서 최고의 숙취 치료법이라고 검색하면 블러디 메리를 마시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블러디 메리는 해장술로 인기가 많으며 정말 다양한 종류가 있다. 

블러디 시저 키트 /flickr

보드카와 백포도주를 같은 비율로 섞는 것은 블러디 비숍, 조개 육수를 넣는 것은 블러디 시저, 보드카 대신 아이리시 위스키를 넣는 블러디 몰리 등 칵테일이라고는 하지만 별의별 재료가 다 들어간다. 블러디 메리는 토마토 주스를 베이스로 하지만 알코올이 없는 것은 '블러디 메리'가 아닌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버진 메리'라 부르기도 한다고. 

꼬치 형식으로 고명으로 만들어 장식했다 /flickr

게살도 고명으로 장식할 수 있는 블러디 메리 /unsplash

블러디 메리는 고객의 취향이나 바텐더의 창의력에 따라 음료에 어떤 재료든 첨가할 수 있다는 게 재미있다. 베이컨, 갈비, 햄버거, 미트볼, 튀긴 마카로니와 심지어 꼬치까지 올린다. 베이컨 조각과 미니 도넛을 칵테일 위에 올리고, 로스트 치킨을 통째로 올리기도 하고, 샤워 크림과 양파 프링글스를 고명으로 올린 블러디 메리는 SNS에서 검색만 해도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이색적인 음료로 꼽힌다. 


사실 블러디 메리는 해장술에 어울리는 재료들로 이루어져 있다. 위를 진정시키는 토마토, 손실된 전해질 보충을 위한 소금 등이 기본 베이스다. 토마토 주스는 간의 독소를 해독하는 리코펜이 풍부하며, 비타민C를 포함한 주요 비타민이 들어 있다. 우스터 소스의 비타민B6과 B3은 탄수화물과 지방을 에너지로 전환시키고 독소를 분해하는 것을 돕는다. 또 레몬 주스는 소화액과 유사해 간을 활성화시켜 소화를 돕고, 레몬 주스에 들어 있는 산은 몸이 음식을 천천히 소화시키도록 한다고.

버진 메리 /flickr

말이야 해장술이라고는 하지만 블러디 메리가 완전히 해장을 시켜 주는 것도 아니다. 블러디 메리에는 소량의 알코올이 들어 있고 첨가하는 주스나 향신료 때문에 알코올이 좀 덜 느껴지는 것뿐이다. 해장술이라고 너무 마셨다가는 오후에 급격히 오는 숙취 때문에 컨디션이 더 나빠질 수 있다. 어쨌든 블러디 메리에는 보드카와 알코올이 들어 있으니 정말 숙취를 해소하고 싶다면 차라리 논 알콜인 '버진 메리'를 마시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블러디 메리 /unsplash

술과 토마토의 조합이라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의외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블러디 메리도 사랑받는 이유가 알코올과 토마토의 조합이 좋기 때문이라고. 알코올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성물질로 인해 숙취가 남고 기분이 나빠지는데, 토마토에 들어 있는 리코펜이 이런 부작용을 억제해 준다. 간에서 알코올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활성산소를 리코펜이 효과적으로 없애 주기 때문이다. 헤밍웨이의 단골 해장술이 되어 주기도 했던 블러디 메리는 메리 1세의 피비린내 나는 전설까지 더해져 현대에 존재하는 어떤 칵테일보다도 강렬한 음료로 남아 있다.


김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