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단단하고 진한… 서해안 명물 무엇?

커버스토리┃굴

크기 작지만 쫄깃한 식감의 서해안 굴

굴 무침·어리굴젖 등 양념 요리에 특화

동치미 활용한 굴물회 인기···해장에 으뜸

보령 천북굴은 구이용으로 인기

작지만 단단하고 진한… 서해안 명물

지난 7일 오전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있는 갯벌에서 지역 주민들이 굴을 채취하고 있다. 생굴을 소금으로 염장한 뒤 고춧가루로 버무리면 ‘어리굴젓’이 완성된다. 사진 박형인(810스튜디오)

’작지만 강한 맛’, 서해안(충청남도 서산·보령·태안·당진 일대) 굴을 두고 지역민들이 입 모아 하는 말이다. 충청남도 서산시청 임종근(53) 농업마케팅 팀장은 “작은 고추가 맵듯이 서해안 굴은 굴 재배지로 유명한 남해 굴에 견줘 크기는 작지만, 대신 속살이 단단하고 진한 굴 향이 난다”고 설명한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갯벌에서 자란 서해안 굴은 24시간 물에 잠겨 있는 남해안의 수하식 양식 굴과 달리 계절마다 하루의 반나절씩 여름 더위와 겨울 추위를 오롯이 견뎌야 한다. 이 때문에 성장 속도가 느려 굴 대부분은 크기 2∼3㎝를 넘지 못한다. 그동안 서해안 굴이 주로 김장용 굴이라고 알려진 이유다.

 

작지만 단단하고 진한… 서해안 명물

서해안 지역민들은 굴의 크기가 작아서 오히려 장점이 많다고 말한다. 다른 지역에서 주로 날로 먹거나 굽거나 쪄 먹지만, 서해안에선 굴 무침·굴물회·어리굴젓 등 다양한 요리에 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굴 크기가 작아 미관상 다른 음식 재료와 잘 어우러지고, 맛도 겉돌지 않는다. 작은 굴만이 펼칠 수 있는 맛의 향연인 셈이다. 서해안 굴이 가장 맛 좋다는 12월, 대표적인 서해안 굴 생산지인 충남 서산·보령 일대를 다녀왔다.


지난 7일 오전 7시30분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있는 갯벌.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일찍부터 갯벌에 나와 굴을 채취하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해마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 중순 무렵까지 이곳에선 굴 채취 작업이 이뤄진다. 지난봄에 투석식으로 키운 굴을 캐는 것이다. 투석식은 조수 간만의 차가 큰 바다에 돌을 던져 놓은 후, 돌에서 자란 굴을 채취하는 전통적인 양식 방법이다.

작지만 단단하고 진한… 서해안 명물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서 채취한 생굴. 사진 박형인(810스튜디오)

새벽녘 썰물이 지나간 자리에 굴 밭이 모습을 드러냈다. 갯벌로 저벅저벅 발을 내디딜 때마다 차이는 게 온통 석화(굴)다. “세 시간 정도 채취하면 5~6㎏는 족히 따지 않겠는감?” 올해로 52년째 굴을 따왔다는 이백희(77)씨는 ‘쪼세’(굴 까는 쇠꼬챙이)로 굴 껍데기에서 굴만 날쌔게 빼내 소쿠리로 던지며 말했다. 영하 9도. 갑자기 찾아온 강추위를 피하려고 손놀림이 빨라졌다. 굴 채취를 시작한 지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소쿠리에 굴이 가득 찼다.


백씨가 건넨 2~3㎝의 잘은 굴을 입에 넣고 씹자 쫄깃한 살 사이로 진한 바다향의 즙이 흘러나왔다. “이맘때 딴 굴이 제일이지 그려, 서산 굴은 알이 작아서 고춧가루에 버무리는 어리굴젓 해먹으면 맛있지.” 서해안의 대표적인 특산물인 어리굴젓은 생굴을 소금으로 염장한 뒤 고춧가루를 뿌리고 버무려 담근 젓갈이다. ‘혓바닥이 얼얼하게 맵다’고 해서 어리굴젓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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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굴젓. 사진 박형인(810스튜디오)

오후 2시 간월도리에 있는 어리굴젓 생산업체 ‘섬마을간월도어리굴젓’에서는 이날 오전에 채취한 서해안의 생굴들을 염장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김장용 독마다 생굴 80㎏와 소금 4㎏가 들어갔다. 10~15일간, 실온보다 낮은, 약 20도의 염장실에서 발효 과정을 거친다. 그다음 고춧가루로 버무리면 완성이다. ‘섬마을간월도어리굴젓’ 유명근(53) 대표는 “서산 굴은 둘레에 있는 날감지(날개의 방언)가 7~8겹 정도여서 양념에 버무렸을 때 고루 잘 밴다”며 “서해안 일대에 어리굴젓, 굴 무침, 굴물회 등 양념된 굴 요리가 발달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날감지는 굴이 물을 빨아들이는 가장자리로, 남해안 굴은 5겹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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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밥. 사진 박형인(810스튜디오)

듣는 것보다 직접 먹어보는 게 현명할 터. 서해안 굴 요리 전문 식당 14곳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간월도 들머리로 발길을 옮겼다. ‘원조간월도별미영양굴밥’(041-664-8875)에 자리를 잡았다. 돌솥의 뚜껑을 여니 여기도 굴 밭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밥 위에 작은 굴들이 촘촘히 익은 모습에 침이 꼴깍 넘어간다. 새송이버섯과 호두, 은행 등 견과류까지 올라간 ‘영양굴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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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굴젓을 올린 파래김과 굴밥. 사진 박형인(810스튜디오)

“굴밥은 뚜껑을 열자마자 먹어야 맛있어.” 주인 이문숙(62)씨가 마른 파래 김에 굴밥, 달래간장(진간장에 달래, 참기름 깨소금을 섞어 만든 양념), 어리굴젓을 올리며 말했다. 그가 건네준 굴밥 한 숟가락을 먹자 입안에 감칠맛이 퍼졌다. 이 식당은 31년째 한자리를 지켜 온 지역 명물이다. 1인분에 1만원. 굴밥을 주문하면 굴전과 청국장이 함께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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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물회. 사진 박형인(810스튜디오)

그다음 나온 요리는 굴물회였다. 생굴이 물회 형태로 나오는 게 독특하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채 썬 배, 양파, 오이, 쪽파, 당근, 청양고추, 참깨 등이 들어간다. 이씨는 여기에 밥 한 공기 정도 양의 생굴을 넣었다. “서해안 사람들은 굴을 물회나 굴밥으로 만들어 주로 먹는다. 크기가 작아 보기도 좋고, 숟가락으로 밥과 함께 떠먹기 편하다”라고 말했다. 굴물회를 한 숟가락 떠먹었더니 배와 양파 등이 생굴의 강한 바다 향과 잘 어울렸다. 새콤달콤한 동치미 국물을 마시면 갈증이 사라진다. 숙취로 속이 불편한 애주가들이 해장용으로 굴물회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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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무침. 사진 박형인(810스튜디오)

생굴에 참나물과 서산에서 생산하는 쪽마늘을 섞고 고추장 양념으로 버무린 굴 무침도 별미다. “사계절 생산하는 참나물은 양념해도 순이 살아 있어 식감이 아삭아삭하다. 서해안 굴 특유의 쫄깃함과 어우러진다”고 이씨는 설명했다. 굴 무침 3만원, 굴 물회 2만원.


현지인이 추천한 또 다른 식당으로는 ‘큰마을 영양굴밥’(041-662-2706), ‘맛동산’(041-669-1910), ‘울엄마영양굴밥’(041-662-2072) 등이 있다.


서해안 굴이라고 해서 다 작진 않다. 충남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에 있는 ‘천북 굴 단지’에선 굴 껍데기의 세로 길이가 약 6∼7㎝에 달하는 천북 굴을 맛볼 수 있다. 천북 굴은 크기가 작지 않아 구워 먹기 좋다. 실제로 굴 식당 74곳이 줄지어 있는 장은3리 포구 주변에 도착 한 순간 구수한 냄새가 났다. 식당마다 굴 구이가 넘쳐났다. 이주우(59) 천북 굴 단지 어촌계장은 “천북 굴은 서산 굴에 비해 크기가 다소 큰 편이고, 수분은 많아 구워 먹기 좋다. 불에 1∼2분 이상 구워도 촉촉한 단맛이 난다”고 말했다. 서해안의 다른 지역에 견줘 조수간만의 차가 크지 않아 굴의 크기가 커질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작지만 단단하고 진한… 서해안 명물

천북굴 구이. 사진 박형인(810스튜디오)

이곳에 있는 ‘갯마을굴수산’(041-641-8007)에 들어갔더니, 식탁마다 가로 길이가 12cm, 높이가 33cm인 고무 대야에 천북 굴이 가득했다. 전부 구이용이다. 서산 굴에 견줘 크기가 두 배 정도 커 보였다.


껍데기를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불에 올린 지 1분이 지났을까. 껍데기 안쪽 관자 근육이 불에 익어 떨어지면서 탁 소리가 났다. 재빨리 집게로 굴 껍데기를 잡고 뾰쪽한 굴 따개로 알만 건져 내 먹으면 된다. 천북 굴은 관자(폐각근)가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 식감이 더 쫄깃하다. 2대째 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소영(29)씨는 “천북 굴은 쓴맛이 적고 굽거나 찐 후 초장을 묻히지 않고 먹는 이가 많다”고 말했다.

작지만 단단하고 진한… 서해안 명물

굴 칼국수와 해수김치. 사진 박형인(810스튜디오)

천북 굴이 한 국자 들어간 굴 칼국수도 이 일대 식당이 내세우는 대표 메뉴다. 여름 장은리 앞바다에서 따 온 다시마와 멸치, 꽃게를 섞어 우린 육수에 파, 당근을 넣어 팔팔 끓인다고 한다. 식당마다 바닷물에 배추를 절인 ‘해수김치’를 반찬으로 내놓는 것도 눈길을 끈다. 해수김치는 일반 김치보다 식감이 아삭해 굴 칼국수 같은 면 요리와 찰떡궁합이다. 구이용 천복 굴 한 바구니는 3만~3만5천원. 굴 칼국수 6천원.

서해안 개체굴이란?

서해안에는 김장용으로 주로 쓰는 알이 작은 굴만 있지는 않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굴도 생산한다. ‘개체굴’이다.


개체굴은 2009년 해양수산부와 서해수산연구소가 고부가가치 굴 생산을 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참굴을 종자 개량한 것으로, 크기가 평균 10∼15㎝다. 2~3㎝인 서해안 알굴에 견줘 크기가 10배 이상이다.


개체굴은 패각(굴 껍데기)을 제거하지 않고 판매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덩이굴 형태로 굴을 양식해 패각을 제거하고 알만 채취해 파는 알굴과는 달리 개체굴은 낱개로 키우는 게 특징이다. 개체굴은 서해안 알굴보다 판매가가 약 5~10배 높다. 한 개당 평균 가격은 600∼700원. 크기와 형태에 따라 1400~1600원인 개체굴도 있다. 서해안의 알굴은 개수와 관계없이 1㎏당 약 1만원 선에서 거래한다.

작지만 단단하고 진한… 서해안 명물

충남 태안에서 채취한 개체굴. 평균 크기 10∼15㎝인 개체굴은 치즈 맛이 나면서 고소한 향이 느껴지는 게 특징이다. 사진 박형인(810스튜디오)

높은 값만큼 맛도 있을까? 지난 8일 충남 태안에 있는 개체굴 양식업체 삼동영어협동조합을 찾았다. 채취한 개체굴을 한입 베어 물었더니 상쾌한 해수와 깊은 치즈 맛이 입안에 퍼졌다. 서해수산연구소 수산자원과 허영백(53) 과장은 “서해안 개체굴은 치즈 맛이 나면서 고소한 향이 느껴지는 게 특징”이라며 “프랑스 서남부 노르망디 해안에서 생산되는 개체굴 ‘질라도’(gilladeau) 굴을 표본 삼아 생산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질라도 굴은 연한 치즈 맛이 나는 굴로, 전 세계 미식가들을 사로잡은 대표적인 개체굴이다. 허 과장은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은 조수 간만의 차가 크다. 서해안도 비슷한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충청남도 태안군 이원면과 인천광역시 웅진군 해안 일대에 양식 단지가 형성돼 있다.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일반 굴은 산란기엔 먹을 수가 없다. 개체굴은 생식소를 제거했기에 산란기가 따로 없다. 산란에 필요한 에너지는 성장에 쓰인다. 잘 크고 크기가 큰 이유다. 생식소를 제거하면 어떻게 세상에 태어나는 걸까? 종묘를 인공으로 키워 생산한다고 한다.


충남 태안에서 10년째 개체굴을 양식해 온 김기홍(63) 삼동영어협동조합 대표는 “일반 굴은 겨울철에만 생산할 수 있지만 개체굴 같은 무정란 굴은 산란기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연중 생산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질 좋은 개체굴을 고르는 방법은 없을까? 김 대표는 “패각의 세로 길이가 지나치게 길어 홀쭉한 화살 촉 모양보다는 동그란 게 좋다”고 한다. 패각을 그릇처럼 사용해 굴을 찌면 모양새가 한층 예뻐 고급스럽게 보인다. 이런 이유로 껍질 모양도 가격을 매길 때 영향을 미친다. 서해안 개체굴 대부분이 서울 대도시 고급 레스토랑에 공급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해안 개체굴이 국외에서도 조만간 각광받을 날이 머지않았다고 한다. 허 과장은 “최근 중국에서 개체굴의 소비가 크게 늘었다. 서해안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인접해 신선한 개체굴을 수출하는 데 용이하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바다의 우유’로 불리는 겨울철 제철 식재료다. 칼슘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붙은 별명이다. 바위에 붙어 자라는 굴을 ‘석화’로 부르기도 한다. 굴 생산지는 서해안과 남해안에 고르게 분포해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먹는 굴 종류는 ‘참굴’이다. 9월부터 수확을 시작하지만 보통 11~2월을 굴의 제철로 본다. 김장 속 재료나 국요리, 젓갈 등에 쓰이던 굴은 최근 고급화해 오이스터 바나 유명 레스토랑에 공급된다.

서산·보령/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2018.12.2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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