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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ESC

이젠 한국서 럼도 생산한다고?

by한겨레

이대형의 우리 술 톡톡

한겨레

술. 사진 픽사베이

전 세계 주종(술의 종류)의 수는 얼마나 될까? 우리가 잘 아는 맥주, 포도주, 위스키 외에도 각 나라를 대표하는 술들이 있다. 아프리카의 수수 발효주 피토(Pito), 멕시코 용설란 발효주 풀케(Pulque), 필리핀 코코넛 발효주 람바노그(Lambanog) 등은 술 전문가인 나도 아직 먹어보지 못한 술들이다.


과거에는 주종을 보면 대표적인 생산국이 떠올랐다. 맥주는 독일, 와인은 프랑스, 위스키 하면 영국이 생각났다. 하지만 이제는 종주국이라는 의미가 희미해졌다. 과거에는 오랜 전통을 통해 쌓은 노하우와 좋은 기후에서 생산한 원료가 갖춰져야만 좋은 술이 생산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기술이 공유되고 있다. 각 나라 기후에 맞는 품종들이 개발되고 있다. 품질의 차이도 줄어들었다. 중국의 맥주를 맛있게 마시거나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와인을 가볍게 즐기는 이가 느는 게 현실이다.


과거 와인 하면 프랑스였다. 프랑스 와인은 ‘최고’라는 칭송을 받았다. 프랑스인은 자부심도 컸다. 하지만 ‘파리의 심판’으로 뒤집혔다. ‘파리의 심판’은 1976년 5월24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 와인과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 시음회에서 레드·화이트 와인 부분에서 캘리포니아 와인이 1위를 한 사건을 말한다. 프랑스 외의 다른 지역에서도 좋은 와인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일본 위스키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15년 <위스키 바이블>은 일본의 ‘야마자키(山崎) 싱글 몰트 셰리 캐스크 2013년(야마자키 위스키)’을 1위로 선정했다. 야마자키는 일본 주류회사 산토리의 위스키 브랜드 중 하나다. 야마자키 증류소는 1923년 세워진 일본 위스키 증류소이다. 일본은 위스키의 고장 스코틀랜드조차 잘 사용하지 않는 전통 석탄 증류 방식을 고수하는 등 온갖 노력을 쏟아부었다. 결국 본고장의 품질을 뛰어넘는 제품을 100년 만에 만든 것이다.


이젠 투자와 지속적인 관심만 있다면 종주국보다 더 좋은 술을 생산할 수가 있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좀 더 다양한 술들이 탄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진과 럼을 국내에서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현재 진하면 떠오르는 나라는 영국이다. 소규모 공장에서 다양한 종류의 진이 생산되고 있다. 최근 세계적인 유행도 이끌고 있다. 이런 진을 국내에서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허브농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영국에서 증류 기술을 배워서 온 아들이 협업을 통해 생산을 시작했다. 기본적인 주니퍼 베리(노간주열매) 외에 캐모마일과 솔 꽃, 쑥, 민트, 라벤더, 레몬밤 등을 주재료로 사용했다. 한국적인 재료는 한라봉과 야관문, 헛개나무 열매 등인데, 부재료로 사용해서 우리 입맛에 부담 없는 진을 만들었다. 이 양조장의 꿈은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진을 영국에 수출하는 것이다.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럼의 주재료는 당밀이나 사탕수수로 즙을 발효·증류해 만든다. 원료의 특성상 우리나라에서는 생산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료로 토종 단수수를 국산화해서 럼을 생산하는 곳이 생겼다. 한국식 럼이 탄생한 것이다.


충북의 한 양조장에서는 국산 수수를 이용한 고량주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구한말까지 북쪽 지역에서 생산한 고량주를 중국에 수출했던 고량주 생산국이었다. 품질도 우수해서 수출량도 많았다.


현대는 다품목 소량생산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에 맞춰 우리 술도 변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술들은 아직 부족한 면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꾸준한 투자와 소비자들의 애정이 어린 응원이 결국 종주국을 뛰어넘는 명품 술을 만들 게 할 것이다. 몇십 년 후 종주국들도 앞다퉈 우리 술을 구매하는 ‘서울의 기적’이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이대형(경기도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전통주갤러리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