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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쓰레기, 예의를 갖춰 버려야 합니다” 국내 대표 ‘쓰레기 박사’

by한겨레

[토요판] 인터뷰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배달 포장랩은 재활용 어려운 PVC


재활용 되는 가정용 랩과 섞이면


분리배출 한들 재활용 공정 망쳐


택배 테이프는 종이 재질이라도


뜯어서 일반 쓰레기로 배출해야


재활용 선별 작업자 ‘손톱 곰팡이’


깨끗이 씻어 재질별로 내놓으시길


코로나19가 일깨우는 ‘버림의 윤리’


‘재활용되니까 괜찮다’는 면죄부


재사용으로 소비 줄이는 게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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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시대는 ‘버림’으로써 삶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시기이기도 하다. 지금 꼭 해야 하는 일과 나중에 해도 되는 일, 꼭 만나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게 되었듯이. 비대면 영향으로 이용이 급증한 택배와 배달, 그에 따른 엄청난 양의 포장재와 일회용기들을 처리할 때도 ‘버림’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버려지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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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상자에 붙은 송장 스티커와 테이프는 어떻게 버려야 할까. 종이 테이프를 썼다면 박스에서 굳이 안 떼도 되는 걸까. 배달음식 그릇을 덮은 랩은 재활용이 가능한 분리배출(비닐류)일까, 일반 쓰레기일까. 일회용 종이컵은 분리배출(종이류)일까, 일반 쓰레기일까.


코로나19로 거리두기가 강조되면서 택배와 배달·포장 음식 이용이 급증하고 있다. 그만큼 가정에서 나오는 쓰레기도 늘었다. 물건을 안전하게 배송하기 위해 쓰이는 포장·충전재, 음식이 담겼던 플라스틱 식기들이 며칠이면 수북이 쌓인다.


위생과 안전을 위한 선택이 도리어 위생과 환경을 위협하는 쓰레기로 돌아오는 아이러니는 코로나19 시대의 또 다른 그늘이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수 없다면, 위생과 환경을 위해 다른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쓰레기 박사’ 홍수열(46)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에게 물었다. 그는 11년 동안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운동협의회’(현 자원순환사회연대)에서 소각장과 매립지, 감염성 폐기물, 수도권매립지 불법 반입 쓰레기 문제 등을 연구하고 폐카트리지 재활용 캠페인을 하는 등 쓰레기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온 인물이다.


“‘쓰레기 박사’라는 별명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앞으로 호를 ‘쓰박’으로 할까 생각 중이에요.”


이론·제도·정책·현장을 아우르며 국내 쓰레기 문제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는 ‘쓰박’ 홍수열 소장을 지난 22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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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소용 랩은 ‘일반쓰레기’, 가정용은 ‘비닐류’


—어떻게 ‘쓰레기 박사’가 되셨는지부터 여쭐게요. 대학에선 동양사학을, 환경대학원에서 폐기물을 공부하셨다고요.


“석사 논문을 쓰레기를 주제로 썼는데, 그 과정에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말로 사기 치는 느낌’이 들었어요. 쓰레기 문제를 현장에서 제대로 알아보자는 생각에, 그길로 시민단체 활동가가 됐죠. 현재는 1인 연구소(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에서 연구를 이어가고요. 제가 게을러서 한곳에 오래 정착하는 편이라, 20년 정도 쓰레기 분야에 눌러앉아 있으니 소비자들에게 좀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경험이 쌓인 것 같아요.”


그는 서울환경연합 유튜브 계정을 통해 ‘ 도와줘요 쓰레기 박사’( ▶바로가기) 코너를 1년 넘게 진행하고 있다. ‘뽁뽁이(포장용 에어캡)도 재활용이 되나요?’ ‘식용유는 어떻게 버려야 하나요?’ ‘생수에 미세 플라스틱이 정말 들어 있나요?’ ‘페트병, 어떻게 버려야 잘 버리는 걸까요?’ 이런 일상 속 궁금증을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풀어주는 형식이다. 나긋한 말투, 깔끔한 정리, 무엇보다 무거운 내용도 가볍고 유쾌하게 전달하는 내공이 가득하다.

—‘플라스틱부터 음식물까지 한국형 분리배출 안내서’(부제)를 내건 첫 책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슬로비)를 최근 펴내셨어요. 종량제 봉투에 버리는 것뿐 아니라 분리배출 하는 재활용품도 쓰레기 취급하기 쉬운데, 그 오해부터 짚으시네요.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일반 쓰레기를 담은 종량제 봉투를 내놓는 것과 재활용품 분리배출은 목적이 달라요. 일반 쓰레기는 소각 또는 매립되는 걸로 끝이지만, 분리배출 되는 재활용품은 자원으로 다시 태어나는 길고 복잡한 여행을 해요. 쓸모가 다해 사라지는 쓰레기가 아닌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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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슬로비 제공

—비대면 문화로 택배에 배달음식에 분리배출 할 일이 늘었어요. 그만큼 분리배출 방법이 헷갈리고요. 먼저, 택배 뜯고 생긴 부산물은 어떻게 처리하면 될까요? 코팅된 종이는 분리배출해도 재활용되기 어렵다던데, 송장 스티커는 뜯어서 일반 쓰레기로 버리나요?


“네, 맞아요. 종이를 재활용하려면 얽힌 셀룰로스 섬유를 푼 다음 다시 결합해야 하기 때문에 먼저 물에 풀어야 해요. 코팅된 종이는 일반 종이에 비해 물에 풀리는 ‘해리’ 시간이 길거든요. 재활용 공정에서 코팅지가 다 풀릴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결국 쓰레기로 소각돼요. 일회용 종이컵도 마찬가지고요.”


—일반 테이프보다 친환경적으로 보이는 종이 테이프는요? 택배 박스에서 굳이 안 떼도 되나요?


“모든 테이프는 박스에서 떼는 것이 원칙입니다. 물론 친환경 종이 테이프도 있지만, 한국에선 아직 확인할 수 있는 공인 인증 제도가 없어요.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 테이프인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단 떼는 게 좋아요. 종이 재질이라도 테이프에 사용된 접착제나 코팅 물질 때문에 재활용이 어렵기도 하고요.”


—배달음식을 포장한 랩은 비닐류 분리배출인가요?


“아니요. 그건 일반 쓰레기로 버리셔야 해요. 업소용 랩과 가정용 랩의 재질이 달라요. 업소용 랩은 폴리염화비닐(PVC) 재질이고, 가정용 랩은 폴리에틸렌(PE) 재질이에요. 폴리염화비닐은 재활용하는 데 문제를 일으켜요. 폴리염화비닐에는 염소라는 소금 성분이 많이 들어 있는데, 열을 가하게 되면 염화수소라는 가스를 발생시켜요. 염화수소는 물에 녹으면 염산이 돼요. 독한 가스인 거죠. 염화수소 가스가 발생하면, 그 재생원료로 만든 플라스틱 제품 안에도 기포가 생겨요. 품질이 떨어지는 거죠.”


—업소용 랩과 가정용 랩을 구분하기 어려우면요?


“그럴 땐 랩은 모두 일반 쓰레기로 배출하시는 게 좋습니다. 참고로, 요즘은 밀랍이나 실리콘으로 만든 다회용 랩도 많이 나와요.”


—마스크 버릴 땐 끈을 잘라서 버리자는 얘기도 나온 적이 있어요. 특히 조류나 해양동물에게 치명적이라고요.


“문제의식은 좋죠. 그런데 본질은, 사용한 마스크를 무단 투기하지 않는 것 아닐까요? 종량제 봉투에 담아 잘 버리기만 하면 그대로 묻히거나 태워지기 때문에 동물들에게 위협이 될 일이 거의 없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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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곰팡이’가 직업병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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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식기 같은 플라스틱 재활용품을 깨끗이 씻어 배출해야 하는 이유를 두가지로 정리하셨어요. 재활용품을 녹여 만든 재생원료의 품질을 높이기 위함이라는 ‘원론적’ 설명이 첫번째일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그보다 우선은, 쓰레기를 처리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라고 쓰셨어요.


“재활용품 선별장에는 구더기가 기어다니고, 곰팡이가 날아다녀요. 대충 싸맨 똥 기저귀, 비닐 봉지에 담긴 족발 뼈다귀… 심지어 쥐 사체도 본 적이 있어요. 재활용품 선별장 노동자의 직업병 중 하나가 ‘손톱 곰팡이’예요. 위생을 위해 일회용품을 써놓고, 재활용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에겐 음식물이나 오물이 묻은 (비위생적인) 용기를 내놓는다면 너무한 행동이지요. 가정에서 분리배출 했다고 다 재활용이 되는 게 아니에요. 분리배출 됐어도 선별되지 못한 것들은 결국 쓰레기가 돼요. 재활용 작업자가 가정에서 나온 재활용품을 재질별로 일일이 선별하는 작업을 해야 재활용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어요.”


—‘손톱 곰팡이’라…. 재활용은 철저히 수작업이란 걸 알 수 있네요. ‘나’의 재활용은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만 완성되는군요.


“네, 쓰레기를 버릴 때는 예의를 갖춰서 버려야 합니다.”


—재활용품을 재질마다 선별하는 이유는요?


“플라스틱은 같은 재질끼리 모아 녹여서 재생 원료를 만든 뒤, 다시 플라스틱 제품으로 재활용하거든요. 서로 섞이면 저마다 녹는 온도가 달라 재활용에 어려움이 있고, 플라스틱 강도가 약해지는 등 재생 원료로서 품질이 떨어져요.”


—모든 재질의 플라스틱이 다 재활용되는 것도 아니지요?


“플라스틱 재질은 수백가지가 넘어요. 그중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폴리스티렌(PS), 페트(PET), 피브이시(PVC) 이렇게 다섯가지가 가장 많이 쓰이죠.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폴리스티렌, 페트는 각각 재활용되지만 카드, 핸드폰 케이스, 벽지, 인조 가죽, 앞서 말씀드린 업소용 랩에 쓰이는 피브이시는 대부분 재활용되지 않아요. 또, 선별장에서 골라내기 어려울 만큼 부피가 작은 것도 재활용되기 어렵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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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이 안 되는 작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돌아가는 ‘ 플라스틱 방앗간’(▶바로가기 www.instagram.com/plastic_mill)이 있다. 작은 플라스틱을 분쇄해 새로운 제품의 원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서울환경연합은 생활 속에서 작은 플라스틱을 콕콕 모아 보내는 이들의 모임 ‘참새 클럽’을 시작했다. 지난 7월 시즌1에 이어 9월 시즌2까지 4000명 정원이 순조롭게 마감되며 호응을 얻었다.


칫솔, 빨대, 일회용 수저, 두부 용기, 병뚜껑처럼 작은 플라스틱을 색상과 재질별로 분쇄해 다시 재료로 만든 뒤, 분쇄된 재료를 활용해 제품을 만들어 돌려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일회용 생수병 뚜껑은 다회용 ‘튜브 짜개’로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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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배출에 앞서 ‘올바른 양의 결핍’을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는 재활용을 위한 분리배출 안내서지만, 재사용과 재활용 중 ‘재사용 우선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재활용되니까 괜찮다’는 생각이 일회용품 사용에 면죄부를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질을 녹여 얻은 재생원료를 다시 쓴다는 의미에서 재활용은 “차선”에 불과하다. 녹이는 과정이 반복될수록 원료의 질이 떨어지고, 결국은 쓰레기가 되기 때문이다.


최선은, 쓰레기를 아예 덜 만드는 것이다. “소비를 줄이거나, 소비를 하더라도 제품 수명을 늘려서 쓰레기로 배출되는 양을 줄이는” 재사용이 먼저다.


모든 쓰레기는 필요와 만족을 위해 우리가 소비했던 것이다. 쓰레기가 너무 많다면, 우리가 추구한 필요와 만족이 너무 많았다는 뜻도 된다. 분리배출을 열심히 하기보다 제대로 하기를, 그보다 ‘올바른 양의 결핍’을 지키기를 홍수열 소장은 강조했다.


“환경의 관점에서 마음껏 사용해도 되는 것은 없습니다. 친환경 재질, 친환경 소비라는 것도 상대적 관점인 거죠. 물질 소비는 줄이고 정신적 만족감을 높이는 것이 환경을 위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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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용하는, 자원이 순환하는 구조로 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우선, 플라스틱 용기를 유리병으로 전환시켜야 해요. 그럴 경우 ‘세척 산업’이 새롭게 등장할 수 있겠죠. 페트병의 경우, 한국에서 쓰이기 시작한 게 1970년대이고 본격적으로 널리 쓰인 건 90년대부터예요.”


—보기에 따라선 일회용기 문화가 아주 길다고 할 순 없네요?


“그렇죠.”


—일회용에서 다회용 문화로 돌아가는 상상에 비해, 필연적으로 ‘포장 쓰레기’를 동반하는 온라인 소비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그렇다면 온라인 소비와 물류의 특성을 이용해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상상할 때예요. 제품을 가정까지 배달해주는 물류가 형성됐잖아요? 그럼, 가정에서 사용하고 난 용기를 되가져가는 ‘역물류’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예요. 유리병 제품을 많이 사용하도록 하고, 배송 왔을 때 빈 유리병은 다시 회수해 가는 거죠. 구체적인 실행안은 정교한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역물류’는 쓰레기를 친환경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일회용품 문제가 일회용 컵 문제로 자꾸 축소되는데요, 사실은 일회용 컵보다 페트병이나 포장재 문제가 훨씬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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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만든 쓰레기, 내가 처리해준 거야?!


—포장재는 소비자가 선택할 수 없어요. 생산자, 판매자 소관인데요.


“포장재를 규제하지 않으면 비닐 사용량이 절대 줄어들지 않습니다. 시민들이 아무리 분리배출 노력을 해도 기업이 변하지 않으면 쓰레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요. 기업들이 일회용 포장재 사용량을 줄이고, 생산 단계부터 재활용이 잘되게끔 만들도록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기업이 만든 쓰레기를 소비자가 치워주고 있는 거예요. 소비자 실천과 행동을 넘어 소비자 저항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예요.”


—씨제이(CJ)제일제당이 지난 추석을 앞두고 스팸 ‘노란 뚜껑’을 없애기로 결정한 게 생각나요. 시민들이 ‘노란 플라스틱 캡은 왜 주느냐’며 반납운동을 했기 때문이었어요. 보관용이 아니라 충격완화용이어서 남은 스팸을 보관할 경우 별도 용기를 써야 하는 등 실용적 쓰임이 별로 없다고요.


“기업의 상품을 사면서, 기업이 그 상품에 적용한 플라스틱을 쓰레기로 버릴 경우 소비자는 그 처리 비용까지 두번 돈을 쓰는 셈이죠.”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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