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전통주도 데워 마시면 더 맛있다?

[푸드]by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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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주와 안주. 사진 전주주조업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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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다시 확산하는 코로나19로 더 춥게 느껴진다. 확진자 증가로 연말 송년 모임을 자제해 달라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몸도, 마음도 추운 연말을 보내야 할 듯하다. 과거라면 각종 송년회로 떠들썩할 때다.


춥다 보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안주는 따뜻한 국물이나 음식이다. 하지만 술은 차가운 소주와 맥주를 선택한다. 우리는 봄, 여를, 가을, 겨울 모두 차가운 술을 선호한다. 우리는 왜 추운 겨울조차 차가운 술을 마시는 걸까?


19세기 저서 <규합총서>를 1915년께 필사한 것으로 알려진 <부인필지> 서두 ‘음식총론’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있다. ‘밥 먹기는 봄같이 하고, 국 먹기는 여름같이 하고, 장 먹기는 가을같이 하고, 술 먹기는 겨울같이 하라 하니 밥은 따뜻하고, 국은 뜨겁고, 장은 서늘하고, 술은 찬 것이어야 한다.’ 음식 대부분이 따뜻하기 때문에 술은 차게 마시는 게 조화롭다고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술을 따뜻하게 마시는 문화가 다른 나라엔 많다. 와인을 따뜻하게 데운 뱅쇼가 대표적이다. 로마 시대부터 마셨다고 전해지는 뱅쇼는 와인에 다양한 향신료를 넣어 소화나 감기 예방에 도움이 되도록 만들어졌다. 유럽 국가별로 다양한 스타일의 뱅쇼가 다른 이름으로 소비가 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글루바인’, 미국은 ‘멀드 와인’이라 한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따뜻하게 마시는 술로 사케가 대표적이다. 일본에서는 데운 사케를 ‘오칸’이라고 한다. 쌀 본연의 달짝지근한 맛과 감칠맛이 따뜻한 온도로 한층 짙어지며 맛은 부드러워진다. 복어지느러미를 굽거나 태워서 따끈한 사케에 넣어 내놓는 히레사케는 추운 겨울 또 다른 별미이다.


중국 <삼국지연의>에도 관우가 데운 발효주를 마셨다는 대목이 나온다. 적장의 목을 베러 출전하는 관우에게 조조가 데운 술을 권하자, 갔다 와서 마시겠다고 사양한다. 순식간에 적장의 목을 베고 온 뒤 그 술을 마시니, 술은 식지 않고 여전히 따뜻한 상태였다고 적혀 있다. 발효주라는 단서로 소흥주(사오싱주·紹興酒)라고 추측한다. 황주 중에서도 대표로 꼽는 소흥주는 따뜻하게 데워서 마셔야 그 풍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우리에게도 따뜻하게 마시는 술 문화가 있었을까? 이규보의 시 ‘겨울밤 산사에서 간소한 주연을 베풀다’에 막걸리를 데워 마신 내용이 나온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7년(1435) 1월17일 기록에는 ‘음복에 데운 술을 쓰게 하다’라는 기록도 있다.


이밖에도 1837년대 70여가지의 전통주 제조법이 기록되어 있는 <양주방>에는 창포주와 관련된 내용이 있는데, 여기도 데워 마시는 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중략) 가을이나 겨울에 두 이레 만에 봄이나 여름엔 한 이레 만에 떠서 하루 세 차례씩 너홉들이 잔으로 따뜻하게 데워 먹으면 늙지 않고 튼튼하여지며 정신이 좋아진다.’ 창포주를 따뜻하게 데워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이야기다. 또한 17세기 말에 쓰인 <주방문>에는 끓이는 술인 자주(煮酒)가 소개되어 있다. ‘좋은 청주 5대야에 후추 3돈, 황밀(꿀) 3돈 얇게 저며 넣고 병뚜껑을 막아 중탕하여 달여 밀이 다 녹거든 내어 쓰라’라고 말이다.


지금 사람들은 술을 따뜻하게 마시는 방법은 일본의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거 우리 기록들은 우리도 술을 따뜻하게 마셨다는 걸 알려준다. 지금 마실 수 있는 따뜻한 술이라면 아마도 모주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한국의 뱅쇼’인 셈이다. 모주는 술지게미 또는 막걸리에 대추, 계피, 생강 따위를 넣고 3~4시간 달여서 만드는 술이다. 추운 겨울 따뜻한 모주 한잔은 어떤 음료보다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


과거 몇몇 양조장에서 데워먹는 막걸리나 약주를 제품으로 시판한 적도 있다. 올겨울 코로나19로 인해 ‘홈술’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겨울 별미로 전통주들을 데워 마시는 건 어떨까. 술을 데워 마실 때는 대략 40~45도 정도가 적당하다. 체온보다 높은 온도로 따끈한 느낌이 들게 중탕을 해서 마시면 된다. 열에 의해 알코올은 조금 사라질지 모르지만, 잔에 온갖 기분 좋은 향이 풍부하게 맴돌 것이다. 따뜻한 술은 차가운 술보다 더 깊은 향을 내며 이 겨울 차가워진 우리의 몸과 마음을 녹여줄 것이다.


이대형(경기도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

2020.12.2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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