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무엇이든 숙성시키는 김장김치에 젓갈 대신 갈치를

[푸드]by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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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치김치. 사진 박찬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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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쪽 올드보이들이 잘 가는 횟집이 하나 있다. 가격이 꽤 세다. 이 집 회가 끝내준다거나, 탕이 어마어마한 것도 아니다. 뜻밖에도 김치 때문이다. 갈치김치. 침이 사악 고인다. 김치니까. 거기다 생선 넣은 김치다. 김장할 때 생선 넣은 건 해안가 쪽 풍습이다. 원래 김치란 배추와 무, 소금의 일이었다. 여기에 진한 것이 들어가면 맛이 오른다. 젓갈, 생선, 심지어 소고기나 닭고기 같은 것들도. 젓갈은 빨리 분해된다. 이미 삭아서 너덜너덜하기 때문이다. 그거도 요즘은 깔끔하라고 대개 액젓을 쓴다.


날것으로 생선이나 해물, 고기를 넣으면 삭는 속도가 더디다. 김치에 맛을 들이는 속도도 늦다. 그래서 그 걸진 것을 따로 먹을 수 있다. 삭아버린 젓갈을 건져 먹을 수는 없다. 하지만 생것을 넣으면 익어가는 단계마다 다른 맛을 경험한다. 내가 좋아하는 건 역시 갈치김치다. 싱싱한 갈치를 듬뿍 넣어서, 김치를 먹는지 갈치를 먹는지 선후가 없는 김치다. 아니, 갈치를 삭혀서 맛있게 먹으려고 김장을 ‘이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 양지 넣은 김치도 그렇게 탄생한다. 우리나라 전통김치다. 꿩 정육을 한 마리 통째로 넣을 수도 있다. 김치 자체가 꿩고기가 상하지 않게 발효라는 절묘한 기술을 발휘해준다. 꿩고기가 김치의 소금과 양념에 주저앉으면서 나오는 진액은 또 거꾸로 김치가 먹는다. 상부상조다. 고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익히기 나름이지만 달포 지났을 때는 나긋나긋하고 아직 육 것의 맛이 남은 회를 먹는 느낌이었다가 다시 달포가 지나면 김칫국에 잰 녹진한 육포 느낌으로 간다. 돼지고기도 넣는다는데, 못 먹어봤다. 꿩고기 대신 닭을 넣을 수도 있다. 싱싱하고 맛있는 토종닭을 김장에 넣는다. 잘 익으면(김치도, 꿩도) 꿩 살을 꺼내어 죽죽 찢어서 김치랑 싸먹는다. 술잔이 마구 엎어진다. 좀 독한 소주가 좋다.


이번 달 초에 김장을 했다. ‘뼈째 썰기’해서 회로 먹은 은갈치 기억이 나서 좀 사다 넣었다. 갈치는 사철 먹지만, 그래도 겨울이 제철이다. 자잘한 걸 넣으면 빨리 먹을 수 있다. 등뼈가 삭는 정도가 중요하다. 안 그러면 이빨이 나간다. 큰놈은 오래 걸린다. 대신 맛은 깊다. 돈이 없어서 잔갈치를 샀다. 크게, 크게 툭툭 잘라 넣어도 좋고,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잘라도 된다. 작게 자를수록 아무래도 빨리 삭는다. 한 박스에 70, 80미 하는 자잘한 놈이다. 이 기사를 쓴다는 핑계로 담가둔 한 포기 김치를 꺼냈다. 짜잔! 생선 넣은 김치는 별도로 보관한다. 비교적 빨리 삭기 때문에 생선이 녹기 전에 먹기 위해서다. 그냥 두면 아주 콤콤하게 익는데, 색깔이 탁하고 잘못 익으면 군내도 좀 난다. 그래서 삭기 전에 생선 씹는 재미도 느낄 겸 안줏거리 삼아 빨리 꺼내 먹는 편이다. 김장한 지 2주가 되었으니 맛이 들었겠다. 잔갈치인데도 등뼈가 이에 걸린다. 이가 약한 분은 아슬아슬하다. 한때는 이 갈치가 좋아서 배추 반, 갈치 반 섞어서 김치를 담갔더니 영 밸런스가 안 맞았다. 역시 과유불급이다. 배추 한 포기에 잔갈치 한 마리 정도를 넘어도 별로다. 생선을 많이 넣고 싶으면 차라리 식해로 담그면 된다. 풀을 쑤거나 밥, 조밥 등을 짓고 배추는 살짝 넣는 식으로 동해안식 식해가 더 맞을 것 같다. 그런 레시피를 생선식해라고 한다. 원래는 배추가 안 들어간다. 김치라고도 안 한다. 그냥 식해다. 전분(익힌 곡식)에 생선, 소금 넣으면 끝.


다시 말하지만, 큰 갈치라면 등뼈 때문에 개봉 시기를 늦춰야 한다. 접시에 두둥실, 은갈치김치가 담겨 있다. 김치보다 갈치살을 먼저 찾았다. 이른 시기라 은빛으로 빛난다. 나중에는 점점 색이 어두워지고 살점이 녹는다. 아직은 생갈치의 힘이 있다. 살점이 찢어지면서 깊게 잇몸으로 들어가 들러붙는다. 씹을 때 녹진한 갈치의 맛이 뿜어져 나오고, 상쾌하게 익은 김치 맛이 갈치의 뒷맛에 묻어난다. 이런 음식은 도대체 누가 만들어낸 거야. 저 먼 조상에게 감사드릴 안주다. 소주가 금세 바닥을 보인다. 올해는 멋을 낸다고 오징어도 쓰고 전복도 값이 너무도 싸서 양식업자 돕는 마음으로 함께 배춧속에 재어봤다. 오징어 넣은 김장은 여러분도 먹어본 바가 있을 것이다. 딱 그 예상하는 맛인데, 오래되면 질겅거리는 껍질만 남는다. 전복은 어떨까. 오래 묵은 놈은 못 먹어봐서 모르고, 오늘처럼 갓 2주 만에 꺼낸 건 ‘어어?’ 하면서 맘에 들었다. 4주나 8주 정도 지나면 더 맛있을 것 같다는 감이 온다. 물론 지금도 좋다. 좀 더 사다 넣을 걸, 후회가 된다. 그만큼 괜찮았다. 아직은 김장할 수 있는 시기다. 배추도, 무도, 양념도 좋다. 전복김치를 왕창 담가봐? 남해의 겨울 꼴뚜기도 좋은데…. 아내가 다음에는 싱싱한 조기를 구해서 넣어보자고 한다. 자, 뭐든 불러보시라. 고등어와 꽁치처럼 등 푸른 생선은 어떨까. 김치의 엄청난 숙성능력, 무엇이든 싸안아 익혀버리는 힘을 믿고 한 번 가봐? 응원해주시면 고등어 넣어본다! (꽁치는 요새 안 잡혀서 포기다.) 하여튼 오늘은 갈치김치다. 반 포기 김치가 그새 바닥을 보인다. 김치도 술도 달다.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

2020.12.2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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