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좋아해, 한국형 미식 체험 돈가스 여행

[푸드]by 한겨레

일식도 서양식도 아닌, 한국화하며 자가발전한 돈가스


배달 앱에서 재구매율 유독 높은 ‘최애’ 외식 메뉴이기도


표준화된 고기 튀김인 듯하지만 가게마다 다른 개성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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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츠의 돈가스. 박찬용 칼럼니스트

서울 마포구 신수동에 있는 ‘커츠’는 여러모로 가기 어려운 식당이다. 우선 위치. 역세권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에서도 걸어서 10분(네이버 지도 ‘큰길 우선’ 기준)이 걸린다. 영업시간. 유동적이다. 최근 요리사의 반려견이 아파서 점심 영업만 하고 있는데, 이 시간 또한 인스타그램으로 확인하고 가야 한다. 매장 크기, 작다. 자리가 7개다. 그런데도 11월28일 월요일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커츠에는 대기 손님이 줄 서 있었다.


몇가지 이유가 있다. 근본적으로 맛이 좋다. 커츠의 돈가스는 최고의 축구팀처럼 약점이 없다. 등심과 안심을 절묘한 정도로 튀겨 비리지 않으면서도 고기의 촉촉함을 살린 튀김. ‘따로 팔아도 되겠다’ 싶을 만큼 건더기가 넉넉한 된장국. 부추처럼 잘게 썰어낸 양배추와 매번 밥솥에서 퍼주는 흰밥. 거기 더해 조금 수줍어 보이나 충분히 친절한 접객. 점심에만 영업하고 가기 전엔 에스엔에스(SNS)를 확인해야 하고 줄을 서야 하지만, 좋다. 맛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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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 가게 커츠 외관. 박찬용 칼럼니스트

“저희 부모님이 좋아하셔서요.” 커츠에서 안심 정식을 먹는 동안 돈가스를 포장해 가던 젊은 손님이 말했다. 이게 돈가스가 지닌 또 하나의 매력이다. 모두 돈가스를 좋아한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 중에는 향신료나 남다른 생김새 등의 이유로 중장년층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중장년층만 좋아하고 젊은이들이 잘 찾지 않는 음식도 있다. 돈가스는 아니다. 데이터로도 어느 정도 증명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배달 서비스 앱 관계자는 “돈가스의 재구매율이 유독 높다”고 말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요, 돈가스를 주문한 분들은 꼭 돈가스를 주문하세요. 개발자들로부터 돈가스 마케팅을 늘리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어요.” 왜긴, 남녀노소 돈가스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뿌리 깊은 나무처럼 저력 있는 돈가스집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서울시 중구 무교동의 ‘가쯔야’처럼. 가쯔야가 자리한 무교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사무실 상권이다. 점심시간에 급격히 수요가 몰리고 휴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그런 상권에서 전면 재택근무를 시행하던 코로나 시국에도 매출에는 크게 타격이 없었다고, 심봉섭 가쯔야 대표가 말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줄어든 만큼 배달과 포장 손님이 늘어서였다. 가쯔야를 버티게 한 비결 역시 맛이다. 심봉섭은 일본에서 업력 100여년을 자랑하는 돈가스집 호라이야에서 수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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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직후 소금, 후추, 밀가루, 계란 등을 입혀 튀기는 가쯔라의 돈가스. 신동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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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루를 입혀 튀기기 직전인 가쯔야의 돈가스. 신동훈 제공

가쯔야의 맛과 성공과 윤리는 한-일 민간교류의 상징이기도 하다. 심봉섭은 1990년대에 일본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다 돈가스의 매력을 알았다. 지인의 소개로 유명 돈가스 가게에서 수련했다. 거기서 심봉섭은 중요한 교훈을 배운다. ‘잔재주 부리지 마라.’ 그는 아직 그 교훈을 지킨다. 가쯔야의 돈가스는 주문 직후 만든다. 고깃덩어리 상태에서 바로 후추와 소금을 뿌린다. 밀가루를 얇게 묻힌 뒤 달걀을 입혀서 빵가루를 바른다. 그 상태에서 170도에 튀기면 가쯔야의 히레까스다. 그는 “돈가스를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고 말했다. 그 간단한 일을 잔재주 없이 30여년간 하는 건 간단치 않다. 맛도 훌륭하다. 오래 간하지 않고 바로 튀긴 고기의 신선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튀김옷 역시 얇고 신선하다.


일본에서 배워온 가쯔야의 돈가스는 한식일까 일식일까, 이런 질문은 이제 시대착오적이다. 나는 오늘날의 돈가스를 다양한 곳에서 영향을 받은 현대 한국 음식으로 간주하며 이 원고를 작성하고 있다. 일본의 돈가스는 서양의 포크커틀릿에 기반을 둔 개량품이다. 그 조리법을 배워온 가쯔야의 심봉섭은 일본에서 수련한 방식으로 튀긴 돈가스 곁에 두부와 김치를 함께 내는 ‘돈가스 두부김치’를 판매한다. 훌륭한 민간 퓨전 한식 안주다. 근처 비어할레 을지점에서 슈바이네학센(독일식 족발)에 부추김치를 곁들이는 것처럼.

돈가스로 아침 먹는 동네 사람들

“일본식 돈가스와 한국식 돈가스는 완전히 다른 음식입니다.” 최근 돈가스로 책까지 낸 번역가 이건우(39)도 말했다. 그는 일본에 산 적도 있으나 처음부터 돈가스로 책을 내려 한 건 아니었다. 그는 음식을 주제로 글 쓰는 걸 좋아해서 한가지 장르의 음식을 정한 뒤 그 음식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몇년 동안 다닌 돈가스집 리뷰를 블로그에 꾸준히 올렸다. 그 결과물이 올해 10월 <돈까스를 쫓는 모험>이라는 책으로 출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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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역사와 디테일이 있는 행운돈까스. 신동훈 제공

이건우가 수많은 음식 중에 돈가스를 리뷰 대상으로 삼은 생각의 과정이 흥미롭다. 그는 떡볶이와 순댓국과 돈가스를 떠올린 뒤, 돈가스로 결정했다. “떡볶이는 이미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정보가 많이 공유되었어요. 순댓국은 제 생각에서는 약간 베리에이션(점포별 다양성)이 덜했고요.” 장르적 보편성과 점포별 특수성과 총 점포 개수를 생각했을 때 단일 장르 리뷰에 가장 적합한 음식은 돈가스라는 말이었다. 일리 있다. 실제로 개별 돈가스집에서는 점주의 강렬한 개성과 고기 튀김이라는 표준화의 묘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그 결과 돈가스 여행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국만의 미식 체험이 된다. 값비싼 음식을 으스대며 먹어야 미식이 아니다. 잘 만들어진 한끼 식사를 신중히 맛보고 즐겁게 탐구한다면 그게 미식 아닐까.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행운돈까스’는 한국형 돈가스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여기 돈가스는 겉으로는 평범한 한국식 돈가스집이다. 정식을 시키면 큰 접시 가득 돈가스와 생선가스, 동그랗게 뭉쳐진 밥, 수프 한 접시가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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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돈가스의 정석과 같은 행운돈까스. 신동훈 제공

이렇게 차려진 모든 것이 이들만의 디테일과 역사다. 이곳은 장안동 동네 사람들의 외식 코스다. 아버지인 1대 사장님은 큰 돈가스를 튀기고 설렁탕집에서 파는 깍두기를 주며 큰 인기를 끌었다. 담백한 맛을 위해 행운돈까스는 밀가루를 얹지 않고 달걀만 입혀 돈가스를 튀긴다. 밥이 동그란 이유는 아이스크림용 스쿠프로 밥을 푸기 때문이다. 그런 전통이 아직 이어져 2대 사장 정재훈은 캐나다에서 음식 유학을 하고도 맛에 대한 걸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 그 결과 아침 10시 반에 문 여는 가게에, 사람들이 문 열기 전부터 들어와 혼자 아침을 먹는다.

한해를 잘 이겨냈다는 마음으로

연말에 돈가스를 먹을 이유가 있을까. 몇가지 구실을 떠올렸다. “(일본어로 돈가스를 말하는) 돈카츠의 ‘카츠’는 일본어로 ‘이긴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시험이나 중요한 일을 하기 전에 돈가스를 먹는다고 해요. 그 뜻처럼 우리도 ‘올해를 잘 보냈다’는 뜻으로 생각하며 먹어도 되지 않을까요?(웃음)” 이건우의 말이다. 나도 한마디 붙이고 싶다. 좋은 건 언제 먹어도 좋다. 점심에도 좋고 저녁에도 좋고, 식사로도 좋고 안주로도 좋은, 소주와도 좋고 맥주와도 좋은, 돈가스를 먹으며 한해를 마무리하면 어떨까.

참치가스, 파스타가스… 궁극의 ‘겉바속촉’을 찾아서

일본에서 건너와 한국화한 돈가스, 동네에 하나쯤은 있을 법한 푸근한 왕돈가스, 업그레이드한 한국 미식의 세계를 보여주는 돈가스까지 본문에 소개한 돈가스집들과 <돈까스를 쫓는 모험> 저자이자 돈가스 마니아인 이건우가 추천한 이색 돈가스집을 소개한다. 지면에 소개된 곳을 찾아가보는 것도 좋겠지만 내 집 근처 돈가스집의 디테일을 잘 관찰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가쯔야 일본에서 배운 돈가스 기술이 한국에서 어떻게 현지화되는지 엿볼 수 있는 돈가스집이다. 일본 우에노의 돈가스 노포에서 배운 노하우로 주문이 들어오면 밀가루를 입혀 바로 튀긴다. 이곳 역시 별도의 된장을 배합해 된장국을 만들 정도로 맛의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썼다. 열심히 튀긴 세심한 튀김인 만큼, 사장은 소스를 찍어 먹는 대신 살짝 뿌려 먹는 걸 추천한다. 저녁에는 술도 판다. 서울 중구 다동길 46 1층, 히레까스정식 1만3000원.


행운돈까스 어느 동네에나 하나씩 있을 법하고, 어느 동네에나 하나 있었으면 싶은 한국식 돈가스집이다. 돈가스 크기가 큰 한국식 왕돈가스라 일단 양이 푸짐하다. 밀가루 없이 달걀만 묻혀 튀겨서인지 크기가 큰 데 비해 덜 느끼하다. 하루에 쓰는 소스의 양만 25리터에 이를 정도로 재료 회전이 빠르고 그만큼 서비스도 안정적이다. 서울 동대문구 장한로 173, 행운 정식 1만1000원.


커츠 수준 높은 돈가스와 커피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돈가스집이다. 남편이 돈가스를 만들고 아내가 커피를 내린다. 좋은 재료로 정성껏 튀겨 타이밍을 잘 맞춘 로스 정식(안심)과 히레 정식(등심) 등 모든 음식의 수준이 두루 높다. 돈가스 샌드위치인 카츠산도와 커피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점을 높이 샀다. 서울 마포구 독막로28길 58 1층 왼쪽, 로스카츠 정식 1만4000원.


사가루가스 이건우에게 ‘이 가게만의 것이 있다고 할 만큼 특징적인 돈가스집’을 물었다. 추천한 두 곳 중 한 곳은 서울 중구의 사가루가스다. 참치집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이라 횟감 참치로 생선가스를 만든다. 생선가스는 물론 돼지고기 등심·안심 가스와 대식가를 위한 모듬가스도 판다. 서울 중구 다산로 114-1, 생선가스 9000원.


토리돈까스 또 다른 하나는 서울 성북구의 토리돈가스다. 마치 크로켓(고로케)처럼, 파스타와 치즈를 고기로 감싸서 튀긴 이색 돈가스인 파스타치즈돈가스를 만든다. 돈가스를 반으로 가르면 토마토소스를 머금은 푸실리 면과 치즈가 쏟아진다. 파스타치즈돈가스 외에도 다양한 돈가스와 파스타로 메뉴판이 빼곡한 것도 특징. 서울 성북구 화랑로13길 24 2층, 파스타치즈돈가스 1만원.


박찬용 칼럼니스트
2023.01.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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