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독소 없는 굴과 샤블리, 꿀 같은 ‘여름의 맛’

커버스토리 : 여름의 굴

독소 없앤 삼배체 굴 대량 생산

여름에도 굴 찾는 사람들 늘어

산미 있는 소스·술과 잘 어울려

위생적 유통·조리환경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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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도 먹을 수 있도록 독소를 제거한 삼배체 굴이 외식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장소 협찬 조선기술

찬 바람이 불면 미식가들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찐빵? 아니다. 아마도 ‘굴’이 아닐까. 카사노바도 좋아했다는 영양 만점이면서 그 특유의 바다 내음 가득한 맛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굴 먹고 싶어 겨울을 기다린다’는 말은 엄살이 아니다. 바닷물의 짜고 단 감칠맛, 부드러운 식감, 포근하게 넘어가는 목 넘김까지 굴은 그야말로 바다의 보물이고, 겨울의 기적이다.


서양에선 알파벳 ‘아르’(R)가 들어간 달에만 굴을 먹는 풍속이 있다. 대략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로 가을~겨울 사이다. 식중독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굴 양식과 식품 유통 기술의 발달은 지금 이 뜨거운 여름에도 굴, 그것도 생굴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최근 외식업계에서 주목하는 ‘삼배체 굴’의 개발과 생산이 주요 원인이다. “위험하지 않겠어?” 이번 취재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제대로 조리하고 먹는다면 안전하다.

​번식 능력 없애 독소 제거

이름도 생소한 삼배체 굴의 정체는 뭘까? 삼배체는 염색체 수가 기본보다 3배인 개체를 말한다. 유전적 특성상 삼배체는 생식 능력이 없어진다. 씨 없는 수박이 대표적 삼배체다. 이런 유전공학 기술을 굴에 적용한 것이 삼배체 굴이다. 굴의 산란기는 5~8월까지로, 산란기에는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베네루핀 독소가 생성된다. 여름에 굴을 먹지 않는 대표적 이유였다. 산란을 차단함으로써 독소 생성을 막은 것이다.


국립수산과학원 남동해수산연구소는 2013년부터 삼배체 굴 대량 생산을 위한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삼배체 굴의 핵심 기술은 굴의 번식 능력을 없애 개체 크기를 키우는 것. 일종의 ‘비만 굴’을 만드는 셈이다. 통영 굴수하식수협 정삼근 과장은 “번식 능력이 없는 굴은 운동량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레 몸집을 불리게 되고, 일반적인 겨울 굴에 비해 2~3배 큰 크기로 자란다. 생산성이 좋아 어민들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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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의 삼배체 굴 양식장. 장민영 제공

삼배체 굴의 대부분은 경남 통영, 거제, 고성, 그리고 충남 태안군 일대에서 생산된다. 남해권과 서해권으로 구분되는 셈. 남해권의 삼배체 굴은 일반적인 석화 굴과 마찬가지로 수확 때까지 물속에서 자라는 수하식으로 생산된다. 반면 밀물과 썰물의 격차가 큰 서해권에서는 갯벌 위에 평평한 스탠드를 두고 그 위에 망을 놓아 키우는 수평망식 재배로 굴을 양식한다. 맛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음식작가 장민영은 “하루의 절반 정도 바닷물 없이 햇빛에 노출하는 서해권보다 계속 물속에서 자라는 남해권 굴 맛이 조금 더 부드럽다”고 설명했다.


맛도 좋고 생산성도 좋은 삼배체 굴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면서 이에 발맞춰 삼배체 굴만을 취급하는 ‘오이스터 바’도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수산물 전문 유통업체 에스티피트레이딩 최시준 대표는 “여름에도 크고 신선한 굴을 취향대로 골라 먹을 수 있는 것이 오이스터 바의 인기 요인이다”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꼭 오이스터 바가 아니더라도 최근 몇년 사이 삼배체 굴을 찾는 레스토랑이 꾸준히 늘고 있다. 앞으로도 삼배체 굴 시장은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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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손바닥만한 삼배체 굴. 장민영 제공

압도적 크기에 ‘깜놀’

집에서 삼배체 굴을 즐길 수는 없을까? 인터넷에 ‘삼배체 굴’을 검색하면 전국 어디든 택배로 받을 수 있는 전문 쇼핑몰부터 도매 업체까지 살 수 있는 곳이 수도 없이 쏟아진다. 바로 먹을 수 있게 손질된 제품부터, 각종 소스가 포함된 밀키트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직접 주문해 받아 본 굴의 크기는 설명으로 들었던 것보다도 컸다. 성인 남성의 손바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굴의 크기에 압도된 것도 잠시, 굴 손질 전용 칼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봐도 보통의 석화처럼 쉽게 열리지 않았다. 해산물 레스토랑 ‘조선기술’ 이준수 대표는 “덜 울퉁불퉁하고 납작한 껍데기 쪽을 위로 향하게 한 다음 굴의 뾰족한 끝부분인 ‘숨구멍’에 굴 칼을 넣고 비틀어 굴 왼쪽에 위치한 관자를 제거한 뒤 껍데기를 분리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숨구멍 기준으로 오른쪽엔 내장이 있는데 이 부분을 찌르면 물이 흘러나오니 주의가 필요하다. 손질 전에 손을 깨끗하게 씻고 위생 장갑을 끼는 것은 필수.


내장과 껍데기가 보통 석화에 비해 2~3배 두꺼운 삼배체 굴을 손질하기는 쉽지 않았다. 입문자의 경우는 손질된 굴을 사는 게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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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를 곁들인 굴 똠얌꿍 라면. 윤민호 제공

신맛과 찰떡궁합

이제 맛있게 먹을 차례다. 한국식 초고추장 소스나 간장 소스도 물론 좋지만, 이 남다른 굴을 더욱 특별한 방법으로 즐길 수는 없을까. 이준수 대표는 “짜고 단 바닷물의 맛 때문에 그냥 먹는 것도 충분히 맛있지만, 와인 식초에 다진 양파와 후추 등을 넣은 미뇨네트 소스를 곁들이거나 핫소스를 살짝 뿌려 먹어도 좋다”고 조언했다.


전문 레스토랑 음식 같은 풍미를 내고 싶다면? 김태윤 셰프는 에스카르고 버터구이를 추천했다. 잘게 다진 달팽이에 다진 마늘을 섞은 버터와 샬롯(미니 양파), 치킨 스톡, 와인을 넣고 조려 만든 소스를 생굴 위에 얹고 오븐에서 굽는 요리다. 에스카르고는 최근 인터넷에서 쉽게 살 수 있지만, 일반 가정에선 통조림 골뱅이로 대체해도 좋다.


조리 과정이 복잡한 것이 싫다면 ‘굴 똠얌꿍 라면’은 어떨까. 시중에서 파는 타이 똠얌꿍 라면을 끓이다 껍데기를 깐 굴을 가득 넣으면 ‘타이식 해장 라면’이 완성된다. 고수가 있다면 라면 위에 가득 얹으면 바로 타이다.


굴의 짠맛과 비릿함을 가라앉히는 데에 술이 빠질 수는 없다. 자주 마시는 소주나 맥주 대신 다른 술은 없을까? 보통 굴과 어울리는 와인으론 프랑스 샤블리 지역의 샤르도네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 거론된다. 일종의 교과서 같은 공식이다. 비린 맛을 눌러주는 산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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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노 페스티바 화이트와인. 업체 제공

샤블리가 너무 뻔하다면, 이색적인 와인에 도전해보자. <몰도바 와인>을 쓴 박찬준 작가는 몰도바의 와이너리 카스텔 미미의 ‘로제 드 불보아카’(Rosé de Bulboaca)를 선택했다. “동유럽 와인 강국이라 불리는 몰도바에서 만든 로제 와인이다. 적포도인 카베르네 소비뇽과 피노 누아르를 블렌딩했지만, 가볍고 산미가 높아 굴의 향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고 박 작가는 설명했다.


한국 와인은 어떨까. 최정욱 소믈리에는 “경북 경산 청수 품종으로 만든 ‘비노 페스티바’ 화이트 와인과 충남 예산 사과 와인인 ‘추사’ 로제 와인은 산도가 좋아 굴의 비린 맛을 잡아준다”고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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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로제 와인. 업체 제공

전통술도 어울린다. 대동여주도 이지민 대표는 “초고추장, 고추, 마늘 등을 곁들여 먹는 한국식 굴 요리라면 경북 문경의 ‘호산춘’을 추천한다. 은은한 단맛과 산미가 어우러지는데 알코올 도수(18도)도 꽤 높아 초고추장의 강한 맛을 눌러준다”고 말했다. 핫소스, 레몬즙, 양파, 토마토 등을 곁들이는 서양식 굴 요리에는 되레 탁주가 어울리는데 이 대표는 “특유의 산미와 탄산의 청량함이 있는 ‘육점팔막걸리’가 좋다”고 말했다.


입추가 지나고 여름도 한풀 꺾였다지만 여전히 뜨거운 날씨다. 여름에 먹을 수 있는 굴이라고 너무 안심해선 안 된다. 위생적 환경에서 유통·손질되고 조리된 굴이 안전하다는 건 겨울에도 적용되는 얘기다. 이 여름이 가기 전 전문 오이스터 바에서 여름 굴에 샴페인 한잔 어떨까. 여름의 끝자락을 즐기는 데 이만한 호사가 있을까.


백문영 객원기자 moonyoungba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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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점팔막걸리. 업체 제공

2021.08.3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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