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올해만 40만 캔 팔린 막걸리 ‘마쿠’ 만든 재미동포

캐롤 박 마쿠 대표 “미국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망고맛, 블루베리맛 막걸리 개발”

캐나다, 동남아 등에도 진출 예정


“어, 이게 막걸리라고?”


‘Makku’라는 영문 제품명이 적힌 깔끔한 디자인의 흰색 캔을 본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듯 반문한다. 캔을 따서 컵에 따르면 푸른 빛의 칵테일 같은 막걸리가 흘러 나온다. 마셔보면 새콤달콤한 술이 목울대를 타고 넘는다. 이어서 놀랍고 신기한 듯 “우와” 하는 감탄이 터져 나온다. 마쿠가 선보인 이색 막걸리를 마셔 본 사람들의 한결 같은 반응이다.


요즘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주류가 바뀌고 있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등장하면서 과거 맥주와 위스키 일변도였던 미국 주류 시장에 다양한 술이 뜨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우리의 전통 술 막걸리다.


미국에서 ‘한국의 쌀 맥주’(Korean rice beer)로 통하는 막걸리 돌풍의 배경에 한 재미동포 여성이 있다. 바로 막걸리를 만드는 미국 신생기업(스타트업) 마쿠를 창업한 캐롤 박(32, 한국명 박지영) 대표다. 사업차 이달 초 방한한 박 대표를 지난 12일 만나 그가 만든 특별한 맛의 막걸리 이야기를 들어 봤다.

한국일보

캐롤 박 마쿠 대표가 지난 12일 한국일보를 찾아 미국에서 판매하는 막걸리 '마쿠'를 소개하고 있다. 왕나경 인턴기자.

막걸리에 빠져 ‘버드와이저’ 만든 앤호이저 부시 그만두고 미국서 창업

뉴욕에서 나고 자란 박 대표는 이민 1.5세대다. 그는 어려서부터 사업을 하는 게 꿈이었다. “미국에서 팔릴 만한 한국 물건들을 가져가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술 회사를 할 줄은 몰랐죠. 술 회사를 하게 된 것은 우연한 사건이 계기였어요.”


박 대표는 원래 미시건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뉴욕 시청과 뉴욕시 산하의 비영리재단, 기술업체 등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가 콜럼비아대에서 경영학석사를 마치고 들어간 회사가 ‘버드와이저’ 맥주로 유명한 앤호이저 부시였다. 앤호이저 부시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 버드와이저로 한때 시장 점유율 48%를 차지할 만큼 주류업계의 거대 기업이다. “신제품 개발팀에서 1년을 근무했어요.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맥주가 아닌 새로운 술을 개발하는 일을 했죠. 그때 시장 조사를 하고 개발팀과 많은 얘기를 하며 미국 주류 시장을 배웠어요.”


2017년 앤호이저 부시의 중국 상하이 지사 출장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출장 온 김에 할머니를 만나려고 한국에 왔다가 식당에서 우연히 마신 술이 배상면주가의 ‘느린마을 막걸리’였다. “일반 막걸리와 달리 굉장히 부드럽고 깨끗한 맛이었어요. 쌀맛이 아주 엷게 느껴졌죠. 미국에 가서도 계속 생각났어요.”


궁금해서 알아보니 느린마을 막걸리에는 인공 감미료 아스파탐이 들어있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일부 술에 단 맛을 낼 때 아스파탐을 넣어요. 그런데 아스파탐을 넣으면 뒷맛이 자연스럽지 않고 콜라처럼 톡 쏴요. 자극적인 단 맛이 아니라 뒷맛이 개운한 자연스러운 단 맛의 막걸리, 이거다 싶었죠.”


그 길로 박 대표는 앤호이저 부시를 미련 없이 그만뒀다. 대기업 특유의 느리고 답답한 의사 결정 구조와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 보이지 않는 차별이 참기 힘들어 나가려던 참이었다. “막걸리는 시장 크기에 비해 제조 공정이 어려워요. 시장성을 따지는 대기업인 앤호이저 부시에서 만들 수 있는 술이 아니죠.”


마침 시장 조사를 해보니 한국에서 수입한 소량의 막걸리는 있어도 미국업체가 직접 만드는 막걸리는 없었다. 그렇게 2017년에 스트롱벤처스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서양인들을 겨냥한 막걸리를 만드는 스타트업 마쿠를 창업했다.

한국일보

캐롤 박 대표는 기존 막걸리에 블루베리, 망고 등 과일을 섞어 독특한 맛을 냈다. 왕나경 인턴기자.

망고맛, 블루베리맛 막걸리 독자 개발

그때부터 박 대표는 1년 동안 막걸리를 만들 양조장을 찾아 다녔다. “양조장이 많은 오리건, 텍사스, 메인주 등을 샅샅이 훑었는데 막걸리를 만들 기술자와 생산시설이 없었어요.”


결국 주문자상표부착 방식(OEM)으로 생산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박 대표가 직접 수십 종류의 막걸리를 마셔보고 낙점한 곳은 경기도 모처의 전통 막걸리 양조장이었다. “처음에는 양조장에서 웬 젊은 여자가 찾아와 미국에 판매할 막걸리를 만든다고 하니 믿지 않았어요. 열심히 설득했더니 그럼 어디 한 번 해보라며 계약을 했죠.” 그렇게 양조장 장인들과 미국에서 통할 만한 독특한 막걸리를 개발했다.


처음부터 서양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맛의 개발을 목표로 했다. 이를 박 대표는 “막걸리와 맥주가 섞인 맛”이라고 표현했다. 탄산이 많이 들어가 가볍고 상쾌하면서 막걸리 특유의 달달하고 새콤한 맛이다. 여기에 서양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망고, 블루베리 과일향을 넣어 망고 막걸리와 블루베리 막걸리도 각각 선보였다. “인공 향이 아닌 실제 과일을 이용해 향을 냈어요.” 알코올 도수는 맥주와 비슷한 6도로 맞췄다.


박 대표가 새로 개발한 막걸리는 2019년 ‘마쿠’(Makku)라는 이름으로 발매됐다. “우리 말의 막걸리를 떠올리면서 미국인들이 발음하기 좋은 이름을 지었어요.” 마쿠는 오리지널 맛, 망고 맛, 블루베리 맛 등 총 3종류다. 블루베리 맛은 푸른 빛이 돌고 망고 맛은 은은한 오렌지색이다. “서양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재미있고 맛있어 보이라고 색을 넣었어요. 오리지널 막걸리 색이 우유 같다며 거부하는 미국인들도 있거든요.” 그런데 3가지 중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은 오리지널 맛이다. “단맛이 덜한 술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음식과 곁들여 먹기 좋아해요.” 가격은 주 마다 다르지만 수제 맥주와 비슷한 3~4달러다.


한국일보

캐롤 박 마쿠 대표는 새콤 달콤하게 개발한 막걸리가 다양성을 추구하는 미국 밀레니얼 세대들과 잘 맞는 술이라고 강조했다. 왕나경 인턴기자.

캔 밑바닥에 따개를 붙인 이유

특이하게도 마쿠는 캔에 들어 있다. “미국에서는 캔 제품이 인기예요. 맥주 대신 마실 수 있는 술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캔에 담았어요.”


뿐만 아니라 캔 밑바닥에 따개가 달려 있다. “막걸리는 마시기 전에 가라앉은 성분이 섞이도록 흔들어야 하잖아요. 뒤집으면서 흔드는 효과가 나도록 일부러 밑부분에 따개를 붙이고 인쇄도 거꾸로 했어요.” 박 대표의 아이디어가 빛나는 부분이다.


때맞춰 미국 주류 시장이 변하기 시작했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생활을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등장하면서 미국에서 오래 사랑 받던 맥주의 인기가 떨어지고 세계 각국의 다양한 술이 팔리기 시작했어요. 밀레니얼 세대들은 지금 미국에서 유행하는 알코올이 들어간 탄산수처럼 도수가 높지 않은 술을 선호해요.”


이런 분위기를 타고 마쿠는 뉴욕, 뉴저지, 캘리포니아, 네바다, 오리건, 미시간 등 12개주의 주류 판매점, 편의점, 식당, 술집 등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이에 박 대표는 판매 지역을 넓히기 위해 펜실베이아, 텍사스, 알래스카주에서도 주류 판매 면허를 추가로 신청했다.


미국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일부 주에서 술집, 식당 등이 문을 닫았는데도 40만 캔이 팔렸어요. 연말까지 48만 캔이 팔릴 것으로 예상돼요. 한인들만 마시면 이런 숫자가 나오지 않죠. 미국인들이 많이 마셨다는 뜻이에요.” 조사를 해보니 소비의 60%는 여성들이었다. “달달한 맛을 선호하는 미국 여성들의 입맛에 잘 맞는 것 같아요.”

한국일보

캐롤 박 대표가 마쿠 막걸리의 사업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마쿠 막걸리를 미국을 넘어 캐나다, 동남아 등지에도 판매할 계획이고, 2022년에는 한국 판매도 추진할 예정이다. 왕나경 인턴기자.

내년에 캐나다에도 진출, 2022년 한국 판매도 준비 중

현재 마쿠의 직원은 박 대표 포함 5명이다. 이들은 뉴욕과 로스앤젤레스(LA) 두 곳에서 원격회의 시스템 ‘줌’ 등을 이용해 일을 한다. 동부와 서부 지역에 각각 창고를 두고 빠르게 유통하기 위한 전략적 안배다.


박 대표는 신제품 개발을 위해 1년에 2회 정도 한국에 온다. “매년 하나씩 신제품을 내놓을 생각이에요.” 이번에도 내년 2월에 출시할 신제품 개발을 위해 방한했다. “오렌지와 레몬, 망고가 섞인 열대과일 맛 막걸리를 개발 중이에요. 역시 새콤 달콤한 맛이죠. 마침 미국에서 신맛이 도는 음식과 술이 유행이에요.”


미국에서 자신감을 얻은 박 대표는 ‘마쿠’ 막걸리를 다른 나라에도 판매할 계획이다. “내년에 캐나다에서도 판매하기 위해 온타리오, 밴쿠버, 퀘벡 지역에 주류 판매 승인 신청을 했어요. 이후에는 동남아시아와 중국에서 판매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어요.”


한국 판매도 준비 중이다. “2022년에 마쿠 브랜드로 한국에서도 판매할 계획이에요. 한국의 젊은 세대를 겨냥해 맛을 약간 바꾸고 알코올 도수도 내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에요.”


박 대표는 막걸리 판매 외에 내년 중 뉴욕에 막걸리 바 개점도 추진 중이다.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막걸리 주점을 꼭 방문해서 어떤 술이 잘 팔리는지 분위기 등을 유심히 봐요.”


코로나19가 휩쓴 올해는 박 대표에게도 힘든 한 해였다. “미국에서는 인터넷으로 술을 팔지 못해요. 오로지 오프라인에서만 팔 수 있고 시음 등 관련 행사도 오프라인에서만 해야 돼요. 또 제조사가 직접 팔지 못하고 반드시 소매점을 거치도록 돼 있죠.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술집 등이 문을 많이 닫았고 시음회 등 각종 마케팅 행사를 하지 못해서 널리 알리지 못했죠. 인스타그램으로 열심히 알렸지만 한계가 있죠. 그런 상황을 감안하면 결과가 좋아요.”


이제 그의 목표는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주류 카테고리에 당당히 막걸리를 끼워 넣는 것이다. “술 사업은 세계적인 대기업들과 경쟁해야 해서 아주 힘들죠. 거기에 각국의 규제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막걸리를 만드는 세계적인 주류 대기업은 없으니 해볼 만해요. 마쿠를 전세계에 막걸리를 알리는 전도사 같은 기업으로 성장시켜야죠.”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2020.11.1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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