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번 가던 길로 '싸목~싸목'... 숨겨놨던 섬의 비경 '새록새록' [자박자박 소읍탐방]

[여행]by 한국일보

<199> 여수 화정면 바다 위 4개 다리로 이어진 백리섬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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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섬-다리-섬-다리-섬. 서남해 여러 섬이 해상 교량으로 연결되며 고립에서 벗어나고 있다. 여수 서쪽 화정면의 조발도 둔병도 낭도 적금도 역시 지난 2020년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로 이어졌다. 푸른 바다에 반짝이는 햇살, 그동안 감춰졌던 섬의 비경과 전설이 하나둘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여수시는 고흥까지 연결되는 이 해안도로를 ‘백리섬섬길’로 명명했다. 2028년 백야도와 화태도를 잇는 4개 교량이 완공되면 100리(39.1km) 해상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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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드러나는 작은 섬의 매력

화정면 소재지인 백야도는 2005년 일찌감치 육지와 연결됐다. 면 소재리라 하지만 고즈넉하기 그지없다. 백야대교를 건너 섬 끝까지 연결된 도로를 따라가면 백야도항로표지관리소에 닿는다. 관리소 건물 뒤쪽으로 돌면 바닷가 언덕에 하얀 백야등대가 외로이 서 있다. 주변으로 산책로를 내고 아기자기하게 정원을 가꿔 가볍게 돌아볼 수 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몽돌해변(백야리 286-2)이 있다. 잔돌이 아니라 박 크기의 반질반질한 자갈이 아담한 해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잔잔한 파도가 자갈을 덮었다가 개울물 소리를 내며 다시 바다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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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섬 동쪽에 자리 잡았다. 주변 여러 섬을 오가는 도선 선착장을 중심으로 부챗살처럼 퍼져있다. 낮은 돌담으로 연결된 좁은 골목이 섬 특유의 정감을 풍기는데 그중에서도 백야분교장 풍광이 백미다. 그네와 시소가 설치된 운동장에 오래된 벚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담쟁이가 덮인 돌담 너머로 마을과 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전망 하나만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학교일 듯하다.


화정면의 또 다른 육지 끝에는 여자만해넘이전망대가 조성돼 있다. 팔각정 바로 앞으로 조화대교 교각이 높이 솟았고, 다리 건너 조발도가 다른 섬과 바다를 가리고 있다. 백리섬섬길이 사실상 시작되는 곳이다. 조발도에도 휴게소(카페 섬섬) 겸 전망대가 있다. 둔병대교와 둔병도, 그 사이 바다가 호젓하게 조망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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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병도를 지나 다시 해상교량을 건너면 낭도(狼島)다. 공중에서 보면 이리 모양이어서 이렇게 부른다고 하는데, 섬 안내판에는 여우를 닮은 섬이라 써 놓았다. 아무래도 사악한 이리보다 꾀 많은 여우가 낫다고 판단한 듯한데 섬에서 만난 몇몇 주민은 오히려 불만을 표시했다. 이름을 잘못 부르거나 곡해해서 좋아할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해안 언덕 따라 오르락내리락... 낭도 둘레길

낭도는 백리섬섬길에서 가장 크고 관광객이 많이 찾는 섬이다. 2년 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원하는 생태녹색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 명칭은 섬이 지닌 천혜의 자원에 스토리를 입힌 ‘싸목싸목 낭만 낭도’. 생태관광해설사가 동행해 약 2시간가량 섬 둘레길을 걷는다. 올해 프로그램은 다음 달 시작할 예정이다. 싸목싸목은 ‘천천히 혹은 느리게’를 의미하는 지역 말이다. 지난해 생태녹색관광을 진행한 바 있는 채영숙 해설사와 함께 ‘싸목~싸목’ 낭도 둘레길 1코스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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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안쪽 낭도항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낭도해수욕장에서 시작한다. 물살에 밀려온 거뭇거뭇한 해초가 아담한 모래 해변을 듬성듬성 덮고 있다. 다소 지저분하게 보이지만 전혀 해롭지 않은 잘피다. 물고기의 안식처로 바다의 갈대에 비유된다.


해변을 지나면 둘레길은 낮은 해안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이어진다. 사스레피 나무와 소나무 숲으로 난 오솔길을 걸으며 섬에 자생하는 풀과 나무에 대한 생태 체험이 이어진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길을 돌릴 때마다 해설사가 바빠진다.


시원한 즙에 은근한 단맛이 우러나는 찔레순, 이제 한창 불긋하게 익어가는 보리장나무 열매도 맛본다. 작은 구슬처럼 생긴 상동나무 열매는 새콤하면서 상큼하다. 건강식으로 즐겨 먹는 블루베리보다 몸에 좋다는 평이 있을 정도다. 바닷가 토종 허브라 할 순비기 열매도 독특한 향을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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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바나나라 불리는 으름, 방부제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망개떡 재료로 쓰는 청미래덩굴은 이제 막 초록 잎사귀가 반들거리고, 예와 덕을 갖췄다는 고상한 이름을 지닌 예덕나무는 분홍빛 고운 새순을 달고 있다. 하얀 장딸기 꽃이 어둑한 나무그늘을 환히 비추고,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휘파람새의 청아한 노랫소리가 바닷바람에 실려온다. 수목이 우거진 것도, 정원처럼 잘 다듬은 숲도 아니지만 해설사의 설명으로 섬 둘레길이 무한정 풍성해진다.


언덕에서 해안으로 연결된 짧은 갈래 길을 통과하면 수억 년 지질의 역사와 마주한다. 둘레길 주변과 달리 바닷가는 수직의 주상절리와 넓은 암반으로 형성돼 있다. 그 풍광이 특이하고 빼어나 하늘의 신선이 내려와 놀다 갔다는 의미로 ‘천선대’라 이름 붙였다. 검붉은 색이 간간이 섞인 새하얀 암반 아래로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고, 바다 건너편으로 고흥 나로우주발사전망대가 손에 잡힐 듯하다.


천선대 아래 바닷가에는 공룡시대 유적이 숨겨져 있다. 낭도와 인근 5개 섬에는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공룡발자국 화석이 집중 분포하고 있다. 추도에 1,759점을 비롯해 낭도 962점, 사도 755점, 목도 50점, 적금도 20점 등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3,500점이 넘는다. 추도에서 발견된 공룡발자국 행렬은 무려 84m로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사례로 꼽힌다. 낭도 공룡발자국은 바닷물이 빠져야 제대로 보인다. 천선대에 도착한 시각이 마침 만조 때라 아쉽게도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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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대 위 언덕에 ‘카페 자연마당’이 있다. 좋은 풍광 선점한 으리으리한 카페가 아니라 이름처럼 자연 속에 묻힌 카페다. 넓지 않은 산밭에 유채를 심고 작은 정원을 가꿔 놓았다. 시설이라고는 컨테이너 조리실 하나에 야외 테이블 몇 개가 전부다. 둘레길 길손들은 대개 파전 하나에 ‘젖샘막걸리’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나선다.


갱번 가는 길에 젖샘막걸리와 해초비빔밥

젖샘막걸리는 낭도주조장에서 100여 년에 걸쳐 5대째 빚고 있는 술이다. 낭도에는 모두 7개의 우물이 있는데, 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한 우물이 젖샘이다. 산모가 이 물을 마시면 젖이 잘 돌고, 젖몸살에도 효과가 있다는 샘이다. 젖샘은 지금도 낭도주조장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솟아나고 있다. 다리가 놓이기 전 섬에 하나뿐이었던 이 식당의 대표 메뉴는 참전복해초비빔밥. 전복과 불등가사리 우뭇가사리 세모가사리 미역 다시마 등 6가지 해초를 올려 바다 향기 물씬 풍기는 음식이다. 해상교량이 놓이고 관광객의 발길이 잦아지며 섬의 식당도 7개로 늘어났는데, 지금은 모든 식당에서 이 비빔밥을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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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 언덕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남쪽 끝으로 가면 섬과 조금 분리된 바위 위에 하얀 낭도등대가 세워져 있다. 손에 잡힐 듯 바로 보이는 사도 주변에 바위 암초(여)가 많아 꼭 필요한 등대라고 한다. 사도는 낮고 길쭉하고, 왼편의 추도는 마치 2개로 갈라진 것처럼 보인다. 공룡발자국이 가장 밀집한 섬이다.


등대에서 이어지는 둘레길은 장사금해변에서 마무리된다. 바닷물이 항아리처럼 육지로 깊숙하게 파고든 곳에 형성된 모래사장이다. 그만큼 고즈넉하고 주변에 인공구조물이 없어 사극을 비롯해 여러 드라마에 등장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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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도 둘레길의 정체성은 섬에 들어설 때 이미 예고돼 있었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갱번미술관’이 이어진다. 섬 주민과 낭도의 풍경을 담은 사진과 그림, 설치미술 작품이 담장과 골목을 장식하고 있다. 갱번은 조개를 캐고 물고기를 잡는 곳, 즉 갯가의 지역 사투리다. 낭도 둘레길은 갱번을 오가는 주민들이 이용하던 길을 좀 더 편하게 다듬은 산책로다.


낭도에서 다시 다리 하나를 건너면 여수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적금도다. 해상교량 건설과 함께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보물섬이다. 금붙이가 쌓인 섬이라는 명칭이 비유만은 아니었다. 오래전 금광이 있다는 설에 전북 고창 사람이 채광을 시도하다 실패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다시 굴을 파 약간의 금맥이 발견됐지만 경제성은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섬 남쪽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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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으로 길쭉한 적금도에는 해변을 따라 마을 도로가 연결돼 있다. 여행객에게는 호젓한 갯마을을 즐길 수 있는 자전거길이자 해안 산책로다. 마을 뒤편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집 주변은 도로 개설과 함께 전망대공원으로 변했다. 우측으로 보이는 팔영대교를 건너면 바로 고흥 땅이다.



여수=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2023.08.2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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