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4대에 걸쳐 지켜낸 100년 냉면의 비결을 듣다

개업 100주년 부산 내호냉면 풀 스토리


1919년 흥남 ‘동춘면옥’서 1대 시작

일가족 피란 내려와 부산에서 이어와


59년 밀가루 구호품으로 밀면 첫 개발

문재인 대통령, 곽경택 영화감독 단골


여름엔 하루 1000그릇 훨씬 넘게 팔려

4대 대표 “서울에서 직영점 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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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100년 식당’이 있다. 이를테면 서울 ‘이문설농탕’도 100년이 넘었다. 하나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다른 노포들도 주인이나 업종 두 가지 중 하나는 애초와 다르다. 무엇보다 개업 연도가 불분명하다. ‘먹는장사’가 내세울 만한 직업이 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변변한 기록이 남아있을 리 없다. 한 집 건너 식당인 세상이라지만, 우리네 음식사는 여전히 가난하다.

허약한 풍토에도 ‘백 년 명가’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식당이 있다. 한 가족 4대가 음식 하나만으로 100년을 맞이한 집. 1919년 개업한 ‘내호냉면’이다. 부산시 우암동 늙고 낡은 시장 골목이 내호냉면의 자리다. 허름한 이 냉면 집에 고달팠던 우리네 100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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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10월 처음 열었어. 함경남도 흥남 내호리에서. 그땐 ‘동춘면옥’이었어. 내호시장 입구 흥남부두 앞에 있었다네. 외할머니가 어머니랑 같이 농마국수(‘함흥냉면’의 이북 이름)를 팔았어. 아주 유명했대.”

내호냉면 3대 대표 이춘복(69)씨의 남편 유상모(70)씨가 오래전 떠난 고향 얘기를 어제 일처럼 말했다. 다행이었다. 내호냉면은 언론에 많이 나온 집이다. 그러나 보도마다 내용이 다르다. 『식객』을 비롯한 책도 마찬가지다. 개업 연도는 물론이고 4대째 내려온 대표들 이름과 관계도 제각각이다. 개업 100주년을 맞아 공식기록을 작성하고 싶었다. 이제는 물러난 3대 내외를 어렵게 불러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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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때였어. 외할머니랑 아버지·어머니, 이모·외삼촌 넷, 이렇게 8명이 피란을 왔어. LST(미군 수송선) 타고. 마지막 배였다네. 부산에 도착했는데 피란민이 너무 많다고 거제도에 내려줬어. 거제도에서 여동생(유상숙·1951년생)이 태어났잖아. 다섯 식구가 51년 부산 보수동으로 건너왔다가 53년 우암동으로 들어왔어. 이모랑 외삼촌은 다 흩어졌지.”

유씨의 기억도 따져보면 사실과 다르다. 세 살 때 피란 왔다고 했으니 1951년이어야 맞다. 그러나 LST를 투입한 미군의 피란민 수송 작전은 1950년 12월 마무리됐다. 거제도에 들어간 LST도 12월 25일이 마지막이었다.


유씨 가족이 뿌리를 내린 우암동은 ‘소막마을’이라고도 불린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팔려가는 소가 우암동 막사에 일단 모였다. 전쟁이 터지자 우사(牛舍)에 피란민이 들어가 살았다. 그 흔적이 여태 남아 있다. 소막마을은 지난해 5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됐고 ‘피란수도 유적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예비 잠정목록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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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 사람들이 우암동에 모여 살았어. 문재인 대통령도 부산에서 변호사 할 때 자주 왔었어. 부모가 흥남 출신이잖아. 동춘면옥 단골이었다네. 곽경택 영화감독 있잖아. 그 양반 아버지가 중학생 때 우리 집에서 배달했었어. 흥남에서 내려왔거든. 아버지 따라서 곽경택 감독도 많이 왔었고.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서울 오장동에서 함흥냉면 집 하는 어른이 옛날에 동춘면옥에서 일했다고 했어. 언젠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외할머니를 ‘고모’라고 불렀던 게 기억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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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호냉면은 1953년 3월 개업했다. 내호(內湖)라는 이름은 고향에서 땄다. 1대 대표 고(故) 이영순 여사와 2대 대표 고 정한금 여사가 함흥냉면을 만들어 팔았다. 바로 이 자리에서였다. 네댓 평 되는 식당에서 낮에는 냉면을 팔고 밤에는 다섯 식구가 잠을 잤다. 지금은 모두 7채를 쓰고 있다. 그런데 구조가 이상하다. 좁은 골목 안 앞뒤 옆집이 다 내호냉면이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이사는 절대 못 가. 어머니 유언이야. 골목도 우리 땅이야. 어머니가 길을 막지 말라고 하셨어. 솥도 원래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하셨고. 그래서 골목을 못 막고 옆집 앞집을 하나씩 샀어. 나도 여기 위층에 살아. 여태 9번을 고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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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밀면을 얘기할 차례다. 내호냉면을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부산 밀면’의 원조집이어서다.

“옛날 우암동에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살았거든. 거지도 많았어. 옆 동항성당에서 불쌍한 사람들한테 밥을 줬어. 어느 날 신부님이 배급 나온 밀가루로 ‘삯국수’를 해달라고 한 거야. 삯국수 알아? 이북에선 많이 해 먹었어. 집에서 감자 전분을 갖고 식당에 와. 그러면 식당에서 반죽하고 기계로 눌러 면을 만들어 줘. 국수 만들어주는 삯만 받아서 삯국수야. 성당에서 준 밀가루로는 면이 잘 안 나왔어. 어머니가 고생이 심했어. 실패하면 우리 식구가 다 먹었지. 한참 만에 밀가루와 고구마 전분을 7대 3 비율로 면을 만들어냈어. ‘밀냉면’이라고 지었는데 언제부턴가 다들 밀면이라고 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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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가 되짚은 기억은 여태의 밀면 유래와 다르다. 이북에서 내려온 피란민을 위해 밀가루로 냉면 맛을 낸 음식이 밀면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밀면 창시자’ 정한금 여사는 밀면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4대 대표 유재우(43)씨는 “할머니는 냉면 생각뿐이었다. 당신이 제일 먼저 만들었으면서도 밀면은 없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먹는 음식이라고 했다”고 회고했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밀면이 유명해진 뒤로 내호냉면의 대표 메뉴는 냉면에서 밀면으로 바뀌었다. 여름에는 하루 1000그릇 이상 냉면과 밀면이 팔리는데, 단골 아니면 밀면을 찾는 손님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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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내호냉면은 4대까지 이어졌다. 유재우 대표가 지난해 3월부터 맡고 있다. 식당에서 일한 건 20대 후반부터였다. 어머니로부터 반죽부터 육수, 양념까지 차례대로 배웠다.

“아버지는 사실 겉돌았어요. 그래서 할머니가 어머니한테 물려주신 거예요. 저는 당연히 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할머니가 ‘네가 해야 한다’고 수없이 말했거든요. 바꾸고 싶은 건 없어요. 내호냉면도 계속 여기에 있을 거예요. 다만 서울에 직영점은 내고 싶어요.”


끝으로 비결을 물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꼭 지켜야 한다고 했던 귀띔 같은.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어요. 가르쳐 준 대로, 하라는 대로만 했어요. 어머니도 할머니한테 그렇게 배웠고, 할머니도 증조외할머니한테 그렇게 배웠어요. 저는 그냥 우리 가족의 것을 지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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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벽에 걸린 액자에 볼펜으로 그린 내호리 지도가 있다. 지도 아래에는 ‘아버지 어머니 생사를 알지도 못하고 58년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도 못 하고 88세로 마감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2009년 2대 정한금 여사의 남편 고 유복연씨가 돌아가기 열흘 전에 그린 유물이다.

그해 겨울 흥남 사람 모두가 LST를 탈 수 있었던 건 아니다. 표가 모자랐다. 유복연씨의 장인, 그러니까 1대 이영순 여사의 남편이 제 표를 맏사위에게 줬다. 그 표가 운명을 바꿨다. 그날 이후 이영순 여사는 고향에 혼자 남은 남편이 사무쳤고, 홀로 고향을 떠난 유복연씨는 평생 제 가족을 그리워했다. 고향 이름 내건 냉면 집이 100년을 하루같이 고향 음식을 내는 비결을 알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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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면도 올해로 60주년을 맞는다. 내호냉면 3, 4대 대표에 따르면 1959년 처음 밀면을 만들어 팔았다. ‘개금밀면(1966년 개업)’ ‘가야밀면(1969년 개업)’ 같은 부산의 다른 밀면집은 60년대 후반 밀면을 시작했다.

내호냉면의 밀면은 냉면에 가깝다. 냉면과 같은 육수를 쓰기 때문이다. 소고기 사골에 쇠심줄·사태 등을 넣고 육수를 낸다. 센 불로 빨리 끓이고 한 번 끓으면 바로 끈다. 오래 끓으면 육수가 텁텁해져서다. 고명도 냉면과 똑같다. 가오리를 쓰는데, 생가오리를 숙성한 뒤 양념을 넣고 다시 숙성한다. 밀면과 냉면이 다른 건 면 성분뿐이다. 냉면은 고구마 전분만으로 면을 뽑고, 밀면은 밀가루와 고구마 전분 비율이 7대 3이다. 그래서 냉면이 밀면보다 비싸다. 비빔냉면 1만원(대), 물밀면 7000원(대).


부산의 다른 밀면집은 내호냉면보다 맛이 강하다. 맵고 시고 달다. 부산 사람이 기억하는 밀면도 맵고 시고 단 여름 별미다. 내호냉면과 면도 다르고, 육수도 다르다. 내호냉면보다 고구마 전분 비율이 낮다. 밀가루만 쓰는 집도 많다. 돼지고기로 육수를 내거나, 육수에 한약재를 넣는 집도 있다.


부산=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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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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