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하고 싶어도 못 망한다, 여행사 4%만 문닫은 '딱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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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일 최초의 한국인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로부터 열 달째, 세상은 너무나 변했습니다. 사회 모든 부문이 위기라지만, 여행업이 입은 피해는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합니다. 중앙일보는 3회에 걸쳐 사경을 헤매는 여행업을 진단하고 코로나 시대 여행법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알던 세상은 다시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행도 달라져야 합니다.
1회 - 최악의 위기, 초토화된 여행업
2회 - 오락가락 관광 정책
3회 -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석 달째 부업을 하고 있습니다. 직원 30명 월급 주려고요. 고용유지지원금만으로는 안 되거든요. 4대 보험금에, 사무실 임대료도 내야 합니다. 10월까진 버텼는데 이제 한계가 왔습니다. 곧 해고 통보를 하려고 합니다.”
중견여행사 ‘트레블마케팅서비스’ 김용동(55) 대표의 토로다. 김 대표는 “대형 여행사 몇 군데 빼면 똑같은 처지”라며 “지금 택배나 대리기사 하는 사람 중에 여행사 사장이 수두룩할 것”이라고도 했다. 코로나 사태 10개월째. 여행업계는 초토화 수준을 넘어 ‘업종’ 자체가 없어질 것 같은 분위기다. ‘최악의 위기’ 같은 표현도 이젠 식상하다. 여행업계의 참혹한 실상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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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업계 무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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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여행사 하나투어의 7~9월 매출은 86억원이다. 2019년 같은 기간엔 1832억원이었다. 1년 만에 매출 95%가 날아갔다. 그나마 하나투어여서 항공권이나 국내 여행상품을 팔아 매출 5%를 지켰다. 국내 여행사 대부분이 1년 가까이 ‘매출 제로(0)’를 찍고 있다. 3~8월 방한 외국인은 지난해보다 97% 줄었고, 같은 기간 출국 한국인은 98% 줄었다. 여행시장의 존립 근거가 사라졌다.
여행사는 서비스업이다. 사람이 제일 중요한 재산이고, 인건비가 제일 큰 경비다. 코로나 시대 여행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가장 심각한 부담이 됐다. 정부가 나섰다. 3월 16일 여행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해 유급 휴직·휴업 수당의 90%(상한액 1일 7만원)를 감당하기로 했다. 직원을 해고하지 않으며, 임금의 나머지 10%는 여행사가 부담하는 조건이었다. 7월 말 기준, 전체 여행사의 42.5%가 이 지원금으로 직원의 토막 난 월급을 메웠다.
여름이 됐다. 기대와 달리 바이러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정부는 8월 21일 고용유지지원금 지급기간을 180일에서 240일로 60일 늘렸다. 사업 기한도 2021년 3월 31일로 연장했다. 원래는 9월 15일 끝날 예정이었다. 파국은 이로써 몇 달 유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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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하는 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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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는 말 그대로 연명했다. 정부 지원금 덕분에 직원을 지켰다. 그러나 매출은 여전히 없었다. 여행사는 10%의 부담금도 버거워졌다. 결국 무급휴직을 시행하는 여행사가 나타났다. 무급휴직을 신청하면 정부가 월급의 50%을 준다. 최대 180일까지다. 유급휴직은 1주일에 하루라도 일을 하지만, 그래서 여행사가 임금의 10%라도 책임지지만, 무급휴직은 출근도 안 한다. 그래서 한 푼도 안 줘도 된다.
6월 하나투어가 창사 이후 최초로 무급 휴직을 시행했다. IMF 외환위기에도, 사스와 메르스 사태에도 하나투어는 건재했었다. 지금은 전체 인력의 10%만 출근하고 있다. 모두투어, 롯데관광 등 대형 여행사도 무급휴직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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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급휴직 다음 수순은 고용유지지원금 포기다. 여행사가 고용유지지원금을 안 받는다는 것은 직원을 내보내겠다는 뜻이다. 10월 NHN여행박사가 갑자기 대규모 구조조정을 감행해 여행업계가 크게 술렁였다. 1주일 안에 희망퇴직을 신청하면 한 달치 월급을 보전하는 조건이었다. 10월 31일 현재 직원 240명 중13명만 남았다.
올 초 직원 수 약 100명이었던 자유투어의 현재 고용인원은 25명이다(고용정보사이트 ‘크레딧잡’). 그런데 서울 중구의 사무실은 지난달 철수했다. 사실상 휴업 상태다. 롯데JTB, 한진관광 같은 대기업 계열 여행사도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 중이다. 직원을 절반 수준으로 줄일 방침이라고 한다. 중앙일보가 주요 여행사 열 곳을 일일이 확인했는데, 성한 곳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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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 100개 중 4개만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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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 해고 다음 순서는 폐업이다. 여행사를 접는 것이다. 1년 가까이 매출이 없으니 당연한 절차다. 현실은 어떨까?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 1~9월 폐업 여행사는 720개였다. 2019년 같은 기간엔 713개, 2018년엔 685개 여행사가 폐업했다. 의외로 별 차이가 없다. 10월 27일 기준 전체 여행사 숫자는 1만7547개다. 열 달 새 4.1%가 줄었다. 최악의 위기라는데 여행사 100곳 중 네 곳만 망했다. 이건 무슨 조화인가.
결론은 간단하다. 정부가 여행사 폐업을 막았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여행사는 고용유지지원금으로 인건비 부담을 덜었다. 그렇다고 고용유지지원금이 ‘매출 제로’까진 막지 못했다. 이 대목에서 정부 긴급융자가 역할을 했다. 여행사가 앞다퉈 문체부와 자치단체에서 마련한 긴급융자를 받았다. 고용유지지원금과 긴급융자. 정부가 여행업에 씌운 두 대의 산소호흡기다.
알아둘 게 있다. 정부 융자는 고용유지지원금처럼 무상지원이 아니다. 시중은행보다 이자가 적고 조건이 유리한 빚일 뿐이다. 이 빚을 앉고 있으면 여행사를 접고 싶어도 못 접는다. 한국여행업협회 구정환 과장은 “관광진흥기금으로 특별 융자를 받았다면 원금을 상환해야 폐업할 수 있다”며 “정부가 기존 융자금 상환을 유예해주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코로나 시대 여행사 생존률 96%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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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업은 개업도 폐업도 쉬운 업종이다. 국내여행업은 자본금 1500만원, 국외여행업은 3000만원과 사무실을 갖추면 여행사를 차릴 수 있다. 문제가 생기면 폐업한 뒤 새 간판을 걸고 영업하는 여행사가 허다했다. 코로나 시대에는 폐업도 쉽지 않다. 문체부에 따르면 3411개 관광사업체가 코로나 사태 이후 특별 편성된 융자를 받거나 기존 대출 상환을 유예받았다. 10월 30일 현재 여행사가 빌려 쓴 나랏돈은 7652억원에 이른다. 정부가 지원금이라는 이름의 산소호흡기를 떼는 순간, 여행업계는 숨이 끊어진다. 폐업이 쏟아진다.
손민호·최승표·백종현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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