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 닮은 국물에 마법소스…日 미쉐린 셰프의 특별한 라멘

[푸드]by 중앙일보

한 끼 식사를 위해서 몇 달을 기다려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한 식당을 예약하기 위해 800통이 넘는 전화를 걸고, 10개월이 넘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누구보다 먹고 마시는 것에 진심인 푸드 콘텐트 에디터 김성현의 〈Find 다이닝〉을 시작합니다. 혀끝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다이닝을 찾는(Find), 그가 추천하는 괜찮은(Fine) 식당을 소개할게요. 읽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로 생생하고 맛있게 쓰여진 맛집을 만나보세요.

김성현의 Find 다이닝 ㉑ 니시무라멘

“韓·日·佛, 세 나라가 한 그릇에… 한국에서 맛보는 일본인 셰프의 프랑스식 라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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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뼈 육수에 김으로 만든 오일을 더한 니시무라멘의 '교카이파이탄'. 사진 김성현

STORY


전통은 물론 정통성을 중요하게 평가하는 미쉐린 가이드, 콧대 높기로 소문난 그곳에서 아시아 최초로 퓨전 부문에 별을 획득한 이가 있다. 주인공은 니시무라 다카히토(52) 셰프. 그는 지난 2019년 자신의 이름을 딴 후쿠오카의 레스토랑 ‘니시무라 다카히토 라 쿠진 크리에이티브’에서 선보인 일식 프렌치 퓨전 요리로 미쉐린 가이드 1스타를 획득한다.


3살 때부터 취미로 요리를 시작해서 16살에 본격적으로 요리사를 자신의 업으로 삼은 그가 주로 배워온 것은 화려하고 정교한 프랑스의 요리들. 한 그릇 위에 담긴 프렌치 퀴진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그는 29살이 되던 해 프렌치 레스토랑을 연다. 하지만 음식을 만들수록 국적이나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자신만의 음식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그렇게 2017년 퓨전 레스토랑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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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무라 다카히토 셰프가 라멘을 만들고 있는 모습. 사진 김성현

라멘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은 약 7년 전, 틀을 깨는 것이 장기라고 할 만큼 기존의 체계에 갇히는 것을 지양하는 그는 파인다이닝 코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메뉴로 라멘을 내놓는다. '얇지만 탄력이 살아있는 면'.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면을 만들기 위해 수없이 재료와 배합을 바꾸며 제면소와 함께 연구를 거듭한 그는 마침내 1년 만에 마음에 쏙 드는 면을 완성한다.


이후 자신이 만든 라멘을 더 많은 대중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점심에만 한정적으로 라멘을 판매했고, 예상보다 뜨거운 반응에 2020년 4월 후쿠오카에 라멘 전문 가게를 오픈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일본 내에서도 평범한 길을 걷지 않는 니시무라 셰프가 한국, 그것도 서울의 연남동에 자신의 두 번째 매장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일까?


“2020년 처음으로 서울에 와서 노포와 포장마차부터 파인다이닝까지 수많은 음식점을 다녔어요. 매달 서울을 찾아서 2박 3일 머무는 동안, 관광은 하나도 하지 않고 정말 먹으러만 다녔죠. 일본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조금 더디고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는데, 서울은 전통 속에서도 새로움과 크리에이티브함이 살아있더군요. 후쿠오카를 넘어 2호점을 한다면 도쿄보다도 서울이 재미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렇게 그는 지난해 11월 연남동에 후쿠오카에 이어 자신의 이름을 딴 ‘니시무라멘’의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시작했다. 일본 현지 고객들의 입맛과 한국 고객들의 취향이 다른 만큼, 국내에서는 염도를 더 낮추고 면은 빨리 불지 않도록 조리했다고. 특히 조리 시간 1초의 차이로 풍미가 확연히 달라지는 스프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직접 맛을 보고 완성해 퀄리티 유지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니시무라 셰프가 매주 빠짐없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노력 덕분일까. 최근 발표된 미쉐린가이드 서울 2025에 등재되는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고국을 넘어 한국까지 자신의 라멘을 성공적으로 론칭한 그는 오는 6월, 강남에 자신의 또 다른 장기인 버터샌드와 치즈케이크 전문점의 오픈을 앞두고 있다. 7월부터는 저녁마다 니시무라멘에서 자신의 색깔이 가득한 이자카야 메뉴도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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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초로 퓨전 분야에서 미쉐린 1스타를 받은 니시무라 다카히토 셰프. 사진 김성현

이미 일본 내에서도 성공한 셰프인 그가 이렇게 고된 일을 자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니시무라 셰프는 ‘전혀 힘들지 않다’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36년 넘게 요리에 매진했지만 이제야 겨우 입구가 보이는 느낌이라고. 그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요리하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다. 앞으로 전 세계를 여행하며 수많은 음식을 경험하고 흡수해 나만의 요리하는 것이 목표”라며 셰프로서 자신의 삶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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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제 닭오일과 맛간장, 포르치니 버섯으로 맛을 낸 쇼유라멘. 사진 김성현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인 메뉴이자, 현지인 셰프가 선보이는 라멘이지만 이곳의 라멘은 전통적인 일본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음식에 사용되는 재료의 90% 이상을 국내산으로 사용해 한국의 맛을 담아냈지만, 조리법은 섬세하고 디테일한 프랑스 요리 방식을 따랐기 때문.


‘니시무라멘’을 대표하는 메뉴인 교카이파이판의 경우, 하루 동안 푹 끓여낸 닭 뼈 육수에 김으로 만든 오일을 넣어 감칠맛을 더했다. 이 메뉴는 니시무라 셰프가 한국에서 먹었던 닭칼국수와 삼계탕, 닭곰탕 등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라멘이라고. 수프를 만드는 과정에 쌀과 찹쌀을 사용하는데 이 역시 삼계탕 속에 들어간 찹쌀을 맛본 후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재창조한 것이다.


닭 육수와 어우러지는 독특한 풍미의 김오일 역시 말린 파래김과 잘게 다진 쪽파를 올리브오일에 함께 끓어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특유의 녹색빛과 풍부한 향을 위해 60도의 온도를 유지한다. 이런 방식은 그가 프랑스 요리를 수학하며 얻은 노하우가 접목된 것이다. 덕분에 교카이파이판은 해초류와 고소한 닭이 만나 여러 겹의 맛의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훈제한 고등어와 멸치, 가츠오부시를 우린 맑은 육수의 시오 라멘에 곁들이는 부추페이스토 역시 정교하고 복잡한 프랑스 요리 방식을 그대로 가져왔다. 잘게 다진 부추를 육수와 함께 믹서기에 분쇄해 아이스크림으로 만들고, 이것을 다시 갈아서 얼린 뒤 또 한 번 아이스크림 기계에 넣어 입자를 곱게 만든다. 이 과정은 부추의 날 선 질감은 죽이고, 향은 끌어올리기 위함이라고.


시오만큼이나 마니아층이 많은 쇼유라멘 역시 니시무라 셰프의 색이 진하게 담겨있다. 그가 손수 만든 특제 닭오일과 맛간장을 기본으로 하지만, 독특한 것은 라멘 안에 담긴 포르치니 버섯이다. 고기처럼 뭉쳐있는 버섯을 젓가락으로 풀어내는 순간, 버섯의 깊은 풍미와 감칠맛이 한 번에 퍼져나가며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라멘 맛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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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고추의 매운맛과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로 만든 특제오일. 사진 김성현

모든 라멘에는 청양고추의 알싸한 매운맛과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곳만의 특제 ‘辛(신)청양오일’을 한 스푼 넣어 먹는 것도 훌륭한 선택이다. 청양오일을 넣는 순간 맵싸한 느낌이 올라오며, 맛의 레이어가 한층 더 생기고 국물은 더욱 깊은 맛을 낸다. 매콤한 음식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마법의 소스와 다름없는 느낌이다.


주문 즉시 무쇠솥에서 갓 지어 나오는 솥밥 역시 별미다. 입안에서는 이천 고시히카리로 지은 밥은 쌀 한 톨 한 톨에 탱글탱글한 식감을 느낄 수 있고, 코를 통해서는 갓 지은 솥밥이 주는 특유의 향긋하면서도 고소한 단내를 함께 맡을 수 있다.


이렇게 따끈따끈한 솥밥은 쌀 본연의 맛을 먼저 즐긴 뒤 파르메산 치즈와 라멘 스프를 함께 넣어 리소토처럼 즐길 수도 있다. 치즈가 가진 꼬릿한 뉘앙스의 고소함과 쌀이 품은 곡물 특유의 구수함, 여기에 육고기가 주는 감칠맛이 더해져 넘치는 중독성으로 입맛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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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즉시 무쇠솥에서 지어지는 이천 고시히카리 쌀밥. 사진 김성현

이처럼 상식의 틀을 깨는 특별한 라멘과 어디서도 맛보기 어려운 독특한 조합은 니시무라멘만에서만 할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다. 늘 새로운 메뉴를 고민한다는 니시무라 셰프는 앞으로 김치찌개나 돼지국밥처럼 한국 사람이 애정하는 메뉴를 라멘 스타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계획도 함께 전했다. 또한 현재 젓갈과 김치 등을 배우고 있는 만큼, 한국의 전통 발효도 요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성현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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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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