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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매일 먹는 밥, 간단하지만 건강하게 먹는 방법

by중앙일보

닥터라이블리의 부엌에서 찾은 건강 ⑧ 저항성 전분

중앙일보

매일 같이 먹는 밥을, 더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우상조 기자

밥에 가장 많은 성분이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이미 잘 알고 있는 ‘탄수화물’이다. 밥에 포함된 탄수화물은 포도당 분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길게 이어진 다당류로, 전분 혹은 녹말이라고 부른다. 우리 몸에는 소화효소가 있어 이 ‘전분’을 포도당으로 분해하는데, 분해된 포도당은 소장에서 흡수돼 혈액을 통해 이동한다.


소화효소에 의해 쉽게 분해되는 탄수화물일수록 소장에서 흡수가 빨라지고, 혈당도 빠르게 높아진다. 이렇게 분해와 흡수가 빠른 탄수화물은 배고프고 굶주린 사람에게는 굉장히 효율적이겠지만, 당뇨와 비만 등 만성 질환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썩 달가운 음식은 아니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서는 밥을 더 현명하게 먹는 방법을 소개해볼까 한다. 매일같이 먹는 밥을 똑같이 먹으면서도 ‘혈당은 덜 높이고, 장내의 좋은 성분은 더 만들게’ 해주는 방법이다. 핵심은 ‘저항성 전분’에 있다. 저항성 전분이 무엇인지 더 이야기하기 전에, 이번 글의 주제가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부터 짚어 보자.


건강을 위해 내가 바꾸려는 생활 습관이, 건강의 어떤 측면을 개선하는지 인지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몸에 좋다는 식의 산발적 정보의 홍수 속에 빠지면 ‘그냥 대충 골고루 먹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건강해지는 방법에는 분명 뼈대가 있다. 이전 칼럼부터 강조해온 건강의 뼈대는 ‘건강한 몸’을 위해 ‘건강한 면역 반응’을 지켜야 하고, 건강한 면역 반응을 위해 ‘장의 염증’을 조절하는 것이 필수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장의 염증을 줄이기 위해 밀가루 끊기와 파, 당근, 버섯 등의 수용성 식이섬유 섭취를 강조했다. 이번 글의 주제인 저항성 전분 또한 장의 염증을 줄이고, 건강한 장을 가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성분이다.


‘저항성 전분’은 ‘전분’의 종류 중 하나다. 그런데 왜 이름에 ‘저항성’이란 단어가 들어갔을까? 다름 아니라 ‘소화’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저항성 전분은 우리 몸에서 나오는 소화효소에 의해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저항성 전분은 소장까지는 소화되지 않은 상태로 이동하고, 대장에 도달해서야 장내세균에 의해 소화하는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대장의 장내세균에 의해 소화되는 이 특이한 저항성 전분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장의 장내세균이 ‘저항성 전분’을 대사하면 ‘단쇄지방산(Short chain fatty acid)’이라는 중요한 물질을 만들어낸다. 단쇄지방산은 지난번 글에서도 언급한 적 있는 장내세균의 대사산물이다. 튼튼한 장벽을 유지하고, 장의 염증을 줄여 대장암의 발생 가능성을 낮춰준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된 적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저항성 전분은 소장에서 흡수가 되지 않아 혈당도 덜 올라간다. 소장에서 전분 흡수를 줄여 혈당을 낮추고, 장내에 아주 유익한 단쇄지방산도 만들어준다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저항성 전분의 양은 어떻게 늘릴 수 있을까. 밥을 지을 때 딱 한 가지 과정만 추가하면 된다. 방법도 간단하다. 평소와 같은 방법으로 밥을 한 다음, 냉장고에서 12~24시간을 넣어두었다가 먹는 것이다. 정말 너무나도 간단한 방법 아닌가? 심지어 여기에 숨어있는 원리를 알면 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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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분이 뭉쳐있어, 단단한 형태의 생쌀. 사진 pixabay

쌀을 떠올려보자. 생쌀은 굉장히 단단하다. 이때는 쌀의 전분이 아주 타이트하게 뭉쳐있는 상태다. 생쌀은 씹어도 거의 단맛이 나지 않는다. 전분이 강하게 뭉쳐있어 침의 소화효소에 의해 포도당으로 거의 분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쌀을 물에 불려 온도와 압력을 가해 익힌 후를 생각해보자. 이때는 조금만 씹어도 단맛을 느낄 정도로 말랑해진 상태다. 타이트하게 뭉쳐있던 쌀의 전분이 물과 열에 의해 느슨하게 풀려 포도당으로 쉽게 분해된다. 즉, 소화효소에 의해 쉽게 분해될 수 있는 형태로 쌀 전분의 구조가 바뀐 것이다.


이렇게 풀려버린 형태의 전분을 다시 타이트하게, 소화효소에 의해 쉽게 분해되지 않도록 바꿔주는 방법이 있다. ‘재결정화(Retrogradation)’라는 과정이다. 4℃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 12~24시간 보관하는 방법이다. 냉장고에 넣어둔 찬밥을 떠올리면 아주 쉽다. 찬밥의 쌀알은 갓 지은 밥과 달리 다시 단단해진다. 냉장고에 보관하는 시간 동안 쌀 내의 전분이 새로운 구조의 결정 형태로 뭉치게 되는데, 이때 형성된 전분이 바로 소화효소에 의해 잘 분해되지 않는 ‘저항성 전분’인 것이다.


물론 이때 밥의 전분이 모두 저항성 전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찬밥을 데워서 먹어도 생쌀에 비해 단맛이 나는 것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밥에 포함된 저항성 전분의 양은 갓 지은 밥보다는 분명하게 증가한다. 때문에, 훨씬 건강한 형태의 밥을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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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의 전분이 열과 압력에 따라 변화해 가는 과정. Starch Retrogradation: A Comprehensive Review

이쯤에서 “맛없게 찬밥을 먹으라는 거냐?”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다행히도 그런 건 아니다. 냉장고에 12~24시간 이상 보관한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으면 된다. 단순히 열을 가하는 과정에서는 결정화된 저항성 전분이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다. “밥을 냉동에 넣는 건 어떠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재결정화 과정이란 전분 분자들이 움직여야 결정을 형성할 수 있다. 즉, 전분 주변의 물이 얼어버리면 전분 분자들의 움직임이 불가능해진다. 4℃의 냉장 온도에서 12~24시간(시간이 길수록 저항성 전분이 조금 더 생긴다)을 보관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글을 읽고 난 후 밥을 먹을 때, 입안에서 밥알을 꼭꼭 씹어 음미해보길 바란다. 씹을수록 밥에서 단맛이 느껴질 때 ‘아! 전분이 소화효소에 의해 분해돼 포도당이 되어 달게 느껴지는구나’라고 떠올려보면 좋겠다. 그리고 찬밥을 데워 먹을 때 이 과정을 다시 한번 해보는 거다. 그럼 분명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밥의 수많은 탄수화물 중 일부를 우리 장내세균을 위해 양보하는 ‘저항성 전분밥’, 만들어보길 적극 추천한다.


최지영 피부과 전문의 cook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