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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소원 하나는 꼭 들어 줍니다"…이성계도 감복한 남해 '금산' [팔도 이야기 여행]

by중앙일보


팔도 이야기 여행① 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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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강산 구석구석 사연 없는 곳이 없다. 그 사연을 찾아 방방곡곡으로 이야기 여행을 떠난다. 산자락에 깃든 전설을 주워 담고, 강물에 실려 오는 옛이야기를 길어 올린다. 여행은 풍경을 보러 가는 일이 아니다. 풍경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풍경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들으러 가는 걸음이 여행이다. 스토리텔링이, 나아가 K컬쳐가 이 들뜬 걸음에서 시작한다. ‘팔도 이야기 여행’ 첫 순서는 김장실 한국관광공사 사장과 떠나는 경남 남해 여행이다. 김장실 사장의 고향이 남해 금산 아래 금전마을이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들려주던 김장실 사장의 목이 여러 번 메었다.



금산이 보우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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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681m)은 남해 제1의 명소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속한 절경이기도 하거니와 이름에 어린 내력이 범상치 않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금산(錦山)이라는 이름을 내려줬다. ‘비단 산’이라는 뜻이다. 이성계는, 금산이 보광산이라 불리던 시절 금산에 들어 백일기도를 올린 뒤 조선을 건국했다. 과업을 이룬 보답으로 비단을 내리려 했으나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을 순 없었다. 대신 이름에 비단을 내려 금산이라 했다. 임금이 이름을 하사했다는 산은 팔도에서 남해 금산이 유일하다.


금산에는 범상치 않은 자랑거리가 하나 더 있다. 금산 중턱 암봉 위에 걸터앉은 보리암이다. 보리암은 양양 낙산사, 강화도 보문사와 더불어 국내 3대 관음 성지로 통한다. 관음보살은 곤경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다시 말해, 소원을 들어주는 보살이다. 보리암 해수관음상이 소원 하나는 꼭 들어준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지금도 숱한 중생이 소원 하나 가슴에 품고 보리암에 오른다. 보리암 주지 성조 스님은 “선거 앞둔 정치인 치고 보리암 안 온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조 스님의 이력도 범상치 않다. 성조 스님은 낙산사에서 출가했고, 조계종 총무원에서 근무한 10년간 보문사에서 수십 번 기도를 올렸으며 5년 전부터 보리암 주지를 맡고 있다. 3대 관음 사찰과 다 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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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실 사장은 1956년 금산 아랫마을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까지 살았다. 어렸을 적 그는 무시로 금산을 오르내렸다. 지금은 차가 금산 중턱까지 올라가지만, 옛날에는 산 아래 상주 마을에서 2시간 가까이 가파른 산을 올라야 했었다.


“수도 없이 금산을 올랐습니다. 나무하러 왔었고, 소 풀 먹이러 왔었지요. 남의 집 송아지를 대신 키웠었거든요. 어머니랑 새벽에 기도하러 보리암에 올라온 적도 있었어요. 기도하고 내려오는 길, 어머니가 집에 들어갈 때까지 절대로 말을 하지 말라고 했었어요. 입을 열면 부정 탄다고요. 그런데 마을 어르신을 만났네요. 인사를 안 할 수가 없었지요. 어머니한테 많이 혼났었습니다. 보리암 관음보살이 말입니다. 소원 하나는 꼭 들어주십니다. 잘 참고 기다려 보세요. 저도 남해 금산의 기운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바캉스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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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까지 남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상주 해수욕장이었다. 바다하면 빠지지 않는 부산에서도 상주 해수욕장으로 바캉스를 왔었단다. 1973년 남해대교가 개통하기 전까지는 부산에서 배를 타고 미조항에서 내렸었단다. 멸치 어항으로 이름난 미조항이 상주 해수욕장에서 멀지 않다.


상주 해수욕장은 문자 그대로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은빛 모래로 늘 반짝인다. 전국의 해수욕장이 모래가 유실돼 애를 먹는다지만, 상주 해수욕장은 여전히 드넓은 백사장을 자랑한다. 그 명성을 이어받아 지금은 상주은모래비치로 이름이 바뀌었다. 상주 해변을 끼고 상주마을이 있고, 상주마을 오른쪽에 김장실 사장의 고향 금전마을이 있다. 소년 김장실은 여름마다 부산에서 놀러 오는 형과 누나를 보며 성장했다.


“찢어지게 가난했었습니다. 4남3녀의 막내로 태어났는데 누나 둘이 어렸을 때 굶어서 죽었어요. 형제 중에서 저만 공부를 마쳤습니다. 형제 중 두 명은 초등학교만 나왔고 나머지 둘은 초등학교도 못 들어갔습니다. 가족 반대를 무릅쓰고 부산으로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러 배를 탔습니다. 부산까지 9시간 걸리는 배에서 결심했었습니다. 시험에서 떨어지면 죽어 버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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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실 사장과 상주 해변을 거닐었다. 해변과 마을 사이 방풍림으로 조성한 소나무 숲에 들자 돌로 만든 바둑판이 나타났다. 2020년 신진서 9단과 박정환 9단이 남해에서 7번기 대국을 했을 때 세 번째 바둑을 둔 자리에 세운 기념물이다. 신진서 9단의 아버지가 남해 출신이어서 남해 사람은 당대 바둑 일인자 신진서 9단을 남해 사람이라고 믿는다. 신진서 9단은 박정환 9단과의 7번기를 모두 이겼고 그 뒤로 자타공인 일인자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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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마을로 들어섰다. 낡고 오래된 갯마을을 예상했었는데, 골목이 기대 이상으로 깔끔했다. 길바닥과 건물 벽을 하얗게 색칠했고, 가게 간판도 단정하게 정돈한 모습이었다. 마을 협동조합이 마을을 단장했고, 주민들이 힘을 합쳐 여러 사업을 한다고 했다. ‘마을빵집 동동’도 마을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가게다. 옛날 목욕탕 건물을 뜯어고쳐 2021년 빵집을 열었다. 목욕탕 시절의 타일을 활용한 내부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남해상주동고동락협동조합 이종수(54) 이사장은 “상주중학교 학부모들이 아이들 돌봄 공간을 운영하다 2017년 협동조합을 꾸렸다”며 “지금은 빵집과 식당을 운영하는데, 주요 식재료를 텃밭 농장에서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해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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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는 산도 좋고 바다도 좋지만, 길도 좋다. 남해에는 ‘남해바래길’이라는 이름의 트레일이 있다. ‘바래’는 남해 사투리다. 어머니가 갯가로 나가 파래·미역·조개 따위를 채취하는 일을 남해 사람은 ‘바래’라 했다. 제주올레의 ‘올레’가 마을로 나아가는 길이라면, 남해바래길의 ‘바래’는 집에서 일하는 바다, 즉 밭으로 가는 길이다. 하여 길 대부분이 바다와 바투 붙어 있다.


남해바래길은 기초단체가 조성한 트레일 중 모범으로 꼽히는 트레일이다. 남해관광문화재단이 트레일을 관리하며, 자체 앱도 운영한다. 2021년 이후 240㎞나 되는 전체 코스 완주자가 460명이 넘는다. 현재 남해바래길은 20개 코스가 조성됐다(지선 4개 포함). 20개 코스 중 11개 코스가 남해안 종주 트레일 남파랑길과 그대로 겹친다. 남파랑길 36∼46코스가 남해바래길과 포개지는 구간이다. 다랭이논으로 유명한 가천마을, 창선에 있는 국내 최대 규모 고사리밭, 상주은모래비치와 미조항, 금산과 보리암, 독일 마을과 미국 마을, 죽방 멸치 잡는 지족해협 등 남해의 대표 명소를 두루 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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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남파랑길 42코스 시작점에 남파랑길여행지원센터가 개장했다. 한국관광공사 강영애 전문위원은 “1470㎞ 길이의 남파랑길에서 ‘남파랑 쉼터’가 운영되는 지역이 모두 7개 있다”며 “특히 남해군은 쉼터를 여행지원센터로 확대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파랑 쉼터는 이름 그대로 남파랑길을 걷는 사람이 정보를 얻거나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다.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길 해설사와 남파랑길을 걷고 요가·명상·서핑·요트·패러글라이딩 등을 체험하는 프로그램도 있고, ‘체류형 웰니스 걷기여행’란 이름의 4박5일 여행 상품도 있다. 남해군 관광문화재단 윤문기 바래길팀장은 “요가와 명상, 노르딕 걷기를 결합한 프로그램이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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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여행안내센터가 들어선 자리에서 앵강만 바다가 내다보인다. 앵강만(鸚江灣)이란 이름이 재미있다. 앵무새가 우는 강, 즉 앵무새 우는 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한 바다라는 뜻이다. 앵강만과 남파랑 쉼터 사이 신전숲은 옛날 군부대가 주둔했던 자리라고 한다. 지금은 캠핑장으로 쓰이며 가끔 요가 강습이 열리기도 한다. 앵강만 바다를 바라보던 김장실 사장의 눈가가 다시 촉촉해졌다.


“시집간 누나가 이 동네에 살아서 자주 왔었지요. 마을 뒷산에 천년고찰 용문사가 있습니다. 그 절집에 들어가 고시 공부를 했었습니다. 한적하기만 했던 바닷가 마을에 전국에서 길을 걸으러 모여든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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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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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글ㆍ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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