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깎으며 인생의 매듭을 생각하다

[라이프]by 전성기

‘숭구리당당’이라는 독보적인 캐릭터를 선보였던 개그맨 김정렬. 그는 예순을 앞두고 만난 목공이라는 새로운 일이 본인의 인생을 웃고 또 울게 한다고 말한다.

방송 활동이 뜸한 시니어 개그맨들은 옛 추억과 향수를 공유할 수 있는 유튜브 채널을 열어서 활동하거나 생활형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목공이라니 의외입니다.

저도 선후배들이 하는 방송에 기회가 될 때마다 얼굴을 내비치는 일은 여전히 반갑고 설렙니다. 40년 넘게 개그맨으로 불리던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예순을 앞두고 40년 개그맨 인생 이후를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일 외에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곰곰이 떠올려봤어요. 어렸을 때 팽이나 썰매를 잘 깎고, 지게 같은 것을 만들어서 아버지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아, 이거구나 싶더라고요.


목공을 취미로 배우면 은퇴 후 생활에도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겁니다. 그렇다면 전문적으로 배워야지 싶었지요. 톱질하고 못질하는 수준으로는 안 되잖아요. 전통 방식인 짜 맞춤 가구 제작을 배운 이유입니다.

짜 맞춤 가구를 배우는 과정은 일반 목공과 다른가요?

톱과 끌, 대패 사용 기본 기술을 먼저 익힙니다. 요즘에야 모든 것을 기계로 할 수 있지만 기본을 알아야 합니다. 기계의 도움을 받더라도 마지막 공정은 사람의 손이 필요하고요.


6개월 동안 배우면서 처음에는 스툴과 TV 보드를 만들었어요. 이때 만든 것들은 이후에 함께 배웠던 사람들과 전시를 하면서 팔리는 바람에 지금은 제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목공을 하기 전에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 경험이 있다고요.

10년도 훨씬 지났지만 미국에 몇 년 살면서 부동산 중개인 자격을 취득했어요. 자녀들의 어학 공부를 위해 가족이 다 함께 미국에 갔었는데, 아이들만 공부시킬 게 아니라 저도 영어 공부를 하고 실력을 테스트해 보자는 생각에 에어컨 수리 기사 자격 필기시험을 봤어요. 주간지 두께 정도의 교재를 보고 공부했는데 쉽게 합격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평소 부동산에 관심이 많아서 이번에는 부동산 중개인 자격시험을 보자는 생각에 하루에 13시 간씩 공부해서 텍사스주의 부동산 중개인 자격을 취득했지요. 여섯 번 떨어지고 일곱 번째에 합격했답니다(웃음).

그런 배움에 대한 근성이 목공으로까지 이어진 거군요.

그런데 실용 가구나 공예품 외에 독특하게도 관을 짜는 작업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관조차 살 수가 없었지요. 외상으로 관을 썼는데, 그게 평생 마음에 걸렸어요. 어린 나이였으니 어쩔 수 없었지만 불효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세상에 계신 아버지에게 사죄하는 의미에서 관을 만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 겁니다. 아버지에게 바친다는 의미지요. 무엇보다도 짜 맞춤으로 정성 들여 관을 만드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가구는 다 만들지만 관을 만드는 사람은 없으니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죠.

그동안 직접 제작한 관은 얼마나 되나요?

관을 만들기 시작한 지 4년 정도 되었지만 수량은 그리 많지 않아요. 미리 주문받아서 만들어야 하는데,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긴 수의와 달리 관은 미리 만들어놓겠다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지인들이 부모님을 위해 주문한다든가 해서 만들기는 했지만 아직 3개밖에 만들지 못했어요.


그래서 앞으로 무연고자나 형편이 어려운 분들의 장례에 사용할 수 있는 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가는 길이 좀 더 따뜻하도록 재능 기부를 할까 합니다.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나요?

주문을 받게 되면 뭔가 만들지만, 주문이 없을 때는 기법을 익히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수공구로 사개맞춤이나 주먹장의 장부를 가공하는 연습을 하지요. 요즘은 목공기계가 발달하고 가공을 돕는 도구인 지그도 잘 나와 있지만 수공구를 좀 더 잘 쓰고 싶어서입니다. 가구는 1㎜이하의 오차로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연습이 필요합니다.

목공은 생활에 필요한 것을 만드는 동시에 삶을 발전시키는 수단인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생활에 보탬이 돼야 계속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잘 팔린다면 목공 실력이 괜찮다는 뜻이니까요. 뒤늦게 만난 목공이라는 취미가 예순 이후의 삶을 책임지는 일이 될 수 있도록 실력을 갈고닦아서 인생을 잘 매듭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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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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