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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아직은, 설익은 계절… 버섯도 전어도 아닌 너! 딱 걸렸어, 어묵!

by경향신문

(116) 군산 새벽시장

경향신문

어둠이 걷히기 전부터 시작되는 군산 새벽시장은 오전 8시면 파장 분위기가 풍기는 번개시장이다.

새벽보다 더 깊은 새벽에 길을 나섰다. 추석연휴의 시작일이기에 귀성 차량 행렬에 휩쓸리게 되면 군산은 다음을 기약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출발은 막힘이 없었다. 수십 번 다녔기에 아는 길.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켜놓은 내비게이션에서 길을 바꾸라는 메시지가 떴다. 보통은 몇 분이나 몇백 원 아낄 것이라면 길을 바꾸라는 권유 정도였다. 이번에는 달랐다. 가타부타 조건도 없이 바꾸라는 메시지다. 가는 방향의 고속도로 앞이 심하게 막히는 듯싶었다. 국도와 고속도로를 거쳤다. 간혹, 중간중간 정체를 만나기도 했다. 겨우 도착하니 목적으로 온 새벽시장이 아침시장이 되었다. 명절 전 때를 놓치면 추석 이후로 열흘 정도는 장이 잘 서지 않는다. 추석 때 장만한 제수가 남아 있기에 사람들이 장터에 나오지 않는다. 장이 서도 시작부터 파장 분위기가 났다. 그간의 경험으로 사람 없는 장터에 허전함만 가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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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물에 데친 뒤 조리해야 하는 솔잣버섯.

군산의 새벽시장, 오랫동안 시민들과 함께해온 곳이다. 새벽녘 삼삼오오 장사꾼들이 장터를 열기 시작하면 하나둘 사람이 모인다(명절 끝나고 다시 한번 다녀왔다). 조용했던 길거리는 순식간에 시끌벅적 장터가 된다. 그러기를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오전 8시가 되면 빈 곳이 생기고 청소하는 등 파장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서너 시간 장이 서고는 이내 장터는 꿈처럼 사라진다. 새벽에 잠시 열렸다 사라지는 번개시장이다. 전국에 이런 새벽시장이 꽤 있다. 가본 곳이 원주, 강릉, 전주 등이다. 세 곳은 모두 시내를 지나는 하천 주변에서 열렸다. 원주, 강릉은 생산자들이 연합한 장터로 판매하는 조건이 까다로웠다. 거의 생산자=판매자였다. 전주는 누구나 와서 편하게 장사하는, 장사꾼들과 생산자가 혼합되어 있었다. 생산자들의 상품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아도 가격은 저렴했다.


군산은 전주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대목장인지라 사람이 많은 것은 이해하더라도 생산자보다는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이들이 더 많아 보였다. 그런데도 새벽시장의 장점인 가격은 참으로 저렴했다. 시장은 혼란스럽게 보여도 구획은 어느 정도 구분되어 있었다. 농산물 파는 곳과 수산물 파는 곳으로 말이다. 군산 새벽시장의 장점은 저렴한 수산물 구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른 곳의 새벽시장과 다른 점이다.

새벽녘부터 삼삼오오 시끌벅적

몇 시간 뒤 꿈처럼 사라지는 장터


육지는 가을이지만 바다는 여름

끝물과 첫물 사이 수확물 혼재


이맘때 장구경 재미는 버섯인데

표고도 ‘송화’도 영 성에 안 차

솔향 은은한 솔잣버섯에 눈길

전어도 10월말이라야 진짜 제철


장 보고 나오다 만난 얇은 어묵

두께 절반인데 쫄깃한 식감 독특

겨울 무와 함께라면 더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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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에 넣어 오래 끓여도 퍼지지 않는 얇은 어묵.

농산물은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 배추부터 대목인 배까지 다양했다. 묻은 흙 없이 겉이 매우 깔끔한 당근이 보였다. 외국산이다. 국내산은 흙이 있거나 아니면 깔끔하더라도 포장이 되어 있다. 여기저기 매끈한 당근 뒤편에는 수입할 때 쓴 박스가 보였다. 괜찮아보이는 표고버섯이 있어 원목 재배한 것이냐 물으니 외국산이라고 한다. 골목을 돌아가니 표고버섯이 있다. 갓이 반들반들한 터라 배지 재배한 것으로 보였다. 표고버섯 살 때 가능하면 원목으로 산다. 원목이 더 구수하고 향이 좋다. 가격이 같기에 그렇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이왕이면 원목 재배 표고다. 


표고버섯 옆에는 여전히 사기 판매가 진행 중인 송화버섯이 있었다. 송화버섯이라 이름 붙이고는 ‘송이 향이 나는 버섯’ ‘송이 맛 버섯’ ‘송이+표고버섯’ 등으로 판매하는 버섯이다. 송이와는 하나도 연관이 없다. 일단 송이는 살아 있는 나무 근처에서 자생한다. 반면에 표고는 죽은 나무에서 자라는 버섯이다. 생태적으로 전혀 다르다. 송화버섯은 중국에서 육종한 버섯을 국내에 들여와 키운 표고버섯일 뿐 송이와는 일절 연관이 없다. 방송에서, 신문에서 검증 없이 떠들어대니 여전히, 그렇게 판매하고 있다. 송화버섯 파는 곳을 가보면 다들 참기름을 옆에 두고 있다. 버섯 자른 것을 참기름에 찍어 먹으라고 한다. 어떤 버섯이라도 참기름에 찍어 먹으면 다 고소하다. 실제로 맛이 좋다면 소금만 있어도 된다. 실상 버섯만 먹어보면 실망한다. 맛없는 씁쓸함만 있다. 하지만 우리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문구에 쉽게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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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새벽시장의 장점은 저렴한 수산물 구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수산물 파는 곳을 가보니 꽃게, 대하, 전어가 인기다. 대하 옆에는 양식한 새우, 그 옆에는 전어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하와 흰다리새우를 옆에 두고 보면 구별이 바로 된다. 바다의 계절은 육지와 달리 간다고 했었다. 바다의 계절은 음력의 날짜다. 음력은 달의 기울기에 따라 1년을 계산한다. 달의 기울기는 바다의 들고 나감을 조정한다. 달이 차면 바다는 사리 물때, 물이 가장 많이 오간다. 반대로 달이 삭으면 조금으로 바다는 잠잠하다. 둘 사이에 물이 죽고 사느냐에 따라 어획량도, 어종도 달라진다. 


물은 공기보다 온도 변화가 느리다. 음력으로 8월15일 추석. 육지는 9월30일. 한 달 조금 넘게 차이가 난다. 아무리 육지의 계절이 가을을 가리켜도 바다는 여전히 여름이다. 음력을 따라가는 수산물이기에 기대하는 만큼 맛이 나오지 않는다. 방송과 신문에서 제철이라고 떠들 때 한 달 정도 있어야 실제 제철이 된다. 


‘가을 전어’라는 말은 육지의 계절을 바탕으로 한다. 육지에서 사는 사람의 욕심이 투영된 말이다. 제대로 제값을 찾아 먹으려면 기사가 나가는 지금부터 딱 보름 뒤인 10월 말부터 먹는 것이 좋다. 남들이 먹든 말든 말이다. 한 가지 더, 1992년 신문에 이런 기사가 있다. “집 나가던 며느리가 전어 굽는~” 시작하는 기사다. 내용은 많이 들어본, 가을이면 누구나 하는 속담으로 시작한다. 근데 어딘가 조금 이상하다. 눈치챈 분들도 있겠지만 1992년의 며느리는 집을 나가지 않았다. 집을 나서고 있었을 뿐이다. 어느 순간 과장이 더해져 며느리는 집을 나가 있었다.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들먹거리는 <산림경제>나 <자산어보>의 전어 이야기에 가을 전어는 사실 없다. <산림경제>에는 가을 대신 여름 전어가 맛 좋다는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가을 전어를 이야기할 때 자신의 말에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옛 책을 들먹거리나 정작 가을 대신 여름이 있으니 그 이야기는 누구도 하지 않는다. 마케팅이라는 게 과장이 필요하지만 정도껏이라는 게 있다. 장삿속의 정도를 넘어서는 게 9월과 10월 초 전어다.


살 것이 마땅치 않았다. 추석 대목이라고 하더라도 땅의 것이나 바다의 것이나 나는 것이 바뀌는 시기가 지금이다. 작기가 바뀌는 과정인지라 첫물은 비싸고 끝물은 물건 상태가 마땅치 않다. 추석 즈음 물가가 뛰는 이유는 수요도 많지만 이에 대응할 물량이 나지 않아 가격이 미친 듯이 오르는 것이다.


사람들이 수없이 오가는 길목에서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솔잣버섯이 보였다. 봄의 장터는 이름 모르는 나물 보는 재미가 있다면 가을은 버섯이다. 단풍 구경에 버섯 구경을 더 하면 입이 즐거워진다. 어찌 먹는지 물으니 소금물에 데친 뒤 건져서 찌개에 넣어 먹거나 고기 볶을 때 넣어도 맛있다고 한다. 그냥 먹으면 위장 장애가 올 수도 있다고 한다. 약간 귀찮더라도 먹는 맛이 있다. 소나무 향이 진하게 나는 게 매력 넘치는 버섯이라고는 하는데 그리 진한 향은 아니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겨우 맡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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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항구인 군산에는 어묵 공장 겸 판매장이 있다.

어묵 하면 요새는 부산이다. 나에게 어묵은 인천 부평이다. 사회생활 시작하던 1996년까지 부평에 어묵 공장이 있었다. 그때는 큰 항구가 있던 곳은 어김없이 잡어 처리를 위한 어묵 공장이 있었다. 큰 항구인 군산 또한 어묵 공장이 남아 있다. 시장을 보고 나오면서 주차했던 곳 가는 길 중간에 어묵 공장 겸 판매장이 있었다. 그렇다고 부산처럼 다양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았다. 부산하고는 다른 특징이 있었다. 어묵이 얇다. 보통 어묵의 2분의 1 정도이지 싶었다. 얇으면 무슨 맛일까 싶지만 씹는 맛이 좋았다. 부드러운 듯 그러면서 얇은 어묵이 내주는 쫄깃한 식감이 독특했다. 떡볶이 하면서 오래 끓였지만 풀어짐 없이 형태를 유지했다. 군산에 간다면 한 번 맛보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 같이 산 당면 어묵은 내 입맛에 조금 달았다. 내 입맛에 단맛이 강했으니 아마도 지금 세대의 입맛에는 딱 맞을 듯싶었다.


시장을 보고서는 해장국을 먹었다. 이 또한 단맛이 무척이나 강하게 났다. 콩나물국이나 아욱국 둘 다 마찬가지였다. 단맛은 맛의 일부일 뿐이거든 달면 맛있다고 여긴다. 음식은 맛의 조화가 있어야 한다. 만일 단맛 대신 짠맛이나 쓴맛이 도드라진다면 그 음식은 먹지 못한다. 군산에서 산 어묵은 겨울 무 넣고 끓이면 맛있는 어묵탕이 될 듯싶다. 당분간은 두툼한 어묵 대신 이 어묵이다. 동양어묵 063-445-9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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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