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사라서 다행이에요. 배는 계속 탈거에요. 바다가 지겨워질 때까지”

[자동차]by 경향신문

‘Female’(여성)과 ‘Interview’(인터뷰)를 합친 ‘핀터뷰’(finterview)에서는 ‘나만의 길’을 걷고 있는 여성들의 만납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다른 여성들에게 새로운 영감이 되어 전달되길 바랍니다.

“항해사라서 참 다행인 거 같아요. 제 나이에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많이 했다고 생각해요. 거대한 자연 앞에서 나란 존재가 무엇인지, 살아가는데 중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알아가면서 단단해져가는 과정은 제가 항해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3일 오후 부산 중구 부산항 인근 부두에서 고려해운 일등항해사 김승주씨(27)를 만났다. 승주씨는 2016년 2월 초임 삼등항해사로 승선해 올해로 5년 차 항해사다.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아올려 지난 1월에는 일등항해사가 됐다. 승주씨는 전날 밤 11시 부산항에 접안해 컨테이너 작업을 마쳤다. 3주 만에 밟아본 육지였다. 이번에는 정박하는 시간이 24시간으로 그나마 좀 길었다. 땅 위에서의 1분 1초가 아까운 승주씨가 귀한 시간을 내줬다. 출항을 약 7시간 정도 남겨두고 인터뷰가 시작됐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여객 운항이 중단된 한산한 부두, 볼라드(배를 매어 두기 위해 설치한 기둥)에 걸터 앉은 승주씨 뒤로 바다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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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구 부산항 인근 부두에서 지난 3일 인터뷰를 하고 있는 고려해운 일등항해사 김승주씨. 유명종 PD

여성, 김승주, 일등항해사

항해사는 쉽게 말하면 배가 바닷길을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배의 최고 책임자가 선장이라면, 이를 보좌하고 갑판을 책임지며, 선내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일등항해사의 역할이다. 배의 크기에 따라 일등~삼등 항해사까지 탑승한다. 일등항해사인 승주씨는 “화물선의 경우 화물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또 부식된 곳이 없는지 배를 정비하고 입출항 때는 선수(뱃머리)에서 접이안(배를 항구에 대는 것) 작업에 줄을 내어주면서 배를 붙이는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승주씨는 왜 항해사가 됐을까. 항해사가 꿈이었냐는 질문에 승주씨는 “배에 관심도 없었고 이런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었다”고 말했다. 입시 준비가 한창일 때 승주씨의 오빠가 한국해양대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진로를 선택하게 되었고 취업이 잘 된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작용했다고 했다.


운명적으로 이끌린 것은 아니었지만 기대에 부풀어 입학한 대학생활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복을 챙겨 입고 매일같이 각종 훈련을 받아야 했다. 여성 동기도 많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400명 중에서 여성은 60명 정도였어요. 여성 항해사를 안 뽑는 회사도 있기 때문에 대학에서 여학생을 뽑는 비율도 적은 편이고요.”


승주씨가 근무하는 고려해운에서 일하는 항해사 500명 중에서도 여성 항해사는 승주씨를 포함해 세 명뿐이다. 배에는 선장과 갑판부, 기관부, 사주부 등 평균 17~18명의 선원들이 탑승하는데 지난 5년간 배에서 여성 선원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여성 동기들 중에서도 배를 타는 사람은 승주씨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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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 오르면 화물을 싣기 위해 배가 잠시 항구에 정박할때를 제외하곤 꼼짝없이 6개월을 바다 위에서 보내야 한다. 김승주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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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해운에서 일하는 항해사 500명 중에서도 여성 항해사는 승주씨를 포함해 세 명 뿐이다. 여성 동기들 중에서도 배를 타는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김승주씨 제공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여성 항해사는 몇 명이나 될지 궁금했지만 관련 통계는 찾을 수 없었다. 해양수산부는 1984년부터 매년 국내 선원들의 근로실태를 조사한 ‘한국선원통계연보’를 발표하고 있지만 최근 공개된 ‘2020년 한국선원통계’에서도 여성 선원에 대한 조사는 담기지 않았다. 실제 배를 타고 있는 여성 항해사가 몇 명인지도 파악되지 않은 것이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남성 비율이 높은 업종의 특성상 남녀의 성비를 조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보완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승주씨는 매번 배를 탈 때마다 여성 항해사와 일하는 것이 처음인 승무원들을 만난다. “배를 탈 때부터 고민했던 거 같아요. 나는 항해사로서 배를 타는 거지 여성으로서 타는 게 아니라고요. ‘김승주’로서 행동하는 건데 ‘여성’으로 치부돼서 안 좋은 이미지가 쌓여 여성 항해사들을 안 뽑게 되지 않을까, 이런 점들을 굉장히 많이 고민했고 지금도 고민하고 있어요.”


함께 일하는 남성 동료들의 배려가 고맙지만 때로는 미안하기도 하다는 승주씨는 “모든 사람이 남자였을 때 승선하는 것과 여성이 한 명이라도 있을 때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옷차림이라든지 힘을 써야 하는 일이나 생활하는 부분에서 저를 배려하는 게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그럴 때면 오히려 제가 나서서 일을 맡으려고 하죠.”


배에서 내리고 싶을 때는 후배들을 생각한다. “앞으로 여성 항해사에 대한 인식이나 시선들을 바꿔 나가는 게 저의 역할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 이유 때문에 계속 배를 타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배를 타고 있는 것도 선배들이 잘해 왔기 때문에 여성 항해사를 한두 명씩이라도 더 뽑고 늘려가는 추세인데, 내가 여기서 잘못하면 배가 적성에 맞는 여성 항해사들의 앞길을 막는 게 아닐까 싶어 악바리 정신으로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있는 거 같아요.”


항해사가 되고 싶은 후배들에게 승주씨는 ‘적성’을 잘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그는 “배가 안 맞으면 타지 말아야 해요. 배는 그렇게 쉬운 곳이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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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항해사인 김승주씨는 배의 최고 책임자인 선장을 보좌하고 갑판을 책임지는 것 뿐 아니라 화물관리 및 배를 정비하는 역할을 한다. 김승주씨 제공

때로는 외로워도 밤 하늘, 무지개, 돌고래가 친구

승주씨가 타는 배는 화물을 운반하는 컨테이너선이다. 아파트 10층 정도의 높이, 운동장 두 개만 한 넓이의 총 1만7000t규모의 배에는 20t 정도의 컨테이너 1600개 정도가 실린다. 여객선이 아닌 화물선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승주씨는 “정해진 스케줄대로 움직이고 한국에도 한 번씩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승주씨가 타는 컨테이너선은 3주에 한 번씩 부산을 출발해 광양, 홍콩, 베트남, 태국, 홍콩, 중국 그리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온다.


일단 배에 오르면 화물을 싣기 위해 배가 잠시 부산항에 정박하는 3주에 한 번을 제외하곤 꼼짝없이 6개월을 바다 위에서 보내야 한다. 정박하는 시간은 그때그때 다르다. 어떨 때는 배가 항구에 닿았지만 사람들은 내리지도 못한 채 다시 바다를 향해 떠나기도 한다. 6개월을 배 위에서 보낸 뒤 약 한 달가량의 휴가를 갖는다. 젊은 시절을 망망대해에서 보내는 것이 힘들진 않을까. “처음에는 연락이 잘 안되다 보니 저라는 존재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 가더라고요. 가족은 물론 친구들과도 멀어지는 거 같고요. 그런 생각들이 저를 작아지게 만들고 힘들게 했어요.”


해야 할 일이 있기에 시간은 흘러갔지만 외로움은 언제나 혼자 있는 시간에 찾아온다. ‘혼자 있거나 아플 때면 가족들과 떨어져서 나 혼자 있다는 생각에 자주 외로웠어요. 특히 중동 쪽에 있을 때 외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들었는데 그때는 절망이었죠. 중요한 순간에 가족들과 같이 있지 못하는 현실에 한참을 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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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씨가 타는 컨테이너선은 아파트 10층 정도의 높이, 운동장 두개만한 넓이의 총 1만7000t규모로 배에는 20t정도의 컨테이너 1600개 정도가 실린다. 김승주씨 제공

승주씨는 바로 이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도 찾아냈다. “어느 날부터 저 자신에게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이 순간 나한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내가 언제 행복을 느끼고 언제 우울한지, 그래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요. 육지에 내려오면 짧은 시간 동안 제가 못 누렸던 것들을 빨리 채워야겠다는 심리가 강해졌어요. 더 열심히 살게 되고 더 도전해 보게 되고 더 배우게 되고 훨씬 더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억울해하지 않고 저를 더 생각하는 기회가 됐어요.”


인터뷰 중에도 항구에는 크고 작은 선박들이 부산항으로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여객 운항은 중단되었지만 물류는 여전히 바닷길로 이동하고 있었다. “지금은 파도가 잔잔하지만 바다는 항상 위험이 산재되어 있어요. 날씨가 금세 나빠지기도 하고 배가 멈출 수도 있죠. 배 자체가 모두 철로 되어있어서 조금만 넘어지더라도 멍이 들고 골절이 생겨서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요. 목숨을 담보로 배를 탄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어요.” 그래서 승주씨는 건강관리도 항해사라는 직업을 수행하기 위한 능력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관리한다.


위험한 순간도 있지만 배를 탔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도 있다. 별들이 좁쌀처럼 뿌려진 밤 하늘, 망망대해에서 만난 무지개, 배와 함께 경주하듯 유영하는 돌고래가 그렇다. “배가 적도로 가면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남십자성과 센타우루스자리 등 남반구의 별자리를 볼 수 있어요. 시야를 가릴 것 하나 없는 망망대해에서 만난 무지개다리를 통과할 때는 너무 황홀하죠. 멋진 풍경을 경험할 수 있는 건 제가 배를 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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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부산 중구 부산항 인근 부두에서 만난 일등항해사 김승주씨는 말했다. “저도 왜 그렇게까지 배를 타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자연이 너무 아름다워서일까요. 아니면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 때문일까요. 저는 계속 탈거 같아요. 언제까지요? 바다가 지겨워질 때까지요.” 유명종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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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을 견디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바다, 인생을 닮았다

승주씨는 항해사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안전”이라고 했다. “제가 대학교 3학년 때 세월호 참사가 있었어요. 블랙아웃이 됐을 때 배의 구조를 잘 아는 우리도 막막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데, 그 안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책임감의 무게를 알게 되었어요. 내가 무지하면 누군가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안전한 배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어요.”


승주씨는 “선원들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서라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는다”며 “배를 타면 항상 고립되어 있고 정체되어 있어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생각이 드는 선원들에게 꿈과 목표를 심어주고 좀 더 즐거운 선상 생활을 할 수 있게 돕고 싶다”고 말했다.


승주씨는 파도와 맞짱을 뜨며 전진하는 배와 닮았다. “저는 알거든요. 바다가 지금은 잔잔하지만 비도 오고 안개도 끼고 앞도 보이지 않고 파도가 치면서 계속 저를 괴롭힐 거라는걸요. 인생이 그런 거 같아요. 우리한테는 역경이 계속 오는데 그걸 계속 견뎌내는 거죠. 언젠가는 목적지에 닿아있을 거라는 걸 확실히 아니까 계속 살아가는 거 같아요.”


인터뷰가 끝나자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온 딸을 보러 나온 승주씨의 아버지가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다시 배로 돌아가는 승주씨는 태풍이 와도 끄떡없다는 듯 밝은 표정을 지었다. “저도 왜 그렇게까지 배를 타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자연이 너무 아름다워서일까요. 아니면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 때문일까요. 저는 계속 탈거 같아요. 언제까지요? 바다가 지겨워질 때까지요.” 바다에서 인생을 배워가는 김승주 항해사는 지금쯤 남반구의 별자리 밑에서 당직을 서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진주 기자 jinju@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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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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