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짓수 많지 않아도 ‘개미진’ 모든 찬…이 백반의 맛과 정성, 한정식에 ‘완승'

[푸드]by 경향신문

(76) 영등철에 찾은 강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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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가짓수에만 연연한 한정식(작은 사진)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병영 돼지불고기 백반에서 치유받았다. ‘개미진’ 전라도 손맛 가득한 찬에 갓 구운 불고기와 갓 퍼준 밥의 조합은 극강이다.

얼마만의 강진인가? 작천면에서 유기농 농사짓는 곳을 찾아갔던 것이 벌써 15년 전. 면 단위 지명까지는 기억나도 어디인지, 무엇 때문에 갔는지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이었다. 이상하리만큼 강진은 내 출장 여정에서 비켜 있었다. 오랜만의 강진행, 설렘과 기대를 안고 출발했다. 올라올 때는 기대만큼 또는 기대보다 못한 경험을 한 채였다.


햇살은 따사로웠다. 먼 하늘의 구름은 지난 진도보다 훨씬 ‘봄스럽게’ 몽글몽글했다. 차에서 보는 풍경은 봄, 내리는 순간 겨울이었다. 바람은 봄을 시샘하듯 차가웠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바다는 영등철이었다. 바다의 계절이 육지로 치자면 소한, 대한 추위와 같은 시기다. 바닷가에 있는 강진이기에 불어오는 바람에 바다의 체온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옷깃을 여미면서 장터에 들어섰다. 작년 비슷한 시기에 경남 고성장에서는 나물이 지천이었다. 내심 봄나물이 많겠다고 생각했지만, 강진의 봄은 아직이었다. 나물은 달래, 냉이에 봄동이 전부. 두어 바퀴 돌 즈음 진도에서 봤던 별꽃나물이 보였다. 판매하는 이한텐 물었다. “이거 별꽃나물 맞죠?” “저 서울서 엄니 대신 나와서리…. 이거 먹는 풀!” 우문현답. 정확한 답이다. 풀을 나눌 때 사람의 관점에서 먹는 풀과 못 먹는 풀로 나누는 것이 맞다. 커다란 바구니에 담긴 나물을 5000원 주고 샀다. 지난 진도에서 사야지 했다가 못 샀다.


집에 와서 살짝 데쳐서 된장 양념을 만들어 조물조물 무쳤다. 미나리 씹는 맛과 비슷했다. 여린 향이 살짝 난다. 씹는 내내 향만큼 여린 단맛이 났다. 봄나물 중에는 쓴맛으로 미각을 깨우는 것이 많은데 이 녀석은 달랐다. 강진은 바다가 기다란 삼각형 형태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마량면에서 바다 건너 빤히 보이는 신전면까지 다녀온다면 왕복 100㎞를 운전해야 한다. 대략 50㎞ 넘는 해안가가 있다. 바닷가와 지척이라서, 탐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기수역이라서 해산물이 풍부할 줄 알았다. 수산물 파는 이는 많았지만 대부분 냉동이었다. 병어와 덕대는 어디 가나 냉동이지만. 긴 해안가를 고려하면 냉동이 많았다. 아마도 파도와 바람이 세지는 영등철 기간이라서 그런 듯싶었다. 간혹 홍어 새끼, 간재미라 부르는 것을 제외하고는 생물 찾아보기가 어렵다. 간재미라는 생선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가오리의 일종이라 이야기하지만 잘못된 정보다. 홍어나 참홍어 새끼를 간재미라 부를 뿐이다. 어물전을 가만히 보면 홍어와 참홍어가 섞여 있다. 등 쪽에 눈처럼 보이는 무늬가 있으면 홍어, 없으면 참홍어다. 홍어는 체장 42㎝ 이하는 잡지 못하도록 법률로 정해져 있다. 간혹 보면 이보다 작은 것도 있다. 간재미라 부르는 이유는 예전부터 그리 불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법을 피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일까도 싶다. 어린 개체는 잡지도, 먹지도 말아야 한다. 시장에 나와 있는 주꾸미 가격을 물었다. 지난달보다 1만원이나 올라 ㎏에 3만5000원이나 한다. 주꾸미가 맛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겨울까지가 주꾸미의 제철이다. 봄이라 느끼는 순간 주꾸미는 질겨진다. 산란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살에서 맛이 사라진다. 봄에 주꾸미 먹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가장 맛없는 것을 가장 비싸게 사 먹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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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철 기간이라 생물은 간재미라 불리는 홍어 새끼 정도가 눈에 띄었다. 봄나물 중에는 쓴맛으로 미각을 깨우는 것이 많은데, 별꽃나물은 여린 단맛을 낸다. 진짜 오징어가 들어간 튀김과 김밥, 떡볶이. 음식 만들 때 성의가 가득 들어가면 맛이 없을 수 없다. 천연발효종을 만들어 다양한 풍미를 내는 빵.(사진 위부터 시계방향 순서대로)

바다 지척이지만 생물은 홍어정도

별꽃나물 된장에 무치니 여린 단맛


천연발효종으로 만든 풍미 좋은 빵

주문과 동시에 튀김 만드는 분식집

대왕오징어 아닌 ‘찐’ 오징어의 맛


메뉴가 딱 하나 뿐인 돼지불백집

정갈하고 맛있는 찬, 향긋한 불고기

실망스러웠던 한정식의 기억 훌훌

시장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어디선가 갓 나온 빵 냄새가 났다. 냄새를 좇아가 보니 ‘26빵집’ 간판이 나왔다. 혼자 하는 이가 정신 없이 빵을 만들고 있었다. 향기에 홀려 들어가 빵과 커피를 주문했다. 갓 나온 단팥빵과 올리브를 듬뿍 넣어 만든 포카치아를 주문했다. 우리밀과 천연발효종으로 빵을 만든다. 사실 천연발효종으로 빵을 만들면 소화가 잘되고, 뭐 어쩌고저쩌고 한다. 다 마케팅 수단일 뿐, 흘려 듣는 게 좋다. 천연발효종으로 만들면 다양한 풍미의 빵이 나온다. 이스트로 만들 때보다 기대할 수 있는 향미가 더 있을 뿐이다. 오전 11시부터 빵이 나온다. 왜 26빵집인지 물었다. 점포 번호가 26번째라서는 답이 돌아왔다. 26빵집 010-4926-0311


강진을 가면서 한정식은 피할 생각이었다. 정식이라는 게 일본에서 유래한, 그래서 ‘한국+정식’을 줄여 한정식이라 부르는데 어느 순간부터 어디를 가나 한정식이 고유 음식처럼 되었다. 고기, 회, 보리굴비 등 몇 가지 주 메뉴에 전, 나물, 장아찌가 상을 채우고도 남아 위에 2층에 쌓는 한정식도 있다. 가짓수가 많아서 먹을 게 많아 보이지만 정작 젓가락 가는 찬은 한정되어 있다. 먹고 나면 안 먹은 반찬이 더 많다. 가짓수에 집착하다 보니 음식에서성의는 빠진다. 그런 음식으로 채운 것이 한정식이다. 마량항에서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지만 오후 4시에 문을 닫았다. 읍내에 있는 한정식 식당으로 갔다. 한정식 식당으로 간 이유는 내 자료 사진 중에 유독 한정식 사진만 없었기 때문이다. 그 목적 때문에 갔고, 목적만 달성한 채 돌아왔다. 대략 스무 가지 찬이 나왔다. 나온 생선회 모습이 가관이었다. 보통의 회라면 한 점 크기, 이것을 4개로 잘라 나왔다. 삼합도, 돼지불고기도 작았다. 양이 작은 것이 아니라 채운 내용물의 크기가 너무 작았다. 공깃밥을 여니 딱 2분의 1만큼 채워진 떡진 밥이 담겨 있었다. 인당 3만원 식사비에 극단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식당이었다. 크기가 작고, 크고를 떠나 가장 중요한 간이 하나도 맞지 않았다. 성의가 빠진 음식, 그게 바로 한정식이다. 블로거, 유튜버, 여행작가, 기자들이 군청에서 초청한 팸투어를 떠난다. 공무원과 함께 하는 한정식은 잘 나온다. 그들이 홍보한 것을 보고, 먹으러 온 사람들은 욕하면서 나온다. 사진과 실제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날의 일행 또한 팸투어로 강진에서 한정식을 두어 차례 먹어 본 이다. ‘강진 1미(味)’로 강진 한정식을 자랑하기 전에 제대로 나온지부터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대로라면 강진에서 피해야 할 음식 1미가 한정식이다. 찬 숫자를 줄이고 성의를 더하지 않는다면 확정이다.


첫날, 강진에서 가장 맛나게 먹은 음식이 분식이었다. 튀김, 라면, 쫄면, 김밥을 파는 곳이 분식, 보통의 분식점이라면 튀김을 미리 해놓는다. 김밥도 잘 나가는 것은 미리 싸놓기도 한다. 튀김은 미리 해놨다가 주문하면 한 번 더 튀겨서 내준다. 이 집은 달랐다. 튀김은 주문과 동시에 튀긴다. 종류에 상관없이 튀긴다. 나온 오징어튀김을 먹고는 깜짝 놀랐다. 오징어가 들어 있었다. 오징어튀김에 오징어가 든 게 놀랄 일인가 싶지만, 놀랄 일이다. 오징어가 들어가는 음식 대부분을 이미 대왕오징어가 대신한다. 아무 맛도 안 나는 것을 튀기면 역시 아무 맛도 안 난다. 오징어가 들어간 튀김을 먹는 순간 그 향이 예전 기억을 되살렸다. 어릴 때 먹었던 오징어튀김 생각이 났다. 같이 주문한 김밥도, 떡볶이도 주문과 동시에 만든다. 음식 만들 때 성의가 가득 들어가면 맛없을 수가 없다. 게다가 재료까지 제대로 쓴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런 식당이 여기다. 채소튀김도 맛나지만, 김말이와 오징어튀김이 ‘찐’이다. 가게를 나서는 길, 차를 몰고 온 이가 고민 없이 김말이만 3만원어치를 주문한다. 엄마손김밥 (061)433-1415


기사 식당의 주 메뉴 중 하나가 돼지불백. 전국을 다니다 보면 흔히 만날 수 있는 메뉴이기도 하다. 간장, 고추장, 된장 등 어느 장에 양념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달짝지근하거나, 매콤하거나 또는 구수하거나 셋 중 하나다. 바로 구워낸 돼지불고기의 향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몇 해 전인가. EBS <한국기행>에 강진이 나왔다. 그중 병영면 편에서 나온 불고기집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 가는 식당으로 장이 서든 안 서든 매일 문을 여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보면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는 돼지불고기 하나, 나오는 찬도 화려함 없이 수수했다. 강진에서 출발하기 전 병영면으로 갔다. 오래전 TV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 식당이 있었다. 불고기 2인분 주문하니 주인장이 밖으로 나간다. 슬쩍 따라 나가봤다. 연탄 화덕에서 고기를 굽고 있었다. 불고기가 나오기 전 찬이 깔린다. 고춧가루가 살아 있는 듯, 막 무친 밴댕이젓갈을 비롯해 김치 등 몇 가지가 차려졌다. 하나하나 맛을 봤다. 하나하나 간이 살아 있고 맛있었다. 허투루 내는 찬이 아니었다. 초벌구이한 불고기를 판에 올리고는 파채를 더해 굽는다. 밥을 주문하니 주발에 바로 퍼준다. 갓 구운 불고기와 갓 퍼준 밥의 조합은 극강이다. 파채를 올려도 좋고, 간이 딱 맞는 강진 특산물 토하젓을 더해도 좋다. 들깨가루는 선택이다. ‘개미진’(특별한 맛이 있다는 의미의 남도 사투리) 전라도 손맛 가득한 찬이 가세하니 허리띠가 첫 술에 바로 무장해제다. 전날 한정식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병영 돼지불고기 백반에서 치유받았다. 수십 년 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꼽았던 백반집이 여기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맛났다. 여기서 밥 먹고 나면 백반은 찬의 숫자보다는 맛이 더 중요함을 알게 된다. 배진강 (061)432-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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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역마살 만렙의 27년차 식품 MD


김진영 식품 MD

2022.03.1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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