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에 봄, 한술 떠 봄

[푸드]by 경향신문

(77)봄기운 완연한 기장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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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린 3월 중순의 부산 기장시장. 햇다시마가 비로소 바다에도 봄이 찾아왔음을 알리고 있다.

오랜만에 혼자 떠난 장터 여행이었다. 같이 다니던 이는 딸아이 확진으로 여행에서 자연스레 빠졌다. 허영만 선생님은 저녁에 부산에서 합류하기로 했지만, 이 또한 사정으로 인해 불발되었다. 오롯이 혼자, 선생님의 심심하겠다는 위로 문자메시지에 “원래 혼자 다녔습니다”하고는 돌아다녔다. 기장은 정관 신도시에 사람이 한창 들어올 때 가보고는 지난 강진군처럼 오랜만이다. 기장으로 가는 내내 따스했다. 여태 가지 않고 남아 있던 겨울이 시샘 부리듯 가끔 찬바람을 내뿜어도 봄은 봄이었다. 기장에 도착해 바닷가를 다녔다. 곳곳에 매화가 활짝 피었다. 진도에서, 강진에서 봤으면 했어도 결코 쉬이 모습을 보여주지 않던 매화가 여기저기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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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 많은 동네 기장에서 많이 나는 말똥성게 ‘양장구’를 듬뿍 담은 비빔밥.

오랜만에 홀로 떠난 장터 여행, 햇다시마·꼬랑치 겨울채까지 좌판 곳곳 ‘계절 변화’ 한눈에

기장 미역을 먹고 자란 말똥성게 ‘양장구’, 밥에 쓱싹 비비면 입에서 사르르…쫄깃한 식감 ‘말미잘탕’도 일품

혼밥도 되는 ‘뷔페식 회전고깃집’ 소·돼지·양 취향껏 구워 먹는 재미 쏠쏠…원하는 부위 주문까지 가능

기장군 철마면에 송정 오일장이 5, 10일이 든 날에 열린다. 열리기만 한다. 사전 조사를 조사했지만, 규모는 확인 못하고 날짜만 보고 출발했다. 그게 실수였다. 조금 더 알아보고 갔으면 2, 7일에 열리는 정관장으로 갔었을 것이다. 송정장에 도착하니 상인 몇몇이 모여 있었다. 헤아려보니 5명. 조그만 사거리 모퉁이를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봤던 오일장 중에서 가장 규모가 작았다. 실망하긴 이르다. 대도시 근처 오일장이 이 모양새라면 오일장이 서는 대신 상설장이 대체한다고 보면 된다. 장소나 사정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개 그렇다. 기장시장으로 향했다. 마침 숙소도 시장 앞에 잡아놨었다. 짐을 풀고는 카메라를 메고 다녔다. 기장은 이미 봄이기에 외투를 벗고 다녔다. 몇 해 전 겨울 일본 오키나와에 갔을 때, 우리는 반바지 차림이었고 현지인은 두꺼운 외투 차림이었다. 시장에 다니는 사람이나 일하는 분이나 차림새가 두툼했다. 나 혼자 외투 없이 다녔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외지 것임을 한껏 티를 냈다. 봄이 좌판 위에 앉아 있었다. 계절 바뀜이 한눈에 보였다. 낯선 나물이 많았다. 머위는 가끔 있었지만, 낯선 것이 눈에 자주 띄었다. “뭔가요?” “겨울채, 배추에 올라온 거.” “아….” 동네마다 부르는 이름은 제각각인 배추 나물이다. 지난해 수확한 배추밭, 뿌리가 살아 있다면 새순이 올라온다. 그 순을 겨울채라 한다. 쌉싸름한 열무와 갓의 중간 정도 맛으로 여린 단맛이 쌉싸름함을 단단하게 받치고 있다. 육지의 나물뿐만 아니라 바다의 것도 계절 변화를 알렸다. 좌판 위에 미역과 다른 것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시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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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의 고장 기장에는 미역을 먹이로 삼는 성게도 많다.

햇미역은 겨울의 시작을, 햇다시마는 봄의 시작을 알리고는 여름이 시작될 무렵 끝난다. 다시마가 나왔으니 진짜 봄의 시작이다. 수산물 좌판이 있는 곳으로 가니 언뜻 개상어처럼 보였다. 자세히 보니 개상어는 아니고 등가시치 같았다. “등가시치인가요?” “아니 꼬랑치!” “예?” “꼬, 랑, 치!” 꼬랑치, 고랑치라 부르는 등가시치가 맞았다. 동해에서 흔히 보는 벌레 문치(장치)와 사촌답게 예쁘지는 않다. 모양이 그렇다고 맛까지 험악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회는 쫄깃하고 맛이 순하다. 미역국에도 제법 잘 어울리는 생선으로 미역 많이 나는 기장과 궁합이 맞는 생선이다. 쉽게 만나기 어려운 생선이라 안 살 수가 없었다. 기장답게 미역이 많았다. 이웃한 울산이나 포항도 미역이 많았지만, 기장은 미역의 고장다웠다. 다른 곳에 없는 해산물이 하나 더 있었다. 이 동네에서는 ‘양장구’라 부르는 말똥성게다. 성게의 주 먹이는 해초와 어류 사체다. 미역이 많은 동네이다 보니 미역을 먹이로 삼는 성게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인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백령도와 대청도에서도 미역과 다시마가 많이 난다. 미역과 다시마가 많으니 그것을 먹고 자란 여름철 성게의 맛이 깊고 진하다. 풍부한 먹이 자원이 있기에 가능하다. 기장 또한 백령도 못지않기에 성게 맛이 깊고 진하다. 시장 초입부터 성게가 쌓여 있었다. 고개만 돌려도 다른 성게 파는 곳이 보일 정도로 많았다. 봄바람 부는 기장은 멸치부터 생각난다. 3월은 이르다. 식당에서는 대부분 냉동 저장한 것을 낸다. 3월에 기장에 간다면 무조건 성게다. 먹장어만큼 못생긴 고랑치도 없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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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에서 ‘꼬랑치’라 불리는 순한 맛의 생선 등가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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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동과 함께 좌판에 자리잡은 봄의 상징 겨울채.

양장구를 보고 다니니 맛을 보고 싶었다. 시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일광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양장구 비빔밥을 주문했다. 잘 손질한 성게 알을 따듯한 밥 위에 먼저 올리고 잘게 썬 김과 함께 간을 더해서 올렸다. 먹는 방법은 일단 숟가락 대신 젓가락으로 살살 비비면서 김에 싸 먹는 것이다. 식당 추천 방법이다. 몇번 먹다 보니 조금 귀찮다. 게다가 김에 싸니 성게 향을 김 향이 방해한다. 어차피 잘게 썬 김이 들어가 있기에 굳이 김에 싸 먹을 필요가 없어 보였다. 숟가락으로 먹으니 그제야 성게 향이 입안 가득 찬다. 어떤 비빔밥이든 숟가락으로 먹을 때 제맛을 느낀다. 같이 나온 찬도 괜찮다. 시장에서 살까 말까 한 곰장어 묵도 맛을 봤다. 양정구 비빔밥 말고도 기장 아니면 맛보기 힘든 것을 파는 곳이 일광해수욕장 옆 학리마을에 있다. 말미잘탕이다. 말미잘탕이라고는 하는데 맛을 보면 장어탕에 말미잘이 들어간 것 아닐까 한다. 음식의 기원은 장어 주낙에 말미잘이 걸려 나온 것을 먹기 시작하면서라고 한다. 말미잘 종류가 많지만 탕으로 먹는 말미잘은 해변말미잘이라 한다. 근래에 먹기 시작한 것은 아니고 <자산어보>에도 국 끓여 먹는다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학리 방파제 옆에 식당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모든 곳에서 말미잘탕을 낸다. 말미잘의 맛을 봤다. 먹기 전에 어떤 식감일까 상상해봤다. ‘쫄깃쫄깃할 것’이라 생각했다. 상상 속 맛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씹는 순간 쫄깃한 식감인데 양념 외에는 별맛이 없다. 부드러운 장어를 씹는 맛으로 보충해주는 정도다. 눈에 보이는 말미잘의 모습은 ‘먹어도 될까?’라는 의문을 주지만 막상 입에 넣으면 쫄깃하고 부드럽게 씹힌다. 주문하면 물어오는 말이 있다. “방아나 산초 싫어해요?” “아뇨, 듬뿍 넣어주세요.” 방아나 산초를 싫어하는 사람은 미리 말해야 한다. 경상도 매운탕에서 방아 빠지면 맛이 심심해진다. 미청식당 (051)721-7050, 딸부잣집 010-7150-8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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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소주 한잔할 곳은 미리 점찍어 뒀다. 고기 파는 곳으로 좀 특이했다. 아니 아주 특이한 곳이다. 회전초밥집에 가면 레일을 타고 초밥 접시가 돌아다닌다.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먹을 수가 있다. 게다가 ‘혼밥’도 가능하다. 여긴 접시 위에 초밥 대신 고기가 올라가 있다. 돼지고기, 소고기, 양고기가 부위별로 돌아다닌다. 잠시 구경하니 삼겹살, 목살, 항정살, 부챗살, 채끝, 새우살 등이 돌아다닌다. 회전초밥처럼 혼자도 ‘OK’이다. 사실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고기는 거의 불가능이다. 2인분 시킨다 한들 팔지 않는 식당이 대부분이다. 별도 상차림이 없고 대신 3000원의 셀프 상차림비를 받는다. 3000원에 김치며 양념, 소스를 담을 수 있는 접시를 내준다. 레일을 타고 다니는 김치 등 양념을 담다 보면 불판이 충분히 열을 받아 구울 준비가 끝난다. 그다음은 취향껏 고기를 고르면 된다. 사실 고깃집에 가서 소고기 먹다가 돼지고기 먹기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양고기 주문은 더더욱 힘들다.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 등심 새우살을 먹다가 등심을 꺼내 구웠다. 얼추 등심을 다 먹을 즈음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밥을 주문하고는 양고기를 구웠다. 먹고 싶은 부위는 따로 주문도 가능하다. 뷔페식 고깃집하고 비슷하네 하는 생각이 든다. 돼지고기, 소고기, 양고기가 있는 것은 비슷하지만 내용물의 품질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다. 주인장은 오랫동안 발골 기술자로 일했다고 한다. 나오는 고기 또한 경매에서 직접 선택한다고 한다. 경매장에서 산 고기는 일정 시간 숙성한 이후에 낸다고 한다. 발상의 전환으로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해준다. 재미만 있으면 재미로 끝나겠지만 고기가 맛나다. 심지어 같이 나오는 된장찌개 또한 맛있다. 기장에서 시작해 전국에 몇 개 점포가 있다고 한다. 대표 메뉴로는 쇠고기라면을 꼽지만 먹어 보지는 못했다. 참 재밌고 맛난 식당이다. 미육 070-7543-9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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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7년차 그린랩스 팜모닝 소속 식품 MD.

김진영 식품 MD

2022.04.0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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