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빵지순례 ::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는 여행

[푸드]by KKday

서울 빵지순례 ::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는 여행

종종 나의 시간은 2020년 1월에 머물러있다. 그러니까 팬데믹으로 세상이 뒤흔들리기 직전 나는 가족들과 새해를 맞이한 기쁨을 안고 프라하로 떠났다. 낭만의 도시에서 누렸던 일주일. 마구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너무 늦지 않게 다시 오리라는 마음으로 미련 없이 돌아왔더랬다.


그땐 몰랐지. 언제라도 마음과 주머니 사정만 따라준다면 돌아가서 레몬머랭크림파이를 맛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해외여행을 가면 꼭 그 나라 카페나 빵집에 들러 빵을 먹어본다. 자타공인 '밀가루 사랑맨' 이라 그런 걸까? 건축물이나 그림을 보러 다녔던 기억보다 그 나라의 맛있는 디저트를 먹었던 기억이 더 기분 좋게, 선명하게 남아있다.


'여행에서는 먹는 게 남는 것'이라는 말을 누가 먼저 하기 시작했는지 몰라도 나는 참 이 문장이 좋다. 그것이 밀가루 음식이라면 두어 번 고개를 더 흔들어줄 수도 있고. 그래 밀가루나 먹자. 당장 파리로 날아갈 수는 없어도 파리가 생각나는 마들렌은 먹을 수 있으니까.  

1. 에뚜왈

목적지가 아니더라도 발길을 멈추고 들어가 보고 싶게 만드는 가게가 있다. 빈티지한 녹색 외관과 느끼한 발음으로 읽어보게 되는 상호명이 눈길을 끄는 곳, 연남동의 에뚜왈이다. 프랑스의 골목 빵집을 닮은 에뚜왈에선 마들렌을 비롯한 다양한 구움과자를 판매한다.


빵이라면 뭐든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구움과자를 사랑하는 이유는 특별하다. 식사 후 본격적인 후식은 부담스럽지만 달달한 유혹을 뿌리칠 수 없을 때, 그 작은 욕망을 알맞게 채워주는 디저트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 조각에 2~3천 원을 받는 마들렌을 처음 보았을 땐 여유 있는 사람들의 사치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3천 원을 더해 케이크 한 조각을 사 먹지'같은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편견은 홈베이킹이라는 값진 경험과 함께 깨끗이 사라졌다. 모양새가 어떠하던 '근사한' 맛을 내기란 쉬운 법이 아니다.

에뚜왈에선 다양한 종류의 마들렌을 선보인다. 버터향이 고소한 기본 마들렌부터 녹차 초콜릿 코팅이 입혀져 쑥떡의 비주얼을 연상케하는 녹차 마들렌까지 재료의 취향에 따라 마들렌을 즐길 수 있다. 그중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건 다름 아닌 마들렌 글라세 레몬. 레몬의 상큼함과 빵의 조화를 평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레몬 아이싱이 도톰하게 입혀진 빵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최근 록 음악에 빠졌다는 친구의 말이 스쳤다. "록은 처음 10초를 들었을 때 느낌이 안 오면 지체 없이 다음 곡으로 넘겨야 한다? 그건 취향이 아니라는 거야" 한 입을 경험하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건 확실히 내 취향이다. 이런 게 잘 만든 마들렌이구나. 손에 묻어나지 않도록 입혀진 레몬 아이싱의 맛도 적당히 상큼했고, 너무 말랑하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식감과 포근한 버터향이 좋았다. 역시 당당하게 만인의 베스트가 될 수 있었던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두 번째로 골랐던 건 휘낭시에. 호두와 쇼콜라 버전도 있었지만 기본을 택했다. 미니멀한 파운드케이크를 닮은 휘낭시에는 헤이즐넛 향이 잔잔하게 감돌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맛. 휘낭시에하면 빼놓을 수 없는 쫀득함도 물론 잊지 않았다. 쫀쫀한 단면 덕에 바스러지는 빵가루 걱정 없이 깔끔하게 즐길 수 있다. 

구움과자 외 다양한 빵 종류도 판매한다. 그중 추천하고 싶은 건 크로와상. 취향처럼 겉이 바삭한 타입은 아니었지만 버터향 가득한 속이 부드러워 좋았다. 오로지 테이크아웃만 해갈 수 있는 곳이라 아쉬웠지만 그만큼 과자에만 집중해 다량으로 준비해두는 점이 좋았다. 나의 경험상 어떤 시간대에 찾아도 모든 빵이 진열대에 가득 채워져있었다. 에뚜왈의 빵은 연남 외에도 가로수길, 충정로에서도 만나볼 수 있으니 가까운 지점으로 방문해보는 것도 좋겠다.


- 운영시간 :

매일 12:00 - 21:00 (연남점 기준)


▶▶ 빵순이 가이드와 함께하는 연남동 빵지순례

2. 메르시네코

케이크라곤 치즈케이크밖에 몰랐던 스무 살, 친구는 나에게 신세계를 보여주겠다며 합정으로 향했다. 도쿄의 디저트 가게를 닮은 카페에서 이름이 어려운 디저트를 맛보며 행복의 정의를 곱씹어 보았던 여름날. 메르시네코를 처음 알게 된 날이었다.


고양이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는 뜻의 메르시네코는 그 이름처럼 실로 다정한 공간이다. 매장 곳곳 다양한 모양새로 존재하는 고양이들과 따듯한 인테리어, 그리고 한결같이 친절한 미소로 자리를 지키시는 사장님까지. 메르시네코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다정한 공기가 있다.​

하지만 메르시네코다움의 완성은 단연 디저트이다. 이곳의 디저트는 모두 주문을 하는 즉시 조리를 시작한다. 처음엔 의아한 시스템이었지만 그렇게 받아본 디저트를 눈으로 한번 입으로 한번 확인한 뒤, 이제는 대기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


추천 메뉴는 머랭쿠키 위에 크림을 올리고 과일 토핑을 올려 마무리하는 호주식 디저트, 파블로바이다. 메르시네코의 파블로바는 취향에 따라 '소프트'와 '하드' 중 선택할 수 있다.


먼저 소프트 파블로바. 머랭쿠키의 아사삭하고 녹아버리는 식감을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소프트 파블로바의 포인트는 쫀득한 머랭쿠키에 있다. 쿠키를 조금 잘라 크림과 복숭아 조림을 취향대로 쌓아올려 즐기면 되는데, 최초의 한입을 경험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쫀쫀한 식감에 놀라 얌전히 씹어보려 하면 순식간에 녹아 사라지는 머랭쿠키, 그리고 뒤따라오는 복숭아 조림의 향긋함까지. 과장스러운 표현을 쓰고 싶지 않지만 정말 천사의 케이크를 맛보는 것 같았다. 소프트가 쫀득한 식감이 매력적이었다면 하드는 베어 무는 사운드가 즐겁다. 아사삭거리는 식감이 머랭쿠키와 비슷해 익숙하면서도 분명 색다른 기분을 선사한다. 겨울에는 제철 딸기를 토핑해 내어주는데 단단한 머랭쿠키와의 조화가 좋다.

'인스타 감성'이라는 말과 함께 마티스 그림이 걸려있는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동안 메르시네코는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있어줬다. 있어줬다는 표현으로 문장을 마무리하며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스친다. 나의 동네도, 심지어는 친구의 동네도 아니었지만 종종 파블로바가 생각날 때마다 방문했던 메르시네코는 멋지게 나이를 먹어가며 자리를 지켜줬기 때문이다.


사실 메르시네코는 7월 4일을 마지막으로 8년 동안 지키던 자리를 정리하고 당분간 긴 휴식기에 들어간다. 따라서 현재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예약 손님을 우선으로 받고 있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조금은 특별한 디저트와 잊을 수 없는 여름을 남기길 원한다면 서둘러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 운영시간 :

수요일 ~ 일요일 14:00 - 22:00


*월요일, 화요일 휴무 

3. 밀로밀

한국인 밥심이라지만 빵과 함께하는 식사를 좋아한다. 바싹 구운 빵과 새콤한 잼, 한켠에는 버터를 아낌없이 넣어 볶은 스크램블 에그가 놓여진 식탁. 여행으로 단 한 번 다녀온 게 전부이지만 '파리스러운' 그런 식탁을 사랑한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식사용 빵은 치아바타. 이탈리아의 국민빵이라 불리는 치아바타는 무심한 생김새와는 달리 쫄깃 담백한 반전 매력의 맛을 자랑한다. 우유는 물론 버터조차 들어가지 않아 한창 채식을 할 때 단골로 식탁에 올라왔던 보물 같은 녀석이다.
밀로밀은 망원동의 조용한 골목에 위치해있다. 가게 외관에 커다랗게 박힌 '빵'이라는 글자 때문에 멀리서부터 빵집임을 알 수 있었던 귀여운 곳. 매장 내부의 규모는 작은 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쇼케이스와 쉬어갈 수 있는 좌석 두어 곳 정도가 매장을 채우고 있었다. 빵으로 저녁식사를 할 계획이었던 나는 올리브 치아바타와 할라피뇨 치아바타, 발사밀 올리브오일을 하나씩 주문하고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먹기 좋게 잘려 나온 치아바타는 따끈했다. 사장님의 배려였던 것일까 이미 구워져있는 빵을 구매할 때에는 식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작은 센스 덕에 덩달아 마음이 따듯해졌다. 가장 중요한 맛 역시 단연 좋았다. 일단 밀로밀 치아바타의 첫인상은 포근했다. 치아바타는 이탈리아의 바게트라고도 불린다지만 사실 바삭바삭한 식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폭신폭신한 우유식빵을 떠올리게 했다. 
올리브와 할라피뇨 모두 취향이었지만 후에 더 생각나는 쪽은 할라피뇨였다. 매콤한 맛을 내는 재료는 언제나 치트키일 수밖에 없다. 덕분에 별다른 야채나 스프레드 없이도 만족스러웠다. 함께 구매한 올리브 발사믹과 잘 어울렸던 쪽은 올리브 치아바타. 마치 마늘 양념으로 재운 고기를 다시 마늘과 함께 싸먹는 것처럼 어떤 형태로 존재하든 간에 올리브는 많으면 많을수록 기쁘다. 간혹 타이어를 언급하며 그 참된 기쁨을 몰라주는 사람이 있지만 밀로밀의 올리브 치아바타를 권유해본다. 올리브의 식감이 적나라하게 느껴지지 않는 편이고 오히려 빵과 어우러지며 보다 풍부해진 향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빵집에서 도보로 15여 분 정도 되는 거리에는 망원 한강공원이 있다. 마침 선선하게 불어오는 밤공기가 보물 같은 계절이기도 하니, 빵 한 봉지 사들고 강가에 눌러앉아 스쳐 지나갈 여름밤을 누려보는 건 어떨까?


- 운영시간 :

화요일 ~ 일요일 11:00 - 20:00


*월요일 휴무


여행지에서 가장 좋아했던 일을 떠올려보자. 누군가에겐 사진을 찍는 일이 될 수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것들을 일상으로 들여올 때 우리는 조금 더 쉽게 행복해질 수 있다. 여행도 결국 일상의 연장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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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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