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때문에 짜증나 못해 먹겠다”…현대차 vs 기아, ‘남남보다 못하다던 형제’의 반전
싸우며 더 강해진 현대차와 기아, 서로를 자극하며 공진화한 형제 브랜드의 비결. 니체의 철학과 메기·말파리 효과로 풀어낸 자동차 경쟁 전략.
[세상만車]
니체 위버멘쉬-적과 친구에 대한 성찰
메기·말파리 효과, 도도새 법칙과 관련
벤츠·BMW, 현대차·기아의 ‘성공 비결’
이젠 ‘공진화 전략’으로 소비자와 공생
![]() 쏘렌토와 싼타페는 서로 적일까요 친구일까요 [사진출처=기아, 현차] |
세상이 어지러워져서일까요.
극심해진 정치적 혼란으로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나와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다르면 관계를 끊는 것은 물론 죽여야 할 적으로 여겨야 한다는 마음이 더 강렬해져 일까요.
“너는 적이냐, 친구냐”라며 선택을 강요하는 이분법 논리가 판치는 세상에 대한 반발 때문인지 적과 친구에 대한 명언을 남긴 독일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니체가 뜨고 있습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외침으로 유명하죠.
서점에 가면 심오해서 철학 전공자들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니체의 책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떡 하니 자리잡고 있습니다.
심지어 니체의 ‘초인 사상’을 제목으로 삼은 노래도 나왔습니다. 지드래곤(GD)의 ‘위버멘쉬’입니다.
![]() 지드래곤의 위버멘쉬 콘서트 [사진제공=갤럭시코퍼레이션] |
니체는 “경멸할 사람을 적으로 만들지 마라. 미워할 적, 자랑스러운 적을 둬야 한다. 적의 성공이 너의 성공일지니”라고 외쳤죠.
이어 “위버멘쉬(초인, 이상적인 인간)가 되기 위해서는 친구와 적이 될 줄도 알아야 안다”면서 “친구 안에 있는 적에게 경의를 표하라”고 강조했습니다.
적과 친구에 대한 니체의 성찰은 자동차의 개발과 선택에 영향을 주는 경제학·심리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메기 효과, 말파리 효과, 도도새의 법칙, 공진화 전략 등이 니체의 초인 사상과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죠.
“적을 이롭게 활용하라” 니체가 알려준 성공 전략
![]() 베스트셀러도서인 위버멘쉬(왼쪽)과 프리드리히 니체 [사진출처=떠오름출판, 매경DB] |
메기 효과는 강력한 경쟁자(포식자)가 등장하면 다른 경쟁자들도 더 노력하고 발전하는 현상을 설명할 때 씁니다. 경영·경제 분야에서는 종종 사용됩니다.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반복”이라고 강조한 20세기 대표 역사가인 아놀드 토인비 덕분입니다.
토인비는 “좋은 환경보다 가혹한 환경이 오히려 문명을 낳고 인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며 메기 효과를 자주 인용했습니다.
니체가 말한 ‘적’과 위협을 통해 성장을 자극하고 성공을 이룰 수 있게 몰아붙이는 메기는 닮은꼴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말파리 효과도 메기 효과와 비슷합니다.
아무리 게으른 말이라도 말파리에 물려 고통을 받으면 즉시 정신을 차리고 쏜살같이 내달립니다. 사람도 적절한 자극, 고통, 스트레스가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죠.
![]() 링컨의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 장면을 담은 그림 [사진출처=매경DB] |
말파리 효과는 미국 자동차 브랜드인 포드가 존경심을 담아 고급 브랜드명으로 사용한 미국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의 일화에서 유래했습니다.
링컨은 대통령이 된 뒤, 유능하지만 거만한데다 자신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지닌 대통령 후보 경쟁자 체이스 상원의원을 재무장관으로 임명했습니다.
링컨은 주위 사람들의 우려에 “대통령이 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말파리가 체이스를 물고 있다”면서 “말파리가 체이스를 끊임없이 달리게 할 테니 떼어내고 싶지 않다”고 말했죠.
적을 이롭게 ‘활용’하는 니체의 ‘초인 사상’이 연상되지 않으신가요.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약초가 원래는 독초였던 것처럼, 사람 죽이는 뱀독도 사람 살리는 해독제·치료제로 사용하는 것처럼 적을 이롭게 활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죠.
청어(또는 미꾸라지)를 죽이려는 메기나 말을 괴롭히는 말파리가 없다면 평화롭고 편안할까요.
봄날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안일함과 안주에 경쟁력을 잃어 작은 도전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으니까요.
토인비는 찬란했던 고대 마야 문명이 멸망했던 이유가 오랫동안 외부의 적이 없어 갑작스럽게 닥친 시련에 취약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죠.
먹잇감이 충분하고 천적도 없던 낙원에서 살아 하늘 나는 법을 잊어버린 도도새가 멸종된 이유도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포식자 때문입니다. ‘도도새의 법칙’입니다.
![]() 낙원에서 살다 멸종된 도도새 [사진출처=매경DB] |
메기·말파리 효과 대표 사례는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애플 아이폰과 삼성 갤럭시입니다.
자동차 분야에도 있습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와 BMW가 이 효과로 재미를 톡톡히 본 대표 브랜드입니다.
두 브랜드는 각각 벤츠 E클래스와 BMW 5시리즈를 앞세워 글로벌 프리미엄 E세그먼트 세단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시장을 주도했습니다.
벤츠 S클래스와 BMW 7시리즈, BMW 3시리즈와 벤츠 C클래스, BMW X5·X6와 벤츠 GLE도 해당 세그먼트에서 경쟁력을 높여주는 두 마리 메기·말파리가 됐습니다.
일본차 브랜드인 토요타와 혼다도 메기·말파리 효과를 활용해 미국에서 성공했죠.
두 브랜드가 전기차를 다시 밀어내고 대세가 된 하이브리드카 분야에서 가장 강력한 리더가 된 것도 이같은 효과 덕분입니다.
현대차·기아, 공진화 전략으로 동반 성장
![]() 기아 엠블럼 변천과정 [사진출처=기아/ 편집=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
한국차 브랜드 중에서는 현대차와 기아가 서로에게 ‘도전과 응전’을 강제하는 메기입니다.
현대차가 1997년 IMF 구제금융 이후 부도난 기아를 인수했을 때 카니발라이제이션(시장잠식)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서자인 기아가 적통인 현대차를 도와주는 역할에 머물려 존재감을 잃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습니다. ‘남남보다 못한 형제’가 될 것이라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현대차와 기아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됐습니다. ‘따로 또 같이’ 전략으로 두 마리 메기가 돼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브랜드로 키웠습니다.
기아는 현대차에 인수된 뒤 미꾸라지가 될 위기에 처했지만 결국 메기로 화려하게 변태했습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005년 기아차 사장으로 취임한 뒤 진행한 ‘디자인 경영’ 전략이 통했기 때문이죠.
2000년대 초반까지 기아는 현대차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지 못하면서 위기에 처했습니다. 당시 정의선 사장은 ‘체질 개선’을 통해 위기를 돌파했습나다.
정 사장은 현대차와 차급도 성능도 비슷하다면 ‘디자인’에서 차별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 아이오닉9과 기아 EV9 [사진출처=현대차, 기아] |
현재 ‘디자인 기아’는 현대차에 맞먹는, 때로는 현대차를 이기는 메기로 변태했습니다.
현대차 아반떼와 기아 K3, 현대차 쏘나타와 기아 K5, 현대차 그랜저와 기아 K8, 현대차 투싼과 기아 스포티지, 현대차 싼타페와 기아 쏘렌토 등도 서로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계속 성장하게 강제하는 메기들입니다.
현대차그룹의 맏형이 된 제네시스가 벤츠, BMW, 포르쉐 등 글로벌 프리미엄 리딩 브랜드와 당당히 겨룰 수 있게 된 것도 두 동생의 고군분투 덕분입니다.
메기 효과를 통해 한국이라는 우물에서 벗어나 바다로 나간 현대차와 기아는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 또 하나의 전략을 사용합니다.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 전략입니다. 공진화는 거대한 생태계에서 둘 이상의 그룹 간에 상호 연관된 진화가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꽃과 나비처럼 서로 다른 둘 이상의 종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진화합니다. 먹고 먹히는 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협력적이고 이타적이고 호혜적입니다.
경제 분야에서는 같은 업종은 물론 다른 업종과 단순히 협력이나 제휴하는 수준을 넘어 공생하고 공동 성장을 추구하는 현상을 공진화 전략이라고 표현합니다.
잠재력이 뛰어난 블루오션(blue ocean)을 개척하거나 공략하면서 파이를 키울 때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볼 수 있죠.
개인적인 분석이라는 것을 전제로 말씀드리면 현대차그룹은 주도권을 가진 시장을 ‘사수’ 할 때는 메기 효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공략하면서 동반 성장을 이끌어낼 때는 공진화 전략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 아이오닉9 [사진촬영=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
공진화 전략의 최신 사례는 기아 EV9과 현대차 아이오닉9입니다.
두 차종은 아직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대형 전기 SUV 시장을 ‘따로 또 같이’ 공략해 현대차그룹의 존재감을 더 향상하고 파이도 키우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선봉장은 EV9입니다. 기아의 지속가능성 비전을 앞당기고 이동에 대한 개념과 방식을 완전히 바꿔 새로운 경험을 전달하는 플래그십 전동화 SUV입니다.
EV9이 한국차 최초로 개척한 시장에 아이오닉9도 뛰어들었습니다. 현대차가 그동안 선보인 적 없는 파격적인 디자인, 세계 최초로 적용한 첨단 기술, 경쟁차종을 압도하는 디지털 편의성과 공간활용성 등을 총동원해 제작한 야심작입니다.
기아도 EV9의 고성능 버전인 EV9 GT를 공개하면서 공진화 효과를 높였습니다.
아이오닉9과 EV9 GT는 미국 유력 시사주간지인 뉴스위크가 선정한 ‘2025 가장 기대되는 신차’에 선정되는 성과를 거둬들였죠.
![]() 다재다능한 현대차 ST1 [사진촬영=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
EV9과 아이오닉9에 이어 현대차 ST1과 기아 PBV도 공진화 전략을 추구했습니다.
ST1은 지난해 현대차가 선보인 전동화 비즈니스 플랫폼이자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Software Defined Vehicle)입니다. 차량의 뼈대(샤시)와 승객실(캡)만으로 구성된 샤시캡(Chassis-Cab) 모델이 기본입니다.
사용 목적에 따라 물류용, 응급구조용, 경찰작전용, 캠핑용, 스마트팜 등으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기아도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 Purpose Bulit Vehicle)로 맞불(?)을 놓으며 ‘파이’ 키우기에 나섰습니다.
PBV는 기아 카니발과 현대차 스타리아 등 미니밴과 승합차의 후손입니다. 기아 봉고, 현대차 포터 등 1t 트럭의 후손이기도 합니다. 다재다능하기 때문이죠.
비결은 스케이트보드를 닮아 공간 활용성이 우수한 전기차 플랫폼과 레고처럼 탈·부착할 수 있는 모듈 덕분입니다.
‘모듈’에 따라 여객 수송이나 화물 운송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 ‘차량 그 이상의 차량’을 추구한 PV5 [사진출처=기아, 편집=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
PBV를 ‘차량 그 이상의 플랫폼’(Platform Beyond Vehicle)으로 재정의한 기아는 첫 번째 PBV인 PV5를 지난 3~13일 킨텍스(경기도 고양)에서 열린 ‘2025 서울모빌리티쇼’에서 공개했습니다.
기아는 승객 탑승에 초점을 맞춘 패신저, 물류·배송에 특화된 카고,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성을 위해 개발된 WAV(Wheelchair Accessible Vehicle) 등 PV5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다양한 라인업을 공개했습니다.
더 나아가 가전 브랜드 LG전자와 협력해 PBV 맞춤형 공간 솔루션을 적용한 모바일 오피스용 ‘슈필라움 스튜디오’와 차크닉용 ‘슈필라움 글로우캐빈’ PV5 콘셉트카도 공개했습니다.
슈필라움 스튜디오는 이동 중 업무 공간이 필요한 고객들을 위한 콘셉트카입니다. PV5 실내 공간에 최적화한 LG전자의 스타일러·스마트미러·커피머신 등 인공지능(AI) 가전을 탑재했죠.
‘슈필라움 글로우캐빈’ 콘셉트카는 냉장고·광파오븐·와인셀러 등을 장착했습니다. 두 콘셉트카는 ‘바퀴달린 풀옵션 오피스텔’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바퀴달린 풀옵션 오피스텔’을 추구한 PV5 실내 [사진촬영=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
공진화 전략은 브랜드·제품 관계에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기업과 소비자와의 관계에도 공진화 전략이 필요합니다.
서로 공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줘야 제품도 기업도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로 나쁜 행위를 따라할 때 사용하는 말이죠. 하지만 ‘증오’가 아닌 ‘애정’을 가지고 서로 욕을 하고 배울 점을 찾아 실천한다면 서로 동반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남남이 아니라 형제인 현대차와 기아도 서로에게 애정 가득한 욕을 하면서 배우고 경쟁하면서 더 큰 동반 성장을 일궈낼 수 있겠죠.
아울러 자동차 회사들도 소비자의 욕에서 배울 점을 찾기를 바랍니다. 약자를 향한 감정적 배설물인 욕은 금물이지만, 기업이나 제품에 대한 욕은 관심이 있다는 표현일 때가 많아서죠.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는 대상이어야 욕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관심이 없다면 욕할 필요도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