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그래서”

변종모의 마음 속의 길 #10

반다라 아바스, 마샤드, 이란 / Bandar Abbas, Mashhad, Iran

“마음이 그래서”

먼 여행, 가까운 삶

그때도 기차를 탔었다. 정체 모를 공허가 점점 깊어지거나 안락한 방안에서도 불안함이 엄습해 올 때면 어김없이 늦은 기차 시간을 알아보고 있었다.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강원도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으로 깊어진다고 믿으며, 늦은 밤 오래도록 거인 같은 산들을 끼고 달렸다. 일단 기차를 타고나면 적당히 분리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나는 세상에서 분리되기 위함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세상을 끌어안기 위해서라고 위로하며 자주 기차 안에서 새벽을 맞이했다. 

“마음이 그래서”

그 생각이 다시 들었던 것은 반다라 아바스의 어느 시장골목에서였다. 과일이 풍성하지 못한 시기에 방문한 시장은 흔한 오렌지만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나머지 과일들은 부실했다. 검은 차도르를 입은 여인들은 덕분에 그곳에서 더욱 눈에 띄었다. 대부분 거래를 하는 사람들은 남자들이었지만 간혹 검은 여인들이 좌판을 열고 있던 시장은 충분히 이색적인 것이었다. 오랜 여행에 입맛을 돋울 요량으로 김치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시장을 헤맸지만, 내가 구입해야할 물건들 보다 시장의 풍경에 반해 정신을 잃고 있을 때였다. 한 무리의 남자들이 몰고 온 분위기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진행되었고 더군다나 험악한 것이어서 무슨 일이라도 반드시 일어날 것만 같았다. 남자들은 상점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곳의 상인들에게 당당한 어조로 명령하는 듯 했고 당황한 상인들은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는 곳까지 뒷걸음치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상상 속에 들어있지 않은 풍경이었다. 무슨 이유였는지 나는 모른다. 그냥 대단한 잘못들을 한 것처럼 가해지는 폭력과 순종 그리고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는 것만 설명 없이도 설명 가능한 풍경으로 펼쳐졌다. 검고 기다란 차도르를 입은 여인들 사이로 선명하게 흩어지는 오렌지들과 초록의 채소들. 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시장 안은 잠시 일어나는 해프닝정도로 생각하는지 아무렇지 않게 다시 자연스러운 거래가 이루어졌다. 대열에서 밀려난 몇몇 검은 여인들만 바쁘게 움직이며 남루한 보자기와 상자들을 채우며 황급히 자리를 정리하는 모습이었다. 


여행자로서 더 이상 설명을 들을 기회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쯤은 알지만 무참하다. 두 달 가까이 이란 여행을 하면서 본 풍경 중에 가장 충격적이고 폭력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수만 명이 피켓을 들고 모여든 이스파한의 광장의 시위현장에서도 이런 험한 풍경은 보지 못했다. 황급히 좌판을 정리하는 몇몇 여인 중 유난히 야위고 키가 큰 여인은 자신의 허리에 매달린 아이를 돌보랴 좌판을 정리하랴 정신이 없는 듯 보였다. 도와주지 못했다. 그 곁을 지나거나 서성이며 구경하던 사람 중 누구도 그러지 않았으므로 나 역시 그럴 용기가 없었다. 내 마음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때는 사람들의 발밑에 밟히고 있는 오렌지처럼 또는 뉴스의 한 장면을 보는 마음처럼 불편하지만 상관없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녀도 나를 봤을까? 많은 시장 사람들 중에 내가 유일한 외국인이라는 것이 더욱 불편했고, 이곳이 낯선 곳이 아닌 내 나라였으면 차라리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랬더라면 한 마디의 위로라도 건넸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변명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위로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이 복잡해졌다. 누구도 누구의 삶에 끼어들 수 없겠지만 잠시 누군가의 위로가 어쩌면 큰 힘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다시 분주한 시장의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마음이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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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아무렇지 않은 듯 흘러가는 오후. 삶이란 이렇게 반복되는 것이다. 삶의 바닥에 발을 들여 제자리 한 번 벗어나지 않는 집요함으로 어린 자식을 감싸 안고 젖을 물려보지만 쉽지가 않다. 누군가에겐 아름답고 호기심 가득한 풍경이 누군가에겐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한나절을 보내도 겨우 제자리인 것처럼. 어지럽게 흩어진 과일들을 열심히 주워 모아도 결국은 다시 반복될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어디나 삶은 쉽지가 않다. 지구의 반대편까지 흘러와도 삶은 어디서나 진행형이며 비슷한 슬픔이 있고 비슷한 기쁨이 있다. 여행이 결코 삶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런 험한 날에는 나도 돌아갈 곳이 없다. 피할 길이 없다.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있지만 내가 내 마음에서 피할 길은 없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생각하자던 마음은 저만치 주저앉았다. 검은 차도르의 여인은 이 지구상 어디에나 있었을 것이다. 내 책상의 옆자리에도 버스 뒷자리에도 늦은 밤 편의점의 계산대에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보지 않을 방법은 없다. 단지, 외면은 가능할 뿐. 여행을 떠난다고 내 삶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길은 없다는 것이다. 


어느 밤, 강원도로 가는 야간기차에 몸을 실었을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상처를 받은 피해자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렇게 허약하게 기울어지는 마음은 어딘가에 싣고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잠시 모든 것에서 눈을 감고 내가 아닌 내가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삶이 그런가? 세상을 아무리 걸어 봐도 지구를 몇 바퀴를 돌아봐도 우리는 결국 이 지구상에 머물며 끝내는 삶인 것이다. 벗어날 길은 없다. 잠시 외면할 마음의 갈등이 있을 뿐. 그것이 여행이라 위로할 뿐, 떠난다고 벗어나지는 못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기차를 타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나약한 자세로 오래토록 덜컹거렸을 뿐이다.

삶의 자세

저녁 기차였다. 며칠 전 예매한 마샤드행 야간 기차는 거의 하루가 걸리는 기차라고 매표원이 알려줬을 때 차라리 그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틀에 한 대니까 이틀 뒤에 출발하는 기차라고 했을 때는 한없이 지루한 마음이 되었다.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저녁 해가 저무는 승강장에는 멀리 떠나는 사람들과 돌아오는 사람들이 교차하는 풍경 사이로 후끈한 열기가 사람들의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마음이 그래서”

이제 또 떠나는 것이다. 언제나 떠나는 마음이 될 때는 지탱했던 곳이 잠시 애틋하거나 기약 없는 마음으로 술렁거렸다. 낯선 곳에서 낯선 곳으로 옮겨가는 마음은 그래도 참을 만한 것이리라. 평생을 다져온 터전을 잠시라도 떠나는 일은 어떤 것일까? 7호차 9번 좌석. 하지만 기차가 출발하기 전, 맨 앞칸으로 옮기라는 역무원의 지시가 있었고 어떤 이유를 찾지도 못하고 고분고분 따랐다. 이유는 내가 배정된 칸의 나머지 승객들이 모두 여자라는 이유였다. 배낭을 끌고 들어간 새로운 객실엔 점잖은 노인 한 분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상냥하게 처진 눈으로 가볍게 웃는 얼굴과 담배는 왠지 잘 어울리지 않았는데 상관없이 반가웠다. 이제 꼬박 하루를 함께 가야하는 친구인 셈이다. 

“마음이 그래서”

노인이 먼저 담배를 권했다. 승무원의 눈을 피해 나눠 피우는 담배는 선생님의 눈을 피하는 학생의 심정 같은 것이어서 적잖게 기분이 좋았다. 마샤드까지 하루를 같이 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잠깐의 친구. 이란이 좋으냐고 내게 물었다. 가지고 있던 지도를 펴놓고 이란의 북쪽부터 남쪽의 섬까지 그리고 내일 도착할 마샤드도 기대가 된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그는 여행자가 일러주는 자신의 나라에 대해서 귀담아들었다. 노인은 마샤드 이외엔 다른 지역을 가보지 않았다고 했으며 마샤드에 가는 이유는 일종의 성지순례 같은 것이라고 낮은 어조로 말했다. 가끔 그렇게 간다고 했다. 아주 가끔 말이다. 자주 떠나는 여행자로 살면서 종종 현지인들도 가보지 못한 곳까지 가게 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이럴 때는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우쭐하기도 했다. 


노인의 직업은 의사이며 마샤드에 사는 아들도 직업이 의사라고 했다. 가끔 기차를 타고 싶을 때, 그리고 신께 절실한 기도가 필요할 때 이맘레쟈모스크(Haram-e Razavi)를 찾기 위해서 떠난다고 했다. 가끔 기차를 타고 싶었다는 노인은 아이 같았고 신을 조우하러 간다는 그 말은 왠지 성스럽게 느껴졌다. 왜 하필이면 마샤드냐고 나는 마샤드에 대한 궁금증을 내비쳤다. 이맘 중에 유일하게 이란에서 태어난 레쟈를 존경하기 때문이라고 했었던 것 같다. 이란 최고의 성지. 그는 이맘 레쟈를 경배하기 위해 다른 곳은 가지 않는다고 했지만 내가 가본 여러 나라가 궁금하다고는 했다. 기도는 하냐고 묻는 노인에게 종교가 없다고 말한 것은 실수였을까? 다소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의 노인은 당신의 종교는 여행이군요! 라며 웃었다. 그럼 나는 노인이 기도할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까? 여행이 종교라는 말은 왠지 쑥스럽고 난데없다. 여행을 믿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여행에서 배우는 것들이 많다고 근사하게 말하려다가 소통의 방법을 찾지 못했다. 별들이 창가를 닦아내듯 스치는 밤기차 안에서 우리는 어설픈 대화로 주거니 받거니 오래도록 덜컹거렸다. 아득한 밤의 들녘엔 멀리 구름처럼 밝은 설산이 희끗희끗 지나가고 노인은 기도와 함께 잠이 들었다. 자신이 믿는 것, 그 믿는 것을 따르는 것. 나는 내가 걸으며 본 모든 것을 믿는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까지도. 그리고 그것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삶의 자세를 믿는다. 평생을 자신이 태어난 곳과 겨우 그곳을 벗어나도 자신이 믿는 어떤 선지자에게 닿을 마음으로 사는 사람의 절실한 자세. 아우성 속에 몸을 부리며 하루하루 견뎌내는 고단한 몸의 신성함을 믿는다. 그것을 보러 떠나는 길은 노인의 말처럼 내 안의 종교가 되고 있었는지 모른다. 


수학여행을 가는 옆 칸의 어린학생들이 별처럼 재잘거리는 밤. 아무래도 쉽게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밤. 덜컹덜컹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로 위의 시간들은 불편한 법이 없다. 오랜 시간 고요히 내가 나에게 묻고 답하는 성과 없는 시간이 덜컹거리는 선로를 벗어나지 않고 결국 조금이라도 나아갈 것을 믿으므로. 내가 벗어나지 않고도 내게 스스로 다가오는 많은 풍경들을 맞이하는 여행. 내 마음이 그럴 때. 자주 방향도 모르고 어딘가로 향하고 싶다면 무턱대고 기차를 타던 버릇은 내 기도문 중의 한 구절이 된 것처럼 뿌듯하다. 노인은 가늘게 코를 골며 자신의 믿음과 점점 가까워지는 중이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 한 칸을 나누어 이동하고 있었지만 서로의 삶을 잠시 나눈 것이 될 것이다. “아들이 마중 나올 거요!” 딱히 정해진 곳이 없다면 자신이 머물 동안 아들의 집에서 머물러도 좋겠다는 말은 고맙게 인사로만 받았다. 대신 이맘레쟈모스크 앞에서 만나서 차 한 잔하는 말로 경쾌한 악수를 나눴다. 노인은 깊고 따뜻한 포옹을 남겨놓고 손을 흔들었다. 


기차는 먼 길을 달려와 아직도 뜨겁다. 나는 살면서 또 마음의 어디 한구석이 무너져 내릴 때면 기차를 타게 되겠지. 한없이 덜컹거리며 움직이는 동안 내 안에 가라앉았던 것들을 움직여 새로운 마음을 깨우겠지. 그렇게 움직여 살아나는 마음의 방향을 따라서 살게 되겠지. 그것이 좋은 거라 믿으며 또 나의 일기장 한구석에 내가 알게 된 한 구절을 적고 기도처럼 자주 새기게 될 것이다. 여행이 새겨주는 한 줄을 받아 적으며 걷는 길. 그 길에서 만나는 모든 아름답거나 나쁘거나 좋거나 싫은 것들을 되새겨, 눈이 깊은 노인의 자세처럼 정중하게 살게 된다면 여행에서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마음이 그래서”
“마음이 그래서”

이맘레쟈모스크 앞에는 무수한 검은 차도르의 행렬이 날마다 이어졌다. 거대하게 빛나는 대리석의 하얀 아우라와 그 곁을 돌며 머리를 조아리는 검은 차도르의 행렬이 장관이다. 사방으로 뒹굴던 오렌지를 줍던 여인과 모두가 닮았다. 여인들은 조용하고 순종적인 자세로 걷고 있다. 검은 강물이 흐르듯 밀려다니는 위로의 시간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먼 길을 달려 각자가 안고 온 마음을 풀어놓고 기울어지거나 허물어져 가는 마음을 세우고 돌아서는 일. 그렇게 살아가면서 무수히 반복하고 끊임없이 다짐하는 일로 조금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여행이나 생활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을 안다. 떠나도 떠나지 않아도 우리는 매일 많은 것들과 만나며 결국 자신을 보는 것이다. 어쩌면 여행을 한다는 것은 다른 세상 안으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잠시 내가 내 속으로 덜컹거리며 들어가는 것이다. 

Tip : 이란의 남쪽 그리고 기차를 타고 

반다라 아바스는 이란의 남쪽에 있는 항구 도시다. 나검이라는 붉은 가면을 쓴 부족이 이곳 반다라 아바스에서 멀지 않고 맹그로브가 자라는 케심(Qeshm)섬으로 들어가는 배가 여러 편 있다. 대부분 배낭여행자는 북쪽에서부터 내려와 쉬라즈(Shiraz)에서 끝을 내지만 이곳 남쪽의 정취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행으로 발달한 도시가 아니므로 다소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적잖게 발견되는 여행자들의 숙소와 각 도시로 연결되는 차편이 있으므로 걱정할 것은 없다. 이란의 또 다른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한 투자가치가 있는 지역이다. 


반다라 아바스에서 마샤드로 이어지는 여정은 밤기차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비행기를 타고 가기엔 놓치는 풍경이 너무 아쉽고 이란 기차 여행의 독특한 경험을 할 수가 있어서 장점이 된다. 기차의 편의시설은 아주 훌륭한 데다 가격도 저렴하다. 각 객실에 비치된 모니터와 깨끗한 담요와 간식까지 제공되는 기차여행은 의외로 쾌적하고 편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차를 타면 그곳 사람들의 적잖은 관심과 환대를 한 몸에 받게 될 것이다. 마샤드는 이란 최고의 종교도시이자 성지이다. 이란 입국 시에 여성들은 기본적으로 머리에 스카프를 써야 하며 엉덩이를 가리는 윗옷이 필요하다.

글, 사진 변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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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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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디렉터였다가 오래 여행자로 살고 있다. 지금도 여행자이며 미래도 여행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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