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뉴요커"

[여행]by 변종모

뉴욕, 미국 / New York, USA

"단 한 번의 뉴요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해 달라 조르고 싶었다. 그 말이 가장 큰 위로처럼 느껴지던 때는 많이 지쳐있었을 것이다. 때로는 여행이라는 것이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는 일이기도 하지만 비슷한 삶을 바라보며 위로를 받는 일이기도 하다. 나의 작고 나약한 마음을 걸어둘 곳 없고 단순한 일상이 미로처럼 여겨질 때, 그렇다면 한 번쯤 그곳으로 가라. 차라리 지금보다 더 거대한 빌딩 그늘에 가려진 인간의 삶에 대해서, 그 속에서 마주치는 나와 같은 나를 만나 이야기하자. 그래서 더 뜨거워지고 더 명랑해질 당신을 부탁한다. 비록 단 한 번의 뉴요커라도 되어보길 부탁한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집단. 우리 잠시 그 가운데에서 만납시다.

말하자면 목련제과

"단 한 번의 뉴요커"

“가장 오래된 것을 찾아 봐! 그럼 거기에 답이 있지!”

그렇게 말하는 동안 그녀는 마치 뉴요커처럼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녀가 앉은 카페 벽면에도 때마침 뉴욕의 어느 오래된 상점이 찍힌 낡은 흑백사진 하나가 걸려있었다. 그녀는 내가 가보지 못한 뉴욕의 어느 거리들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뉴욕에 가는데 가장 최신 트렌드를 보고 와야지 왜? 역사도 짧은 미국의 한가운데에서 가장 오래된 것을 찾아다녀야 해? 라고 묻는 말에 “여하튼”이라고 딱 잘라서 말했다. 그녀가 일어서자 흑백사진 속으로 오버랩된 모습이 뉴요커 같기도 했다. 뉴욕의 유명한 치즈케이크와 비슷한 맛이 난다는 홍대의 그 카페는 아직도 계속 성업 중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그날 이야기했던 뉴욕의 거리에서 나는 잠시 모든 걸 접어두고 폐업이다. 새로운 창업에 나선 뜨거운 마음의 청년사업가 같은 정신으로 걷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여기는 뉴욕의 한 가운데 5번가이다.

"단 한 번의 뉴요커" "단 한 번의 뉴요커"

계절을 가늠할 수 없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길가에 고인 빗물 속에서도 여전히 현란하게 돌아가는 네온사인이 있고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건너뛰는 바쁜 사람들이 있다. 길거리를 활보하며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이 있고, 여유롭게 카페에 앉아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 또한 있다. 5번가에서 타임스퀘어로 이어지는 거리에는 늘 그렇게 바쁘거나 바쁜 와중에 느긋하거나 바빠서 바쁜지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길을 헤매는 관광객들마저 합세해 빈틈이 없다. 뉴욕의 중심 맨해튼, 그중에서도 가장 번화한 타임스퀘어에 숙소를 정한 것에 다른 이유는 없다. 가장 치열하고 싶어서. 이번 여행은 치열에 치열을 가중시켜보자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인종이 다 모여든다는 이곳에서 나의 존재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그래서 여기서는 더욱 자유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사람의 숫자보다 높은 설산 봉우리의 숫자가 더 많은 파키스탄 북부나, 온통 모래 언덕만 있던 사하라의 어느 마을에서는 어딜 가더라도 내가 구경거리가 되던 여행이 잦았던 이유로.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다는 이곳에서 더욱 온전한 여행자로 지낼 수 있는 확률이 많은 것이 아닐까 계획했다.

"단 한 번의 뉴요커"

높은 건물들이 차지하고 있는 한 블록 한 블록을 땅따먹기하듯 옮겨다니는 동안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건물 꼭대기를 바라보느라 늦은 저녁이면 뒷덜미가 뻐근해지곤 했다. 상업 건물들의 아랫도리는 투명하게 드러나서 속을 들여다보는 재미에 빠져 온종일 도시 산책에 바쁘다. 마치 사춘기 시절의 도색잡지를 보듯 한 블록 한 블록 옮겨 다닐 때마다 온통 흥미진진하다. 그것이 새롭거나 더욱 새로운 가운데 왠지 모를 안정감이 있는가 하면 잠시도 흥을 잃을 수 없게 시선을 사로잡는 것들이 촘촘하게 박혀있다. 그것은 사람일 때도 있었고 풍경일 때도 있었지만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다양한 거리는 어느 방향에서 시작하더라도 근사한 선물 같다. 브로드웨이 거리는 온통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치장한 건물들이 쉬지 않고 태양처럼 사람들을 비추고 있다. 최신 정보들이 화려한 그림들로 쏟아져나와 햇빛처럼 사람들을 일광욕시킨다. 가장 유행하는 브랜드들과 가장 편리한 도구들이 앞다투어 진열된 이곳에서 부족함이라고는 얇은 지갑뿐이다. 하지만 온통 번들거리며 자기자랑에 열을 올리는 이 거리도 묘하게 낡아 있고 오묘하게 따뜻한 감정들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단 한 번의 뉴요커"

어느 날부터 세상의 대표 도시가 되어버린 작은 섬.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높이로 새로운 것들이 쌓이고 있지만, 분명 이 도시에도 오래된 것들이 터줏대감처럼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녀가 눈을 치켜뜨며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말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1900년에 설립된 빅토리아 극장에서 뮤지컬을 보고, 1800년대 말부터 듣던 노래들을 아직도 흥얼거리며, 100년이 넘은 팀들의 경기를 보며 환호한다. 200년이 넘은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그보다 더 오래전에 그려졌던 유명 화가들의 그림 앞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거대한 건물의 빠른 시스템 속에서 일을 하고 오래된 정원에서 느리게 휴식을 취한다. 최신 장비들로 정보를 수집하고 낡은 바에 앉아서 미래를 이야기한다. 도시 한가운데 넓게 퍼져있는 센트럴파크에는 수많은 새들이 날아다니고 도시만큼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걷는 사람들은 건강하다. 그러니까 이곳은 처음부터 있던 것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들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숨은 그림을 찾듯 오래된 것들을 찾을 필요도 없이 모든 것이 공존하는 도시 뉴욕. 이 거대한 도시는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살면서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 낡은 것을 잘 어루만지고 닦아서 빛이 나는 도시.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데만 열중한 나머지 오래된 대부분의 것들의 소중함을 잘 모른다.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이 없듯 과거 없는 현재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의 현재는 늘 새로운 것에만 집중한다. 나를 붙잡고 멈추게 만드는 것은 늘 새롭거나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 아니라 내게 익숙한 것이 새로운 것들과 어우러져 서로 아름다운 상태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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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매그놀리아 베이커리(Magnolia Bakery)의 진한 치즈케이크를 먹고 나오는데 그녀의 말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목련제과 아닌가? 그런 식으로 이 도시는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최신 유행을 따르는 전통이 함께 좋은 맛을 낸다. 우리가 홍대의 어느 카페에 앉아서 이국의 풍경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는 이곳이 아니면 안 되는 것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섬이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의 이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곳에서 내가 기대했던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목련제과의 이름을 달고도 세계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쌓아올린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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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캐처(dreamcatcher). 로어 맨해튼(Lower Manhattan)의 끝자락, 자유의 여신상이 우뚝 서 있는 엘리스 섬(Ellis island)으로 들어서는 골목 상점에 깃털이 달린 그물이 허공에 날리고 있었다. 바람을 붙잡지 못하는 그물대신 깃털이 바쁘게 나부끼는 오후. 빌딩 사이의 바람은 험하고 그것을 견디는 도시의 계절은 모호하다. 동그란 그물 사이로 보이는 빌딩들은 이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꿈의 높이를 닮았다. 아득하다.

“드림캐처예요. 당신이 잠드는 동안 나쁜 꿈을 걸려내죠!”

가지런하게 이를 보이며 웃는 아가씨는 이곳 사람이라기보다 사막 한가운데의 모래언덕, 그것도 아니면 바다 한가운데 홀로선 섬처럼 유난하고 특별하다. 검은 피부에 고스란히 드러난 하얗고 가지런한 이가 빌딩 사이로 부는 바람을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그녀의 자잘한 웃음은 이미 곁을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나쁜 꿈을 걷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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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꼭대기에 걸린 하얀 구름들이 자유의 여신상 쪽으로 흘러가는 동안 유람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들떠있다. 오래전 알고 지내던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사소한 이야기들로 흥분을 가라앉히는 사람들 속에서 바라보는 바다 위의 거대한 모습.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누군가 나에게 손들어 반겨주는 것처럼 좋은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자유의 여신상에 닿기까지는 잠시 자유를 맡겨놓고 지루한 보안 검색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란 줄과 철저한 보안 검색대. 이 모든 절차를 지나야 비로소 유람선을 타게 된다. 누구도 이것을 불평하지 않는다. 이것은 도시의 약속이며 자유를 지키고 보장받기 위한 약속이다. 그 옛날 이 땅을 밟는 누구에게나 자유를 선언하는 그녀의 모습은 얼마나 거대한 위로였을까? 깊고 푸른창공을 향해 바다 위에 우뚝 솟은 그녀의 오른팔이 굳건하다. 섬에서 또 다른 섬으로 옮겨와 건너편에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는 섬을 바라본다. 수평선 위로 떠 있는 찬란한 건물들은 모두가 하늘로 향해 있다. 그중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뉴욕과 이 섬에서 바라보는 뉴욕은 같은 것이지만 사뭇 다른 느낌이다. 허공에서 내려다보듯 아래를 내려다볼 때는 현기증처럼 많은 사람들이 어지럽게 얽혀있는 까마득하고 무서운 도시이기도 했다.

"단 한 번의 뉴요커"

치열하게 밀집된 답답한 공간으로 몰려드는 많은 사람들. 하지만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 그중에 배낭을 메고 어느 길모퉁이를 걷는 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인간이 만든 거대한 도시다. 그 속에 각자의 역할로 높이를 쌓아가고 있는 이유로 도시는 탄생 되었을 것이다. 늘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생활도, 미미한 꿈도 이곳에서는 모두가 소중한 높이로 하루하루 쌓여가고 있다. 당신과 나 같은 소소한 사람들이 모여서 세상에서 제일 주목받는 도시를 탄생시킨 것이다. 누군가는 많은 인파 속에 홀로 서서 그들의 나쁜 꿈을 걷어내고 좋은 꿈을 꾸게 하는 물건을 파는 일로 하루를 보내게 될 테고, 또 누군가는 깃털 달린 그 장식을 창가에 걸어두고 하루하루 아침을 맞으며 이 도시에서 제일 높은 희망을 쌓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의 희망이 모여 도시의 높이가 되어가는 곳. 세상에 없는 것이 없는 곳이란, 세상에 없어야 될 사람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모여 세상에 없는 것이 없도록 만들어가고 있다. 날카롭고 차갑기만 한 도시가 아닌, 튼튼한 갈비뼈 속에 숨 쉬는 뜨거운 심장처럼 오늘도 꿈을 각자의 자유와 꿈을 향해 쉬지 않고 뛰고 있다.

"단 한 번의 뉴요커"

잠시 나를 만나고 가는 길이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를 여행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일상들이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다양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여행이란 모름지기 생활에서 멀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날 당신의 지친 퇴근길 버스 안에서 흔들리는 손잡이를 꼭 쥐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그렇게 살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주목받는 거대한 이 도시도 다를 게 없다.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자신의 일을 잘 돌볼 수 있는 일. 어쩌면 세상은, 어쩌면 누구나의 삶은 매일매일 뉴욕의 한가운데이다. 그러니까 단 한 번의 뉴요커! 그것은 여행이자 현실을 동시에 걷는 것이다. 그 체험의 끝에서 좋았거나 나쁘거나는 각자의 몫일 테지만 침대 맡에 드림캐쳐 하나 걸어 두고 좋은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 작은 위로가 때로는 이 도시의 가장 높은 건물보다 더욱 높은 곳으로 나를 데려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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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걷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잘 걸어야 뉴요커!

맨해튼, 부루클린, 브롱크스, 퀸스, 스테이튼 아일랜드의 5개 독립 자치구로 나뉘어 있는 뉴욕. 작은 섬이라고 말들 하지만 뉴욕은 서울의 1.3배에 달하며 가는 곳마다 볼거리가 넘쳐나므로 그 체감 규모는 훨씬 방대하다. 그러니까 방향감각을 익히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첫날은 무조건 시티버스 투어를 추천한다. 시티버스를 타고 지상의 명소들을 예습하듯 둘러본다면 조금 더 빨리 판단이 될 것이다. 바둑판 모양으로 구역이 나누어져 있는 뉴욕은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길을 잃을 일은 거의 없다. 뉴욕 여행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교통수단이 될 수가 있다. 택시나 버스 지하철 등을 고려하여 자신에게 맞는 선택을 하는 것이 좋겠지만 많은 욕심을 내기보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지역을 우선순위에 놓고 그 지역에 집중하는 것도 방법이다. 편한 신발을 신고 무조건 걷자.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기까지 걸을 수 있다면 무조건 걷자. 걷다보면 예상하지 못한 볼거리들이 자주 발견된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목적 이상의 것을 더 많이 만나는 여행지가 뉴욕. 첫 날은 시티버스투어, 둘째 날부터는 걸으면서 만나기를 적극 추천한다. 거정들의 유명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장과 다양한 박물관만 계획하더라도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 밖에도 뉴욕 근교나 쇼핑을 계획한다면 다른 지역보다 치밀한 계획을 짜야지만 시간이나 경비를 절감할 수 있다. 공항이나 거리에서 쉽게 발견되는 도시 안내 책자에 나오는 쿠폰이나 각종 할인 혜택도 유심히 살피는 정성이 있다면 조금 더 편리하고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글, 사진 변종모

2017.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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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디렉터였다가 오래 여행자로 살고 있다. 지금도 여행자이며 미래도 여행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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