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논문…AI에 맡기고 계신가요?
AI가 글을 대신 써주는 시대, 인간의 뇌는 점점 덜 생각하게 된다. 하버드 연구진은 보고서·논문을 AI에 의존할수록 사고력과 사유 능력이 퇴화한다고 경고했다.
인공지능에게 빼앗긴 사유 능력
오늘날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고서나 논문 등의 글을 쓸 때 AI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 언스플래쉬 |
더 이상 사람이 글을 쓰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오늘날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고서나 논문 등의 글을 쓸 때 AI의 도움을 받거나 심각하면 대필수준으로 의존하는 경우가 왕왕 생기고 있다.
하버드대학교 학보인 하버드 가제트는 이러한 변화가 인간의 지적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했다. 신경학, 철학, 인지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교수진들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뇌 능력의 퇴화
신경학자 앨리스 플래허티는 우리가 글쓰기 등의 과제를 기계에 위임할 때마다 뇌의 능력 중 일부를 잃게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리의 뇌는 한정된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공간을 확보하려 드는데, 이때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정보나 기술이 삭제되기 때문이다. 이를 ‘인지적 절충(cognitive trade-off)’이라 한다.
구체적인 연구 사례로는 런던대학교의 엘리너 맥과이어 박사팀이 2000년에 런던 택시 기사를 상대로 한 연구가 있다.
이 연구는 런던 택시 기사들이 방대한 지리 시험인 '더 날리지(The Knowledge)'를 통과하는 과정이 뇌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MRI 스캔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기사들의 공간 기억을 담당하는 후부 해마의 회백질 용량은 일반인보다 유의미하게 부풀어 올랐지만, 새로운 정보 학습을 담당하는 전부 해마는 상대적으로 축소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즉, 이들의 뇌가 공간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잘 쓰지 않는 전부 해마를 비활성화시킨 것이다.
이에 관해 플래허티는 "AI가 적절한 형용사나 비유를 찾기 위해 일하는 우리의 뉴런들을 일하지 않게 만들 때, 그 빈 공간을 무엇이 채우게 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며,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여지까지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험 심리학자 조슈아 그린 역시 이 점에 동의하며, 학생들이 AI에게 사고를 맡길 때 '더 잘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래를 구상하고 실현하는 데 필요한 지적 기술을 습득하는 능력이 퇴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유 과정의 상실
전문가들은 글쓰기가 결과물이 아닌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철학자 수잔나 시겔은 인문학 에세이를 단순히 연구 질문에 대한 답으로 보는 시각을 비판했다.
완성된 에세이 뒤에는 얽히고설킨 탐구의 과정, 흥미롭지만 오점도 많은 질문, 한때는 관련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버려진 아이디어와 같은 '아름다운 혼란'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시겔은 이 혼란 속에서 '인식론적 진전'(epistemic progress)이 이루어진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AI가 최종 답안만 제시함으로써 학생들은 이러한 필수적인 투쟁과 발전의 과정을 경험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역사가 메리 루이스(Mary Lewis)도 이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녀는 "글쓰기는 사유로 이어진다"며, AI만을 사용할 경우 사유의 과정 자체를 잃게 된다고 단언했다.
AI는 본질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정보들을 재순환시키는 일종의 ‘폐쇄 회로’ 내에서 기능하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보면서, 이러한 영역이 잠식당할 것을 우려했다.
능동적 학습과 내재화 기회 박탈
한편, 인지 과학적 관점에서는 AI가 학생들을 수동적 학습의 덫에 빠뜨릴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시각 인지 컴퓨터 신경과학자 탈리아 콘클은 '테스트 효과(testing effect)'와 같은 인지 과학의 원리를 언급했다. 테스트 효과란, 단순히 읽거나 듣는 것보다 스스로 정보를 떠올리려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뇌를 자극해 기억을 더 오래 남게 한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만약 AI를 통해 사고 과정을 '단축'한다면 이는 우리의 뇌가 기억하고 내재화하는 능력에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었다.
학습목표 재설정하기
이러한 능력 상실의 위협은 결국 교육 시스템 자체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컴퓨터 과학자 레슬리 발리언트는 AI가 교육 개혁의 좋은 추진력이 되겠지만, 그 뿌리는 아니라고 보았다.
AI를 단순히 결과물을 얻기 위한 지름길로 사용하는 대신, 능동적 학습을 돕고 더 깊은 탐구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학습 목표를 재설정해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하동윤 기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