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진단 이후 내가 달라진 것들”

죽음을 19년간 연구해온 정현채 서울대 명예교수는 방광암 진단 이후 삶의 태도와 물건을 대하는 방식까지 근본적인 변화를 맞았다. 죽음 준비와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그의 통찰을 전한다.

‘죽음 권위자’ 정현채 교수의 통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이자 19년간 800회가 넘는 죽음 강의를 이어온 권위자 정현채 교수. 그가 유튜브 채널을 통해 통찰을 나눴다.  / 유튜브 '지식한상' 캡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이자 19년간 800회가 넘는 죽음 강의를 이어온 권위자 정현채 교수. 그가 유튜브 채널을 통해 통찰을 나눴다.  / 유튜브 '지식한상' 캡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이자 19년간 800회가 넘는 죽음 강의를 이어온 권위자 정현채 교수. 


2018년, 그에게 방광암 2기 판정이 내려졌다. 진단을 받은 뒤, 그의 사유는 죽음에 대한 이론적인 연구를 넘어 스스로의 투병이라는 현실에 맞닥뜨렸다.


정 교수는 자신의 사례를 통해 한국 사회의 '죽음 문화'가 성숙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달 유튜브 채널 ‘지식한상’에서 그가 나눈 통찰을 들어본다. 

죽음을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정 교수는 대다수 국민이 아파서 입원하기 전까지 수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죽음을 끔찍한 일로 외면하고 부정하는 자세 때문에, 막상 말기 암 진단을 받게 되면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 의료진 3자 모두가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 정 교수는 10여 년 전, 위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왔다가 복부 초음파 검사에서 뒤늦게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은 68세 남성 환자의 안타까운 사례를 들었다. 


가족들이 환자에게 '말기암' 사실을 절대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하는 바람에, 의료진은 수술이 잘 되었다는 거짓말을 계속해야 했다. 


결국 환자는 퇴원 후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계속 나빠졌고, 수술 후 한 달 만에 암이 전이되어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 


정현채 교수는 "한 달 정도면 중요한 사건을 마무리하고 가족들에게 인계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그런 걸 못 하고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으니 굉장히 안타까운 사례라고 할 수 있다"며, 평소에 죽음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현채 교수는 암을 극복한 후 자신의 삶의 태도를 바꾸고 지금 보다 충만한고 건강한 삶을 보내고 있다. 

정현채 교수는 암을 극복한 후 자신의 삶의 태도를 바꾸고 지금 보다 충만한고 건강한 삶을 보내고 있다. 

암을 부른 '스트레스', 삶의 태도를 바꾸다

한편, 암에 걸리면 사람들은 크게 두가지로 반응한다. 하나는 건강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자책감, 다른 하나는 원망이다. 


헌데 정 교수는 평소 건강 관리에 매우 철저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20년 가까이 혈압 및 콜레스테롤 조절을 해왔고, 10년에 걸쳐 누적 수영 거리가 3,500km에 달할 정도로 꾸준히 운동했다. 담배도 피우지 않았으며 2년마다 건강검진을 받았다. 이처럼 건강에 소홀히 하지 않았음에도 암에 걸린 원인으로, 정 교수는 40년간의 진료 현장에서 받은 과도한 스트레스를 꼽았다. 


암 진단 후 정 교수의 삶에는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무리하게 밤을 새워 일하는 것을 피하고, 해야 할 일이나 연락할 사람이 있으면 미루지 않고 바로 처리하게 되었다. 


특히 "좋은 것은 바로 쓴다"는 원칙을 실천하여, 과거 아껴두었던 좋은 와인부터 빨리 마시기 시작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라는 생각이 삶의 태도를 바꾼 것이다.

남을 사람들을 위한 정리

정 교수는 암 진단 후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정리를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사실 그는 암 진단 7~8년 전부터 연구실 자료 등을 미리 정리해 왔는데, 그 이유로 "뒤에 남는 사람들이 고생하지 않도록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리가 그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버리기 가장 어려웠던 것은 가족 사진과 아이들이 어렸을 때 찍은 사진 등 가족 앨범이었다. 정 교수는 이를 스캔하여 파일로 만들고 원본 사진들은 과감하게 버렸다.


또, 오래되고 낡은 것은 빨리 버리고, 명품 넥타이나 좋은 위스키 같은 새것 또는 새것과 다름없는 물건들은 누군가에게 주거나 바자회에 내놓았다. 


한편, 수십 년간 강의했던 자료와 슬라이드들을 모두 정리하고 그 세부 사연을 일일이 적어 서울대학교 병원 의학 역사 문화원에 기증하는 등 후배들을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암 진단 후 물건 소유에 대한 집착을 줄인 정 교수는 이제  ‘눈 아이쇼핑(눈으로 보고 즐기기)’을 주로 하며, "굳이 소유할 필요도 없고 눈으로 보고 즐기면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그는 물건에 대한 집착은 결국 죽음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며, "한 달 뒤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물건을 쌓아둘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암 환자에게 전하는 조언

정 교수는 암을 겪는 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인 것 같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그는 암 환자가 된 후, 청중들에게 자신의 투병 사실을 먼저 얘기하면서 오히려 죽음에 대한 강연에서 소통이 훨씬 쉬워지는 장점을 얻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환자들에게 "현대 의학이 추구하는 공인된 치료를 받으라"고 강력히 권했다. 


입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에 의지하다가 치료 시기를 놓치는 안타까운 사례가 많다며, 위급 상황에서 생쥐를 날로 먹는 대만 환자의 극단적인 예까지 들어 경고했다. 


정 교수 본인도 방광암 2기 진단 후, 인공 방광 설치를 포함한 의학 수술 및 항암 치료를 받았으며, 이후 특별한 음식을 골라 먹는 등의 별다른 대체 요법 없이 정기적인 검진만 받고 7년을 지내고 있다.


그러면서 끝으로 "과도한 스트레스가 암을 유발하는 것"임을 지적하며, 삶을 재정비하고 가족과 죽음에 대한 대화를 미리 나누며, 언젠가 올 끝을 준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동윤 기자
2025.12.1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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