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내 맘대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엄상익의 마음길따라 세월따라] (227) '울릉천국'에 사는 이장희

*출처=울릉천국 아트센터

*출처=울릉천국 아트센터

오십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다. 검은 교복을 벗고 같은 반 친구들이 처음으로 성인이 되는 파티를 했었다.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그 앞에서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움으로써 성인의 자유를 인정받는 순간이기도 했다.


파티의 격을 높인다고 우리들과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아마추어 가수를 초청했다. 머리가 장발인 청년이 통기타를 들고 왔다. 수북한 검은 콧수염이 입 양쪽에서 직각을 이루며 아래로 떨어져 있는 특이한 얼굴이었다. 마치 목에 매는 보타이를 코밑에 가져다 붙인 것 같아 보였다.


그 가수는 우리들을 보면서 어색해 하면서 어쩔줄을 모르는 눈치였다. 수줍어 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가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신기한 듯 쳐다보는 우리들의 눈길에 멋쩍어 하면서도 긴장한 모습이었다.


반장은 그의 이름이 ‘이장희’라고 소개했다. 우리들은 그런 가수가 있는지도 몰랐다. 칠십년대 초 대학생인 우리들은 통기타와 생맥주 그리고 청바지 문화에 휩쓸렸다. 우리들의 모임에 초대했던 그 가수는 여러 노래를 히트시키면서 톱가수가 되어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팬이었다.


세월의 강물이 흘렀다. 산속 계곡을 흐르는 물 한방울이었던 우리또래는 냇물을 따라 내리고 강이 되었다가 지금은 바다를 바라보는 넓은 강 하류에서 빙빙 돌면서 흘러온 물줄기를 돌아보는 시간이 됐다.


독도를 방문하고 이어서 울릉도에 묵었다. 차를 운전해 바다쪽에서 성인봉으로 올라가는 급경사 길을 올라갔다가 녹음이 우거진 수풀 속에서 빨간 페인트칠을 한 양철지붕의 소박한 단층집을 보았다. 그 집에서 문을 열고 자그마한 노인이 나와 햇빛이 내리쬐는 길 아래로 내려가는 옆모습이 보였다.


그가 칠십대 중반의 노인 가수 이장희인 것 같았다. 그 근처에 노가수의 개인 공연장과 까페가 있었다. 울릉도가 좋아 찾아왔다는 세르비아 여성 혼자 한가롭게 까페를 지키고 그 옆에는 얇은 팜플렛이 꽂혀 있었다.


가수 이장희의 삶과 생각이 담긴 간단한 수필같은 글이 들어있었다. 인기스타가 왜 노년에 귀양살이 같은 동해바다의 작은 섬에 와서 사는지를 설명하는 글 같았다. 그의 삶이 물감같이 풀어져 나오고 있었다. 

‘저는 쉰 여섯살 때 하고 있던 모든 일에서 손을 뗐습니다. 그리고 정말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기로 했습니다. 사업체는 물론 집까지 정리하고 천구백구십칠년경 울릉도에 와서 백년이 된 농가와 농토를 사서 정착했습니다. 꽃씨를 심어 화단을 가꾸고 바다로 흘러가는 샘물을 받아 연못을 만들었습니다.


젊어서는 순간순간 음악에 미쳐서 살았습니다. 감동하고 느낀 것 생각나는 것들을 가사로 썼습니다. 그리고 그 가사에 따라 흘러나오는 대로 곡을 붙였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선택입니다. 이름에 연연하고 살기보다는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았기 때문에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함께 산으로 캠핑을 떠나 텐트치고 별을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계곡물소리와 촘촘히 박힌 별빛에 둘러싸여 있을 때 가장 자유롭고 행복했었습니다.’

그는 소년 시절 품었던 낭만을 노년에 동해의 섬에서 꽃으로 피운 것 같았다. 그는 어린시절 뿐 아니라 인생의 짙은 어두움 속에서도 푸른 별빛을 보는 사람인 것 같았다.


내가 대학 시절이던 천구백칠십오년경 정권은 예술분야에도 철퇴를 가했다. 톱가수의 반열에 오른 그의 히트곡 대부분이 금지곡 목록에 올랐다. 가수가 노래를 빼앗기고 무대를 잃었던 것 같다.

◇ 가수 이장희가 제공한 울릉천국 일부 부지에 경상북도와 울릉군이 힘을 합쳐 세운 아트센터    *출처=엑스포츠뉴스

◇ 가수 이장희가 제공한 울릉천국 일부 부지에 경상북도와 울릉군이 힘을 합쳐 세운 아트센터    *출처=엑스포츠뉴스

그는 가수를 그만두고 옷도 팔고 음식점도 한 것 같았다. 노래와 음악을 빼앗긴 예술가의 고뇌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것들을 극복하고 칠십대 중반의 노인이 되어 울릉도의 산속에 자신의 작은 무대를 재건하고 울릉 천국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세월에도 권력에도 인기에도 구속되지 않는 그는 울릉도 산속의 신선이 된 것 같았다. 글 속에 그의 삶의 화두 같은 이런 말이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내 맘대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삶 그게 이장희다’

글 | 엄상익 변호사

경기중-고, 고려대 법대를 나오고 제24회 사법시험(1982)에 합격했다. 6공 때,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특별보좌관실에 근무하며 권부의 이면을 보았다. 변호사를 하면서 ‘대도 조세형’, ‘탈주범 신창원’ 등 사회 이목을 끌은 대형사건 피의자들을 변호했다. 글쓰기를 좋아해 월간조선을 비롯,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에 칼럼을 연재했고 수필집, 장편 소설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2022.09.0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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