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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20세기 미친 배우들의 이야기 '메소드'

알 파치노ㆍ로버트 드 니로 연기의 기원은?

by마음건강 길

메소드 연기를 확립한 스텔라 애들러 /에포크 제공, 연합

메소드 연기를 확립한 스텔라 애들러 /에포크 제공, 연합

어느 한 곳에 빠져드는 미치광이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들 중 일부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낸다. 패러다임을 바꾸고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세운다.


연극계에도 그런 이들이 있었다. 20세기 러시아 연극계를 대표했던 연출가 겸 배우 스타니슬랍스키가 대표적이다. 그와 그의 제자들은 미친 광인들처럼 연기라는 예술에 탐닉했다. 연극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예를 들면 이랬다.


첫 공연 막이 오르기 몇 시간 전, 배우 한 명이 쪽지 한장을 받는다. 쪽지에는 세 살배기 딸이 죽었다고 적혀 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아내를 혼자 둘 수 없다며 그는 황급히 떠난다. 도중 하차한 그 남자의 역할을 대신 맡은 볼레슬랍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그 배우를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그리고 (그 배우도) 스스로를 결코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 연극 연출가이자 평론가 아이작 버틀러가 쓴 '메소드'(원제: The Method)는 미치광이 연기 광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자신의 감정을 모두 캐릭터에 쏟아부은 배우들의 서사이자, 그들을 연기라는 깊은 우물로 데려간 악마의 연기술 '메소드'의 흥망을 차분히 돌아본 연구서이기도 하다.

스타니슬랍스키   /에포크· 위키커먼스 제공, 연합

스타니슬랍스키   /에포크· 위키커먼스 제공, 연합

메소드 연기를 확립한 러시아의 스타니슬랍스키와 그의 제자 볼레슬랍스키에서 시작하는 책은 미국에 이 연기법을 안착시킨 리 스트라스버그와 해럴드 클러먼, 그들을 계승한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등 무수히 많은 배우와 연출가를 조명하며 20세기 할리우드 주류 연기법으로 자리매김한 메소드의 비밀을 파헤친다.


메소드 연기의 기원은 스타니슬랍스키가 만든 새로운 연기법인 '시스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말까지 연극 연기는 전형적이었다. 웅변 실력을 과시하는 듯한 대사, 앞선 배우들이 했던 것에 대한 모방, 교과서에서 배울 수 있는 일련의 클리셰로 꽉 찼다. 요컨대 연기는 대개의 경우 기술적이어야 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천재들이 늘 그랬듯, 전통을 깨부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는 '페레지바니예', 즉 '경험하기'를 통해 연기를 새롭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페레지바니예는 배우가 배역의 실체와 깊게 연결되어 캐릭터가 처한 상상의 현실에 철저하게 녹아듦으로써 캐릭터가 느끼는 것을 느끼고, 캐릭터가 생각하는 바를 생각할 수 있을 때 발생한다.


이런 페레지바니예를 무대에서 구현하기 위해 스타니슬랍스키는 '시스템'이란 테크닉을 고안했다. 기억력처럼 정서적 인상을 저장하고 필요할 때 끄집어낼 수 있는 '정서기억', 배우가 실제 현실의 차원에서 자신이 창조하고 상상한 다른 삶의 차원으로 넘어가는 급진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감정 상태인 '매직 이프' 등 다양한 방법 등으로 이뤄진 연기 체계였다.


'시스템'에 기반한 스타니슬랍스키와 동료들의 연기는 혁명적이었다. 읊조리는 듯한 배우들의 연기는 뛰어난 무대장치, 기이한 리듬과 절제된 연출 스타일을 통해 관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들의 연기 속에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는 망작에서 걸작으로 변모했고, 체호프는 러시아 최고의 극작가로 등극했다.


스타니슬랍스키의 명성은 세계로 뻗어갔지만, 시대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제1차 세계대전, 러시아혁명이 잇달아 일어났다. 스타니슬랍스키 제자 중 일부는 미국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새로운 뿌리를 내렸다. 스타니슬랍스키의 '시스템'은 미국에서 '메소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영화 '기인들'에서 아서 밀러, 메릴린 먼로, 폴라 스트라스버그 /에포크 제공, 연합

영화 '기인들'에서 아서 밀러, 메릴린 먼로, 폴라 스트라스버그 /에포크 제공, 연합

메소드를 고안한 주인공은 리 스트라스버그, 스텔라 애들러 등 뉴욕 연극인이었다. 그들은 '그룹 씨어터'를 설립, 러시아의 '시스템'에 미국적인 뉘앙스를 접목해 '메소드'를 고안했다. 이 연기법은 할리우드로 건너가 말런 브랜도, 몽고메리 클리프트 등이 선보였고, 곧 할리우드를 장악해갔다. 특히 스텔라 애들러의 제자 로버트 드니로가 메소드를 각인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캐릭터와 관련된 인물을 사전에 인터뷰했고, 역할에 필요한 습관을 익혔다. 대본을 세밀하게 분석해 대사를 직접 쓰는 경우도 많았다. 근육을 키워 권투선수 몸을 만들었다가 은퇴 후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27㎏이나 체중을 불렸다. 드니로 이후 연기파 배우라면 모름지기 메소드 연기를 해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과장이 덧붙여지고, 메소드에 대한 다양한 조롱과 가십이 생성되며 메소드의 위상은 점차 추락했다. 배우의 일상을 침범하는 정서기억도 문제였다. 연기를 하며 배우들은 감정이 피폐해져 갔다.

"경험과 감정으로 가득 찬 아주 깊은 우물이 있어요. 그런데 그 우물을 확실하게 꽉 닫아둘 뚜껑이 있어야 해요. 필요할 때 뚜껑을 열고 우물 밑으로 내려갈 수 있어야 하지만, 뚜껑이 열린 채로 계속 둬서는 안 돼요. 그랬다가는 살아남지 못할 거예요. 우물 안에서 얻은 트라우마 때문에."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

책 표지 이미지   /에포크 제공, 연합

책 표지 이미지   /에포크 제공, 연합

힘겹고 부작용이 큰 메소드는 블록버스터 시대를 맞아 더는 각광받지 않는 한물간 연기법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시대를 관통한 연기자들의 질문과 고통이 메소드 안에 배어 있다.


특히 예술에 대한 끝없는 집착, 인생 경험을 정화한 다음 더 아름답고 의미 있게 변환시켜 관객에게 선보이고자 하는 마음, 무엇보다 삶을 무대에 올리려는 메소드 배우들의 집념은 여전한 울림을 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극장에서 인생을 발견할 수 없다면 연극을 만드는 일이 다 무슨 소용일까?"

윤철희 옮김. 704쪽.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