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은 밍밍하다?" 우리가 몰랐던 평양냉면 맛의 진실

보편적인 맛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평양냉면의 심심하고 밍밍함

미식 수준 평가하는 고난도 기준이 돼

그 육수에 맛을 더하기 위해 양념장이나 식초, 겨자 더하려고 하면

평양냉면 본연의 심심한 맛 즐길 줄 모른다는 지적을 받기도

세계일보

때 이른 초여름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더위를 식혀줄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이 생각나는 시기가 돌아왔다. 흔히 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담백하고 심심한 맛의 평양냉면을 단연 으뜸으로 꼽는다.


보통 평양냉면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혀에서 알아차릴 수 없는 ‘무미(無味)’에 가까운 육수에 당황하게 된다. 향과 감칠맛도 거의 없는 음식이다 보니 미각의 즐거움을 어디서 느껴야 할지 난감하기도 하다.


오히려 보편적인 맛의 기준을 한참 벗어나는 평양냉면의 심심하고 밍밍함은 곧 미식 수준을 평가하는 고난도의 기준이 됐다. 그 육수에 ‘맛’을 더하기 위해 양념장이나 식초, 겨자를 더하려고 하면 평양냉면 본연의 심심한 맛을 즐길 줄 모른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2018년 4월 초,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한 달 앞서 걸그룹 등의 남한 측 예술단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평냉부심’을 산산이 깨트리는 일이 발생했다. 우리 예술단이 평양 옥류관에서 평양냉면을 먹던 당시, 옥류관 직원이 평양냉면에는 양념장과 겨자를 듬뿍 넣어 먹으면 더 맛있다고 안내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매콤한 양념장과 식초, 겨자가 별도 제공되었다는 사실도 알려지며 우리가 알던 정통 평양냉면 맛에 대한 논쟁이 시작됐다.

정통 평양냉면 맛에 대한 논쟁 불붙어

역사적으로 ‘냉면’이라는 단어는 조선 중기에 나온 문집에 실린 시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후 실학자 정약용은 ‘다산시문집’에서 냉면을 언급하는데, 시에는 평양식 냉면문화로 ‘선주후면’, ‘어북쟁반’과 함께 ‘동치미 국물에만 평양식 냉면’이 등장한다.


더 나아가 1894년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는 세시풍속집 ‘동국세시기’(홍석모)에는 “메밀국수를 무김치, 배추김치 국물에 말고 돼지고기와 섞을 것은 냉면이라 한다. (생략) 관서 지방의 냉면이 가장 맛이 있다”라고 언급하며 관서 지방(평양) 냉면이 현재의 것과는 다른 맛일 거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이렇듯 본래 평양냉면은 우리가 현재 아는 심심한 맛이 아닌 새콤한 동치미 국물에 메밀국수를 말아 즐기는 겨울 음식이었다. 현재 우리가 정통이라 생각하는 평양냉면의 그 맛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맛의 평양냉면은 6.25 전쟁 이후 북한에서 온 실향민들이 서울에 냉면집을 열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서울에서 냉면은 여름에 즐기는 별미 음식으로 여겨졌다. 문제는 날씨의 차이었다. 북쪽 지방은 사시사철 춥기 때문에 동치미 국물을 항시 조달할 수 있던 반면, 서울의 무더운 여름에 동치미 맛의 균일도나 신선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당시 부족한 냉장 기술로 인해 평양냉면의 동치미 육수는 지역 사정에 맞춰 고기를 우려낸 육수로 대체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가 알고 있는 ‘서울식 평양냉면’이 탄생하게 됐다.

‘서울식 평양냉면’ 언제 탄생했나?

서울식 평양냉면은 원조 맛은 아닐지라도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고향의 음식이자, 남쪽 사람들에게는 여름에 시원하게 즐기는 별미 음식으로 빠르게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짜 평양냉면의 맛을 볼 수 없는 것일까? 다행히 아직 원조 평양냉면의 레시피로 정통의 맛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남포면옥’은 사시사철 동치미 국물을 고집하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실제로 남포면옥에 다다르면 줄지어 서 있는 동치미 항아리가 눈에 띈다. 냉면 한 그릇 주문해 맛을 보면 동치미 국물 특유의 시원하고 새콤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고기 육수를 배합한 육수라지만 고기의 향이 강하지 않아 깔끔한 맛을 자랑한다.


최근에는 동치미 육수를 부활시킨 신흥 평양냉면집들도 등장하고 있다. 2012년 문을 연 능라밥상은 새터민 이애란 씨가 운영하는 곳이다. 그는 탈북 여성 최초로 이화여대 식품영양학 박사를 취득하고 현재 북한전통음식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애란 씨에 의하면 본래 평양냉면은 동치미 국물이 30% 들어가야 하고 동치미 국물이 간을 더하는 역할을 하니 ‘심심하다’라는 말도 알맞지 않다고 한다.


반면 굳이 을지로까지 가지 않아도 집에서 손쉽게 원조 평양냉면 맛을 볼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이미 연구개발 단계부터 꼼꼼한 고증을 통해 서울식 평양냉면이 아닌 정통 평양냉면의 맛을 구현한 냉장 가정간편식 냉면 제품이 있기 때문이다.


풀무원은 지난 2002년 동치미를 주재료로 쇠고기와 닭고기를 우려낸 육수로 담백하고 진한 국물 맛을 내는 ‘생가득 평양물냉면’을 국내 식품업계 최초로 출시했다. 당시에도 여전히 평양냉면은 심심한 맛이 정통이라 여겨졌지만, 풀무원은 정통 평양냉면의 맛을 구현하기 위해 실제 평양 사람들이 어떤 맛의 평양냉면을 먹었을지에 집중했다. 수많은 문헌들을 고증한 끝에 평양냉면의 육수는 동치미를 주재료로 하는 것임을 알아냈고, 이는 과거에도 서민들을 위한 음식으로 통용된 냉면에 고기 육수를 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과 일맥상통했다. 여기에 메밀가루를 기본으로 도토리가루와 고구마 전분을 더한 쫄깃하고 구수한 생면으로 정통의 맛을 극대화했다. 풀무원 최근 동치미 국물을 강조한 신제품도 내놓았다. 바로 겨울동치미물냉면이다. 이 제품은 말 그대로 여름에 시원하고 상큼한 맛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새로 개발한 냉면이다. 또 풀무원이 개발한 복합 김치 유산균 ‘씨앗’ 유산을 첨가해 시원한 감칠맛을 더했다.

"냉면=서민음식?"…의외로 높은 가격대 형성

닐슨코리아 자료에 따르면 국내 간편식 냉면 시장 규모는 2019년 12월 기준 연 584억원 규모를 형성하며 매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수많은 냉면 전문점들이 있음에도 간편식 냉면 제품이 성장하는 배경에는 외식으로 즐기는 냉면이 서민음식이라고 하기엔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간편식 냉면은 2인분 기준 5000~6000원대로 구매할 수 있어 외식 냉면 대비 저렴하다. 매년 여름이 빨리 찾아오며 더위를 식히기 위해 냉면을 찾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것도 성장의 이유 중 하나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평양냉면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도 했다. 2018년 5월, 간편식 형태의 가정용 냉면 전체 매출은 전년 대비 10.4%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에 냉면 매출이 미미하던 편의점에서의 반응이 매우 뜨거워 전년 대비 290.8% 매출 성장세를 보이기도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냉면 맛집 대신, 집에서 간편하게 시원한 냉면을 즐기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며 가정용 냉면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며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원조 평양냉면 맛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면서 평양냉면 초보자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동치미 육수 베이스의 정통 평양냉면을 찾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올여름, 집 밖에서도 집 안에서도 누구나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진짜 평양냉면의 맛을 즐기며 무더위를 이겨보는 건 어떨까? 새콤하고 시원한 냉면 육수를 들이켜는 순간, 더위와 함께 피로까지 다 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2020.07.1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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