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 케이크·딤섬·할머니 열무비빔밥… ‘맛있는 감동’
안젤라의 푸드트립
신선한 대광어 쌓아올린
회 케이크로 잊지못할 생일파티
육즙 팡팡 ‘딤섬’ 음식 탐구심 심어줘
열무김치에 고추장 쓱쓱싹싹 ‘그리움의 맛’
음식은 가장 주관적이면서 상대적인 평가가 이루어지는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음식을 짜게 먹어온 사람은 무슨 음식을 먹어도 심심하다고 말하고, 외식을 많이 해온 사람은 식당에서 사용하는 조미료가 들어가줘야 2%의 부족한 맛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가장 맛있는 밥은 ‘엄마가 해준 밥’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모든 맛은 과거의 경험과 추억을 거쳐 내 머릿속에서 정의되기 때문에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하지만 감동을 주는 음식들은 따로 있다. 안젤라의 마흔여덟번째 푸드트립은 미식가를 감동시킨 음식들이다.
생일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회 케이크
회 케이크 |
감사하게도 내 생일은 벚꽃이 만개하는 4월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매년 생일 때가 되면 “널 낳고 병원에서 나왔을 때 화려한 꽃들과 온 세상이 널 맞이해주는 것 같았다”며 그날의 감동을 전해주신다. 어떤 사람은 생일이 뭐 중요하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도 하지만, 그때만큼은 나의 존재감을 다시 생각해보고 자존감을 끌어올릴 수 있는 고마운 날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온라인 서비스가 좋아져서 지인들의 생일 알림이 매일 화면에 뜬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알림을 보고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는데 생각지도 않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으니 괜히 으쓱해진다. 평소에는 연락을 잘 하지 못했지만 이참에 안부도 묻고,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인간관계가 회복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생일 파티 해줄게, 시간 비워놓아’라는 문자를 보낸 친구를 따라 파티 장소를 찾아갔다. 대단히 화려한 곳은 아니지만 술을 마음껏 가지고 올 수 있는 횟집이다. 화이트 와인 한 병과 도다리 세꼬시를 즐기고 난 뒤 화장실을 다녀오니 친구가 생일 케이크를 꺼내고 있다. 분명히 케이크 상자인데 자세히 보니 신선한 대광어를 곱게 회를 떠서 한 점씩 올린 ‘회 케이크’다. 속은 실처럼 손질된 무채로 채워져 있고, 회 케이크 중간에는 금가루가 뿌려져 있는 주황색 연어와 나뭇잎 모양의 고추냉이가 있다. ‘오늘회’라는 해산물 전문 배달 회사에서 기획한 상품인데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고, 특별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최고의 인생 케이크였다. 취향을 정확히 파악한 친구의 선택은 감동 그 자체. 회 케이크 위에 흔들리고 있는 촛불이라니! 잊지 못할 생일이다.
내 마음에 점을 찍은 딤섬
딤섬 |
중식을 좋아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어릴 적부터 새해는 매년 딤섬을 먹으며 맞이했다. 특히 샤오룽바오를 좋아했는데, 먹는 방법을 몰라서 입천장을 여러 차례 데이고 육즙을 무릎에 줄줄 흘려가며 먹었다. 그때만 해도 얇은 피 안에 고기 육즙이 찰랑찰랑하게 담겨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만두를 빚은 뒤에 주사기를 꼽아서 육즙을 넣었을까. 아니면 애초에 국물까지 만두피 안에 가둬서 묶었을까.
호기심이 많은지라 오픈형 주방의 딤섬집을 찾아 한참을 관찰했는데, 그 비법은 너무나 신선했다. 육즙에 젤라틴이나 한천을 섞어 육즙 젤리로 응고시킨 뒤에, 만두피 안에 넣어 찌면 찜 열기에 의해 다시 액체가 되어 육즙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이때 ‘음식은 역시 알고 먹으면 더 맛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음식에 대한 탐구심과 애정을 갖기 시작했다. 딤섬(點心)은 한자로 작고 동그란 점(點)과 마음(心)이 더해진 말이다. 한마디로 내 마음에 점을 찍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따뜻한 차에 곁들여 먹는 주전부리 중 하나일 뿐이었지만, 속 재료에 새우, 돼지고기, 소고기, 랍스타, 게살 등 좋은 식재료를 넣어가며 딤섬의 가치는 더욱 더 올라갔고 딤섬을 먹기 위해 차를 마시며 주객전도가 이루어졌다.
한입에 털어넣을 수 있는 작은 사이즈라 여러 종류를 시켜 골라먹는 재미를 누릴 수 있는데, 개수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나눠 먹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생각하게 된다. 특히 마지막으로 남은 딤섬 한 점은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는 선물이다. “마지막은 너꺼야”
할머니가 그리워지는 열무비빔밥
이 일을 하다 보면 혼자 밥 먹을 일이 많다. 은근히 소심한 면도 있고, 사람을 만났을 때 에너지를 많이 쏟는 편이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날씨가 좋아져 한강 구경도 가고 주변에 맛집을 찾아보고 싶어 뚝섬유원지역으로 갔다. 뚝섬 한강공원을 여유롭게 거닌 뒤에 골목 사이사이로 걸어가 보았는데, 특별히 눈에 띄는 곳이나 유명한 곳은 없었다. 그러다 부동산중개업소 사이에 껴있는 한 식당이 눈에 들어왔는데 ‘엄마의 밥상, 보현식당’이다. 메뉴판을 보니 삼겹살, 가브리살 등이 주메뉴이고, 김치말이국수, 열무비빔밥 등이 식사 메뉴로 있는데 ‘엄마의 밥상’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열무비빔밥이 대단히 맛있을 것 같아 주문을 했다. 역시 큼지막한 뚝배기에 보리밥이 그릇의 반을 채웠고, 그 위에 잘 익은 열무김치와 무생채, 시금치, 콩나물무침을 양껏 올렸다. 매운맛을 좋아해 직접 만든 고추비빔장을 꽉 눌러 거침없이 비비기 시작했다. 생동감이 있었다. 특히 열무김치를 아삭아삭 씹으니 새콤하고 시원한 단맛이 올라왔다. 침샘을 자극했고, 입맛이 오르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두툼한 손으로 비벼줬던 그 비빔밥이 생각났다. 분명 혼자 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내 앞에 할머니가 함께 계신 것 같았다. 보고 싶다.
김유경 푸드디렉터 foodie.angel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