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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부르고뉴, 잔 다르크를 죽음으로 내몰다 [명욱의 술 인문학]

by세계일보

백년전쟁 술이야기(중)

세계일보

부르고뉴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 로마네 콩티가 생산되는 곳으로, 백년전쟁에서 프랑스 국민 영웅인 잔 다르크가 영국에서 화형당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곳이기도 하다. 그림은 쥘 외젠 르느뵈가 그린 잔 다르크.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이 있다. 프랑스 중동부 지역에 있는 부르고뉴(Bourgogne) 지역의 로마네 콩티(Romanee Conti)다. 2019년에는 2013년 빈티지 제품이 3800만원에 거래됐다. 이 로마네 콩티 외에도 이 지역의 와인은 늘 ‘고급스러움’이 따라붙는다. 이유는 무엇일까?


부르고뉴와 대비되는 프랑스 내 와인 산지가 보르도(Bordeaux)다. 백년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영국령에 속해 있으면서, 이곳에서 만들어진 와인은 꾸준히 영국으로 수출됐다. 그렇다 보니 보르도 와인은 대량 생산되고 규격화됐다. 와이너리가 소유한 포도밭도 굉장히 넓어 와인 업계 대기업들이 많다.


반면 부르고뉴 지역 와이너리는 대부분 작은 밭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래서 수제 느낌이 강하다. 게다가 제조 수량도 많지 않아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포도 품종도 레드 와인은 피노 누아(Pinot Noir), 화이트 와인은 샤르도네(Chardonnay)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즉, 유사품을 만들기도 어려운 환경이다. 그래서 프랑스 대표 고급 와인 산지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이 부르고뉴 지역은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를 배신한 곳이다. 이곳을 통치하던 부르고뉴 공국이 바로 주적인 영국 편에 섰던 것. 그것도 백년전쟁 영웅인 잔 다르크를 사로잡아 영국에 팔아넘겨 그를 화형에 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부르고뉴 공국은 프랑스 왕 샤를 6세와의 마찰로 영국과 손잡고 알자스로렌(Alsace-Lorraine) 지방에 속한 동레미(Domremy)란 마을을 침범한다. 이곳은 잔 다르크의 고향으로, 이 전쟁으로 그와의 악연이 시작된다.


이후 잔 다르크는 16세에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목소리를 듣고, 2년 동안 오를레앙 성을 포위한 영국군을 무찌르며 랭스(Reims) 지역 등을 탈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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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랭스가 바로 샴페인으로 유명한 샹파뉴(Champagne) 지역이다. 이곳은 프랑스 왕 대관식을 진행하는 랭스 대성당(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곳. 도팽(왕세자 직위) 샤를이 즉위식을 통해 샤를 7세가 된 곳도 이곳이다. 그래서 이곳을 ‘대관의 도시(La Cite Des Sacres)’ 또는 ‘왕들의 도시(La Cite Des Rois)’라고도 불린다. 이곳의 술 샴페인이 축제와 파티의 이미지를 품고 있는 이유에 대해 행사를 진행했던 도시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잔 다르크는 여러 차례에 걸쳐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이를 통해 샤를 7세가 프랑스 국왕으로서 대관식을 치를 수 있게 도와준다. 하지만 그의 인기가 너무도 커 샤를 7세와 귀족들은 그를 견제한다. 결국 왕실의 지원이 끊어진 상태에서 전투에 나간 그는 부르고뉴 군에게 사로잡힌다. 부르고뉴는 프랑스 왕실에 몸값을 내고 잔 다르크를 데려가라고 하지만 프랑스 왕실은 애매한 태도로 일관했다. 단물은 다 빼먹었다는 생각이었다. 시간이 지체되자 부르고뉴는 잔 다르크를 영국에 팔아버린다.


이후 영국과 부르고뉴가 주축이 된 재판에서 그는 마녀로 선고받고 화형을 당한다. 그를 죽음으로 몬 것은 부르고뉴였지만, 실질적으로 그를 죽인 것은 바로 프랑스 왕실이었다. 한마디로 토사구팽이 된 것. 임진왜란 시절, 이순신 장군을 질투한 선조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명옥 주류문화칼럼니스트&교수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객원교수.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