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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김한들의 그림 아로새기기

봄이 손에 잡힐 듯… 꽃이 만발한 ‘신들의 정원’

by세계일보

(53) 봄의 알레고리, ‘프리마베라’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 화가 보티첼리

섬세하고 화려한 묘사법 스승에 배워

메디치 가문 후원에 폭넓은 작품 활동

대표적 작품 ‘봄’, 종교 주제서 벗어나

신화 속 인물 등장시켜 회화 폭 넓혀

원근법 아닌 부드럽고 유연하게 표현

‘사랑의 여신’ 비너스·헤르메스 등 나와

140여종의 과일·꽃, 템페라 기법 그려

세계일보

‘봄’의 전시 전경. 피렌체 우피치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봄(Primavera)’(1480). 필자 제공

#폭설과 함께한 3월의 첫날


잊지 못할 3월의 첫날이었다. 봄의 시작처럼 여기는 날이지만 강원도에는 폭설이 왔다. 90㎝에 다다른 눈에 사고와 고립이 속출했다. 강원도를 오가는 익숙한 고속도로에서는 교통사고 수십 건이 발생했다. 뉴스에 자료화면이 나왔는데 온통 흰색이라 어딘지 파악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오고 있었나 보다. 며칠 사이 기온은 체감할 정도로 확연히 올랐다. 따듯한 날씨에 드디어 코트 세탁도 맡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반가운 봄의 초입에는 떠오르는 그림들이 있다. 앞선 연재에서 소개한 정선의 ‘파교설후도(䃻橋雪後圖)’, 전기의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 등이다. 눈을 이기고 피어난 매화를 만나는 그림들은 새 계절을 실감케 한다. 그 기분을 느끼려 매년, 이맘때마다 꺼내어 보는 이유다. 그리고 서양 화가가 그린 작품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시대의 화가인 보티첼리의 ‘봄’이다.


#르네상스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4/45~1510)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다. 본명은 알레산드로 이 마리아노 필리페피(Alessandro di Mariano Filipepi)이며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기독교의 성지인 로마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피렌체는 커다란 발전을 이룩한 도시였다. 사람이 오갔기에 시장이 성장하였고 막강한 경제력을 가진 부자가 많았다. 문화를 위한 지원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고 보티첼리는 그 안에서 자랐다.


보티첼리는 개인적인 삶에 대해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림과 관련하여서는 프라 필리포 리피의 제자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리피는 네덜란드식 세부묘사를 본인 그림에 적용했는데, 이러한 섬세하고 화려한 표현이 보티첼리에게도 보인다. 리피가 피렌체를 떠난 이후에는 안토니오 폴라이월로,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와 함께 작업했다. 인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이들을 보며 대상을 조각적으로 접근하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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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달리 원근법을 적용한 보티첼리의 작품. 주제 면에서도 ‘봄’과 달리 전형적인 기독교적 주제를 다뤘다. ‘수태고지(The Annunciation)’(1485~92)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제공

1470년에 자기만의 공방을 차리며 보티첼리의 작품세계는 시작했다. 곧 그 뛰어난 실력이 알려져 든든한 후원자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르네상스를 꽃피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메디치 가문이었다. 메디치 가문은 1400년대부터 1600년대까지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는 물론 경제의 지배자였는데 이들은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뛰어난 예술가들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으며 보티첼리는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다. 메디치 가문 일원의 초상화를 비롯해 역사화와 종교화, 신화화 등을 그렸다. 이 시기에 그린 메디치 가문의 청년 그림은 최근 1000억원대에 팔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보티첼리의 명성은 점점 더 널리 알려졌고 1481년에는 교황이 초청의 메시지를 보냈다. 바티칸의 시스티나 예배당 벽화를 의뢰받아 그곳에 머물며 작업했다.


로마에서 피렌체로 돌아온 이후 그는 원숙기를 전개했다. 대형 프로젝트를 완성한 후에 자신감이 붙어 자기만의 표현기술과 이야기 전개를 얻은 듯하다. 사실 묘사에 집중했던 것을 넘어서는 작품세계를 만들었다. 미술에 관심 없는 이들도 알고 있을 ‘비너스의 탄생’(1485)도 이때 탄생한 그림이다. ‘성 모자와 두 성 요한’(1485), ‘메라그라나의 성모’(1487) 등의 작품들도 같은 시기에 그려졌다.


1491년 무탈하게 이어지던 작가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 사보나롤라가 성 마르코수도원 원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다. 그는 메디치가의 이교주의적 정책 등을 공격하며 새로운 공화정을 주창했다. 메디치가의 내막을 알았던 것인지 보티첼리는 이 도전적인 설교에 공감했다. 하지만 사보나롤라는 개혁에 성공하지 못하고 공개처형을 당했다. 보티첼리는 절망하였으며 삶과 작업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최초의 미술사가 중 한 명인 바사리는 그의 말년이 비참했다고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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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세부. 작품을 마주하면 섬세한 묘사에 감탄한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템페라 기법을 사용해 여러 층으로 완성한 부분들이 모두 놀랍다.

#봄의 알레고리, 프리마베라


봄이 되면 떠오르는 보티첼리의 그림은 ‘봄(Primavera)’(1480)이다. 15세기에 그려진 이 그림은 당시 주류를 이루던 종교 주제의 회화에서 벗어나 있다. 대신 고대신화 속 인물들을 등장시켜 르네상스 회화의 폭을 넓혔다. 이와 어울리게 그 시대의 주된 관심이었던 원근법에서 벗어난 구도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그려낸 보티첼리의 선은 어느 때보다 부드럽고 유연하게 화면 전체를 채운다.


3m를 훌쩍 넘는 대형 화면의 가운데 한 여인이 있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그 위를 붉은색 숄이 둘렀다. 손의 움직임에서 풍기는 기품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세 명의 인물은 그 앞에서 손을 높이 올려 잡고 춤을 춘다. 오른쪽을 보면 또 다른 여인이 꽃으로 몸을 감싼 채 걸어온다. 이 여인 곁에는 한 인물이 있는데 그를 잡으려는 이가 있다. 왼편으로 눈을 돌리면 칼을 찬 남성이 막대기로 오렌지를 따려 한다. 큐피드는 눈을 가린 채 이 모든 상황의 위에서 화살을 겨눈다.


그림을 묘사한 순서대로 인물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화면 한가운데 있는 여인은 사랑의 여신 비너스다. 춤추며 그 앞을 지키는 인물들은 비너스의 세 시녀 삼미신(三美神)이다. 오른쪽에서 걸어오는 인물은 꽃을 상징하는 플로라다. 바로 옆에는 요정 클로리가 플로라로 변하는 장면이 있다. 왼쪽에서 오렌지를 따고 있는 인물은 소식을 전해주는 헤르메스다. 큐피드는 타깃을 정하지도 않고 화살을 겨눈다. 그렇게 우연히 또는 운명처럼 사랑은 시작하는 법이다.


15세기에 그려진 이 작품은 위대한 자 로렌조 사촌의 집에서 소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귀족적인 분위기로 꾸며진 르네상스시대의 집 침대머리 장식 위에 있었다. 이후 여름 별장인 카스텔로 빌라에 옮겨진 뒤 사람들에게 존재가 알려졌다. 발견 당시 ‘비너스의 탄생’과 나란히 걸려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작품이 걸려 있는 우피치 미술관도 두 작품을 가까운 곳에 설치했다.


작품에 관해서는 다양한 배경 이야기가 전해진다. 비너스가 등장하는 만큼 대부분 사랑과 관련한다. 그리고 수백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명확한 내용은 하나다. 바로 그림이 사랑과 평화, 그리고 풍요를 축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면 안에는 140여종의 과일과 꽃이 겹겹의 템페라로 섬세히 그려졌다. 보티첼리는 한층 한층 마르는 시간을 기다리며 찬미의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봄이 여기에 있다.


김한들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