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신종근의 'K-리큐르' 이야기…신선이 마신 술, 신선주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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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최치원 영정 부산박물관 소장. 현존 최고 (最古)최치원 영정으로 1793년 경남 하동군 쌍계사에서 제작, 경주 최씨 문중 소장품. 경남시도 유형문화재 제187호

신선은 중국의 신선 사상과 도교에서 이상적인 인간으로 인간계를 떠나 산속에 살며, 선도(仙道)를 닦아 도통한 자를 말한다. 신선은 도술을 부리고, 장생불사하고 중국, 한국, 일본 등 도교 문화권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원래는 신과 동급의 존재였지만 도교사상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영향을 받아 보통 사람도 수행을 쌓으면 닿을 수 있는 경지로 설정됐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신비의 땅으로 생각해서 신선이 많다고 생각해 불로장생 약초도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 도교가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다. 삼국의 곳곳에서 도교의 문화를 볼 수가 있다.


신라의 화랑도 도교적인 성격이 있었기에 각지를 돌아다니며 수련하는 화랑을 신선과 동일시했고 화랑의 1인자를 국선(國仙)이라 불렀다.


또한 신라 말기의 학자인 최치원이 신선이 됐다는 전설도 있다.


우리나라 국민은 지금 시대에 별 인식이 없어서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현재에도 민간 신앙적인 요소가 많은 도교 문화가 곳곳에 있다.


예를 들면 유두날 창포를 사용한다던가, 옥황상제나 삼신할매도 모두 도교의 영향이다.

◇ 1천여년 전 마셨던 신선주의 복원

통일신라의 재상 고운 최치원이 약 1천년 전에 청주 상당구 미원면 계원리에 있는 신선봉에 후운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친구들과 마셨다는 전설의 술 신선주가 지금도 있다. 1994년에 충북 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된 후 현재는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88호 박준미 명인이 전승한 청주 신선주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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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신선주 사진 출처 : 홈페이지

신선주는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계원리에 있는 함양 박씨 옥계공파 종갓집에서 대를 이어 만들어온 가양주다. 박준미 명인의 함양 박씨 가문은 박 명인의 1대조가 관찰사로 부임한 이곳에 터를 잡은 1449년 이후 지역의 명문 양반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렇기에 많은 손님이 집에 왔을 것이고 그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서는 술이 필요했다.


그래서 집안에서는 대대로 이어져 온 신선주를 빚게 됐고 이 술은 몇백년을 이어 집안의 문화로 내려오게 됐다. 중간의 금주령도 잘 넘기며 살아남은 신선주는 일제강점기 주세법에 의해 결국은 빚을 수 없게 됐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안타깝게 생각한 박준미 명인의 조부 박래순 옹은 언젠가 다시 신선주가 빛을 볼 날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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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시문합집 청주시 제공

박 옹은 '현암시문합집'(玄庵詩文合集)이라는 책을 쓰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싣기도 했다.


'신선주는 백발을 검게 변화시키고 노쇠를 돌려 소년으로 환원시켜 연년익수(延年益壽)하게 한다. 옛날 최치원 선생이 신선봉 아래에 암자를 짓고 친구들과 신선주를 마셨다는 전설이 있다. 그 후로 신선봉 아래에서 여러 선비들이 모여 신선주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이것을 후세 사람들에게 두루 알리고자 한다.'


박 옹은 또한 이 책에 신선주의 비법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이후 세월이 한참 흐르고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을 계기로 잊힌 우리 술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복원사업이 진행됐다. 박준미 명인의 부친인 박남희 옹이 아버지 박래순 옹이 남긴 비법으로 신선주를 복원했다.


이렇게 해서 신선주는 1994년에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4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복원을 이뤄내고 무형문화재로 선정됐다 해도 상업화는 별개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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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주를 빚고 있는 기능보유자 박남희 옹(왼쪽)과 딸 박준미 명인 청주시 제공

아직은 우리 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시기였기에 사업은 힘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1999년에 신선주 제조면허를 반납해야만 했다.


박남희 옹의 7녀2남중 여섯째였던 박준미 명인은 당시 인테리어 사업을 하며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이해했던지라 사업을 접고 2010년에 청주에 '현암재'(玄庵齋)라는 신선주 연구소를 설립했다. 본격적으로 아버지에게 신선주 제조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2018년 9월에 사업 면허를 신청하고 무형문화재 전수자 자격도 취득하며 본격적으로 신선주 사업을 시작했다. 20여 년 만에 결국 신선주를 부활시킨 것이다.


신선주가 다시 세상에 나온 모습을 본 부친 박남희 옹은 몇 개월 후 세상을 떠났다. 박준미 명인은 2020년에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88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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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주 제조 과정 시연하는 박준미 명인 (청주=연합뉴스) 천경환 기자 = 신선주 기능전수자인 박준미(54) 명인이 15일 청주시 상당구 양조장에서 전통주 제작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2022.9.16 kw@yna.co.kr (끝)

신선주를 만드는 방법은 통밀을 가루로 만들어 물과 혼합해 누룩을 빚어야 하는 과정이 필수다. 그런 다음 깨끗한 볏짚을 이용한 방석으로 싸서 30도 정도로 발효시켜 분쇄해 사용한다.


감국화와 지골피를 물에 삶아 달인 다음 술 담그는 물로 사용한다. 그 후 생약재인 우슬, 하수오 가루, 구기자, 천문동, 백문동, 생지황, 숙지황, 인삼, 당귀와 육계를 가루로 만들어 찹쌀과 누룩을 섞고 감국화, 지골피를 달인 물로 보통 술보다 조금 되게 담근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선주는 30도 상온에서 7일 발효한다. 이것을 다시 25도의 상온에서 7일 정도 두면 익는다. 이후 청주를 떠내거나 증류주로 만들어 음용한다.


박 명인은 현재의 첨단 기술과 전통 기술을 접목해 우리나라 전통주 주질을 위해 연구와 개발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현재 신선주는 12도 탁주와 16도 약주 그리고 42도, 52도 증류주 등 총 4종류가 있다.


그 외 농촌진흥청 생쌀 발효 기술과 신선주의 전통 기술을 접목한 저도수 22도의 대중 증류주 '신의 한 술'을 새롭게 출시했고, 쌀의 자연당으로 맛을 낸 6도짜리 신선주막걸리도 새롭게 출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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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주와 신의 한술 사진 출처 : 홈페이지

박준미 명인의 아들 이경민(전 대경대 교수) 씨가 신선주 전수자로 지정돼 전승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박 명인의 딸인 지연씨도 현재 신선주 비법 전수를 하고 있다.


신라시대부터 이어 내려온 신선주는 현재에 와서 이렇게 20대째 계승되고 있으며 이후에도 자자손손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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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재배하는 벼 살피는 박준미 명인 (청주=연합뉴스) 천경환 기자 = 신선주 기능전수자인 박준미(54) 명인이 15일 청주시 상당구 양조장 인근에서 직접 재배하는 벼를 살펴보고 있다. 2022.9.16 kw@yna.co.kr (끝)

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 전시기획자 ▲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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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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