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기름 냄새 맡으며 시장 구경하기...성남 모란민속오일장 기름 골목

성남 모란민속오일장은 매달 4·9일이면 새벽부터 활기를 띠는 수도권 최대 장터다. 시장 입구의 ‘기름 골목’에서는 갓 볶고 짠 고소한 향이 가득하고, 다양한 먹거리와 구경거리로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경기 성남의 모란민속오일장은 수도권 최대의 오일장이다. 매달 4·9일이면 모란역 5번 출구부터 상설시장까지 새벽 인파와 좌판으로 들끓는다. 입구의 ‘백년기름특화거리’는 300m에 40여 개 기름집이 줄지어 서 있다. 들어서자마자 방금 볶고 짠 구수한 기름 냄새가 코를 찌른다. 칼국수, 수구레국밥 장터 먹거리를 맛보는 일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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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오일장 입구

경기 성남시 모란민속오일장은 수도권에서 가장 큰 장터 중 하나다. 매월 끝자리가 4·9일인 날에 열린다. 장이 서는 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지하철 8호선 모란역 5번 출구가 붐빈다. 새벽부터 상인들이 모여 농수산물, 건어물, 약초, 공구, 의류, 생활잡화까지 줄줄이 좌판을 늘어놓는다. 


평소에도 상설시장 골목은 활기가 넘치지만, 장날엔 시장 전체가 커다란 축제처럼 달아오른다. 주차장도 오일장이 서는 날에는 공터에 천막 지붕이 생기고 좌판이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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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채소들

모란시장은 1980년대 서울 근교에서 거의 유일하게 개설되는 정기 시장이었다. 모란시장이 처음 선 것은 1961년쯤으로 알려진다. 당시 평양이 고향인 예비역 육군 대령 김창숙 씨가 재향 군인들과 함께 지금의 모란장터(당시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탄리)에서 하천 개간 사업을 하면서 장터를 만든 것이 모란장의 시초로 알려지고 있다. 


‘모란’이라는 이름도 모란봉에서 따와 만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성남시 수진2동 모란예식장 주변에 있었으나 1970~80년대에는 성남시외버스터미널과 성남대로변에 형성됐다가, 1990년에 지금의 성남동 대원천 복개지 3,300여 평으로 옮겨졌다. 그러다가 2018년 총면적 2만 2,575㎡의 규모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모란시장은 크게 13개의 구획으로 나뉜다. 화훼, 잡곡, 약초, 생선, 채소, 의류, 신발, 잡화 등 다양한 품목을 팔기 때문에 가까이는 경기도와 충청도, 강원도에서도 찾아온다.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가득한 기름 골목

‘백년기름특화거리’는 시장 입구에 있다. 골목 초입부터 사방에서 깨 볶는 냄새가 진동한다. 300m 구간에는 40여 개의 기름가게가 일렬로 늘어서 있다. 춘천·천안·화성·여주·강진기름집 등 간판만 봐도 전국 팔도 기름집이 모였다. 


2022년 11월 성남시가 ‘대한민국 제1호 백년기름특화거리’로 지정했는데, 기름가게 중 15개 업소가 최근 3년간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백년가게(30년 이상 10개) 및 백년소공인(15년 이상 5명) 가게로 선정되는 등 특화거리로서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며 성공한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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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시장에서 파는 곡물들

기름특화거리의 특징은 아무래도 시장이다 보니 가격도 저렴할뿐더러 가게 앞에 전시된 대형 착유기에서 기름을 짜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는 것.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압착기에서 샛노란 기름이 줄줄 흘러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방금 볶은 깨를 막 짜니 신선할 수밖에 없다. 압착기로 기름을 짜내고 난 찌꺼기인 ‘깻묵’은 축산농가에 사료로 쓰이도록 싼값에 판다.


길을 걷다 보면 구수하다 못해 달큰한 향이 코를 간지럽히고, 쇳빛 착유기의 낮은 진동음이 전해진다. 참기름과 들기름, 생들기름, 콩기름, 더 나아가 들깨가루, 볶음참깨, 미숫가루까지, 밥상 위 고소함의 주연과 조연들이 한데 모여 있다. 상인들은 지나가는 손님들을 향해 “오늘 볶음 막 돌렸어요!” 하고 먼저 말을 건다. 이곳에서는 기름이 ‘상품’이기 전에 ‘방금 만든 음식’에 가깝다.


기름골목에서 만드는 기름은 주문이 들어오면 만든다. 참깨와 들깨를 고운 체로 다시 한번 거르고, 드럼형 로스터에서 볶아 향을 깨운다. 볶음 시간이 너무 길면 쓴내가 배고, 짧으면 풍미가 얕다. 볶아 나온 깨는 식힘 통에서 김을 한 차례 뺀 뒤 착유기로 들어가고, 곧이어 투명 호스를 타고 선연한 갈색 기름이 되어 흘러나온다. 


막 짜낸 기름은 점성이 살아 있다. 병에 담기기 전에 한 숟갈 맛을 보자고 하면, 상인은 소금 한 꼬집을 찍어 작은 종지에 내준다. 혀끝에서 먼저 고소함이 번지고, 뒤늦게 볶음 향이 길게 남는다. 이 ‘뒤끝’이 좋은 집이 오래 사랑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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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기름 골목, 갓 짜낸 기름

기름골목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다. 진하게 볶은 ‘구운 향’의 참기름, 볶음을 최소화해 씨앗 고유의 풋내를 살린 생들기름, 산뜻한 조리용 콩기름 등 쓰임새가 다른 기름들이 있다. 나물무침과 비빔밥엔 참기름 한 방울이 왕이다. 


대신 가을무나 봄동처럼 잎이 연한 채소에는 생들기름이 더 잘 어울린다. 고사리와 고비 같은 산나물엔 볶음 향이 진한 참기름이 잡내를 눌러준다. 막 구운 감자나 구운 두부엔 들기름을 살짝 둘러 소금만 뿌려도 훌륭한 안주가 된다.


좋은 기름을 고르는 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첫째, ‘오늘’ 혹은 ‘어제’ 날짜가 적힌 라벨을 찾으면 된다. 둘째, 향을 맡았을 때 텁텁하거나 눅눅한 냄새가 없어야 한다. 셋째, 한 모금 맛보았을 때 혀에 번지는 고소함 뒤에 쓴맛이 남지 않아야 한다. 


색이 진하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들기름은 올리브빛을 띠는 연한 황금색부터 갈색까지 폭이 넓다. 집에 가져가면 갈색 유리병에 옮겨 담아 냉장 보관하고, 한두 달 안에 비우는 게 가장 좋다. 기름도 신선식품이다. 오래 두면 향이 죽고, 공기와 빛에 닿으면 산패가 빨라진다.


가게마다 직화로 고소하게 볶은 참깨와 들깨, 곱게 빻은 들깨가루가 산처럼 쌓여 있다. 겨울엔 들깨가루 사 가는 손이 늘어난다. 들깨칼국수, 버섯전골, 시래기국이 제철을 맞기 때문이다. 들깨가루는 냄비에 마지막에 넣어야 텁텁해지지 않고 향이 산다. 


미숫가루도 인기 품목. 집에서 얼음 동동 띄워 꿀이나 우유와 타 마시면 든든한 한 끼가 된다. 기름과 가루, 볶음깨를 함께 묶은 선물세트도 많아 명절이면 이 골목이 작은 포장 공장으로 변한다. 얇은 종이에 병을 말아 박스에 차근차근 눕히는 손놀림이 바쁘면서도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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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시장의 칼국수 집, 모란시장에서 먹을 수 있는 도래창구이

시장에는 산지에서 재배된 잡곡이 도·산매되고 약초는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다. 강원도에서 직접 캐 온 것이라며 서툰 손놀림으로 작은 가방에서 정성스레 묶은 마 꾸러미를 꺼내 놓는 점잖아 보이는 할아버지도 있다. 이 밖에도 잡곡을 파는 구역을 지나 좁은 통로를 지나가면 옷과 이불을 파는 곳이 나온다.


뭐니뭐니해도 오일장의 가장 큰 즐거움은 먹거리다. 모란시장에 갈 때는 배를 비우고 갈 것! 장터 지천이 먹을거리다. 찬 바람 불고 한기가 옷 속을 파고드니, 뜨거운 것이 당긴다. 꽈배기, 호떡, 뻥튀기, 팥죽, 칼국수, 수구레국밥까지 입맛 돋우고 속을 채워줄 먹거리가 천지다. 저렴한 값은 덤이다.


모란시장의 대표적인 먹거리 중 하나는 칼국수이다. 시장 내 포차 거리에서는 직접 밀어 만든 면발과 진한 국물이 어우러진 칼국수를 맛볼 수 있다. 특히, 다양한 해산물과 채소를 곁들인 칼국수는 시장을 찾는 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소허파볶음과 돼지껍데기 등 특색 있는 음식들도 눈길을 끈다. 소허파볶음은 쫄깃한 식감과 매콤한 양념이 조화를 이루며, 돼지껍데기는 쫀득한 식감으로 많은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한국 음악계를 호령한 ‘마왕’을 만나는 곳

전설적인 뮤지션을 기리고 관광 콘텐츠로 만들어 유명해진 도시가 있다. 멤피스는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를, 스톡홀름은 아바(ABBA)박물관으로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리버풀은 록그룹 비틀스를, 시애틀은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와 록그룹 너바나를 기린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성남 분당에는 ‘신해철 거리’가 있다.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발이봉로3번길 초입에서 수내어린이공원까지 약 160m를 잇는 골목이다. 2014년 신해철의 갑작스런 별세 이후, 한 시민의 SNS 제안이 계기가 되어 유족과 팬, 음악계, 성남시가 함께 조성했고 2018년에 공개됐다.


국내에서 특정 뮤지션 한 사람을 중심으로 조성된 대표적 거리로는 대구의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과 이곳이 자주 언급된다. 골목이 긴 편은 아니지만, 표지와 설치물, 가사 목판 등 ‘마왕’의 흔적을 조밀하게 배치해 걷는 리듬에 맞춰 기억이 환기되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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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동상, ‘신해철 거리’의 바닥

거리에 들어서면 밴드 ‘N.EX.T’를 상징하는 소문자 ‘n’을 형상화한 안내 표식이 서 있고, 수내어린이공원 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그의 노랫말을 새긴 팻말과 목판들이 가로수마다 이어진다. 중간 지점에는 신해철을 형상화한 동상이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바닥에는 각계각층 사람들이 생전의 그를 추모하는 글이 눈에 띈다.

“신해철, 그리운 이여. 무대 위에서 포효하는 당신의 모습을 기억하며 그리운 마음 가슴에 담아두겠네. 음악으로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있을 친구여…”(가수 인순이)


“내 어릴 적 독특하고 특별했던 문화 아이콘 신해철, 그의 ‘민물장어의 꿈’을 부르며 영면을 기린다.”(배우 유지태)


“힘들었던 시절 형님의 노래 ‘날아라 병아리’를 들으며 위로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날아오를 그날을 꿈꾸던 내게 친구가 되어준 그 노래… 내 마음속 영원한 마왕”(방송인 유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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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거리 입구, 신해철의 작업실

1988년 12월 열린 ‘대학가요제’에 밴드 ‘무한궤도’의 보컬로 참가해 ‘그대에게’라는 노래로 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한 그는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을 뿐만 아니라 활발한 사회 참여와 직설로도 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MBC TV 프로그램 ‘100분 토론’의 단골 토론자로 독설을 쏟아냈고, 라디오 프로그램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을 진행하며 청춘들을 위로했다.


그가 노랫말을 쓰고 곡을 만든 ‘신해철스튜디오’에는 아직 그의 자취가 생생하다. 서가 한쪽에는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로 수상한 MBC 인기가수상 등 그가 생전에 받은 트로피가 전시되어 있다. 서재 옆은 음악 감상실이다. 1997년 EMI에서 발매된 넥스트의 라이브 앨범을 감상할 수 있다.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 속 라디오 방송 원고도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음악 감상실을 이리저리 돌아보노라면 “자, 이제 녹음해야지”라며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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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동공원의 가을

신해철 거리에서 나와 가까운 곳으로 도심 여행을 떠나보자. 율동공원은 조선 전기 문신 한계희 선생을 기린 청주한씨문정공파묘역신도비(경기문화재자료 84호), 삼일운동기념탑이 있으며, 번지점프장에서 새롭게 변화한 생태문화공원도 있다. 공원이 자리한 동네는 백제 시대부터 밤나무가 많아 율동이라 불렸다. 호수를 따라가는 공원 내 산책로가 운치 있다.


책 테마파크는 아이들과 조용한 겨울을 만끽하기 좋은 곳이다. 진입로에 자리한 조형물이 세계 각국의 문자로 꾸며져 이채롭다. 2006년 개관 당시 ‘문자와 이야기, 신화, 종교, 철학, 과학, 예술, 역사 등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라는 주제로 설계했다고 한다. 책 카페와 야외 공연장도 있어 미리 행사 일정을 알아보고 가면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모란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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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영진네 칼국수, 성남큐브미술관, 현대어린이책미술관

지하철 8호선·수인분당선 ‘모란역’에 내리면 된다. 5번 출구가 시장과 가깝다. 장날 자가용은 혼잡하므로 대중교통을 추천. 칼국수는 영진네 칼국수가 유명하다.


성남아트센터는 실내 공연장 3곳(오페라하우스, 콘서트홀, 앙상블시어터)과 야외 공연장에서 수준 높은 공연을, 성남큐브미술관과 갤러리808에서 다양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있는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은 국내 최초로 책을 주제로 꾸민 어린이 미술관이다. 국내외 그림책 6,000여 권이 있고, 작가와 함께하는 워크숍, 다양한 기획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2025.11.2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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