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위한 도파민 단식
끊임없는 자극은 오히려 결핍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뇌의 도파민 시스템이 망가지기 전에 ‘단식’을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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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뇌를 망가뜨린다
한 고등학생이 진료실을 찾았다. 자신도 모르게 킁킁 소리를 내는 틱 증상이 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주변 친구들이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된다며 치료를 원했다. 틱은 보통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시간을 두고 경과를 지켜보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의 학습에 영향을 주는 상황이기에 약물 치료를 권했다. 다행히 큰 부작용 없이 틱 증상이 호전됐다. 대부분 상황에서 증상이 호전되었는데도 여전히 틱 증상이 발현될 때가 종종 있다. 바로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즉각적으로 틱이 악화되는 해당 사례 학생의 경우로 미루어 보아, 스마트폰이 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스마트폰을 본다고 문제가 즉각적으로 발생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현대인이 스마트폰 사용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한 채 오랜 시간을 스마트폰과 함께 보내는 이유다.
그러나 최근 스마트폰 사용과 도파민 시스템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가 다수 발표되는 추세다. 네덜란드 라트바우트대학교(Radboud University) 연구진은 스마트폰 사용, 그중에서도 SNS 사용 비율과 도파민 분비량의 상관관계를 PET 영상을 통해 확인했다. 그 결과 SNS 사용 비율이 높을수록 선조체의 도파민 합성 능력이 저하되는 경향이 관찰되었다. 즉 SNS를 많이 사용할수록 도파민 시스템의 기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킹사우드대학교(King Saud University) 연구팀 역시 스마트폰 사용과 인지기능의 연관성을 밝힌 연구를 발표했다. 이 연구에서는 인지기능을 평가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몬트리올 인지 평가(MoCA, Montreal Cognitive Assessment)를 사용했다.
그 결과,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길수록 MoCA 점수가 낮아졌으며, 이는 곧 인지기능이 저하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이 실제로 인지기능 저하를 유발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끝없는 스크롤, 끊임없는 자극
스마트폰 사용은 어떤 기전으로 도파민 시스템의 기능을 저해하고 인지기능을 떨어뜨리는 것일까? 스마트폰의 각종 애플리케이션은 우리 뇌의 도파민 분비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결과적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함으로써 과도한 도파민 분비로 이어지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도파민을 ‘보상 물질’로 오해한다. 하지만 도파민은 즐거운 경험 뒤에 주어지는 보상 그 자체가 아니라 ‘보상을 기대할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어떤 보상을 얻을 가능성이 생길 때 도파민은 각성을 유발하고, 활력을 북돋아 보상을 획득할 확률을 높인다.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기기는 이 ‘기대감’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도파민 분비를 유도한다. 우리는 스마트폰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연인에게 연락이 오지는 않았을까?’, ‘새롭고 흥미로운 영상이 올라오지 않았을까?’ 기대한다.
재미있는 영상이나 게시글을 찾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스크롤을 올리는 동안 이런 기대감이 유지되면서 도파민이 지속적으로 분비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애플리케이션은 대부분 무한 스크롤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뇌가 끝없이 도파민을 분비하게 만든다.
물론 도파민 시스템의 기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스마트폰만은 아니다. 술, 담배, 자극적인 음식, 게임, 쇼핑 등 역시 중독 수준에 이르면 도파민 시스템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도박이나 마약의 경우에는 단 한두 번만으로도 도파민 시스템을 망가뜨릴 수 있기에 더욱 위험하다. 실제로 마약은 도파민 수용체에 직접 관여해 수용체를 망가뜨림으로써 일상생활 수준으로는 정상적으로 도파민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도록 만든다.
몰입이 사라진 일상
도파민 시스템의 기능 저하는 단순히 뇌의 주의력 문제에 그치지 않고, 일상적인 삶의 만족을 저해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우리 뇌는 무언가에 온전히 집중하는 순간, 도파민 시스템으로 인해 강한 쾌감과 만족감을 경험한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이런 상태를 ‘몰입’이라 명명했으며, 몰입 상태에 들어간 우리는 외적 보상이 없더라도 그 활동 자체에서 즐거움과 충족감을 느낀다.
우리는 일을 하거나 공부하는 일상에서 종종 몰입을 경험한다. 이런 순간에 얻는 쾌감은 우리가 그 일을 지속하고 전념할 수 있는 동기가 된다. 그러나 도파민 시스템 기능이 저하된 사람은 몰입을 경험하는 횟수가 줄어든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Karolinska Institute) 연구진은 뇌 영상 검사를 통해 도파민 수용체 기능을 측정하고, 동시에 개인이 얼마나 자주 몰입을 경험하는지를 평가했다.
그 결과 도파민 수용체 기능이 떨어질수록 몰입 경험 빈도가 유의하게 감소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도파민 시스템 기능이 저하되면 단순히 집중력이 낮아지는 것을 넘어 삶의 질을 높여주는 몰입 경험 자체가 줄어들게 되는 셈이다. 이로써 일에 대한 동기와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가 크게 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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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도 휴식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도파민 시스템을 정상화해 저하된 인지기능을 회복하고 일상에서의 만족감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안으로 ‘도파민 단식’을 제안한다.
최근 일정 시간 동안 식사를 제한하는 ‘간헐적 단식’이 대중적 건강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단식이라는 행위 자체는 종교적이거나 생리적인 이유로 인류 역사에서 오래도록 반복되어 왔지만 ‘건강’과 ‘다이어트’가 목적인 간헐적 단식은 2012년 이후 유행했다.
이후 하버드대학교, 존스홉킨스대학교, 미국 국립보건원(NIH) 등에서 혈당 조절, 대사 건강 증진, 체중 감소 등 간헐적 단식에 대한 긍정적인 과학적 연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현재는 의학적 타당성을 갖춘 식사 방식으로 자리매김했다.
모든 사람에게 간헐적 단식이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 열량이 과도한 음식을 섭취하거나 대사 건강 문제를 겪는 사람에겐 간헐적 단식이 건강을 회복하는 데 효과적이다.
도파민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현대사회는 스마트폰, 다양한 중독 대상으로 우리의 도파민 시스템이 과도하게 활성화된 상태다. 이는 도파민 시스템의 기능을 저하해 일상에서 정상적인 도파민 시스템의 작동을 저해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도파민 단식’이다. 도파민 분비를 유도하는 대상 자체를 멀리함으로써 도파민 시스템 기능을 정상으로 회복하는 것이다. 실제로 중독 연구를 살펴보면, 중독 대상을 중단할 경우 도파민 시스템의 기능이 서서히 회복된다.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시간’을 정하는 것이다. 예컨대 필자는 ‘첫 환자를 만나기 전까지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려 한다. 이렇게 하면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전까지의 시간을 스마트폰 보느라 허비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업무로 이어지기 때문에 실제로 스마트폰을 처음 사용하는 시간은 점심 무렵이 된다.
또 다른 원칙은 밤 10시 이후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늦은 시간에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면 온전히 숙면을 준비할 수 있다. 화면에서 나오는 빛이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해 수면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원칙만 지켜도 하루 중 10시간 이상을 스마트폰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물론 이런 습관이 누군가에게는 불안이나 허전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하지만 몇 시간 정도 소식을 늦게 접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만한 일은 거의 없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는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사고를 며칠이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일조차 몇 시간 만에 알 수 있다. 이는 편리하다는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새로운 소식을 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기대감에 도파민 시스템을 과도하게 자극할 수 있다는 단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현대사회의 수많은 자극과 정보 속에 지쳐 있다면, 도파민 단식에 도전해 보자. 도파민 시스템 기능이 회복될수록 우리는 더 활력을 얻고, 더 자주 더 깊이 몰입하며, 삶의 만족이 한층 높아질 것이다.
배종빈(서울더나은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원장) denmagazine@mcircle.biz
정지환 에디터 stop@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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