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은 맛이 없다?

평양냉면은 왜 늘 싸움이 날까? 음식 칼럼니스트 박찬일 셰프가 과학·입맛·역사로 풀어낸 평냉의 모든 것.

전통 음식인 듯 아닌 듯, 맛이 있는 듯 없는 듯. 평양냉면만큼 가타부타 말 많은 음식이 또 있을까. 셰프이자 음식 칼럼니스트 박찬일이 말하는 평양냉면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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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냉’이라는 논란거리

한국 관광 당국은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종종 설문조사를 진행한다. 몇 해 전, 이런 걸 물었다.


“한국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는 음식과 맛없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이런저런 답이 나왔는데, 놀랍게도 맛없는 음식 3등 안에 평양냉면(이하 평냉)이 이름을 올렸다. 사실 놀랍지 않았다. 한국인도 그러는데, 뭐. ‘밍밍하고 이상한 냄새가 난다’, ‘행주 빤 물 같다’, ‘도대체 이런 걸 왜 돈 받냐’ 등등.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들의 답이냐고? 그렇지 않다. 평냉에 대한 냉대는 수십 년부터 존재했다. 평냉 좀 안다는 어른도 가슴에 손을 얹고 진실만을 답하라면, 열에 대여섯은 ‘맛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거다. 평냉은 원래 그런 존재다. 모두가 냉면을 이해하면 그건 지구가 망하는 날이다. 냉면, 특히 평냉은 영원히 음지에, 마니아에게 더 어울릴 존재다.


그 이유가 있다. 사람 혀가 본디 그렇다. 달고, 뭔가 톡 쏘는 자극이 있거나, 혀에 감치며, 깊은 맛이 사무칠 때 그제야 혀가 맛을 받아들인다. 하다못해 새콤달콤한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평냉은 밍밍하다. 그래서 행주 빤 물 서사가 나오는 거다.


하나씩 따져보자. 맛없는 이유를 말이다. ‘냉면 맛집’ 리스트를 보려거든 인터넷 검색이 빠르다. 오늘은 다른 얘기를 해볼 참이다.

미안하다, 평냉은 ‘과학적으로’ 맛없다

먼저, 차갑다. 차니까 밍밍할 수밖에 없다. 음식 분자는 뜨거워야 활성화된다. 차가우면 잠들어 있다. ‘아이스크림은 찬 데도 맛있잖아?’, ‘함흥냉면도 찬 데 맛있거든?’이라고 혹자가 말한다면, 맞는 말이다. 아이스크림에는 많은 양의 설탕이 들어간다. 차가운 탓에 상온에 둔 디저트에 비해 몇 배쯤 더 달게 만든다. 그래야 혀가 그나마 ‘음, 제법 달군’ 하며 좋아한다. 함흥냉면도 그래서 달고, 짜고, 시고, 강하게 국물을 만든다. 강한 자극을 겹겹이 배합한다. 함흥냉면의 저변이 더 넓은 이유다. 누구나 맛있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전국에 평양식이 아닌 냉면을 파는 식당은 고깃집을 포함해 10만 개는 될 거다. 진짜 평냉은? 잘해야 100개다. 농담이 아니다.


둘째, 메밀의 특징 때문이다. 메밀은 구수하지만 쫄깃하지는 않다. 툭툭 끊어지는 식감이다. 현대에 밀가루는 대량 수입되면서 싼 재료 취급을 받지만 과거에는 메밀보다 훨씬 고급 재료였다. 메밀의 꿈은 밀가루처럼 쫄깃해지는 것이었다. 요즘엔 오히려 입술에 닿자마자 끊어질 정도로 부드러운 메밀 면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이런 식감이 메밀의 약점이었다. 그래서 메밀에 소다를 치고, 익반죽(뜨거운 물을 부어 점성을 부여하는 것)을 한다. 냉면집에 가서 부드럽기 그지없는 순 메밀을 달라고 해봐라. ‘어? 좀 먹을 줄 아는데?’ 또는 ‘바쁜데 왜 그런 걸 시켜?!’. 주인의 반응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순 메밀 면은 말 그대로 오롯이 메밀 가루로만 만든 면이다. 일일이 익반죽을 해야 하는 탓에 주방이 바쁘다. 속된 말로 주방이 ‘꼬인다’. ‘우래옥’ 같은 거물 냉면집도 이제는 순 메밀 면 주문을 받지 않는다. 파는 집이 더러 있지만 주방엔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메뉴가 순 메밀이다. 찰기가 없는 순 메밀을 요즘 더 선호하는 분위기가 된 건, 쫄깃한 식감을 멀리한 당대 미식가들 때문이다. 좋은 평냉이란 그다지 찰기 없는 면발을, 자극 없는 국물에 말아낸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맛있을 수가 있나. 면은 끊어지지, 국물은··· 그렇다고 맛있는 반찬과 김치를 주기나 하나, 친절하기나 하나….


셋째, 양념이다. 어른들은 수육을 좋아한다. 수더분하고 꾸밈없는 삶은 고기의 맛을 즐긴다. 하지만 애들에게 제육과 수육을 같이 줘봐라. 제육은 설탕과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매콤달콤한 양념에 볶아낸다. 특히 제육은 요즘 유행하는 용어로 ‘메일라드(Maillard) 반응’이 강하게 일어난다. 기름을 쳐서 볶는 탓에 맛이 몇 배나 세진다. 수육은 그냥 맹물에 삶는다. 된장을 치니 뭐니 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삶은 고기다. 평냉은 수육처럼 밍밍한 거다. 심지어 달걀도 프라이가 아니라 삶아서 얹는다. 평냉에 구운 고기를 곁들이는 걸 본 적 있나. 얹으면 맛있는 것 같은데, 그러지 않는다. 순수한 평냉 국물을 사수하기 위해서다.


그럼 왜 사람들이 맛없다는 평냉을 먹을까. 진심으로 맛있어서? 잘난 체하려고? 이북 실향민 혈통이 흐르고 있어서? 모두 다 맞을 수 있다. 특히 마지막 이유는 농담이 아니다. 그게 맛의 내림이다. 이북은 냉면의 고장이다.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 강원도 모두 그렇다. 추운 산간 지방 사람들은 냉면을 좋아한다. 메밀은 산간과 척박하고 추운 땅에서 잘 자란다. 그래서 이북이 냉면의 본고장이 되었다. 함경도는 감자나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면을 주로 먹지만 메밀도 먹었다. 실향민이 남한으로 많이 내려오면서 평냉에 대항하기 위해 매운 비빔면을 콘셉트로 정했다. 물냉으로 해서는 아무래도 밀릴 테니 그랬다. 그게 먹혔다.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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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에 대여섯은 평양냉면에 대해

‘맛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거다.

평냉은 원래 그런 존재다.

평냉은 영원히 마이너한 취향의

음식으로 남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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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수의 비밀은 메뉴판에 있다

한때 인터넷을 달군 육수의 비밀이 있다. 고기 한 점 삶지 않고 다시다와 설탕, 구연산으로 이루어진 레시피였다. 그건 아주 저가의 대중 냉면을 말하는 것이지, 대다수 고급 평냉은 그렇지 않다. 직접 삶아봤을 뿐 아니라 수없이 인터뷰하고 취재한 결과다.


일단, 냉면집에 가면 메뉴판을 보자. 육수를 내려면 고기를 써야 한다. 대체로 많이 넣을수록 맛이 진하다. 우래옥이 그렇다. 닭으로 육수를 내는 집도 있다. 좀 싼 집이다. 어쨌든 어떤 고기를 삶아서 쓴다는 뜻이다. 냉면을 받으면 그 그릇에 고기가 몇 점 올라가나. 한두 점이다. 나머지는 수육(편육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같은 뜻이다)으로 판다. 육수를 맛있게 내려면 충분한 양의 고기를 삶아야 한다. 그런데 그걸 냉면에 다 넣으면 이문이 적다. 그러니 수육으로 팔고 냉면값은 덜 받는 것이다. 지금 평냉값이 비싸다고 욕을 먹는데, 내가 해봐서 안다. 한우 200g 넣고 육수 잡아서 메밀 면 70%짜리 만들고, 백김치라도 담가 몇 점 얹으면 원가 8000~9000원이 나온다. 재료비는 3할이 기본이니 2만5000원은 받아야 맞다. ‘내 냉면(?)을 위해 삶은 고기를 다 주지 않고, 수육으로 따로 팔면 그건 부당행위 아니오’라고 따질 수 있다. 하지만 고기 일부를 수육으로 팔아 벌충하지 않으면 냉면 값이 치솟는다. 냉면 값으로 2만원 이상 내라면 좀 서운하지 않은가.


돼지고기 제육을 올려주는 집도 있다. 그런 경우는 대부분 육수를 쓰지 않는다. 제육을 함께 파는 집은 오직 제육 좋아하는 손님을 위해 돼지고기를 삶는 것이다. 돼지고기 삶은 국물이 육수로는 그다지 맛있지 않다. 삼겹살이 특히 그렇다. 예를 들어, ‘을지면옥’은 제육이 아주 유명한데, 돼지고기 삶은 물을 육수로 쓰지 않는다. 닭고기가 육수의 주역인 집도 많다. 남대문 ‘부원면옥’, 을지로 ‘평래옥’ 등이 그렇다. 이 집들은 닭무침이 메뉴에 있다. 메뉴판에 적힌 음식으로 육수의 배합을 점쳐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소고기를 기준으로, 냉면 육수 한 그릇에는 몇 그램을 넣을까. 팔리는 수육의 양, 냉면에 올리는 고명의 양을 합치고 그걸 냉면 그릇 수로 나누면 되겠다. 물론 장충동 계열의 ‘평양면옥’처럼 어복쟁반을 팔면 복잡해진다. 어복쟁반에도 육수가 들어가는 까닭이다. 이를 무시하고 일반적인 경우로 계산해 보자. 보통 1인분 육수에 100~150g 내외의 소고기(사태, 양지, 설도 등) 정육을 쓴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가게마다 다르다. 아마도 우래옥이 가장 많이 쓸 거다. 고작 50g 정도의 고기로 육수를 내는 유명 집도 있다. 얼추 100~200g을 삶아 육수를 얻는다고 가정하자. 삶은 고기는 정육의 60% 정도로 줄어들므로, 대략 60~120g의 수육이 나온다. 그중 일부를 냉면 그릇에 웃기로 쓰고, 나머지는 수육감이 된다. 그럼 집에서 이 정도 소고기를 삶아 육수로 내면 사 먹는 맛이 날까. 당신이 미원을 용기 있게 쓸 마음이 있지 않으면 맛이 안 나온다. 과거 평냉은 겨울이 제철이었고, 곰삭은 김칫국으로 맛을 냈다. 하지만 요즘은 여름 음식이다. 미원이 없으면 어렵다.

평냉은 원래 김칫국물에 말았다

냉면에는 동치미가 들어가야 진짜라고 하는 사람도 많다. 맞는 말이지만 옛말이다. 냉면은 겨울 음식이었다. 이북 출신 어른들의 기억이 그렇다. 절절 끓는 방에서 김치 퍼다가 국수 말아 먹었다고. 냉면은 겨울 음식일 수밖에 없었다. 첫째, 김칫국물(동치미)로 만든다. 고기는 언감생심이다. 고기 사다 웃기 하고 육수에도 섞는 건 부자이거나 도시 사람들 이야기고, 보통은 그냥 김치에 말았다. 그래도 충분히 맛있었다. 김치가 얼마나 맛있나. 이북 김치는 ‘슴슴(싱겁다는 뜻의 사투리)’하다. 자극이 적다는 뜻이다. 젓갈을 거의 안 쓰거나 아예 안 썼다. 추우니 발효가 더디고 김치가 시원했다. 이북은 메밀 재배권이다. 그런데 메밀은 대개 11월에 수확한다. 겨울에 제격이다. 남겨놓았다가 여름에 먹을 메밀이 어딨나. 식량도 부족한데 겨울에 다 먹어버리고 말지. 그래서 김칫국물과 메밀의 조합으로 냉면이 탄생했다. 한반도에만 있는 전설적인 음식이다.


함경도는 감자가 흔하니 전분을 가라앉혀 면을 만들고, 이를 김칫국물에 말았다. ‘함흥냉면은 비빔냉면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건 남한으로 내려온 이들이 평냉의 대항마로 만들어낸 거다. 일제강점기 당시에도 전국적으로 평냉이 우세했다. 센 놈과는 안 붙는 게 유리하다. 그래서 비빔으로 노선을 틀었다. 물론 비빔은 원래 있던 음식이다. 가자미 같은 걸 발효하고 고춧가루 양념을 해서 감자전분 면에 얹어 먹었다. 요즘은 감자전분이 비싸 고구마전분이 대세란다.

이것도 평냉, 저것도 평냉

꿩냉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겨울에 꿩 사냥을 하던 이북 사람들이 냉면에 넣어 먹던 거다. 냉면에는 뭘 넣어야 한다는 규칙이 없다. 김칫국물로만 만드는 것도 맞고, 현대의 냉면처럼 고기 100% 육수로 만드는 것도 맞다. 요즘 대부분 명문 평냉집은 거의 다 고기가 중심이다. 김치가 고기보다 더 비싸고 번거로워서다. 어떤 이는 소, 돼지, 닭을 다 넣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건 평양에서 출판한 [조선료리전집]에 편집된, 어느 특정 시기의 책에 그렇게 나온 거다. 이북 요리 책 레시피마다 다 다르다. 같은 건 하나다. 이북식 시원한 김치를 많이 넣으라는 점 정도다. 메밀 함량도 70~100%로 다르다. 적어도 한국에 반입된 책은 내가 다 읽어봤다.

평냉에 정답은 없다

2018년 즈음 일이다. 평양에 다수의 남한 사람이 갔다. 정치인, 기업인뿐 아니라 걸 그룹도 함께였다. 이들이 먹은 평냉 사진과 시식 소감이 기사에 실렸다. 그런데 그들은 면이 까맣고 빨간 양념을 얹은 평냉을 먹었다. 게다가 면이 질겼다. 남한 미식가들이 흔히 평냉의 금과옥조로 떠받들던 툭툭 끊어지는 부드러운 메밀 면도 아니고, 양념 ‘다대기’는 절대로 치지 않아야 한다는 불문율도 다 거짓말이라고 난리가 난 거다. 진실을 파헤치고자 내가 직접 취재에 나섰다. 그 결과, 이북 평냉, 특히 옥류관 냉면이 검어지고 빨간 양념이 올라가는 식으로 변절(?)한 이유를 밝혀냈다. 북한 출판물을 다 뒤져서 찾았다. [통일문학] 2006년 2호에 실린, 북한의 자랑 ‘옥류관’ 주방장의 반성문이 결정적이었다. 내용은 이렇다.

“ 1990년대 중반기에 옥류관 국수(냉면)의 질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여왔다. 위대한 장군님(김정일)은 이를 용납하지 않으셨다. 옥류관은 평양랭면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고 남조선 사람들과 해외동포들도 평양에 오면 누구나 옥류관 평양랭면을 먹고자 하는데 지금 옥류관에서는 순 메밀가루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경도의 농마(전분) 국수와 평안도의 메밀국수를 뒤섞은 것 같은 범벅국수를 만들고 있다.”

이 시기가 북한이 비극적인 식량난을 겪던, 이른바 ‘고난의 행군’ 때다. 메밀이고 뭐고 가려 심을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옥류관 냉면도 바뀌었다고 주방장이 스스로 실토한 거다. 바뀐 레시피로 만들고 팔다 보니 그것이 평냉의 ‘정답’이 됐다. 메밀 농사가 망가져서 감자전분과 메밀 겉껍질도 갈아 넣은 것이다. 북한 평냉이 검은색이었던 이유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입맛에 정답이란 없다는 것이다. 당신의 구미대로 먹자. 누가 뭐래도 당신의 혀가 맞다. 이 집 저 집 먹다 보면 ‘쩡한’ 맛이 좋아질 수도 있다. 그럼 그게 당신의 혀가 내린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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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셰프, 음식 칼럼리스트) denmagazine@mcircle.biz
정지환 에디터 stop@mcircle.biz​
2025.07.2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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