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버번의 종착지 뉴올리언스… 이곳에선 욕망도 숨을 고른다

프렌치쿼터와 버번 스트리트를 통해 위스키와 인종 차별의 과거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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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올리언스 ‘캐로셀 바’. 박병진 칼럼니스트 제공

《지난 겨울 미국 동부에서 출발해 남부의 뉴올리언스까지 꽤나 긴 여행을 떠났다. 마디그라 축제 직후에 뒤늦게 도착한 뉴올리언스는 음악의 도시답게 거리마다 재즈가 흘러넘쳤고 다양한 욕망의 흔적이 끈적이는 열기를 더했다. 엘리야 카잔 감독의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처럼 퇴색한 노면전차를 타고 가는 인간 군상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오래된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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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쿼터.

프랑스인들이 최초로 개척했기에 프렌치쿼터로 불리는 이곳의 다운타운은 수차례의 전란을 거치며 이제는 중정이 있는 스페인풍 건물만이 가득 찬 모순의 도시가 돼 버렸다. 이 아이러니 하나만으로도 도시의 질곡의 역사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도시의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인종이 독특한 방식으로 융합돼 왔고 뉴올리언스의 진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아메리칸 위스키’의 원류를 찾아서 떠난 미국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켄터키도 테네시도 아닌 이 모든 위스키가 모여들고 소비된 바로 이곳, 프렌치쿼터의 버번 스트리트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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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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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대륙에서 버지니아의 서쪽은 모두 부르봉의 땅이었고 영어로는 버번으로 불렸기에 그곳에서 만들었건, 그곳에서 소비됐건 그 땅에서 만든 위스키는 모두 버번으로 불렸다. 버번의 천국으로 불리는 켄터키주 역시 버지니아주의 한 카운티에 불과했고 버번이라는 지역은 미시시피강을 따라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만큼 광대한 부르봉의 땅은 결국 프랑스 루이 왕들의 땅이었고 그래서 루이지애나로 불리게 됐다. 사실 뉴올리언스가 있는 현재의 루이지애나주는 이 루이지애나의 아주 작은 일부였다. 미국 본토의 약 40%를 점유하는 미시시피강 유역은 자연스럽게 대부분 프랑스령 루이지애나가 됐고, 나는 위스키 여행의 종착지로 이 루이 브루봉의 땅끝, 바로 미시시피강의 삼각주가 있는 도시인 뉴올리언스를 택했다. 미시시피강의 상류에서 만들어진 모든 버번이 도착하는 곳, 그리고 욕망선이라는 전차 노선이 있을 정도로 흥청거리는 도시가 뉴올리언스였기 때문이다.


루이 왕을 몰아낸 프랑스혁명의 수혜자 나폴레옹이 영국과의 전쟁을 위해 이 루이의 땅을 미국에 단돈 1500만 달러에 팔아버린 것은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 물론 당시 미국은 그 정도가 국가 예산에 해당할 만큼 큰돈이라 이를 영국에서 빌릴 수밖에 없었는데 이 돈이 다시 나폴레옹에게로 돌아간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이 버번의 땅을 둘러싼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최초에 미국은 단지 뉴올리언스시만을 매입하기 원했지만 나폴레옹의 역제안으로 500만 달러를 더 내고 루이지애나 전체를 가져오게 됐다. 당시 파리로 갔던 미국대표단은 본국의 지시 없이 이런 독자적인 결정을 했지만 미국 역사에 남을 엄청난 공헌을 한 셈이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중요한 의사결정의 기로에 서 있을 때를 “루이지애나 매입의 순간”이란 표현을 할 정도로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이다. 물론 나폴레옹도 부족한 전비를 이곳에서 메우게 됐으니 양쪽 다 승리한 협상인 셈이다. 협상이란 이런 것이다.


가장 많은 버번이 만들어지는 세계 버번의 수도가 켄터키의 루이빌, 즉 루이의 도시라는 뜻이지만 이곳 뉴올리언스는 백년전쟁 때 잔다르크가 영국군으로부터 구원한 오를레앙에서 비롯된 도시이다. 그래서 누벨 오를레앙, 즉 뉴올리언스가 됐고 도시의 한가운데 가장 멋진 곳에서 석양을 바라보고 서 있는 잔다르크의 동상이 처연하다. 온통 금빛으로 번쩍이는 잔다르크는 새로운 오를레앙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프랑스는 미국 독립 100주년을 축하하며 자유의 여신상을 선물했지만 이 잔다르크는 오를레앙 시민들이 200주년을 기념해 보낸 선물이다. 잔다르크의 동상을 따라 걸어가면 독립전쟁의 영웅인 잭슨 광장이 나온다. 10달러 지폐의 주인공인 해밀튼 재무장관이 브로드웨이 뮤지컬 ‘해밀튼’의 대성공으로 자리를 지키게 된 반면 역시 브로드웨이 뮤지컬 ‘블러디 블러디 잭슨’의 주인공이자 20달러 지폐의 주인공인 그 잭슨 대통령은 뮤지컬의 실패로 20달러의 주인공에서 퇴장할 위기에 놓이게 됐다. 바로 이 잭슨의 기마상을 바라보고 있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의 이름 또한 생루이성당이니 역시 이곳은 루이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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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번 스트리트.

루이의 땅이자 버번스트리트가 있어 모든 버번의 종착지인 이곳에서는 길거리 곳곳마다 수많은 바가 버번을 담았던 오크통을 곳곳에서 테이블로 활용한다. 멋스럽게 색이 바랜 오크통 위에서의 한잔은 마치 내가 서부 개척 시대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하다. 미국에는 버번 오크통 재활용 금지 규정이 있어 술집의 테이블이나 화분 정도로밖에 쓰이지 못한다. 이런 규제 덕분인지 대부분의 버번 오크통은 다른 나라, 특히 스코틀랜드로 수출돼 스카치위스키 숙성에 쓰이니 미국의 오크통은 두 나라의 위스키 산업에 모두 공헌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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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즈벨트호텔 사제락 바.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때 잠깐 목을 축이려 번잡한 버번 스트리트를 벗어나 다음 골목의 작은 바로 들어갔다. 우연히 들어왔지만 꽤 유서 깊은 셀레스틴 호텔의 바였고 훌륭한 바텐더들이 있었다. 자연스레 뉴올리언스의 유명 칵테일인 뷰카레를 주문했고, 이는 앞으로 5일 동안 매일 마시게 된 첫 번째 뷰카레가 됐다. 뷰카레의 원조라는 몬텔레온 호텔의 회전하는 바로 유명한 캐로셀 바에서도 뷰카레를 즐긴 적이 있지만 지금도 내겐 뉴올리언스의 첫 번째 칵테일 한 잔은 뇌리에 강렬히 남아 있다. 사실 뉴올리언스의 대표적인 칵테일은 사제락이지만 웬지 사제락보다는 프렌치쿼터와 루이 왕들을 추억하는 뷰카레가 좀 더 ‘뉴올리언스’스럽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와 걷다 보니 어느덧 로열스트리트 824번지 앞으로 왔다. 이곳은 크레올 혼혈인 ‘줄리의 집’으로 유명하다. 줄리는 크레올이면서 흑인의 피가 8분의 1인 ‘옥토룬’이다. 남북전쟁을 앞둔 미국에서는 백인 이외의 피가 얼마나 섞여 있는지로 사람을 구분하고 차별했는데 이 8분의 1 기준이 남북전쟁 당시 미국의 남부와 북부를 나누는 기준이 됐다. 4분의 1 혼혈인 쿼드룬은 외관상 확연히 구분되지만 옥토룬은 외관상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웠는데 이를 흑인으로 보는 곳이 바로 당시 남부연방에 속했던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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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진 칼럼니스트

‘한 방울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위의 경우처럼 유색인종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인다면 백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유색인종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 지금은 한 방울의 법칙이니 옥토룬이니 하는 것들이 표면적으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미국 사회의 이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이면에도 마찬가지로 이런 것들이 존재할 것이지만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새로운 시대정신과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균형감각을 갖춰 나간다면 편견과 차별의 설 자리는 점차 없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균형감각에는 여유 있는 한 잔이 필요하니 그 부족한 한 방울을 버번으로 채우면 어떨까. 급할수록 한 방울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생각해보면 아마도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다.


박병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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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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