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푸드 ]

고종 황제도 먹었던 ‘까눌레’, ‘와플’... 조선시대 ‘서양 디저트’의 관한 이야기

by핸드메이커

픽사베이

서양 디저트 와플 /픽사베이

최근 MZ 세대에게 전통 디저트의 인기가 뜨겁다. 대중적으로 접할 수 있었던 약과는 하나의 디저트 트렌드가 되면서 스콘 등과 결합되어 다양한 모습을 띄고, 한과의 한 종류인 개성주악은 새롭게 떠오르며 또 다른 유행을 만들고 있다.


이처럼 현대 가장 트렌디하다고 여겨지는 MZ세대가 우리의 전통 디저트에 관심을 가지는 가운데 반대로 조선시대에는 현대에 서양식 디저트를 먹은 인물들이 있어 놀랍다. 창덕궁에 남아 있던 유물을 조사하는 과정 중에 현대에 유행하는 와플이나 까눌레 등과 관련된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우리 조상들이 의외로 서양식 디저트를 오래전부터 즐겨왔을 것이란 단서가 되기도 한다.



외국서 유래한 ‘커피’와 ‘와플’…고종 황제도 즐긴 디저트?


조선시대 대표적인 커피 애호가로 알려진 고종 황제는 커피와 함께 ‘와플(Waffle)’을 즐겨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와플은 밀가루, 달걀, 우유 등의 재료를 반죽해 전용 팬에 부어 구워 먹는 디저트다. 유럽에서 즐겨 먹었고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 등이 와플의 본고장으로 불린다.


‘오벨리오스(Obelios)’라는 평평한 형태의 케이크는 고대부터 즐겨 먹었다고 하나, 현대의 와플과 가장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는 디저트는 중세시대 유럽에서 처음 먹었다. 유럽에서 9~10세기 즐겨 먹었던 ‘우블리(Oublie)’라는 빵은 초기에는 평평한 모양을 하고 있으나, 추후 이를 제조하는 틀이 와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벌집 무늬(혹은 격자무늬)의 형태로 변화했다는 점에서 이를 원형으로 추측한다.

와플은 벌집 무늬가 특징이다 /픽사베이

전용 팬에 반죽을 부어 모양을 낸다 /픽사베이

이외에도 와플의 유래에 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으나 확실한 점은 중세 유럽에서 처음 먹기 시작했고, 그 후 미국으로 전해지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저트가 됐다는 것이다. 유래한 지역 마다 식감이나 토핑 등에서 차이를 가지며 다양한 방식으로 맛볼 수 있는 유럽 대표 디저트다.


놀라운 점은 이 와플을 ‘고종’황제도 먹었다는 것이다. 고종은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제1대 황제다. 고종은 당시 가배라 불렸던 커피와 와플을 즐겨 먹은 인물이라 알려져 있는데 국립고궁박물관은 이를 토대로 지난 2017년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기념해 ‘고종황제 황실와플’ 디저트를 판매하기도 했다. 실제로 창덕궁에서 와플을 만들었던 와플 틀이 유물로 발견된 바 있다.

2017년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기념해 ‘고종황제 황실와플’ 디저트를 판매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철제제과기. 와플의 모양과 유사해 이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국립고궁박물관

하지만 고종 황제가 이 커피와 와플 등 서양식 디저트를 최초로 먹었다고 알려진 이야기는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 고종이 커피를 먹었다고 알려진 시기는 1895년 아관파천 당시라는 설이 있으나, 이는 근거를 찾기 어려우며 기록에 따르면 고종 황제 전에 커피를 즐긴 조선시대 인물은 여럿 있다.


또 2021년 출간된 이길상 저자의 책 『커피 세계사+한국 가배사』에서는 조선시대에 식사 후 커피가 유행처럼 퍼져 나간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보빙사를 따라 조선에 온 미국인 퍼시벌 로웰은 1884년 1월 조선 관리의 초대를 받고 조선의 최신 유행인 석식 후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아관파천보다 더 앞선 시기다.

조선시대에 커피가 식사 후 커피가 유행처럼 퍼져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픽사베이

실제로 고종이 커피를 특별히 즐겨 먹었 다기 보다, 고종은 차 애호가로서 다양한 차를 즐기며 그 중 하나인 커피를 마셨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을 얻는다. 와플도 이와 비슷하다. 당시 고종은 신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인 인물이었다. 와플을 특별히 즐겨 먹었 다기 보다 고종이 먹은 여러 서양식 디저트 중 와플이 존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까눌레, 타르트 등… 다양한 서양식 디저트 틀 발견돼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와플 틀 외에도 다양한 서양식 디저트 몰드를 보관하고 있다. 까눌레 몰드부터 타르트, 구겔호프, 쉬폰 팬 등이 왕실 유물로 남겨져 있으며 이를 통해 당시 왕의 티타임에 다양한 서양식 디저트가 진어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덕궁에 있던 서양식 주방에서 발견된 여러 디저트 틀에는 제작사의 로고가 찍혀 있다고 한다. 이는 ‘벤험 엔 프루드(Benham&Froun)’라는 영국 회사의 로고로, 유럽에서 한반도로 들여 온 물건들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제과용기 국립고궁박물관

제과용기 /국립고궁박물관

영국 회사의 로고 외에도 디저트 틀의 모양 역시 서양식 디저트의 모습을 자세하게 구현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프랑스의 전통 디저트인 까눌레(Canele)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틀이다. 까눌레는 현대에도 만들기 까다로운 디저트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겉면이 캐러멜 라이징되어 바삭한 식감까지 당시에 그대로 재현해 만들었을 지는 알 수 없으나, 3CM 정도의 몰드 크기, 그리고 현대에 대중적으로 접하는 까눌레의 형태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에서 이를 사용해 까눌레를 만들었을 것이란 유추가 가능하다.

제과형본 국립고궁박물관

제과형본. 형태를 봤을 때 까눌레를 만들 때 사용했던 틀로 추측할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픽셀스

까눌레 /픽셀스

올록볼록한 형태가 눈에 띄는 원형 모양의 구겔호프(Gugelhupf) 틀도 유물로 보관되고 있다. 18세기 유럽에서 버터를 본격적으로 즐기며 만들어진 디저트로 반죽을 발효시켜서 구운 케이크다. 구겔호프의 가장 큰 특징은 화려한 왕관 모양을 닮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왕관과 모자 모양에서 빵의 형태가 유래 됐다는 설이 있다. 궁에서 유물로 발견된 케이크 틀도 전형적인 왕관 모양의 구겔호프를 연상하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제과형본 국립고궁박물관 1

제과형본. 가운데가 뚫린 도넛형의 케이크틀  /국립고궁박물관 

왕관의 모양을 한 케이크. 구겔호프 /크라우드픽

물론 구겔호프 레시피가 실제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창덕궁에는 프랑스 요리사가 존재했다고 한다. 1903년 이탈리아 총영사로 한양에 온 까를로 로제티의 책 『꼬레아 에 꼬레아니』에도 조선의 궁에 양식 요리사 존재했다는 점이 언급된다. 고종과 민비의 총애를 얻었던 손탁이라는 독일계 프랑스 여성은 러시아 초대공사 카를 베베르와 함께 입국해 추후 신뢰를 얻고 경복궁의 양식 요리사로 임명되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카스테라’ 먹은 인물은?


이보다 훨씬 앞선 1720년에 현대 대중적인 빵인 ‘카스테라(castella)’를 먹은 조선시대 인물도 있다. 이 같은 내용은 KBS1에서 방영하는 시사교양프로그램 ‘다큐 On’의 ‘빵, 대한민국 정착기’ 편에도 소개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카스테라를 조선시대 때 맛본 인물은 ‘이기지’라는 학자다. 그는 1720년대 북경으로 출발해 다시 한양에 돌아오기까지의 경험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책 『일암연기』에 서양의 떡을 먹어본 경험을 기록해 두었다. 당시 청나라의 개방 정책으로 서양의 가톨릭 신부들이 성당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신부로부터 서양의 떡을 얻어 먹었다는 내용이다.

부드러운 카스테라 /픽사베이

방송에 소개된 책의 내용에서는 “그 모양이 우리나라 박계와 비슷하고, 부드럽고 달았으며 입에 들어가자마자 녹았으니 참으로 기이한 맛이었다”고 표현한다. 서양 떡을 대접한 이들에게 만드는 방법을 물으니 설탕 가루와 계란, 밀가루로 만든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방송에서는 제과제빵 전문가들이 등장해 달걀이 주재료였고, 설탕이 들어가는 디저트 중 부드럽고 식감이 좋았다는 기록을 참고한 후 이를 카스테라였을 것이라 언급했다.


또 빵의 형태가 우리나라의 박계와 비슷하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박계는 밀가루에 참기름과 꿀이 들어간 조선의 과자로 직사각형으로 썰어 네모난 모양을 하고 있다. 카스테라와 비슷한 것이다.


이기지는 이후 조선에 돌아와 자신의 입맛을 사로잡은 이 빵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조선시대의 밀은 서양 밀고 달리 빵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 불리는 글루텐 성분이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제분 기술에도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에 직접 카스테라를 만드는 시도는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노랗게 익은 카스테라 /픽사베이

이 카스테라에 대한 기록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가 저술한 『청장관전서』에도 등장한다. 그는 일본어 발음인 카스테라를 음차해 ‘가수저라(加須底羅)’라는 이름으로 이를 불렀다. 카스테라를 맛 본 사신들은 ‘눈과 같은 떡’이라는 의미로 ‘설고’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책에는 카스테라를 만들 때 사용되는 재료와 이를 만드는 레시피가 기록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노랗게 되도록 익힌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당시의 카스테라 역시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 다양한 서양식 디저트에 관한 기록과 이와 관련한 유물을 발견할 수 있으나 이러한 음식을 당시 누구나 먹었다고 볼 수는 없다. 제빵의 기본 재료가 되는 설탕이나 버터, 우유 등은 쉽게 구하기 어려운 재료들이었으며, 그래서 이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왕실이나 해외 파견된 사신 등 소수에 해당했다고 한다.


[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