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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영원히 줄지 않는 음식이 있다? 스튜

by핸드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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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 /flickr

최근 김치를 활용한 요리 방법이 해외에서 인기다. 김치찌개를 검색하면 '김치 스튜 kimchi stew'라고 부르며 여러 레시피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찌개가 있다면 서양에는 스튜를 들 수 있는데, 쇠고기·돼지고기 등에 버터와 조미료, 잘게 썬 감자와 당근, 마늘 등을 섞어 푹 끓인 음식을 뜻한다.


스튜는 아채와 함께 고기나 해산물을 넣고 천천히 오랜 시간 푹 끓이는 편이며, 우리나라 찌개처럼 물이나 육수를 쓰기도 한다. 가끔 감칠맛을 내기 위해 맥주나 소량의 포도주를 넣기도 한다. 

여러 나라에서는 국민 음식, 스튜

스튜 /unsplash

스튜는 꽤 옛날부터 있던 음식이었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스키타이인들이 동물의 배 안에 고기를 넣고 물을 섞어 불에 끓였다고 전한다. 아마 옛 사람들은 불이 발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물을 끓이는 방법을 알면서부터 음식도 끓여 먹는 법을 터득했을 거라 추정하고 있다. 아마존의 여러 부족들은 거북이의 내장을 포함한 다양한 재료들을 끓였고, 거북이의 등딱지를 그릇으로 썼다고 한다.


사람들이 물을 끓여 요리를 하는 법을 알았을 때 또 하나 깨달았던 건, 음식을 끓이면 맛이 더 훨씬 좋아지며 심지어 원래 재료와는 다른 새로운 맛이 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로마의 요리책 아키피우스(Apicius)에는 양고기와 생선을 넣은 스튜 조리법이 있었다고 하며, 1300년경 쓰여진 프랑스의 요리책 '르 비앙디에 Le Viandier'에는 다양한 종류의 스튜 요리법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아이리쉬 스튜 /flickr

스튜는 부유층도, 일반 서민층도 먹던 음식으로 여러 무역을 통해 초원을 가로질러 바다를 건넜고, 현재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음식들 중 하나가 됐다. 특히 아일랜드에서 스튜는 기본 주식이라 '아이리쉬 스튜'라 따로 부르는 이름도 있다. 16세기 아일랜드에 도입된 이후 사람들에게 주식이 된 아이리쉬 스튜의 감자는 양고기와 아주 좋은 조합이다.


스튜 냄비에 적당한 크기로 자른 양 목심을 동그랗게 슬라이스한 감자와 얇게 썬 양파와 교대로 켜켜이 넣은 뒤 국물을 잡아 약한 불에서 뭉근히 끓이는 방식이다. 아이리쉬 스튜에서 쓰는 양고기는 1년이 갓 지난 고기로 지방이 많고 맛이 강한 편이다. 그 시대상 가장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진 아이리쉬 스튜는 아일랜드 자체의 역사이기도 하다.


아이리쉬 스튜가 주식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아일랜드의 평범한 사람들, 서민들에게 흔한 음식이었고 값싼 재료들을 사용해 대량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인들은 생계를 위해 주로 양을 키웠는데, 양은 의복을 위한 털, 치즈를 만드는 우유를 제공했고 모든 게 끝나면 사람들에게 고기를 제공하는 동물이었다. 또 아일랜드에서 감자는 주요 식량 작물이었고 스튜에 감자와 양고기는 아주 잘 어울리는 재료였다. 

빵과 함께 아이리쉬 스튜 /flickr

요즘의 아이리쉬 스튜는 당근이나 순무, 보리를 추가하기도 하지만 일명 원조 아이리쉬 스튜는 고기와 감자, 양파만 든 것으로 다른 재료를 넣으면 진짜 아이리쉬 스튜의 맛을 망친다는 의견도 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아이리쉬 스튜는 재료들을 약 2시간 동안 천천히 끓이며 수프처럼 묽지 않고 아주 걸쭉하다고 한다.


아이리쉬 스튜에 넣는 고기는 쫄깃하면서도 단단하고, 뼈에 붙어 있는 고기가 많아 끓이면서 육질이 부드러워지고 풍미를 더한다. 아이리쉬 스튜에는 스타우트 맥주를 넣기도 하는데, 맥주를 넣으면 국물에 진한 갈색을 내 아일랜드에서도 특히 인기가 많다고. 삼하인 축제, 성 패트릭의 날 등 여러 축제에서 많이 먹지만 1년 내내 대부분의 아일랜드 레스토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요리다. 

굴라시 /flickr

헝가리에서도 스튜는 국민 음식으로 통한다. 고기와 야채로 만든 전통 음식인 '굴라시'는 파프리카 고추로 진하게 양념하여 매콤한 맛이 특징인 헝가리식 쇠고기와 야채를 넣고 끓인 스튜다. 19세기 말까지 헝가리인들은 새로운 종류의 고추를 재배했고 가공하는 방법까지 알아내, 이 빨간 가루를 빵과 치즈 등에 뿌리거나 살라미에 첨가하면서 새 요리인 굴라시까지 만들었다.


굴라시라는 이름은 헝가리에서 살던 목동들에게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헝가리어로 구야쉬(gulyas)라 하는데 헝가리어로 구야(gulya)는 소떼, 구야쉬는 목동을 의미했고 여행자들은 이 거칠면서도 매운 요리를 굴라시라 불렀다. 대여섯 명의 목동들이 몇 달에서 최대 1년까지 넓은 평원에서 개들과 함께 회색 소들을 돌보았는데, 이들은 돼지 기름, 베이컨, 양파 등을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 끓여 요리를 했다고 전해진다. 소가 죽거나 하면 그 고기를 기름과 양파로 만든 스튜와 함께 먹었다고.

굴라시 한 그릇 /flickr

목동들은 소몰이가 삶의 일부였고 이들은 유럽 전역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여러 나라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음식이 소개되었다. 이 요리는 곧 들판에서, 야생에서만 먹는 것이 아닌 저녁 식탁에서도 올라오는 요리가 됐다. 이후 1800년대 후반에는 헝가리의 국가 정체성, 문화와 언어 등을 보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지면서 여러 식당들도 굴라시를 본격적으로 메뉴에 올렸다.


대개 스튜는 불에 오래 끓여 먹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얼마나 오래 끓이는지로 유명했는지 '영원한 스튜'라 불리는 음식이 한때 여러 커뮤니티에 올라왔던 적이 있을 정도였다. '사냥꾼의 냄비'란 뜻도 있는 이 스튜는 당시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모든 재료를 넣고 끓인 음식이다. 이 냄비는 거의 비워진 적이 없고 불이 꺼진 적도 없으며, 필요에 따라 여러 재료와 물을 끊임없이 넣는 형태였다. 이 '영원한 스튜'는 여러 재료들이 함께 섞이기 때문에 더 맛있는 음식이라 묘사되었다.

'영원한 스튜'를 만든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pixabay

'영원한 스튜'는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재료를 계속 끓이니 자연히 맛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하도 오래 끓이고 여러 재료를 다 쏟아붓다 보니 위생이 의문시되는데, 식중독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는 보통 계속 끓게 되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한다. 뜨거운 열에 거의 100도에 가깝게 끓이면 괜찮다는 얘기. 어떤 것이든 다 들어가는 스튜다 보니 제철 재료들은 물론 고기, 뼈, 야채나 허브 등 모든 걸 넣어 끓일 수 있다.


이 아이디어는 유럽에서 왔는데, 개척자들이나 탐험가들, 여행자들은 항상 하루종일 많은 길을 걸었고 밤이 깊을 즈음이면 여관 같은 곳에서 잘 수밖에 없었다. 중세 시대 여관 주인들은 불 위에 스튜가 담긴 주전자를 올려 두었고, 이웃 사람들 또한 이 풍경을 봤을 것이다. 이 스튜에는 빵을 곁들였는데, 계속 끓고 있는 스튜에 빵 한 조각은 사람들에게 만족감과 포만감을 주었다. 


하루의 일을 끝내고 지친 사람들에게 따뜻한 음식은 필수였고 이 스튜 또한 효과가 있었다. 이 스튜는 계절에 상관없이 365일 내내 끓고 있으니 계절을 타지 않는 편리한 음식이기도 했다. 어떤 이가 콩을 사고 돌아오면 이 수프 안에 콩을 넣고, 어떤 사냥꾼이 꿩을 잡아 가지고 오면 가죽을 벗기고 또 수프에 넣는 식이다. 

큰 냄비에 오래 끓이는 스튜 /pixabay

사실 이 수프가 당시 얼마나 맛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사람들에겐 이 스튜 자체에 기대한 맛이 딱히 없었기 때문에 그저 맛있다고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에게 음식은 항상 부족했고, 그래서 모든 식재료가 중요했다. 자연히 이 재료에 있는 모든 맛을 어떻게든 내야 했다. 배고픈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재료를 추가하고 끓인 게 바로 '영원한 스튜'다.


현재는 문을 닫았지만, 뉴욕에 있었던 포르투갈 레스토랑 '루로'는 한때 이 '영원한 스튜'로 유명했다고 한다. 메인 셰프 데이비드 산토스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데 관심이 많았고, 주방에서 요리하고 남은 부산물로 국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옛 '영원한 스튜'를 재현한 것이다.


그는 음식을 계속 끓인다면 세균이 살지 못할 것을 알고, 고체화되는 것들은 족족 제거해가며 고소한 맛이 층을 이루는 육수만 남게 끓였다. 이 스튜에는 야채 껍질, 생선머리 등 기타 식재료를 추가해 라멘 수프와 같은 맛을 냈다. 닭고기를 이틀간 끓이면 닭 골수에 있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수프에 함유되어, 맛뿐만이 아니라 건강상의 이점도 있다고 전한다. 비록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독감 예방 주사보다도 효과적일 것 같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스튜 /unsplash

이쯤되면 그 '영원한 스튜'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만드는 방법은 그다지 어렵진 않다. 우선 냄비에 물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가 중요한데 약 2/3 정도를 채운다. 열은 최대로 가하고, 당근, 샐러리, 껍질을 벗긴 양파 등의 야채를 넣고 사골, 돼지뼈 등 육수를 낼 수 있는 뼈들도 넣으면 된다. 고기가 붙은 뼈는 칼슘, 마그네슘 등이 풍부해 스튜에 넣어도 좋다고 한다. 


이후 냄비에 뚜껑을 덮고 재료들을 푹 끓인다. 시간은 12시간에서 최대 하룻동안 열심히 끓인다. 특별한 맛을 내고 싶으면 수프에 양념 등을 추가하고, 푹 끓었다 싶으면 뼈는 버린 후에 넣고 싶은 재료가 있으면 더 넣고 한 15분간을 더 끓이면서 내용물을 보충해도 된다. 스튜가 식지 않도록 항상 뚜껑을 덮고 끓이는 것도 중요하다. 

닭고기를 통째로 넣은 스튜 /flickr

다만 야채 중에 맛이나 색깔이 스튜에 진하게 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당근과 양파는 좋은 재료이지만 마늘, 비트, 브로콜리 등은 색깔이나 냄새가 꽤 진한 편이라 피하는 게 좋다.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니 스튜에 넣어도 되지만 야채 특유의 향이 사라지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해산물은 돼지고기나 닭고기 등 육류와 섞지 않는 걸 추천한다. 이는 같이 넣고 끓이면 특유의 비린 맛이 날 수 있어서 고기 스튜, 해산물 스튜 등 따로 만드는 것이 좋다.

스튜 한 그릇 /unsplash

'영원한 스튜'는 지금 관점으로 보면 위생 문제를 꼬집을 수도 있긴 하지만, 그 당시의 위생과 지금의 위생과는 조금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중세 시대는 뭔가를 씻고 깨끗이 한다는 개념이 부족하던 때였다. 특히나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여러 상황이 겹쳐졌을 때 사람들에겐 그저 따뜻한 음식, 맛이 있는 음식이 필요한 것 뿐이었다. 비싼 재료도 아니고 그냥 평소에 먹는 재료들을 모두 넣어 무작정 끓이고 또 끓였다.


원래 오래 끓이면 끓일수록 진국이라고 하지 않는가, 아마 옛 사람들은 이 논리를 아주 옛날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스튜를 끓이는 불은 1년 내내 꺼지지 않았다고 하며 스튜를 만드는 몇몇 여관들은 자신들의 숙소에서 얼마나 오래 스튜를 끓이는지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를 했다고도 한다.


진짜 '영원한 스튜'를 지금 완벽히 재현할 수는 없지만 오늘 저녁은 냉장고에 흔히 있을 감자나 당근, 양파와 고기 몇 점만 넣고 적당한 양념으로 푹 끓여 만드는 스튜로 한 끼 먹는 것은 어떨까.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