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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두드릴 섭’ 섭산삼, 더덕…조청 묻혀 잣가루 뿌리면

by한겨레

홍신애의 이달의 식재료 더덕

사포닌 다양 함유한 건강식품

간장·고추장 단 양념 조리 기본

맛과 향 갖춘 보물같은 식재료

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더덕 두어줌이 냉장고에 들어있었다. “생 더덕은 선물이야.” 작은 쪽지가 옆에 놓여 있었다. 엄마가 다녀가신 것이다. 강원도 횡성에 살고 있는 엄마는 좋은 더덕을 골라내는 데 선수다. 크기가 너무 크고 두껍지 않으면서 껍질은 도톰하고 울퉁불퉁한 것. 꼬리가 너무 길지 않으면서 적당히 잘 빠진 것. 그리고 단단할수록 좋다고 한다. 이렇게 잘 골라 손질까지 마친 더덕 한무더기가 냉장고 안에서 그윽한 향을 피우고 있었다. 가을, 엄마의 향이다.


야생에서 자라던 더덕이 사람 손에 재배되기 시작하면서 제철이 따로 없어졌다. 하지만 가을 더덕은 무엇과도 안 바꿔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금 이 시절의 더덕은 좋기로 유명하다. 한번은 더덕을 캐러 농부님을 따라나선 적이 있는데 그때 처음 알았다. 더덕은 땅속으로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서 어지간한 기술과 힘이 아니면 캐기 어렵다는 것을. 삽을 바꿔가며 살살 파내서 땅 속에 단단히 박혀 있는 보물을 캐내는 과정.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힘이 든 그 작업을 나는 결국 성공하지 못했더랬다. 내가 분질러버린 더덕이 땅속에 박힌 채 흰색 진액을 내뿜는 걸 보고 농부님은 “하아~” 하는 탄식의 소리를 내었다.


인삼·산삼과 마찬가지로 더덕에도 많은 양의 사포닌이 들어있다. 덕분에 진액이 많고 맛이 씁쓸하다. 그래서 요리에 더덕을 사용하는 경우 단맛과 감칠맛이 많이 나도록 양념을 더하는 게 일반적이다. 열을 가하면 달아지는 간장, 고추장을 기본으로 사용하고 심지어 궁에서 왕족들은 꿀과 설탕을 더해 디저트로 먹기까지 했다. 이름도 섭산삼이라고 불렀다. 섭은 두드린다는 뜻이다. 두드려 만든 더덕 요리를 섭산삼이라 했으니 더덕을 산삼처럼 귀히 여긴 선조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


더덕을 깔 때는 장갑을 끼지 않는다. 손으로 느껴지는 좋은 더덕의 맛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껍질의 흙을 씻어낸 후 두꺼운 부분부터 칼로 살살 돌려가며 깐다. 엄지손가락으로 칼날을 쥔 부분이 끈적인다. 나중에는 껍질과 흙과 손가락이 짝 붙을 정도로 진액이 묻어나는데 이건 또 물로 잘 닦이지도 않아 긁어내야 할 정도다. 이 정도면 진짜 신선한 더덕이다. 진액에선 약간 새콤한 향도 느껴진다. 희고 끈적한 살을 슬쩍 눌러 입에 넣으면 무처럼 아삭하면서 질겅 하고 씹히는 느낌도 있다. 첫맛이 쓰지만 이내 적응이 되고 살살 먹을 만하다가 단맛 비슷한 것도 나온다. 사실 더덕은 이 쌉싸름한 향과 맛이 매력적이라 약간의 단맛과 같이 붙여서 씹으면 훨씬 그 감칠맛이 살아난다. 그래서 나는 더덕을 디저트로 잘 활용한다.


더덕을 방망이로 두드려 팬다. 슬쩍 빠개진 더덕에 찹쌀가루를 고루 버무리고 기름을 넉넉히 두른 프라이팬에 노릇노릇 바삭하게 지져낸다. 더덕 향이 슬쩍 밴 프라이팬에 그대로 꿀이나 조청을 몇 숟가락 넣고 거품이 생길 때까지 저으면서 끓여준 후 불을 끄고 지져낸 더덕을 넣어 버무린다. 이 과정을 집청이라고 하는데 끓인 당을 겉에 입혀 반짝이는 사탕 형태로 코팅을 하는 과정을 말한다. 닭강정도 호두정과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달고 바삭해진다.


이렇게 씁쓸하지만 다디단 옷을 입은 더덕의 표면은 아직 바삭한데 여기에 고소한 잣가루를 뿌려주면 부드럽고 풍미 있는 잣 기름기까지 더해져 천하무적의 맛이 된다. 더덕이 가진 질겅하고 씹히는 느낌도 맛을 배로 만든다. 뭐 하나 빠지지 않는 팔방미인 요리가 되는 것이다. 모든 면이 완벽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왠지 있을 것만 같다. 맛도 향도 영양도 완벽한 더덕 같은 식재료도 있는데, 사람이라고 없겠어. 사람에 자주 실망하게 되는 요즘, 어딘가엔 더덕 같은 사람도 분명 있을 거라 믿는다.


홍신애 요리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