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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샌드위치가 물린다면 오늘 점심, 베트남 ‘반미’는 어때

by한겨레

샌드위치 인기 타고 베트남 샌드위치 ‘반미’ 급부상

채소 많이 들어가 샐러드 먹는 느낌…젊은 여성층서 열광

최근 전문점 많이 생겨 “겉은 바삭, 속은 폭신한 빵이 비법”

한겨레

베트남 음식인 반미 샌드위치가 젊은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문을 연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반미 전문 카페 ‘열시꽃’의 다양한 반미 샌드위치.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간편한 식사로, 출출할 때 허기를 채우는 간식으로도 좋은 샌드위치는 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일종의 구황작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더군다나 코로나 영향으로 혼밥과 집콕이 일상이 되면서 샌드위치는 ‘코시국’에 가장 적합한 음식으로 떠올랐다.


아이티(IT) 회사에서 일하는 박성윤(32)씨도 하루에 한끼는 꼭 샌드위치를 먹는다. 자신을 ‘샌드위치 러버’라고 밝힌 박씨지만, 최근 고민이 생겼다. 이제 샌드위치가 질린다는 것. 서울 시내 유명하다는 빵집의 샌드위치를 찾아다니는 ‘샌드위치 투어’도 해보았고, 이색 샌드위치 밀키트를 구매해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최근 그의 고민을 해결해준 것이 바로 ‘반미 샌드위치’(반미). 현지어로는 ‘바인 미’(bánh mì)라고 불리는 이 샌드위치의 고향은 베트남이다. 아시아 음식이기 때문에 내용물과 소스가 일반적인 샌드위치와는 조금 다르다. 당연히 반미만의 독특한 맛과 매력이 있다. 이런 차이가 샌드위치 마니아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 ‘베트남에도 샌드위치가 있나?’ 의아해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이미 반미는 박씨처럼 새로운 샌드위치를 찾는 이에게 신선한 탈출구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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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롱반미의 포크 반미. 백문영 객원기자

쌀 주식 한국인 입맛에 맞아

최근에는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전문점에서부터 편의점에 이르기까지 반미를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을 정도다. 반미의 유행 원인으로 허진이 베트남어 통역가는 한국과 베트남의 지리적 공통성을 꼽았다. 반미는 베트남의 중부 지방에서 발달하기 시작했는데,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멥쌀로 샌드위치용 빵을 만들었다. 멥쌀로 밥을 지어 먹는 한국인의 입맛에 밀가루로 만든 빵보다 쌀가루로 만든 가벼운 빵이 소화도 잘되는데다 친숙하고 익숙한 맛과 향을 낸다는 것. 오이, 당근, 무 같은 익숙한 채소가 듬뿍 들어간다는 점 역시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특히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칼로리가 높지 않은 샌드위치’로 알려지면서 빵이지만 샐러드를 먹는 것 같다는 얘기도 나온다. 채식 열풍과 저칼로리 푸드를 선호하는 현상과도 맞아떨어진 것.


반미의 탄생은 베트남의 역사와 관련 있다. 100년 가까이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베트남이기 때문에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식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인의 주식인 빵은 물론 햄, 파테(고기를 곱게 다져 양념한 뒤 차게 만든 일종의 고기 스프레드), 샤르퀴트리(염지 고기) 같은 가공육까지 베트남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이국적인 식재료가 지금도 베트남인의 밥상에 흔히 올라오는 이유다. 반미 역시 이런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음식으로, 빵 사이에 베트남에서 흔히 먹는 식재료를 끼워 넣은 형태다.


바인(bánh)은 ‘떡’이라는 뜻으로, 쌀가루나 밀가루, 곡류의 가루를 뭉쳐 만든 음식을 의미한다. 미(mì)는 밀을 뜻하는 말로, 바인 미를 현지어 그대로 번역하면 밀가루 빵이 된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밀가루 외에도 주요 식재료인 쌀가루를 일부 섞어 바게트를 만든다. 쌀로 만든 베트남의 바게트는 프랑스의 바게트보다 덜 딱딱하고 공기층이 많아 바삭하고 폭신한 식감을 낸다.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속 재료도 정해진 기준 없이 자유롭다. 돼지고기, 쇠고기, 닭고기는 물론 새우나 생선 같은 해산물도 속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 반미의 포용력이다. 주로 숯불에 구운 고기나 베트남식 소시지에 오이, 채 썬 당근과 오이, 그린 파파야나 무 같은 각종 채소를 듬뿍 넣고 베트남식 액젓 ‘느억맘’을 뿌려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인 반미 샌드위치의 조리법이다. 고수를 듬뿍 얹어 먹는 것이 포인트지만, 한국에서는 고수 향을 낯설어하는 이가 많아 고수를 빼고 판매하는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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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비엣의 반미 샌드위치. 백문영 객원기자

현지에선 소박한 음식

사실 반미의 원형, 즉 베트남인들이 먹는 오리지널 반미는 굉장히 단순하다. 바게트를 절반으로 가른 뒤 파테를 바르고 고수와 오이 같은 채소를 끼워 넣는 간단한 형태다.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화려한 모양새의 반미와 비교하면 소박하기까지 하다. 허진이 번역가는 “여전히 현지에서는 이렇게 간단한 형태의 반미를 즐겨 먹는다. 빵에 버터나 연유 등을 발라 간단한 간식으로 즐기거나 파테 바른 빵에 달걀지단과 스리라차 소스를 넣어 아침 식사로 먹는다”고 말했다. 간단하고 든든하게 배를 채워주는 베트남식 ‘길거리 토스트’인 셈.


그렇다면 화려한 한국식 반미가 아닌 제대로 된 오리지널 반미를 맛볼 수 있는 곳은 없을까? 젊은층이 많이 찾는 서울 연희동과 연남동, 동대문 일대엔 이미 반미 샌드위치 전문점이 속속 들어서는 추세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하롱반미’는 매일 매장에서 직접 구운 쌀 바게트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새우 반미, 포크 반미, 치킨 반미, 야채 반미 네가지만을 판매하는 전문점으로 꽉 찬 고기소와 식감이 좋은 오이, 무를 잔뜩 넣어 신선한 맛이 장점이다. 합정역 인근 ‘몬비엣’은 베트남인 아내와 한국인 남편이 함께 운영하는 곳으로 돼지고기를 듬뿍 넣은 반미로 명성 높다. 고수를 듬뿍 얹어 먹으면 베트남 현지의 맛 그대로다. 특히 이곳의 반미 샌드위치는 그릴에 살짝 구워내는데, 마치 파니니(구워 먹는 이탈리아 샌드위치)를 먹는 듯한 바삭함과 고소함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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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시꽃 주방에서 반미를 만드는 모습. 열시꽃 제공

제대로 된 반미는

최근에는 시내 중심지에도 제대로 된 반미를 파는 곳이 생겼다. 지난 11일 종로구 인사동길에 새로 문을 연 반미 전문 카페 ‘열시꽃’이 그곳이다. 인사동 골목으로 걸어 들어가다 작은 골목 안쪽으로 다시 들어가면 보이는 열시꽃은 2층 한옥 ‘관훈재’에 위치해 있다. ‘한옥에서 반미를 판다고?’ 의구심도 잠시, 매장으로 들어서면 베트남으로 여행을 간 듯 이국적이다. 이곳의 반미 레시피를 만든 이는 베트남인인 레호앙응언 매니저. “현지인이 직접 연구해서 만든 레시피인 만큼 베트남 본토 그대로의 맛을 보장한다”고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이사는 말했다.


베트남에서 20여년 활동한 구 이사는 “배고프고 힘들었던 베트남 체류 기간 힘을 주었던 솔(soul) 푸드가 반미”라며 “빵을 좋아하지 않는 식성인데도, 반미는 유난히 자주 먹었다. 언제 어디서나 손을 잡아주는 친구처럼 곁에 늘 든든하게 있어준 음식이었다”고 회상했다.


이곳의 반미는 총 4종으로 시그니처 메뉴인 ‘열시꽃 반미’와 레몬그라스로 양념한 돼지고기에 코코넛 캐러멜로 맛을 낸 ‘베트남 좋아 반미’, 묵은지와 전통 햄을 넣은 ‘한국 좋아 반미’, 버섯과 땅콩마요 소스를 넣은 ‘비건 좋아 반미’를 판다. 특히 열시꽃 반미는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인기가 많은데, 토마토 페이스트를 베이스로 달걀지단을 넣고 바질과 커민으로 향을 더했다고. 달걀지단을 넣은 반미는 한국에서 맛보기 힘든 정통 방식이다. “브런치를 즐기는 젊은이들부터 점심으로 찾는 인근 직장인들까지 다양한 소비자가 찾는 스테디셀러”라고 구 이사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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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 전문 카페 열시꽃의 외관.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정통 반미 전문점을 표방하는 만큼 소스부터 사용하는 식재료까지 현지 그대로의 것을 사용하는 것도 열시꽃만의 특징이다. 특히 반미에 공통으로 사용하는 호이안 칠리소스는 레 매니저 어머니가 3대째 전수받은 레시피 그대로 매장에서 직접 만든다.


맛의 핵심인 빵의 온도에도 신경을 썼다. “빵을 굽지 않아 질겅거리거나 너무 과하게 구워 입천장이 까질 정도로 딱딱하면 반미 샌드위치의 맛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는 게 레 매니저의 설명이다. 재료를 넣기 전 한번 살짝 굽고 재료를 채운 뒤 다시 구워내 겉은 바삭하고 속은 폭신하게 만드는 것이 이곳의 비법이다.


차 페어링을 시도한 것도 새롭다. 반미에 쑥차와 베트남 아이스티의 일종인 ‘짜딱’, 그리고 베트남식 커피 ‘까페스어다’를 반미의 짝으로 선택했는데 쑥차와의 궁합이 놀라울 정도로 좋다고 한다.


백문영 객원기자 moonyoungbai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