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코로나19에 “숟가락 섞지 말아야”…겸상 문화가 한국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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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What] 조선시대에도 소반 등 ‘독상 문화’가 보편적

일제강점기 거치며 겸상 장려…곡물ㆍ식기 등 물자수탈 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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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랑 같이 겸상하면 코로나19에 걸릴까요?”


“국물에 숟가락 섞으며 식사하는 한국 문화 때문에 힘들어요.”


비말(침방울)로 전염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최근 이런 질문이 온라인상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죠. 덩달아 한국의 ‘겸상 문화’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는데요. 공동체 의식과 정(情)을 강조하는 한국의 고유 문화이지만 비위생적이고 감염에 취약하니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같이 한 상에 차림하고 반찬과 찌개 등에 각자의 수저를 섞는 겸상. 겸상은 정말 우리의 전통 문화일까요? 사실 한국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1인 1상을 받는 ‘독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고구려 무용총의 고분벽화부터 조선의 풍속화에 이르기까지 독상을 받는 모습이 등장해 선조들로부터 내려온 문화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각자 한상차림으로 식사할 수 있도록 ‘소반’이 발달한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3첩부터 12첩에 이르는 반상 차림 전통도 독상으로 같은 찬을 내는 것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에 생긴 문화이고요. ‘조선요리법’에는 “갑오(1894년) 이전의 진지상은 다 외상”이라고 적혀있는데요. 여기에는 남녀유별·장유유서를 강조했던 유교 문화가 한 몫을 했다고 하죠. 이는 양반뿐만 아니라 평민 가정에 이르기까지 모두 적용이 됐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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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겸상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보편적인 겸상 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식 문화 전문가들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퍼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기록을 거슬러 가다 보면 1936년 동아일보 기사에서 독상을 폐지하고 한 상에서 다같이 먹자며 장려하는 캠페인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외상을 절대폐지 가족이 한 식탁에’라는 제목의 이 칼럼에서는 “독상 제도를 버리고 온 가족이 한 밥상머리에 모여 앉아서 화기애애한 중에 같이 먹으면 식욕도 증진되고 반찬이 적어도 후정거리지 않고 또 남는 반찬이 별로 없는 만큼 그것의 처치에 곤란한 점이 없을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936년, 일제강점기 말로 일본의 민족말살정책과 자원수탈이 극심했던 시기죠. 과연 그렇게 ‘남는 반찬’이 있었을까요? 조선총독부는 물자를 아끼자며 겸상을 독려했는데요. 곡물 등 식량 자원을 수탈하는 것도 모자라 전쟁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백성들의 놋그릇, 수저까지 빼앗아가면서 음식의 양은 물론, 식기가 부족해지자 이를 눈 가림 하기 위해 겸상 문화를 주류로 만들려고 한 것이라는 견해가 학계의 중론입니다.


이후에도 한국전쟁으로 인해 물자난이 계속되면서 수십 년을 이어오다 결국 겸상 문화는 한국의 전통처럼 자리잡게 됐다고 합니다. 위생에도 좋지 않을 뿐 더러 우리의 고유 문화도 아닌 겸상, 같이 모여 식사를 하더라도 조상들은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수저를 섞지 않았는데요. 야속한 코로나19이지만 이번 계기로 우리 식사 문화에 대해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2020.07.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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