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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이용재의 세심한 맛

버터에 지져 먹거나 라면에 퐁당 넣어 먹거나…관자의 재발견

by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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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조개(왼쪽)나 가리비(오른쪽)처럼 큰 조개의 관자는 별도의 식재료로 분류될 만큼 영양과 맛이 뛰어나다.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여파로 새 단행본 출간 기념 북토크를 온라인으로 치렀다. 나의 집에서 무청중 북토크를 열고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으로 실황 중계하는 한편, 따로 영상을 녹화 및 편집해 유튜브에 올리는 방식이었다. 어차피 내 집에서 치르는 행사이니 출판사 식구들과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아 간단히 점심을 차렸다.


원래는 살치살을 깍둑 썰어 바특하게 끓인 토마토 라구를 소라 껍데기 모양의 파스타인 콘킬리에에 버무려 식사로 삼고 곁들이로 가지 샐러드를 준비했다. 가지를 길쭉하게, 길이 방향으로 4등분해서 소금간을 약간 한 뒤 종이 행주로 싸서 접시에 담고 다른 접시나 밥공기 등으로 누른다.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넣어 10분가량 돌리면 과육의 공기와 수분이 빠지며 양념을 잘 받아 먹는 채소로 변신한다. 이를 사과 식초와 올리브기름을 1:3 비율로 섞은 비니그레트에 버무린다.


원래 내가 만든 음식을 더 박하게 평가하지만 라구도 샐러드도 그럭저럭 먹을만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되려 고민이 생겼다. 첫째, 주요리로 파스타 하나만이라면 손님 접대에 좀 인색한 것 아닐까? 둘째, 유달리 맛있게 된 가지 샐러드를 파스타의 곁들이로 낸다면 재료와 요리에게 좀 미안한 것 아닐까?


출판사 식구들이 오기 30분 전, 약간 다급해진 마음으로 냉동고를 뒤지니 관자가 한 봉지 나왔다. 이거다. 크지도 무겁지도 않아서 금방 해동된 관자를 뜨겁게 달군 무쇠팬에 버터로 지져서 가지 샐러드 위에 얹으니 단백질과 채소의 조합으로 전채가 완성되었다. 그래서 관자를 먼저, 파스타를 늘 담가두는 오이 발효 피클과 함께 낸 뒤 기성품 초콜릿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했다. 파스타 한 그릇짜리 식사가 졸지에 3코스의 정찬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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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는 해산물이지만 육류와도 잘 어울린다. 게티이미지뱅크

가리비 관자는 젤리, 키조개 관자는 껌

여기에서 말하는 관자는 가리비의 근육이다. 관자는 조개가 껍데기를 여닫는데 쓰는 근육이며 정식 명칭은 폐각근인데 ‘개아지살’이라고도 불린다. 그래서 가리비나 키조개처럼 크다면 관자도 별도의 단백질 식재료로 분류할 수 있을 만큼 크다. 반면 바지락이나 모시조개처럼 작다면 굳이 뜯어 먹기에는 품이 아까울 만큼 자잘한 게 껍데기 안쪽에 단단히 달라 붙어 있다. (어린 시절 가풍을 준수하느라 종종 뜯어 먹곤 했지만 자양분이 되기에는 턱없이 잘았다) 비교가 아예 불가능할 정도로 가리비의 관자가 훨씬 더 부드럽지만, 국내에서 관자의 대세는 키조개로 통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질감 하나라도 적나라하게 비교하자면 가리비의 관자는 젤리, 키조개의 관자는 껌에 가깝다.


키조개 관자가 무능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인생 키조개 관자라는 게 있다면 전남 장흥에 먹었던 걸 꼽을 수 있다. 한우의 대표 생산지 가운데 하나인지라 장흥에는 쇠고기와 키조개 관자, 표고로 이루어진 ‘삼합’이 있다. 세 재료를 같이 불판에 구워 먹는데, 워낙 다들 단맛과 감칠맛이 뛰어난 재료인지라 맛있게 먹었다.


사실 해산물(surf)과 육류(turf)를 같이 내는 ‘서프 앤 터프’는 서양 요리에서 고급으로 통하는 문법이기도 하다. 원래 바닷가재 꼬리와 쇠고기 안심 가운데서도 한가운데 덩이(샤토브리앙)를 함께 내는 구성이 전형인데, 바다와 육지의 만남이라는 원리에만 충실하면 관자와 한우(와 표고 버섯)도 훌륭하다.


어떤 조개의 관자를 먹더라도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가 있다. 관자는 워낙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덩이다 보니 손질이 아예 필요 없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다. 자세히 보면 큰 덩이 옆에 힘줄이 하나 더 붙어 있는데 힘줄답게 질기다. 따라서 반드시 떼어내고 조리해야 되는데, 입에서는 질길 테지만 손에는 저항하지 않아서 엄지와 검지로 살짝 당겨 주면 떨어진다. 다만 강인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키조개와 달리, 몰캉몰캉한 가리비 관자는 힘줄을 떼어내다가 찢어질 수도 있으므로 조금 세심하게 접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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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이 냉동 유통되는 관자는 해동이 비교적 빠르고 간편하다. 게티이미지뱅크

한편 키조개 관자는 생물, 가리비 관자는 냉동이 대부분이다. 냉동이라서 품질이 더 떨어질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새우가 냉동, 특히 배에서 얼린 선동 제품을 해동시켜 판매하듯 가리비 관자도 대체로 냉동 유통되니 걱정을 사서 할 필요는 없다. 다만 고를 때에는 두 가지를 확인한다.


첫 번째는 개별 냉동이다. 새우와 마찬가지로 가리비 관자도 개별 급속 냉동(Individually Quick Frozen, IQF) 제품이어야 보관도 조리도 편하다. 두 번째는 첨가제 사용 여부이다. 가리비 관자를 폴리인산나트륨 용액에 담가 처리하면 수분을 흡수해 통통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물론 무게도 좀 늘어날 테니 먼 옛날 말 많았던, 소 도축 전에 물 먹였던 사건이 갑자기 떠오른다.


관자 포장의 성분표에 명기되어 있으니 첨가물 여부는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 익혀 보면 티가 난다. 모든 식재료는 익히면 수분이 빠지기 마련인데, 가리비 관자의 경우 첨가물 처리를 거친 제품은 배어 나온 액체가 말간 우윳빛이다. 가리비 관자는 크지 않아서 냉동이라도 금방 해동시킬 수 있는데, 역시 최선은 냉장실 해동이다. 미리 메뉴를 계획해둔 상황이라면 조리 전날 밤 냉동실에서 냉장실로 옮겨 두면 약간 어폐가 있지만 ‘자연스레’ 해동된다. 만약 계획에 없었는데 ‘나는 갑자기 가리비 관자가 먹고 싶어졌다’는 상황이라면 지퍼백에 넣어 찬물에 담가 해동한다. 만약, 정말 만약 그만큼의 여유마저 없는 급박한 상황이라면 찬물에 스치듯 씻으면 바로 해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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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조개 관자는 버터를 풍성하게 녹여 샤브샤브하듯 익히고, 가리비 관자는 버터에 지지듯 익힌다. 게티이미지뱅크

관자 최고의 짝은 버터

재료 자체에 워낙 맛이 잘 들어 있으므로 관자, 특히 가리비라면 조리를 복잡하게 할 필요가 없다. 일단 최고의 짝은 버터이다. 단단한 키조개 관자는 고기처럼 결 반대 방향으로 최대한 얇게 저미는 게 핵심이다. 단단하다고 해도 생 해산물이면 미끄러워 칼질이 어려울 수 있는데, 그럴 때에는 두 갈래로 대처할 수 있다.


일단 가리비 관자를 접시나 쟁반에 담아 15~30분 가량 냉동실에 두어 겉만 얼린다. 저미기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아니면 처음부터 발상을 달리해 저며진 관자를 산다. 삼겹살마냥 ‘대패 관자’ 같은 제품도 나오니. 껌에 비유한 키조개의 강인함을 감안한다면 생물을 포기하는 대신 편리함을 얻는 게 바쁜 세상에 지혜로운 대처일 수 있다.


직접 저몄든 대패 관자를 샀든 키조개 관자는 버터에 샤브샤브를 한다는 접근으로 익힌다. 논스틱팬에 버터를 ‘이렇게 많이 써도 되나?’라는 불안감이 들 정도로 푸짐하게 더해 약불에 올려 서서히 녹인다. 지글거리는 상태까지는 가지 않도록, 버터가 완전히 액체가 된 뒤 거품을 부글부글 올리기 시작하면 관자를 팬에 한 켜로 적당히 간격을 두어 올린다. 그리고 표면에 말간 기운이 가실 때까지만 살짝 익혀 먹는다.


가리비 관자도 야들야들함을 잃지 않도록 잠깐 익히는 정도 한 가지만을 선택해야 도리인데 접근은 키조개와 사뭇 다르다. 전체를 한꺼번에 먹더라도 질기지 않으니 두께를 활용해 위아래 양면만 지져주면 맛은 물론이고 질감의 대조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관자가 클수록 좀 더 마음 편하게 지져 질감의 대조로 극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데, 최소 500원짜리 동전에서 성인이 엄지와 검지로 최대한 넉넉하게 동그라미를 그리는 크기로 고른다.


일단 관자를 냉장고에서 꺼내 상온에서 10분정도 두는 한편 키친 타월로 겉면의 물기를 말끔히 걷어낸다. 나는 무쇠팬을 즐겨 쓰지만 스테인리스 팬도 좋으니 일단 중불에 올리고, 버터는 키조개 관자보다 조금 덜 올려 녹인다. 버터가 녹아 거품을 부글거리며 올리는 단계를 지나 지글거리면 소금과 후추를 뿌려 각 면을 1분 30초씩 지진다. 역시 팬을 가득 채우지 않는 게 핵심이니 관자를 많이 먹는다면 두 번에 나눠 지진다. 이때 먼저 익힌 관자는 접시에 담아 은박지로 가볍게 덮어 둔다. 모든 관자를 다 익혔다면 레몬즙을 가볍게 흩뿌려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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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에 지진 관자를 완두콩 위에 얹어 함께 먹으면 각자의 단맛이 조화를 이룬다. 게티이미지뱅크

샐러드나 라면과도 잘 어울려

가리비 관자 외에 다른 식재료에도 손을 댈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내가 가지로 그러했듯 채소를 곁들여 좀 더 완결성을 갖춘 요리를 만들어 보자. 가지는 이미 설명했고, 새싹 채소나 상추, 케일 등의 쌈채소 혹은 녹채류를 가늘게 채쳐 올리브기름과 산(식초, 레몬즙 등), 소금에 가볍게 버무려 접이 바닥에 깔고 지진 관자를 올린다. 녹채류 특유의 쌉쌀함과 관자의 달달함이 아름다운 균형을 이룬다. 그러나 지금 이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최상의 조합이 있으니 바로 완두콩이다. 깍지째 쪄서 같이 먹어도 좋고, 깐 걸 샀다면 관자를 지진 팬에 레몬즙을 살짝 뿌려 완두콩을 볶아 녹채 샐러드와 같은 요령으로 관자 밑에 깔아 함께 먹는다. 각자의 단맛이 기가 막힌 조화를 이룬다.


양식도, 적극적인 조리도 싫다면 소극적이고 안전한 조리로도 가리비 관자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완만한 열에너지 전달 매개체인 국물 말이다. 멸치 육수부터 된장 국물까지 어디에든 넣어도 제 몫을 잘 할 테지만 왠지 요즘도 불길이 사그라들지 않은 마라의 유행에 동참시키면 좋겠다.


빨간 고추기름의 막이 하늘하늘 떠 있는 마라 국물뿐만 아니라 실제로 말린 관자(중국식 명칭으로 패주)의 가루를 넣어 농축된 단맛이 한결 두드러지는, 맵지 않은 해물탕 믹스 등도 요즘은 꽤 흔하다. 믹스에 물을 더해 국물을 끓여 고기부터 채소까지 익혀 먹고 마지막으로 관자를 넣어 즐긴 다음 단맛이 한껏 우러난 국물에 생면을 익혀 먹으면 요즘처럼 외식이 자유롭지 않은 여건에서 굉장히 만족스럽게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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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탕과 같은 국물 요리에 관자를 넣으면 단맛이 두드러진다. 게티이미지뱅크

마지막으로 이도 저도 딱히 내키지 않지만 냉동고에 고이 모셔둔 관자의 맛은 보고 싶다면? 조금의 주저도 하지 말고 라면을 끓이자. 관자가 저렴한 식재료는 아니지만 또한 푸아그라처럼 고가도 아니다. 게다가 동물 보호 차원에서 푸아그라는 이제 그만 좀 먹어야 하지만 관자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속 가능한 해양 생태계를 위한 인증 제도가 마련되어 있고 이를 준수하는 제품도 살 수 있다.


게다가 푸아그라는 라면과 잘 어울린다고 보기도 어려울뿐더러 넣으면 녹아 국물만 걸쭉해지지만, 관자는 바다 맛의 정수를 담았으니 라면의 맛을 적어도 두 단계는 업그레이드 시켜준다. 라면 조리 시간의 ⅓쯤이 남았을 때 데친다는 기분으로 해동된 관자를 넣고 뚜껑을 고이 덮어 마무리한다. 면과 함께 국물에 배어든 달달함을 만끽하고 관자도 건져 먹으면 사는 게 별 건가, 행복이 별 건가 생각이 들 것이다.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