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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더오래]쓴맛 약초였던 초콜릿이 단맛으로 바뀐 사연의 전말

by중앙일보

[더,오래] 박용환의 면역보감 (94)


초콜릿의 계절이 왔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상업적인 이유에서 만들어진 이날에 반감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지만, 실제로 1년 중에 초콜릿이 가장 많이 팔리는 날인 것은 분명하다. 밸런타인데이,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뿐만 아니라도 각종 연인의 기념일과 친한 사람에게 하는 선물, 식후 디저트 등으로 인기가 많은 것이 초콜릿이기도 하다.


맛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초콜릿을 볼 때 달콤한 맛이 먼저 떠오른다. 뭔가 사르르 녹는 풍미에 약간 쌉싸름한 느낌이 살짝 있으면서 뒤에 전해지는 달콤함이 기분을 좋게 한다. 그런데 한의사로서 직업적인 강박 때문인지 초콜릿 하면 떠오르는 단맛에 거부감이 있다. 원래 초콜릿은 쓴맛의 약초이기 때문이다. 몸에 좋은 약은 쓰다고 한 것처럼, 이 약초가 효능이 좋다 보니 먹고는 싶은데 맛이 안 좋으니까 여기다 설탕을 넣기 시작하다 보니 주객이 전도되었다. 설탕 맛을 한껏 느끼고 그 속에 아주 소량의 초콜릿 맛이 지나가게 된 것으로 바뀌었다. 상황의 전말을 살펴보자.


초콜릿은 남아메리카의 카카오라는 나무 열매의 씨앗이다. 이 씨앗을 발효시켜 으깬 다음 이것에다 고추 같은 것을 함께 넣어 달여먹는 음료가 있었다. 음료라고 하기에는 맛도 무지하게 쓰고 떨떠름해서 먹기가 고약하지만 이것을 마시고 나면 기운이 뻗쳐 오르고 몸이 회복되었다. 이 음료의 이름이 쇼콜라톨이었고, 원주민의 언어로 쓴 물이라는 뜻이다. 한국으로 치면 한약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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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로서 초콜릿 하면 떠오르는 단맛에 거부감이 있다. 원래 초콜릿은 쓴맛의 약초이기 때문이다. [사진 unsplash]

쇼콜라톨에는 항산화 물질이 매우 많은데, 잘 알려진 성분 중의 하나가 테오브로민이다. 이런 항산화효과 덕분인지 고대의 아즈텍 전사들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기운을 끌어 올리기 위해 쇼콜라톨을 마셨고, 후세에 카사노바는 자신의 쾌락 전쟁에 임하기 위해 초콜릿을 애용하게 된다.


남아메리카를 정복하러 온 유럽 탐험가에게 처음엔 멋모르고 호의적이었던 원주민은 환영의 뜻으로 쇼콜라톨을 대접한다. 쓴맛에 힘들었지만 어느새 몸이 회복되는 것을 느낀 탐험가는 이 열매를 본국으로 가져가 왕에게 진상한다. 이후 유럽 귀족의 음료가 되었는데, 쓴맛을 중화시키기 위해 설탕을 넣으니 마실 만 하다는 것이 알려진 후 다양한 조합이 생기게 되었다. 18~19세기를 거치면서 카카오버터를 따로 추출하고, 굳히는 방법을 알아내면서 지금의 바 형태 초콜릿이 나오게 된다.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대량의 설탕과 섞여 이제는 초콜릿이 달콤하다는 인식이 생긴다. 세계대전 당시에 초콜릿은 군납 용품으로 인기가 대단했다. 이때는 너무 많이 먹을까봐 귀리 같은 것을 첨가해서 맛을 떨어뜨렸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초콜릿을 준 기억을 떠올리는 분이 많듯이 전쟁을 통해 상당히 많이 보급되었다.


몸에 좋은 효능은 있지만, 그것을 먹기 위해 설탕을 넣어 주객이 전도된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딱 카카오빈과 설탕만 들어가느냐면 그렇지가 않다. 입에서 부드러운 풍미를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카카오빈의 유지 성분이 카카오버터다. 초콜릿을 만들 때 카카오버터를 따로 더 추가해 주면 말 그대로 살살 녹기 때문에 고급 초콜릿에는 카카오버터가 더 많이 들어 있다. 문제는 한국의 초콜릿은 이것 대신 팜유 같은 저급 오일을 쓰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또, 설탕 외에 다른 싸구려 대체 당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화이트 초콜릿에는 분유가 들어가기도 하는데, 분유의 등급도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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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콜라톨에는 항산화 물질이 매우 많은데, 잘 알려진 성분 중의 하나가 테오브로민이다. 고대의 아즈텍 전사들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기운을 끌어 올리기 위해 쇼콜라톨을 마셨다. [사진 unsplash]

자, 그러면 어느 정도 비율이면 효능도 가지면서 맛도 느낄 수 있을까? 대체로 카카오 추출물인 카카오매스와 따로 뽑아낸 카카오버터의 합이 50~70% 정도면 좋다고 한다. 70% 이상이 되면 맛에 대한 호불호가 확 갈려 상품적인 가치가 떨어진다고 하니 맛의 기준이 이 정도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카카오버터가 많으면 녹는점이 떨어져 상온에서도 쉽게 녹아버린다. 설탕을 많이 넣어달게 만드는 맛이 있어야 찾는 사람이 많아져 상업적으로 중요하겠지만, 원래 초콜릿의 강력한 힘을 느끼게 하는 것도 잘 인식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효능만으로 쓴맛을 즐기려면 한약으로도 충분하니까 말이다.


아끼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초콜릿이 비만과 당뇨를 선물하는 것이면 곤란하다. 기왕이면 건강을 함께 선물하는 것이면 어떨까? 내가 준비하는 초콜릿에 카카오 추출물 함량이 어느 정도인지 잘 살펴보고 준비해 보도록 하자.

하랑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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